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冬.中.之.情 - 민병권 展, 갤러리 갈라

지하련 2008. 12. 28. 14:36


冬.中.之.情 - 민병권 展
갤러리 갈라_GALLERY GALA
2008. 12. 17 ~ 12. 30


민병권, 백제송(百濟松), 한지에 수묵담채, 99×76cm, 2008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소리 내어 읽는다.

<격물론>에서는 ‘소나무 가운데 큰 것은 둘레가 몇 아름이고, 높이는 십여 길이다. 돌을 쌓은 것같이 마디가 많고 껍질은 매우 거칠고 두꺼워 용의 비늘과 같다. 뿌리는 굽어 있고 가지는 늘어져 있다. 사계절 푸르러 가지와 잎의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 봄 2~3월에 싹이 트고 꽃이 필어 열매를 맺는다. 여러 품종 가운데 잎이 세 개인 것은 고자송(枯子松)이고, 다섯 개인 것은 산송자송(山松子松)이다. 송진은 쓴데, 땅 속에서 천년을 묵으면 복령(茯笭)이 되고 또 천 년을 보내면 호박(琥珀)이 된다. 큰 소나무는 천년이 지나면 그 정기가 청우(靑牛)로 변하여 복귀(伏龜)가 된다’고 하였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를 그렸던 강희안은 그의 책 ‘양화소록’ 첫머리에 노송(老松)에서 대해 적고 있었다. 이런 문장도 있다.

유유주(柳柳州)는 최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소나무는 바위 꼭대기에 나서 천길 높이에 우뚝 서있다. 바른 마음과 굳은 절개를 가지고 그 본성을 견고히 하여 얼음과 서리를 막아 겨울 추위를 이겨내니 군자는 소나무를 본받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강희안이 이렇게 이야기한 지도 벌써 600년이 흘렀다. 그러니 이는 오래 전 그림을 좋아하던 한 선비의 취미일 뿐, 현대 세계에는 너무 낯설고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민병권, 송림(松林), 종이에 수묵, 163×130cm, 2005


민병권의 작품이 가지는 매력은 현대적이라는 데에 있다. 작가는 거친 도시의 일상을 용케 견디고 있는 현대인들이 바라보는 소나무를, 숲을, 들판을 그리고 있다. 이상적인 이념이나 이상향으로서의 소나무가 아니라 삶이 찌들어가는, 거친 터치 속에서 날카로운 표정으로 악착같이 세상을 견뎌내는 어떤 존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흰 여백은 쓸쓸한 눈물 방울들을 흩뿌린 듯, 나무와 들을 감싸고 흐르며,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 있고, 소나무의 거칠지만 힘있는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의 포기 없는 생의 숨겨진 인내를 보는 듯 했다.  


민병권, 야송(野松), 한지에 수묵담채, 70×123cm, 2008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고 우리의 인생은 늘 이래야만 되는가라는 푸념이 일상의 빈 자리에 자리잡고 있듯, 작품은 어딘가 고통스러운 흔적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품을 감싸고 도는 긴장감은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삶의 불안감의 다른 표현은 아닐까.

수묵화가 전통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어떤 것을 반영하는 순간, 작품은 낯설어지고 슬퍼지고 견디기 어려운 어떤 것으로 변하게 된다. 인적이 드문 곳에 터를 잡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선비의 고매함을 뒤로 물러나고 거친 바람과 쓸쓸함을 견디며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현대인의 기묘한 치열함이 자리잡는 것이다. 

민병권의 작품이 가치 있다면, 그것은 현대인의 삶을, 영혼을 수묵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될 것이다.  


민병권, 야송(野松), 화선지에 먹, 191×97cm, 2007



* 본 블로그는 비상업적 블로그이며, 작품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작품 이미지들은 neolook.com에서 가지고 왔으며, 위 글에 인용된 두 작품들은 2005년과 2007년 전시 작품임을 알려드립니다.
* 본 전시는 12월말까지 계속되며, 갤러리 갈라(02-725-4250)는 인사동에 위치해 있습니다.
*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대해서는 http://intempus.tistory.com/80 를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