지하련의 우주/Jazz Life

misc.

지하련 2002. 1. 14. 21:43



새벽 4시가 넘어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 9시 경에 눈을 떴으나, 이후 잠을 계속 잘 수 밖에 없었다. 11시가 다 되어 눈을 떴지만, 아직 몽롱하다. 독한 커피를 마실 것을 후회하면서 밋밋한 모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잠이 부족하면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오래된 메모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 한 부류는 책을 쓰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한 부류는 책과 같은 인생을 살아감으로 해서,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야. 자네는 어디에 속할 것 같나?"

파드릭 모디아노의 <<잃어버린 거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옮겨적기를 잘못한 것인지, 책을 쓰는 사람과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구분하다니, 뭔가 어색하다. 차라리 책을 읽고 쓰는 사람들과 책을 아예 읽을 필요도 없는 사람들로 나눈다면. 그래도 어색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새벽에 읽었을 땐, 뭔가 할 말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실은 책을 쓰는 사람들과 경험은 불과분의 관계를 지닌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경험은 책을 쓰지 못하게 한다. 왜냐면 책과 같은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런 몇몇 이들에게 경험의 가치는 책의 가치를 뛰어넘는다. 이런 이들을 만나 책을 쓰는 이들은 이야기를 건네고 귀담아 듣는다. 모디아노에게는 책과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일까.

책. 나에겐 무척 소중한 존재다. 매일 책을 읽고 메모를 한다. 특히 글을 쓸 때, 날 방해하면 나의 신경질은 꽤나 심각할 정도다. 이런 신경질은 책을 잃어버렸을 때도 비슷한데. 책 한 권을 찾기 위해 책장에서 책을 다 꺼내 뒤진 적도 있었다. 끝내 찾지 못했는데, 셰익스피어 희곡집이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그 책이 있는 곳을 알게 되었지만.

책. 난 책을 훔쳐가는 이들을 무척 싫어한다. 빌려갔다가 안 돌려주는 것과는 차원이 틀린 문제다. 되도록이면 빨리 돌려주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들고 간 책은 모리스 블랑쇼의 <<미래의 책>>, 열화당에서 나온 <<상징, 기호, 표지>>, 이 두 권이다. 왜 들고 갔는지 이유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