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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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련 2008. 8. 26. 20:03

카메라를 가지고 나갈 때조차, 나는 거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아직 익숙치 않은 탓이다. 도리어 어떤 풍경을 보고 그것에 어울리는 문장을 고민하는 편이다. 최근 한 달간 내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놓고 보니, 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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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동사무소 옆 흰 벽과 거울이 인상적인 카페에서 더치 커피를 마셨다. 커피 향이 너무 좋았고 같이 있었던 이도 좋았다. 집 안에서 키울 수 있는 나무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커피에 대해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녀에게서 커피를 선물받았다. 그런데 아직 드립퍼를 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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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 있는
카페 향에서 있었던 재즈 연주 풍경이다. 최근 들었던 그 어느 재즈 밴드들보다 수준급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연주에 비해 모인 사람들이 다소 적었고 단골들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도 바쁜 일상 중이라,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다. 즐겁게 술에 취한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 그런 일이 있었나 가물가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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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와인은 깊고 두터운 향을 경험하게 해준다. 특히 몇 시간에 걸쳐 아주 천천히 마실 때야 말로 이 와인의 진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이 땐 너무 급하게 마셨고 결국 취하고 말았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다면 근사한 와인 파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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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라 투르의 세컨 와인이다. 가격 대비 무척 훌륭한 와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모 잡지의 어워드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위의 마고 와인을 마신 후, 이 와인은 너무 밋밋했다. 난 구대륙의 무겁고 진한 와인을 너무 좋아한다. 와인 이야길 적다보니, 와인 마시고 싶어진다. 아, 이 와인 중독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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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박 갤러리엘 갔다. 주위의 풍경이 좋았고 현재 전시 중인 정광희 선생의 작품은 너무 좋았다. 갤러리 근처의 한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몇 분과 인사를 나누었지만, 나서지 않았다.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과 만날 땐, 늘 조심스럽다. 조용히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닥터박 갤러리 대표님과 관장님, 그리고 미술평론가 윤진섭 선생님도 함께 식사를 했으나, 인사를 나누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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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난 사람들 중에
블랙칸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다. 살사 댄스 강사이기도 한 그녀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살사를 춘다. 그녀의 초대로 홍대 근처에서 열린 파티엘 갔다. 생각해보니, 이런 파티는 처음이다. 춤이 어우러진 근사한 파티였다. 나같은 이는 술만 좋아라 할 텐데, 연주와 춤을 함께 즐길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위의 사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이는 강재선 선생이다. 모스크바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정식 클래식 연주자인데, 라틴 음악에 빠졌다고 한다. 나도 흥에 겨워, 잠시 살사 스텝을 배웠으나, 서른 중반에 이른 몸의 기억력은 현저히 떨어져 있었고 막춤 세대라 매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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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미술에 매혹되거나 혹은 사진이라는 것에 매혹되었다면, 대기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왜냐면 대기의 변화에 따라 풍경의 색채가 바뀌기 때문이다. 이것을 최초로 발견한 예술가가 바로 인상주의자들이다. 바로크 풍경화가들이나 몇몇 낭만주의 예술가들에 의해 자연 풍경의 미묘한 변화가 실험되기도 했으나, 이를 주도적인 경향으로, 깊이있는 분석과 표현으로 이끌어낸 이들은 인상주의자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이들은 현대의 사진가들이 아닐까 싶다. 어제 오전에는 인사동에서 여러 전시를 보았고 몇 명의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에는 사진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 종일 미술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눈 보기 드문 하루였다. 저녁 6호선 광흥창 역 근처에서 몇 장의 평범한 사진을 찍었다.  

좋은 작품들은 좋은 향기가 나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나에게서도 좋은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에게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