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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한국 나이로 쉰 아홉인 데이브는 2014년 이스라엘 전투기의 가자 지구 공습으로 그의 형제들과 조카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3살된 딸과 고작 7개월 밖에 안 된 아들을 잃었다. 데이브의 가족은 이미 무수히 죽어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부일 뿐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기독교도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다니엘 바렌보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팔레스타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한다. 상당히 수준 높은 연주를 들려주었던 오케스트라로 유명했다고 회고하지만, 이스라엘이 생기기 전 팔레스타인과 그 이후의 팔레스타인은 다른 나라다. 팔레스타인에 이슬람교도만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쇼아 이후 많은 유태인들이 그들에게 닥친 비극을 노래하지만, 국제 정치의 결과물인 이스라엘(솔직히 19세기에 없었던 듣보잡 나라다..

독서모임 빡센 - 2050 거주불능 지구 The Uninhabitable Earth

책을 읽는다는 건 뭘까.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더 궁금해지고 조금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심해지는데, 이건 나에게만 해당되는 걸까. 경제 불평등이나 기후 위기, 또는 현대인들에게 널리 퍼진 우울증이나 정신적 불안, 포스트모더니즘 다음에 오게 될 어떤 예술 사조에 대한 전망, 새로운 패권 국가(들)이 만들어가게 될 국제 질서, 인공지능(AI)이나 시간에 대한 물리학적 고찰 등 내가 요즘 관심을 가진 분야는 넓기만 하다. 어쩌다 보니, 이런저런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을 제대로 소화시키지도 못하고 마치 활자 중독처럼 읽기만 하는 건 아닐까 반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지금 이 시기는 너무 중요해서 우리의 미래가 희망을 품어도 될 것인지, 아니면 절망적인 상황을 대비할 수 있을지, 또는 ..

책들의 우주 2023.10.08

불의란 무엇인가, 대니얼 돌링

불의란 무엇인가 Injustice : Why Social Inequality Persists 대니얼 돌링(지음), 배현(옮김), 21세기북스 1. 생각은 깊어지지 않는 대신 많아지고 해결보다는 포기가 더 나은 선택처럼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다들 비슷하게 늙어가고 비슷한 생각과 습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다. 이것도 어쩌면 패거리일 수도 있고 카르텔일 수도 있겠다. 우습다. 결국은 목소리가 큰 권력자가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 되었다.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나 행동 따위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저 대중들의 손으로 쓰레기통에 들어간 지 오래되었다. 실은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나 행동을 할 것이라 여겼던 이들조차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절망적인 회의감으로 물드는 가..

초거대 위협, 누리엘 루비니

초거대 위협 - 앞으로 모든 것을 뒤바꿀 10가지 위기(Megathreats) 누리엘 루비니(지음), 박슬라(옮김), 한국경제신문 안타깝게도 다가오는 위기를 안다고 해서 한국의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도리어 절망에 휩싸일 확률이 더 높고 희망을 가질 수 조차 없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보자면, 투표한 사람의 절반 이상은 우리의 미래 따윈 관심 없고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만 따져 물었다. 특히 노인들은 그들의 지나온 과거를 보며 투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녀들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투표해야 하지만, 그런 미래지향적 사고를 가졌다면 아마 험난하고 굴곡 졌던 한국 현대사를 살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그런 사고를 가졌던 이들은 비명횡사를 당했거나 고문으로 불구가 되었거나 해외 이민을 떠날 것이..

그 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그 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지음), 이재룡(옮김), 열린책들 세상에 참 많은 작가들이 있다. 무수한 작품들이 있고 그 작품 하나하나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어떤 세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놀랍고 안타깝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글로 번역된 걸 읽다가 영어 원문으로 읽었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언어란 신비롭고 예술의 끝은 없다. 일년에 읽고 볼 수 있는 작품의 개수는 한정적이다. 소설가 장강명이 어느 글에선가 1년에 백사십여권을 읽었다고 했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권씩 읽은 것인데, 대단하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 정도의 책을 읽기란 쉽지 않다. 애초에 소설가나 시인은 책을 잘 읽지 않거나 문학 작품에만 편중된 독서를 하기 일쑤다. 실은 작품 ..

