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97

뒤샹 딕셔너리, 토마스 기르스트

뒤샹 딕셔너리 토마스 기르스트(지음), 주은정(옮김), 디자인하우스 지난 주 마르셀 뒤샹 전에 대한 리뷰를 올리면서 잠시 참고했던 책이었다. 말 그대로 '뒤샹 사전'이다. 마르셀 뒤샹(또는 현대 미술 이론)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무척 유용하지만, 그저 현대 미술에 대해 일반적 이해만 가진 이들에겐 다소 쓸모가 떨어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뒤샹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키워드가 등장하지만, 이와 연관된 도판 이미지는 없다는 점은 일반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음을 드러낸다고 할까.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뒤샹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으니, 사전의 유용성이 없진 않았다. 어쩌면 탁월할 지도 모른다. 뒤샹과 연관된 대부분의 키워드들을 담고 있을 테니, 뒤샹에 대해 알..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

형태의 삶 Vie des Formes 앙리 포시용 Henri Focillon (지음), 강영주(옮김), 학고재, 2001 앙리 포시용의 책은 책을 따라간다. 프랭크 커모드(Frank Kermode)의 (문학과지성사, 1993)을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책이 바로 앙리 포시용의 이었다. 프랭크 커모드는 앙리 포시용을 인용하면서 종말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갔다. 그 때,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외국 서적을 구하기 쉽지 않았고, 더구나 앙리 포시용을 읽기는 커녕, 앙리 포시용을 아는 이조차 없었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미술작품은 시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면서도 영원에 속해있다. 미술작품은 특별하고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성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술작품은 이 다양한 의미에서 군림한다. 뿐만..

회화의 이해, 리오넬로 벤투리

회화의 이해 Pour Comprendre La Peinture (Painting and Painters) 리오넬로 벤투리 Lionello Venturi (지음), 정진국(옮김), 눈빛, 1999 인문학 책읽기란 쉽지 않다. 어떤 땐 쉽게 읽히더라도 어떤 때는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인문학 책읽기는 한결 편해지고 더 깊은 이해와 감동을 가질 수 있다. 회사 생활로 바쁘지만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이런 이해와 감동 때문이리라. 이 책은 불어판을 영어판과 비교해가며 번역되었다. 영어판의 경우, 벤투리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불어판은 그렇지 못하다. 중역인 셈인데, 그렇다고 읽기 불편하진 않다. 리오넬로 벤투리 (1885 ~ 1961) 리오넬로 벤투리의 책은..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김승곤 외 지음, 홍디자인출판부, 2000년 몇 개의 논문은 읽을 만하다. 가령 최인진의 같은 논문은 이런 논문집이 아니곤 읽을 일이 거의 없다. 특히 3부에 실린 세 편의 논문, 이경률의 , 박주석의 , 최봉림의 는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대체로 재미없었다. 논문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김승곤 선생 회갑 기념 논문집'이라는 부제에 어울리지 않게 신변잡기적인 에세이가 실려 있기도 했다. 책의 출간년도가 2000년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한국의 사진 비평이나 이론의 수준이 딱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걸까. 한국 사진 이론의 변천을 전문적으로 다루지도 못하고 그 때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이들에게서 글을 받아 모은, 그냥 진짜 '기념 논문집'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구입한..

Art History, Dana Arnold

Art History - a very short introduction Dana Arnold, Oxford, 2004 그러고 보니, 원서를 통독한 것은 참 오랜만이다. 그만큼 읽기 쉬운 평이한 문장으로 되어있기도 하고 책 제목 그대로 introduction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거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 책의 장점은 다양한 관점에서 미술사(art history)를 조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사와 예술 비평에 대한 비교나 예술작품감정(Connoisseurship)에 대한 언급도 있으며, 신미술사(New art history)나 철학사의 영역에서 바라보는 예술작품, 또는 예술사도 포함시키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설명들이 명확하고 단순하게 언급되어 있다는 ..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김석철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김석철(지음), 창작과비평사, 1997년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책이라니, 새삼스러웠다. 그러나 이 책에 소개된 건축물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이야기들도 변하지 않았으니, 좀 오래된 책이라고 그 재미와 감동은 그대로일 것이다. 또한 건축가인 저자의 글솜씨도 나쁘지 않고 내용은 어렵지 않으며 짧은 분량으로 상당히 많은 건축물들과 건축 공간을 이야기하고 있어 여행을 좋아하거나 건축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상당히 실용적이기도 하다. 나름 건축물들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는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간과했던 몇 개의 건축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세신궁이나 자금성 같은. 이세 지역의 신궁은 일본의 신성함과 국가의 단일성을 과시하기 위해 기원전 1세기경에 계획되었다. (... ...) 그 옛..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

보이지 않는 용 The Invisible Dragon: Essays on Beauty 데이브 하키(지음), 박대정(옮김), 마음산책, 2011년 몇 번 읽다가 만 책이다. 구입하려고 목록에 올려놓았다가 다른 책들에 밀려 결국 사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에 속한 몇몇 보기 어려운 작품을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 X PortfolioRobert Mapplethorpe (United States, 1946-1989)1978Photographs; portfoliosBlack clamshell case with gelatin silver photographsClosed: 14 13/16 x 14 x 1 15/16 in. (37.62 x 35.56 x 4.92 cm); Ope..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차문성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 유럽편 - 차문성(지음), 책문(성안당), 2013년 초판/2015년 장정개정판 좋은 책이다. 비전문가인 저자가 전문가가 되어간 과정이 녹아있다. 성실한 내용과 애정이 담긴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박물관학 석사 과정을 마쳤으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특히 유럽 주요 도시에서 가기 쉬운 미술관/박물관을 선정해 보여주었다는 점도 이 책이 꽤 실용적임을 증명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 흩어진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이 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책 제목 그대로 예술기행이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생페테르부르그 등의 도시에 있는 미술관/박물관..

래디컬 뮤지엄 Radical Museology, 클래어 비숍(지음)

래디컬 뮤지엄 - 동시대 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인가? 클래어 비숍 Claire Bishop (지음), 구정연 외 (옮김), 현실문화 (저자의 website: http://clairebishopresearch.blogspot.kr/) 지난 가을, 키아프(Korea International Art Fair)를 갔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을 관람했다. 이 두 이벤트의 묘한 대비는 무척 흥미로웠고 나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었지만, 그 뿐이었다. 키아프만 간 사람들과 국립현대미술관에만 간 사람들 사이의, 두 경향의 현대미술전시가 보여주는 간극이 메워지지 않을 듯 느껴졌다면, 심한 비약일까. 아트페어와 미술관의 전시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여기에서 같은 미술관 공간이라도 비엔날레같은 행..

나의 서양음악순례, 서경식

나의 서양음악순례 서경식(지음), 한승동(옮김), 창비 한국과 일본은 참 멀리 있구나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서경식 교수의 유년시절과 내 유년시절을 비교해 보며, 문화적 토양이 이토록 차이 났을까 싶었다, 일본과 한국이. 내가 살았던 시골, 혹은 지방 소도시의 유년은, 쓸쓸한 오후의 먼지 묻은 햇살과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바다 풍경이 전부였다. 책 속에서 이야기되었던 윤이상 선생의 통영에서의 유년 시절은 내가 겪었던 유년 시절과도 달랐다. 그가 통영에서 살았던 당시(20세기 중반) 보고 들었을 전통 문화라는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서양 신식 문화랄 것도 내 유년시절에는 없었다. 전통 문화와 신식 문화 사이에서 길게 획일화된 공교육과 책을 읽으면 안 되는 자율학습과 텔레비전, 라디오, 팝송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