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사

그리스 조각에 대하여

지하련 2003. 12. 23.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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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시텔레스, <<헤르메스>> (기원전 4세기 경)

 

 

 

그리스의 남겨진 유적들을 보면 사람, 특히 벗은 육체를 표현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 그리스 고전주의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지도 서술의 힘이 퇴색되지 않고 있는 요한 요하임 빈켈만의 설명을 들어보세요. 그러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아마 우리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인의 육체와 비교해보면 아마도 이피클레스가 그의 이복형 헤라클레스를 닮은 것만큼도 닮지 않았을 것이다. 온화하고 청명한 기후는 그리스인의 최초의 인간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유년 시절부터 행하는 육체적 단련이 형성에 기품 있는 형태를 가져다 주었다. 여기에 젊은 스파르타인이 있다고 하자. 그는 영웅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갓난아이 때문부터 번도 강보에 싸인 적이 없었고 7 때부터는 땅바닥에 잠을 잤고 투기(鬪技) 수영으로 어린 시절부터 육체를 단련시켰다. 스파르타 청소년을 오늘날 우리 시대의 나약하고 나태한 청소년과 비교해 보라. 그리고 예술가가 젊은 테세우스나 아킬레우스 심지어 디오니소스의 모델로서 앞의 사람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를 생각해보라. 어느 그리스 화가가 테세우스를 두고 가지 상이한 자태를 특징적으로 묘사한 있는데, 그와 같은 의미에 따르면 후자의 경우에는 호사스럽고 나약하게 장미처럼 키워진 테세우스가, 전자의 경우에는 육체로 단련된 테세우스가 표현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 청소년들에게 ()경기는 육체를 단련시키는 강력한 자극원이었다. 가령 올림피아 제전은 경기가 열리는 바로 지역인 엘리스에서 10개월의 연습 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최고상은 성인만 차지한 것이 아니라 핀다로스의 송가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이따금 청소년들의 몫이 되기도 했다. ‘신과 같은 디아고라스 닮는 , 이것이 모든 청소년의 최고의 소망이었다.

사슴을 추월하는 날쌘 발을 가진 인디언을 보라. 얼마나 원기왕성하고 신경과 근육은 얼마나 유연하고 민첩하며, 몸매가 얼마나 날렵한지를 보라. 호메로스는 이와 같이 신들을 묘사하였는데, 특히 아킬레우스를 날쌘 발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의 육체는 체조를 통해서, 그리스 거장들의 조상에서 있듯이 애매모호한 것도 군더더기도 없는 당당하고 남성적인 윤곽을 얻었던 것이다. 스파르타의 청소년은 열흘에 번씩 행정 감독관 앞에서 나체로 검사를 받았다. 그때 조금이라도 군살이 붙을 징후가 보이면 감독관은 한층 엄격한 절식(節食) 명령했다. 조금이라도 군살이 붙어서는 된다는 것이 피타고라스 계율의 하나였던 것이다. 오랜 옛적 그리스인들 가운데 투기에 지원한 청소년들에게 훈련 기간 유제(乳製) 식품 이외에는 먹지 못하게 것도 아마 동일한 이유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육체가 손상되는 것을 아주 세심하게 피하였다. 알키비아테스는 젊었을 얼굴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피리를 배우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테네의 모든 청소년들이 그의 전례를 따랐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리스의 의복은 모두 자연적인 발육에 조금도 압박을 가하지 않게 만들어졌다. 그들의 의복에는 오늘날 우리들이 입는 옷처럼 특히 목이나 허리 혹은 허벅지 여기저기를 압박하여 아름다운 형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스에서는 여성들조차 아름답게 보이려고 몸을 조이는 옷은 입지 않았다. 스파르타의 소녀들은 대개 가볍고 짧은 옷을 즐겨 입어, 사람들은 그녀들을 엉덩이를 드러내 보이는 처녀들이라고 불렀다.

- 요한 요하임 빈켈만, <<그리스 미술 모방론>> 중에서 (민주식 , 이론과 실천)

 

 

그리고 부언하자면, 때는 기원전이었고 도시 국가를 지키기 위해선 군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시민이라면 군인의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육체에 관심은 당연히 높았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가벼운 권총이나 개인용 화기를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칼이나 창과 그리고 갑옷과 방패를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시대의 아름다움이란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