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

지하련 2007. 12. 9. 19:10


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지음), 안규철(옮김), 한길사


하인리히 고흐의 전기는 미켈란젤로의 일부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이 책 서두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라는 챕터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전기의 일부는 이 논란에 대한 반박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책 속에서 미켈란젤로는 예술가이면서도 피렌체 장사꾼처럼, 자기 스스로는 검소하게 살았지만 은행과 부동산 투자로 대단한 부를 가진 이로,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했던 이로 묘사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예술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매우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그려질 뿐이다.

예술(조각)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뜨거운 열정과 끊임없는 번뇌와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미켈란젤로에 대한 다른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저자의 독특한 관점이 반영되었다거나 미켈란젤로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얻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이 책의 장점으로는 예술가 미켈란젤로보다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고수하면서 절도 있고 절제된 삶, 그러면서도 자신과 가족의 경제적인 기반까지도 걱정했던 미켈란젤로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을 옮겨놓는다.
 

“나의 예술이 나의 여자다.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것이 나를 평생 동안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자식들은 내가 남기는 작품들이다. 비록 그들이 별로 신통치 않을지라도, 한동안 그것들은 살아갈 것이다. 로렌초 디 바르톨루치오 기베르티(Lorenzo Ghiberti)가 산조바니의 문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가련했을까! 자손들이 그가 물려준 모든 것을 팔아치우거나 쇠락하도록 방치해두었지만 그 문들만은 아직 거기 남아있다.”


미켈란젤로가 독신으로 살았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독신으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종종 동성애자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그가 동성애자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는 언제나 예술 창작에만 몰두해 있었고 그것으로 고통스러워했다. 그에게 이성과의 사랑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 연애시를 적기도 하였으며, 후일 한 여성과의 우정을 쌓기도 하였지만, 그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예술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결혼한 여성들보다 훨씬 더 신선하게 자신을 유지한다는 것을 자네는 모르는가? 더구나 음란한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해본 적이 없는 동정녀라면 말할 것도 없지. 음란한 생각은 그 육체를 왜곡시킬 수 있었을 것이네. 그렇지, 나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자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네. 만약 이러한 신선함과 젊음이, 이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신체에서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신의 힘에 의해서 유지된다면, 그것은 성모의 동정과 영원한 순결을 세상에 증언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일세.
반면에 그녀의 아들, 예수에게는 이런 것이 불필요했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드러나야 할 것은 신의 아들이 실제로도 그러했듯이 정말로 인간의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네. 그가 보통 사람이 굴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죄업에 대해서조차도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연약했으므로, 신성(神性)은 예수 속의 인간성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환과 질서를 인간적인 것에 맡겨야 했네. 그 때문에 예수가 그가 가졌던 바로 그 나이를 그대로 보여주었던 것이네. 그러므로 나로서는 성스런 동정녀이자 신의 어머니를 그 아들과 비교할 때 나이보다 훨씬 젊게 만들고, 아들이 자기 나이에 맞도록 만든 것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네.”


젊은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를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너무 젊은 동정녀 마리아와 자신의 어머니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예수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그리고 위 인용문은 이 의문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설명이다.



나는 죄를 살고 나는 죽음을 살아,
더 이상 삶으로 살지 않고, 오직 해악으로만 사노라.
하늘은 선(善)을, 그 은총을 내어놓는데,
나는 악을 취하네. 탐욕은 나의 빵이 되었고,
자유는 나의 하녀가, 덧없음은 나의 신이 되었네.
저주받은 나! 격정의 오솔길에서
이제 나는 어떤 인생 속으로 흘러들었는가!


우울한 미켈란젤로는 미켈란젤로에 대한 대부분의 책에서 언급되는 주제이다. 음침하고 음울하며 사람들과의 교제보다는 혼자 있기를 즐기며, 화를 잘 내고 자기중심적인 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의 전기에서는 이러한 미켈란젤로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코흐의 생각이다. 하지만 예술에 몰입했을 때의 미켈란젤로는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위의 시구처럼. 그러나 그러한 성격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치명적인 지장을 준 것은 아니었다.

 

미켈란젤로 - 10점
하인리히 코흐 지음, 안규철 옮김/한길사
- 절판이라니.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성 미켈란젤로 - 10점
제임스 H. 벡 지음, 박혜수 옮김/이룸
-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힌다. 또한 예술가로서의 미켈란젤로와 일상인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균형있게 담아내고 있다.


르네상스 - 10점
폴 존슨 지음, 한은경 옮김/을유문화사
- 르네상스 예술의 전반적인 것에 대해 이 책은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당시 미켈란젤로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를 알기에도 충분하다(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