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660

자본가의 탄생, 그레그 스타인메츠

자본가의 탄생 The Life and Times of Jacob Fugger 그레그 스타인메츠(지음), 노승영(옮김), 부키 푸거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서문에 나온 아래 문단만 읽어도 된다. 책은 이 요약문의 자세한 설명이며 역사적 근거와 시대적 배경을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카를이 황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푸거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푸거는 카를이 황제가 될 수 있도록 거액의 뇌물을 빌려주었을 뿐 아니라 카를의 할아버지에게 자금을 투자해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정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중앙 무대로 진출할 수 있게 도왔다. 푸거는 다른 분야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그는 고리대금업 금지 조치를 해제하도록 교황을 설득해 상업을 중세의 미몽에서 흔들어 깨웠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 룰루 밀러(지음), 정지인(옮김), 곰출판 의외의 반전을 숨기고 있는 이 책은 이토록 찬사를 받을 만한가에 대해선 의문스럽지만, 미국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소 의외의 주제이기도 하거니와 서술 방식으로 다소 혼란스럽다. 자신의 사랑과 성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여정과 스탠포드대학의 초대 총장을 지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쫓아가는 과정이 서로 나란히 서술되면서 독자는 다소 혼란스럽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책 후반부의 반전이 너무 큰 탓에, 도리어 이러한 불편한 전개가 그 반전을 더욱 부각시키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기에 굳이 이러한 서술 방식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는 듯 싶다. 나 또한 이런저런 추천으로 이 책을 읽었..

르네상스, 제리 브로턴

르네상스 제리 브로턴(지음), 윤은주(옮김), 고유서가 이 책은 옥스포드 대학의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중 한 권으로, 고유서가에서 한글로 번역해 출간하였다. 개인적으로 옥스포드 대학의 이 시리즈로 나온 를 읽고 상당히 좋았는데, 이 시리즈가 번역되고 있었음을 이제서야 알았다. (예전엔 주위에 인문학 공부를 하거나 책을 좋아하던 이들이 꽤 있어서 새 책 소식이나 유명 학자들의 근황을 쉽게 알곤 했는데, ...) 르네상스에 대한 책들은 많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성과들까지 담은 책은 보기 드문데, 이 책은 그런 성과들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시사적이었다. 르네상스의 시기나 지역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관점이 다르긴 하지만(나 또한 제리 브로턴이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부..

지금 이 나라는 퇴보 중

보수가 집권하면 나라가 좀(상당히) 이상해진다. 사적인 자리에서 한국은 당분간(혹은 길게) 보수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이 작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제대로 된 보수주의 리더를 검증하여 옹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현 보수 정당은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은 그 반대편에 있는 중도정당도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실은 이 정당에 대한 실망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져서 꼴 보기가 싫을 정도다. 다만 정치가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면 이 실망스러운 중도정당이 그나마 낫다. 우리 모두가 정치적 이상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이상주의자들은 종종 극단주의로 향하기 때문에 현실 정치에서는 상당히 위험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진보주의자들..

술 마시기 좋은 한낮의 무지無知

낮술 마시기 좋은 날이다. 그런 하늘이다. 그런 빌딩 숲 강남 역삼동이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오염수가 바다로 나오기 시작한 지 하루가 지났다. 그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 고래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인류는 멸망해도 된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어느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듯이 지금의 이상 기후는 지구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며 대응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만 이상할 뿐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다른 생명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 또한 지구를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차라리 반대여야 한다. 최근 들어 형편없는 정치인들의 이기적인 행태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그러한 형편없는 이들을 향한 지지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절망했다. 결국은 무지한 극단주의가 세상을 휩쓸고 지나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많은 사람들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한다. 원자력학과 교수들도 나와 안전하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학자는 지금 논의가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정부와 여당은 괴담이라고 말하고 야당은 방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여러 기사나 의견들을 종합해볼 때 아래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1. 일본 정부나 도쿄 전력이 공개하는 정보로는 안전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IAEA도 믿을 수 없다. 이들은 원자력 산업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한 국제 이익 집단에 불과하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이는 원자력 관련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원자력의 안전함을 알리고 원자력 산업이 계속 지속되길 희망한다. 그들은 원자련 기술이나 산업에 대한 ..