인생, 예술, 윤혜정

인생, 예술 윤혜정(지음), 을유문화사 살짝 궁금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거의 가지 못했다. 미술 잡지도 거의 사지 않으며 미술 관계자와 만날 일도 없었다. 하지만 미술, 아니 예술은 내 삶의 일부다. 내가 마음의 안식을 얻는 곳은 늘 예술이 있는 장소이거나 공간이다. “미술관은 탐색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많은 진실에 둘러싸인 하나의 진실이다.” - 마르셀 브로타에스(20쪽) 마르셀 브로타에스(Marcel Broodthaers, 1924 -1976)는 벨기에의 현대 시인이자 미술가였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나,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뒤늦게 회고전을 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 현대 미술사에 큰 자취를 남긴 개념미술가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마흔이 되어 미술계로 뛰어들었다. 더 이상 ..

비토레 크리벨리,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

라는 템페라화로 베네치아의 화가 비토레 크리벨리(Vittore Crivelli, 1444 ~ 1501/1502)의 작품이다. 1490년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후기 고딕의 자연주의와 초기 르네상스의 화풍이 드러난다. 실은 양식상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서,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다. 지역적으로 이탈리아에 속한 관계로 초기 르네상스 작품으로 보아야 하지만, 자연주의적 표현이 두드러지긴 하나, 인물의 표현에 있어서 르네상스 특유의 생동감은 다소 떨어진다. 그래서 고딕 자연주의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해야 할까. 성 카타리나는 4세기 경의 카톨릭 순교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알렉산드리아 총독의 딸로서 학자이며 카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으며, 카톨릭 박해로..

09.21

09.19. 기록을 한다. 예전엔 종이 위에 펜으로 그리거나 썼는데, 이젠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리며 글을 쓴다. 격세지감이다. 아마 지금도 고향집 다락방엔 수십년 전, 짝사랑하던 여고생의 흔적이 남은 일기장이 먼지를 먹고 있겠지. 그 땐 참, 가슴이 너무 떨려 제대로 걷지도 못했는데. 지금도 그럴까. 그런 일이 생기면 나쁜 일이 될꺼야. 정말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진지하게 생계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탓에, 어쩌면 무심하게도 무조건 작가가 되겠다고 여겼던 탓에, 직장 생활이 가끔, 자주, 예고 없이 어색하기만 했다. 자주 회사를, 직장을 그만 두었다. 일을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탓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일을 잘하는 것 이상으로 책임감도 중요한..

어수선하다

나라가 너무 어수선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개의 배경이 있다. 첫째, 아무 생각 없이, 또는 잘못된 생각/판단으로 선거 때 2번을 찍은 국민들이 있다. 그러니 그냥 2번을 지지하고 찍은 국민들이 책임지면 된다. 그러니 1번 찍은 이들은 그냥 놔둬라. 둘째, 전 정부/정권 책임자들이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대단히 성공적인 정부/정권이라고 믿는 듯하여 화가 난다. 심지어 그 정부의 국무총리는 반성은 커녕, 정치에 큰 야망을 두고 있으니, 한심하기만 하다. 힘 없는 야당의 모습은 그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지방에서 서점을 하는 전직대통령은 뭐랄까, 그 기분은 알겠지만, 너무 태평한 건 아닌가 싶다. 그냥 아무 활동도 안 했으면. 하지만 이건 그냥 사소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인칭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단수 무라카미 하루키(지음), 홍은주(옮김), 문학동네 다 읽고 보니,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건 무려 이십년만이다. 가 나온 지도 벌써 이십년이 지났다. 일 년에도 여러 차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을 읽거나 보게 되지만, 정작 그의 소설을 읽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일년에 읽는 소설은 채 열 권도 되지 않고 심지어 서재에는 읽으려고 사둔 소설만 수십권이 될 터니. 우연히 도서관 서가를 지나치다 이 소설 를 보게 되어 빌려 읽었다. 예상한 대로의 하루키 소설이었다. 늘 기대하는 모습 그대로 이 소설집에서도 하루키는 가볍고 경쾌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는 너무 진지했다고 할까. 하루키가 어딘가 진지해지면, 그 순간 모든 그의 매력은 반감되고 깔끔하던 그의 작법은 도리어 어설퍼진다. 그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