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갈색 먼지의 목감기

지하련 2008. 2. 24. 12:14

갈색 먼지로 뒤범벅이 된 레코드자켓에서 타다만 낙엽 끄트머리 색깔과 닮은 레코드를 꺼내 일본의 어느 전자 공장에서 나온 지 족히 20년은 넘긴 파이오니아 턴테이블 위에 올린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낡은 목소리들이다. 그 목소리들 사이로 문학을 이야기하고 예술을 이야기하던 그 때 그 시절의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하다. 하긴 그 때나 지금이나 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혼은 변한 건 별로 없는데.



그러나, 결정적으로 보이는 세계의 영혼은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어제 낮에 세탁기를 돌리기 시작했는데, 오늘 오전까지 계속 돌아가고 있다. 잠시 세탁기로 흘러나오던 물이 끊어진 탓이다. 그리고 나는 세탁기의 삶은 존중해주기로 마음 먹은 적은 없지만, 대신 내 삶의 피곤에 지쳐 금방 잠들고 말았다.

목감기에 걸려버렸다. 해마다 초겨울이면 걸리던 목감기를, 올해는 늦겨울에 걸리고 말았다. 그것도 출국 이틀 남겨놓고. 할 일도 많은데.

내가 없는 사이, 금붕어 밥 주고 화분에 물 줄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마 금붕어는 어항 위로 곱게 떠올라 날 증오하겠지. 화분들은 올해 내내 화려한 꽃과 푸른 잎사귀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나의 성실한 양육 태도를 요구할 거야.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이 변하진 않겠지만, 나는 조금 바뀔지도 몰라.  

프랑크푸르트에 잠시 들렸다가 칼스루헤로 간다. 독일에 살고 있는 후배와 술 한 잔 할 생각인데, 일정이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역시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 유학 가겠다고 고집부리다 만 것도 바로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