자본의 무의식

남북한 밖에 거주하는 한인 인구는 중국인, 유태인, 이태리인, 인도인 다음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디아스포라 집단을 이루며 본국의 인구 대비 비율로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두번째이다. - 박현옥, , 185쪽(김택균 옮김, 천년의 상상) 캐나다 요크대학교 박현옥 교수의 책 을 읽으며 한국인 디아스포라, 그 기원과 역사, 의 숨겨진 의미, 만주 이주의 역사나 배상의 정치학 등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영정조 르네상스에서 바로 세도정치 체제의 전환, 개화개방과 쇄국을 오가던 구한말 위기, 한일 합방의 이후의 일제 식민지가 이어지듯, 어쩌면 이번 정권이 그러한 몰락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함께 하면서 말이다. 거의 육백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자본주의와 새로운 형태의 통일에 대한 연..

O Do Not Love Too Long 오 너무 오래 사랑하지 마라, W.B. 예이츠

태풍이 지나가자 더위가 이어졌다. 화요일, 공휴일, 광복절, 출근을 했다. 후문이 잠겨 있었다, 정문이 잠겨 있었다, 쉬는 날엔 지하 주차장만 열린다는 걸 잊었다. 출근을 하지 않으려 했으나, 기한이 정해져 있는 업무로 신경이 곧두선 상태라 집에서 일을 하기 참, 어려웠다. 사무실 노트북 전원을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소셜 미디어를 둘러보다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를 우연히 본다, 읽는다, 소리를 내어 읽었다. 한 언어는 다른 지역의 언어와 겹치면서 퍼져나간다. 각 나라말은 절대 일대일로 옮겨지는 법이 없다. 하나의 시가 다른 나라 말로 옮겨질 땐 여러 개의 시들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영어로 된 시를 읽을 땐 하나의 한국어 단어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단어 꾸러미로 연결된다. 훨씬 풍성해지는 느낌..

소셜 미디어의 종말?

몇 주 전에 작년 11월 The Atlantic에 실린 Ian Bogost의 를 읽었다. 시간을 내어 꼼꼼히 읽고 난 다음, 글 대부분이 글쓴이의 주관적인 의견이라는 사실에 실망했지만, 나 또한 그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던 터라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최근 나온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소셜미디어가 정치적 의견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뉴스를 보고, 어쩌면 소셜 미디어의 ‘에코 챔버’효과에 대해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였나 하는 생각을 하며, Ian Bogost의 글을 블로그에 메모해 본다. 영어로 된 글을 읽으면, 이걸 기억하는 게 쉽지 않다. 영어를 영어로 기억하기 쉽지 않고 이를 한글로 옮겨 기억해야 하는데, 이건 번역해야 되는 되는 일이다 보니, ...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아래는 ..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Klara and The Sun 가즈오 이시구로(지음), 홍한별(옮김), 민음사 클라라는 조시를 위해 자기 나름의 방식을 찾아 돕는다. 클라라에게 햇빛이 자양분이듯, 햇빛을 향해 조시를 낫게 해달라고 빈다.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노력한다. 실은 이것도 일종의 프로그래밍일 텐데, 이것을 풀어내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관찰과 학습을 통해 클라라는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자신만의 성찰로 조시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봐, 네가 아주 똑똑한 에이에프일지 몰라도 네가 모르는 게 많아. 너는 조시 쪽 이야기만 들으니 전체 그림을 못 본다고. 조시는 엄마만 가지고 그러는 것도 아냐. 항상 날 함정에 빠뜨리려고 해." (212쪽) 하지만 한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