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지각과 충동, 관훈갤러리 개관 30주년 기념전

지하련 2008. 10. 5. 16:18


지각과 충동, 2008. 8. 13 - 8. 26, 관훈갤러리



인사동에 나가면 나는 두 가지에 자주 놀란다. 그 하나는 인사동 거리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이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사동을 지나간다. 그런데 나는 그 많은 사람들과 대조적인 텅 빈 갤러리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인사동 갤러리에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오픈식이 있는 수요일 오후를 제외하고). 많은 갤러리들이 청담동, 신사동으로 떠나고 새로 오픈하는 갤러리들은 주로 사간동이나 삼청동에 자리를 잡는 요즘, 인사동은 참 애매한 공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훈갤러리는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최근 관훈갤러리에서 개관 30주년 기념전 '지각과 충동'을 했다. 주로 대관 위주로 전시되는 인사동에서 보기 드문 전시였다. 주목할 만한 한국의 젊은 화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특정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2008년 젊은 한국 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즐겁고 유쾌한 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내 눈에 들었던 몇몇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해서 적어보기로 한다. 

김병호, Silent Pollen - sowing, Silent Pollen - gathering SIZE: 225(width)x60(height)x43(depth)cm, MEDIUM: aluminium, microspeaker, DTMF generator 
출처: http://aliceon.tistory.com/797 (김병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유익한 아티클이 있음)

김병호는 미디어, 특히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듣는다'는 행위 위로 그는 조형적 미학을 덧붙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설치 미술이거나 현대적 방식의 조형물 처럼 보이지만, 실은 관객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미디어 아트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장점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조형적 아름다움에 있다. 그리고 그 장점 속에서 '소리'를 찾게 만든다. 어쩌면 현대적 매체들 속에 숨겨진 본질적인 어떤 것에 대한 탐구일 지도 모른다.

김병호_"그들의 꽃 Their Flowers"
황동, 콘덴서마이크, 마이크로스피커_가변설치_2006
출처: www.neolook.net (2006년 갤러리 쿤스트독 전시 사진)


전정은의 사진은 이질적 공간의 조합이 특징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폐허로 변한 인간의 공간 너머로 자연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 기묘한 대비로 인해 그의 사진은 낯설어지고 보는 이를 끌어당긴다. 꼭 로마 후기 회화의 환영주의적 양식 처럼,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자연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반대로 도시, 혹은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공간에 지쳐가고 있는 지도.

전정은_Landscape of egoism_디지털 프린트_96×120cm_2007

전정은_Landscape of egoism_디지털 프린트_96×120cm_2007

전정은_Landscape of egoism_디지털 프린트_96×120cm_2007
출처: www.neolook.net  (2008년 5월 관훈갤러리 전시 자료 중에서 인용함)


좋아하는 작품이란 있기 마련이고 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전문적인 지식의 양과는 무관해진다. 대신 (예술)경험의 폭과는 비례한다고 생각된다. 이번에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는 이지원의 작품은 '무미건조한 도시에서의 서정성'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서정성이라, 실은 빨간 옷을 입은 꼬마아이가 다리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과 이 단어를 연결짓는 내 감성이 다소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엎드려 있는 행위를 한 번이라고 해본다면, 그것이 어떤 느낌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회화 경향 중의 하나가 낯설 풍경을 과감한 색채나 터치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지원의 작품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뭐, 이건 최근의 트렌드이고, 나는 이 작가를 알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어 보지 못했지만, 이 작품은 묘한 감동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이지원, 도시에서의 삶no.1, 162.2 x 130.3 cm, Oil on canvas, 2008
(출처: 전시도록에서 간단하게 사진촬영함. 스캔은 저작권에 심하게 위배됨으로 사진촬영으로 대신하였음.)


'프리허그'라는 낯설고 낯뜨겁고 심지어는 한국 사회마저도 개인주의화가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되었는가를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행위가 한동안 전파를 타고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하긴 나를 포함해 한국에서는 포옹을 할 일이 거의 없다. 요즘은 모르겠으나, 내 기억 속에는 가족끼리도 포옹을 하는 것이 낯설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포옹'을 그린 김윤정의 작품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쓸쓸해보인다. 어둡고 건조한 배경 속에 서 있는 두 인물의 표정은 창백하고 포옹하고 있으나, 그 포옹의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듯, 그 느낌을 찾기 위해 자신의 쓸쓸함 속으로 여행을 떠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는 외롭고 쓸쓸한데, 그것을 다들 숨기기 위해, 아니면 회피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자신을 내몰며, 자기 자신을 잊어버려고 노력하는 건 아닐까. 이 점에서 김윤정의 작품이 가지는 여운은 꽤 길고 부드럽고 슬프다.


김윤정, untitled, Oil on canvas, 193 x 130 cm, 2008

김윤정, untitled, Oil on canvas, 193 x 130 cm, 2008
(출처: 전시도록에서 간단하게 사진촬영함. 스캔은 저작권에 심하게 위배됨으로 사진촬영으로 대신하였음.)



* 위 인용된 작품 이미지들은 저작권을 득하지 않았음으로, 저작권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이지원 작가와 김윤정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구하고 싶었으나, 온라인에서 그들의 작품 이미지를 구하지 못한 관계로, 도록에 실린 작품 이미지를 카메라로 찍어 올립니다.
* 본 리뷰와 관련된 문의는 yongsup.kim@yahoo.com 으로 해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