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소설 19

자비 A Mercy, 토니 모리슨

자비 A Mercy 토니 모리슨(지음), 송은주(옮김), 문학동네, 2014년 토니 모리슨의 2008년도 소설. 토니 모리슨의 소설을 읽는 건 수십년만이다. 고등학교 때 읽은 (Beloved)는 흐릿하기만 하다. 방황하던 십대 시절, 사랑을 알고 싶어 읽었지만, 그 때 읽기에는 상당히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몰라도 힘겹게 끝까지 읽었고 슬프고 아련한 기분에 빠졌다, 아니면 그 시절 전체가 슬프고 아련했을 련지도. 왜 그녀는 이 소설에 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성당 미사 때 읖조리던 '자비'라는 단어와 겹치는 건 플로렌스에게 글을 가르쳐준 신부님 때문일까. 하지만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위선적인 카톨릭 신자로 인해, 그리고 그 이후의 침례교도들을 보면 이 소설이 딱히 교회에 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F.스콧 피츠제럴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F. 스콧 피츠제럴드(지음), 박찬원(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두 번째로 읽은 피츠제럴드의 소설이다. 는 그 명성에 비해 내 감상은 다소 실망스러웠고 내 취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을 잘 알 수 있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풍속소설의 최고봉이라고 할 만하달까. 이 책은 단편집이다. 다들 익히 알다시피, 피츠제럴드는 생계를 위해 단편을 엄청 쓴 소설가였다. 하지만 탁월한 문학성을 가진 단편은 몇 편 되지 않고 그의 명성에 비해 단편집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다. 현대의 단편작가들, 가령 레이몬드 카버나 엘리스 먼로 등과 비교해서도 피츠제럴드의 단편들은 뛰어나지 않다. 아마 이 점은 피츠제럴드는 잡지에 실리는 단편이 가져야 하는 흥미로움에 집중된 상상력, 그리고 20세..

하이브리드 시대의 문학, 김성곤

하이브리드 시대의 문학 김성곤(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9년 예전에 사두었던 책이다. 책 제목에서 풍기듯 새로운 문학 흐름에 대해 알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만드나, 그런 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십 년 가까이 서가에 꽂혀만 있었던 책이다. 그 사이 한 두 번 읽어볼까 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고 최근에서야 다시 꺼내 읽고 간단하게 리뷰를 쓴다. 실은 리뷰를 쓸만한 내용도 많지 않다. 탁월한 통찰이 있다기 보다는 미국 문학을 중심으로 현대 문학의 흐름을 소개하는 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 세계 문학이나 수준높은 문학 이론을 다루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정도 제반 지식을 가진 이들에게 선뜻 이 책을 권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학부생들에게 권하기엔 너무 일반론에 가까워서, 영문학 전공자 외에..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리처드 브라우티건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리처드 브라우티건 Richard Brautigan(지음), 김성곤(옮김), 비채 원제는 이지만, 보다 가 더 나아보인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하지만 이 책의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편은 . 잭은 할머니와 30년이나 같이 살았다. 내 친할아버지는 아니었고 플로리다에서 물건을 팔던 이탈리아 사람이었다.잭은 사람들이 사과를 먹고 비가 많이 오는 곳에서 영원한 오렌지와 햇볕에 대한 비전을 파는 사람이었다. 잭은 마이애미 다운타운 근처에 있던 할머니집에 물건을 팔러 왔다. 그는 일주일 후 위스키를 배달하러 왔다가 30년을 눌러 살았으며, 그 후 플로리다는 그 없이 지내야 했다. - 중에서 (* 위 인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브라우티건은 사물의 관점에서 종종 서술하는데, 꽤 흥미롭다. '플로리다..

