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전강옥 '중력(Gravity)' 전, 관훈갤러리

지하련 2008. 11. 18. 17:47



중력_Gravity
전강옥(Kang-Ok Jeon),관훈갤러리, 2008.8.6 - 8.12
- 2008년 서울시립미술관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 전시


전강옥_멈추어진 시간, 떠 있는 큐브_나무, 추, 케이블 선_74×69×110cm_2005




어쨌든 삶은 지속된다.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정신적으로 위태로운 상태에 놓이더라도, 자살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통계적으로는 자살 시도 후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어느 통계를 보니, 자살충동을 느낀 사람들 중에서 자살 성공한 사람은 0.087%,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중에서 자살에 이른 사람은 2.15%라고 한다). 즉, 어쨌든 삶은 지속된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이 견고한 세계는 그 위용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전강옥의 ‘중력’이, 우리의 ‘삶’의 은유이며, 우리와 적대하고 있는 이 견고한 세계처럼  느껴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작가는 야심만만하게 조각의 물리적 측면에서의 본질을 건드린다. 현대 이전의 조각에서는 감각적인 형태가 중요한 부분이었다면, 현대 조각에서는 여기에 운동까지 끌어들인다. 전자가 '정지된 세계'라면, 후자는 '변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꼭 플라톤과 헤라클레이토스를 보는 듯하다.

전강옥은 조각은 중력의 예술이라고 단언한다. 실은 조각이 조각이게 하는 것, 우리가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바로 '중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늘 있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물리학적 힘, 중력을 분석하고 확장시켜 작품의 소재/주제로 삼는다. 흥미로운 것은 중력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중력 속에서 조각은 어떻게 운동하여 변화를 만드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중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형태에 운동과 변화를 부여한다. 키네틱 아트에서의 일정한 규칙이 있는 운동이 아니다. 그는 부정형의 운동과 변화를 극대화시킨다.
중력 하에서 변화란 중력의 힘을 이용하거나 이를 거슬러야만 가능한 것이다.

‘변화’란 기존의 상태를 부정하는 것이며 일종의 파괴이다. 서양 철학사가 존재의 철학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의 삶 속에 ‘변화’를 집어넣는 순간,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듯이 학문에서도 그러한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인정받지 못했던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를 긍정했기 때문이고, 우리의 삶과 이 세계 전반에 우연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이는 철학적으로가 아니라 실제 정신적으로 우리를 매우 피폐하게 만드는 것임을 잊지 말자).

하지만 조각가 전강옥은 그의 작품들을 중력의 사이에 위치시키곤, 운동과 변화를 대입시켜 이를 흥미롭게 관찰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기우뚱해지기도 하고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기도 하고 부서져 있다.

그런데 이게 꼭 우리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세계(혹은 힘) 사이에 끼인 채,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삶. 실은 우리도 정해진 바대로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문제는 땅바닥에 고정된 상태에서는 거의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중력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할 때면 영향을 미치듯, 우리의 삶 속에 삶은, 이 세계는 우리가 뭔가를 바라고 욕망할 때면 언제나 시비를 걸며, 불평하며,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너무 과도한 비약일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대 조각이 중력과 싸우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듯, 우리도 이 거대한 세계와 싸우며 우리의 삶을 완성시켜가고 있는 것을.

나는 작가가 보여주는 중력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거친 세상이 보였다. 



전강옥_무게, 매스, 공간_나무, 낚싯줄, 석고_190×190×190cm_2006


“조각은 중력의 예술이다. 조각은 매스(mass)를 사용하는 예술이므로 중력의 법칙에 우선적으로 귀속되는 것이다. 즉, 조각은 건축과 마찬가지로 중력과 힘의 조작이며 물리적 법칙을 우선적으로 만족시켜야 하는 예술로서, 조각에 있어서의 매스는 부동 상태에 있거나 키네틱 아트에서처럼 운동 상태에 있거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넘어져서는 안 되는 필연성을 가지며, 이것은 곧 조각의 엄격한 규칙이자 동시에 조각 예술의 탁월성이라 하겠다. 조각 예술에 있어서의 엄격성은 바로 매스의 안정성 확보와 균형 상태의 보전에 있으며 이 안정 상태의 상실은 실제적, 상징적으로 조각의 파괴를 야기한다. 균형의 상실과 함께 땅바닥에 수평으로 넘어진 상태는 조각의 부정과 동일한 의미로 간주된다. 따라서 조각이 조각일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사실은 무엇보다도 먼저 삼차원의 공간에 놓인 매스의 균형을 만족시키는데 있으며, 모든 물체를 지표면으로 잡아당기고 쓰러뜨리는 중력의 힘에 대한 완벽한 지배는 조각 예술의 성격을 결정하는 최고의 특성인 것이다.”
- 전강옥의 ‘작가노트’에서 




전강옥_삐딱하게 서 있기 (테이블2)_나무, 석고_110×150×90cm_2008


전강옥_삐딱하게 서있기 (책장)_나무, 석고_230×130×30cm_2008





* 이 전시는 지난 여름에 있었던 전시입니다. 늘 제 리뷰는 느립니다. 작품을 글로 옮긴다는 건 꽤 힘들고 어려운 작업입니다. 작가와 작품을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전시 때 가면 어떨까 싶네요.
* 위 글에서 사용된 이미지들은 neolook.com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였으므로 그대로 옮깁니다만,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경우 바로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http://neolook.net/mm08/080806e.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