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서울에서의 일상

지하련 2008. 10. 26. 04:36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시속 백 킬로미터에서 백이십 킬로미터 사이를 오가는 속도 속에서, 나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시월 말의 아침 하늘은 신비롭고 고요했다. 서해 갯벌 사이로 나있는 도로는 꽤 절망적인 근대성(modernity)을 가지고 있었다. 서유럽 나라를 가면 늘 깨닫게 되는 것이지만, 아직 한참 먼 한국의 정신적, 문화적 성숙도와 시스템을 선명하게 보게 된다.

종일 잠을 잤다. 잠을 자지 않을 때는 청소한다는 핑계로 시간을 아무렇게나 쓰며 방 안을 배회했다. 무려 이천 발자국 이상을 걸었다.

다행히 금붕어는 살아있었고 시든 화분들이 마음을 아프게 했으나, 아직 남아있는 초록빛 생기는 나로 하여금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듯 보여 다소 간의 위안이 되었다. 몇 주 만에 짬뽕을 시켜 먹고 설사를 했다. 흥미로운 이율배반이었다.


첼리비다케의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가 담긴 낡은 LP를 들었다. 서울의 낮은 추웠고 밤은 아늑했다. 하지만 서울 변두리 동네의 일상적인 소음은 이 곳이 프랑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서가에서 지난 이천년에 있었던 ‘인상파와 근대미술-오르세 미술관 전’ 도록을 꺼내 뒤적거렸다. 그러고 보니 폴 고갱은 늘 뒷전이었다. 내 관심은 모네, 드가, 세잔, 고흐로만 이어졌지, 고갱은 고흐 옆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그런데 이 남자,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평생 가난한 전업 화가로, 두 명의 아내에게서 모두 버림 받는 남자로, 홀로 목판화 작업을 하다가 죽는다.


파리에서 만난 한 예술가에게 지나간 여자이름을 이야기하자, 아는 척 해주었다. 반은 기뻤고 반은 씁쓸리했다. 그는 파리 마자랭 가의 갤러리 Guislain-Etats d’Art에서 막 전시를 끝낸 참이었다. 그의 작품은 의미심장하고 슬펐지만, 그의 사각형 구도는 너무 차가워서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파리에 있는 동안 와인 한 잔 하리라 생각했지만, 생각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오랜만에 심야라디오를 듣고 있다.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향을 피웠다. 담배를 피웠다. 마음은 어떤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의 절반은 두려움이고 나머지는 포기다.


다닐 직장을 알아볼 생각이다. 갤러리 쪽으로 가고 싶으나,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다시 산업 쪽으로 가게 되면, 의외로 긴 직장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픔이 내 마음 전체를 지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난 이미 슬픔마저도 포기했으니까.





Gauguin, Paul
Portrait of the Artist with the Idol
c. 1893 ; Oil on canvas, 43.8 x 32.7 cm (17 1/4 x 12 7/8 in); McNay Art Institute, San Antonio, 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