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역사란 무엇인가, E.H.카

지하련 2007. 7. 18. 18:54


역사란 무엇인가
E.H.카(지음), 김택현(옮김), 까치


다 읽고 생각해보니,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보다 ‘역사학이란 무엇인가’가 더 적당한 제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학자들에게 시선이 고정된 이 책은 학문으로서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마르크 블로크가 그의 시선을 ‘인간’에게 고정했던 것과는 다소 관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위상이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비관주의자들에게는 Carr가 너무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종종 겁을 내는 듯이 비추어지거나 억지로 낙관주의적 관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논리적인 완결성, 또는 철저한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인류는 계속 살아갈 것이고 역사는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Carr는 현대의 비관주의에 물들어가는 우리들에게 소중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감동적이지는 않더라도.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카는, 어떠한 역사가도 자신만의 가치를 위해서 역사를 초월하는 객관성을 주장할 수 없지만, ‘객관적인’ 역사가라고 부를 수 있는 역사가는 ‘사회 안에서의 그리고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로 인해 제한되어 있는 시야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과 ‘자신의 시야를 미래에 투사하여 그것을 통해서 과거에 대한 더 심원하고 더 지속적인 통찰력을 지닐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 R.W.데이비스, p.237~8.



이 점에서 책에서 인용된 호이징가의 문장, ‘역사적 사유란 항상 목적론적이다’은 역사가가 가져야 하는 어떤 태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듯 하다.

현대의 비관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는 나 같은 이에게 ‘절뚝거리는 희망론’처럼 읽혔다. 포퍼처럼 확신에 찬 어조를 가지지도, 후기구조주의자들이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끝이 보이지 않는 비관주의도 아닌, 역사학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전통적이며 교과서적인 관점을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는 인상을 나에게 심어주었다.

객관적인 역사란 과연 존재할까?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를 논할 수 있을까? 결국은 제한된 영역에서의 실증주의적 태도를 가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을, 역사를 믿어야 하는 것일까. Carr는 조심스럽게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하지만, 현대의 우리들은 이미 너무 멀리 와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란 무엇인가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까치글방
E.H. 카의 이 책과 함께 읽어볼 만한 책으로는 마르크 블로크의 책이 좋다. 이 책 또한 역사학 입문서로는 최고의 평가를 받는 책이다.


역사를 위한 변명
마르크 블로크 지음, 고봉만 옮김/한길사
(* 이런 책을 절판시키다니. 개정판을 준비 중이라 믿을 뿐이다.)

그리고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을 비판적 시각에서 논의한 아래의 책은 기회가 닿을 때 사서 읽어볼 책으로 링크를 걸어둔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김기봉 지음/푸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