데이비드 밴 David Vann 인터뷰 중에서 (Axt 2017. 11/12)

를 가끔 사서 읽는다. 얼마 전에 한 권 샀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겨울에 산 것이었다. 그 사이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버렸다. 아. 데이비드 밴David Vann이라는 미국 소설가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의 번역 소설을 보긴 했지만, 읽진 않았다. 라는 잡지가 출간되었을 무렵 자주 사서 읽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지 않는다. 사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놓고 읽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읽을 것들이 너무 밀려있기 때문에. 좋은 잡지이긴 하지만. 데이비드 밴이라는 소설가와의 인터뷰 중 흥미로운 몇몇 구절을 옮기고 메모해둔다. 흥미로운 관점이다. 풍경 묘사와 가족 이야기. 소설을 쓰는 이들에겐 꽤 유용한 조언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소설을 쓸 때 항상 인물과 장소에 집중한다. 인물의 정신은 대체로 풍경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지음), 정현종(옮김), 문예출판사 전반적으로 잘 읽히지 않는다. 자주 등장하는 '올드 스포트old sport'는 '친구'(소설가 김영하의 번역), 또는 '형씨'(김욱동 교수의 번역)로 옮길 수 있지만, 이 번역본에서는 그냥 '올드 스포트'로 옮긴다. 읽으면서 왜 다수의 사람에게 이 명칭이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영문을 병기하지 않았기에 찾아보지 않는 이상 알 턱이 없다. old sport는 이보게, 자네 정도로 옮길 수 있는 표현으로 good sport도 동일한 말이다. 일부 의견으로는 1970년대에 번역되어 일어중역본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정현종 시인의 명성과 달리 이 책은 읽지 않는 편이 좋을 듯 싶다. 다행히 이 번역서는 절판되었으며, 이 소설의 유명세로 인해 ..

백설공주, 도널드 바셀미

백설공주도널드 바셀미(지음), 김상률(옮김), 책세상 이 번역 소설을 다시 영어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정도까지는 비슷할까, 아니면 전혀 다른 소설이 될까? 바셀미의 고도로 양식화되어 있는 미니멀리즘 소설을 한글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을 테지만, 너무 성의 없이 옮겼다는 건 바셀미의 소설을 기다려온 나에겐 상당히 불쾌하게 여겨졌다. 실제 원작에서는 문장은 짧고 단순하며 표현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 번역본에서는 늘어지며 중언부언하면서 양식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그러니 이 번역서를 읽고 바셀미를 읽었다고 하지 말기를. 도널드 바셀미는 20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의 한 명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미니멀리즘 소설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제서야 소개된다는 것이 뒤늦..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지음), 송은주(옮김), 민음사 결국은 울고 말았다. 소설 끄트머리에 가서, 오스카와 엄마가 아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비극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TV 방송 뉴스 채널로 가보라. 모든 뉴스들이 현대판 비극들로 도배되어 있다. 뉴스 앵커나 기자들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인양, 무미건조한 어조와 '이건 진짜야'라는 눈빛으로 또박또박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오스카는 아빠를 찾아나선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아빠를. 첫 번째 메시지. 화요일 오전 8시 52분. 누구 있니? 여보세요? 아빠다. 있으면 받으렴. 방금 사무실에도 전화했는데 아무도 받지 않는구나. 잘 듣거라, 일이 좀 생겼어. 난 괜찮다. 꼼짝 말고 소방..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신 하미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The Reluctant Fundamentalist 모신 하미드(지음), 왕은철(옮김), 민음사 대화체로 이루어진 소설은 종종 군더더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깔끔하다. 이야기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이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대화 속에 등장할 뿐이다.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이야기를 매끄럽게 소화시켰다는 점에서 격찬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전 세계 테러 분위기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 몇 번의 피해가 있었지만, 이는 전도 지상주의와 경쟁적이고 배타적 신앙심으로 무장한 이들로 인한 것으로 인해, 이슬람 문명에 대해 우리들의 반감은 적다. (특정 종교의 경우에는 이슬람 뿐만 아니라 모든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므로, 이 종교의 문제라고 보는 편이... ) 이 소설은 파키스탄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앤드루 포터 Andrew Porter (지음), 김이선 (옮김), 21세기북스 http://www.andrewporterwriter.com/ANDREW_PORTER/Andrew_Porter_-_Writer.html 연거푸 영어권 작가들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 줌파 라히리, 앨리스 먼로, 그리고 앤드루 포터. 그들에게서,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차이보다 보이지 않는 공통점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사건들과 인물들을 사이에 서서, 그 숱한 감정들에 휩쓸리지 않으며, 쓸쓸한 냉정을 유지하며, 아파하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사랑을, 혹은 미래를 믿으며 살아가는(남는) 것... 어쩌면 21세기 초반 동시대 단편들이 가지는 특징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