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일상

지하련 2008. 11. 28. 07:46


일(프로젝트)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어떻게든 해주면 무조건 감사를 받을 수 있는 일,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일, 딱 노력한 만큼만 대가를 받는 일, 노력해도 본전치기이거나 도리어 욕먹을 일 등등.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구분할 능력도, 구분할 생각도 없이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몸은 늘 피곤하고 마음은 항상 가난한 것인가.

어제는 종일 두통에 시달렸고,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비 탓인지, 매우 우울하고 기운 빠지거나 기분만 상하던 날이라, 양재동 갤러리를 잠시 들른 후, 곧장 신촌으로 가 맥주 3병을 마셨다. 급하게 마신 탓인지 취기가 금세 올라, 카페에 들어간 지 한 시간 남짓 흐른 후 일어나 집으로 왔다.

그리고
자정이 되기 전 잠자리에 들었으며, 오전 6시에 잠자리에 일어났다.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마시며, 아주 오래 전 사연을 지닌 쇼팽의 녹턴을 듣고 있다. 그 사이 새벽의 어둠은 사라지고 지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아침이 왔다. 잠시 티브이를 틀어 뉴스를 보았으나, 사건 사고로만 가득한 세상과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 뉴스뿐이었다. 내 삶이 다소 건조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약간, 혹은 매우 슬퍼졌다.

북마크가 된 어느 일본 갤러리에 들렸더니, 베를린에서 귄터 워커(Gunther Uecker) 전시를 내년 초까지 하였다. 올해 만났던 작가들 중에서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들었던 작가였다. 그의 캔버스 위에 촘촘히 박힌 못은, (그의 생각이 어떤 것이었던 간에) 마치 내 가슴을 파고 드는 듯, 아팠다.

 
 
Gunther Uecker
Grosser Wald (Large Forest)
1988/1991
seven parts, wood and nailsheight
110-170 x diameter 80 cm
이미지 출처: http://www.akiraikedagallery.com/berlin.htm 


다행이다. 지치고 아프더라도 사람은 늘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거친 세상의 방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몇 통의 메일을 보내고 운동을 하고 종일 집에 있을 생각이다. 상처입지 않기 위해 무수한 노력과 주의를 기울이지만, 놀랍게도 상처 입는 건 나 혼자 뿐이더라.

요즘 글 한 편 쓰고 있는데, '눈 속에 갇힌 남자 이야기'다. 그런데 이 남자 이야기를 쓰지 못하고 이 남자 생각만 하면 안타깝고 화 나고 아플 뿐이다. 그래서 내가 픽션을 쓰지 못하는 것이리라.




Yundi Li plays Chopin Nocturne Op. 9 No.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