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3

시를 읽다 - 박서영, 손의 의미

얇게,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 비가 내리고 우리들의 일상은, 놀랍도록 조용히 흘러간다.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가는 동안, 나는 간밤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들을 밟았다. 사무실로 걸어가는 동안, 지나치게 되는 어느 중학교 뒷편은 고요했고 무채색 아파트 벽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어제 어쩌다가 보니, 시를 읽게 되었다. 알지 못하는 시인이었지만, 오래, 어떤 손이 가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그치고, 우리 삶도 그치테지만, 어떤 시들의 여운은 문명의 끝까지 가면 좋으리라. 손의 의미 박서영 기타를 잘 치는 긴 손가락을 갖기 위해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갈퀴를 찢어버린 사람,그러고 보면 호미를 쥐는 손은 호미에 맞게펜을 쥐는 손은 펜에 맞게 점점 변해가는 것 같다그건 자신의 울음에 알맞은 손을..

벨라 바르톡의 일요일 아침

지난 일요일 오전에 적다가 ... 이런저런 일상들로 인해 이제서야 정리해 올리는 글. 어제(토요일) 읽다가 펼쳐놓은 책, 정확하게 378페이지를 가리키고 있다. 그 페이지의 한 구절은 이렇다. '여러 의사결정에 집단의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 실패의 원인을 규정하는 것에도 집단적인 거리낌이 있다. 조직들은 지난 일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회피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제프리 페퍼Jeffrery Pfeffer의 1992년도 저서, Managing with Power: Politics and Influence in Organizations를 번역한 이 책의 제목은 '권력의 경영', 내가 이번 주 내내 들고 있는 책이다. 어제 내려 놓은 이디오피아 모카하라 드립커피는 식은 채 책상 한 모서리에 위치..

소리와 사랑

옥소리와 박철의 사건을 보면서, 한국적 상황이 빚어낸 슬픈 초상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사랑을 지속시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고 있다. 이제 사랑은 관습의, 규범의, 제도의 규제도 벗어난 채 도전과 모험, 그리고 도피의 회오리 속에 존재하고 있다. 아, 이탈로 칼비노라면 ‘보이지 않는 사랑’라고 불렀을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잠시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자 물음표들이 연속적으로 호수의 물결처럼, 내 마음 가장자리에 가 부딪혔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사랑이라는 텍스트보다 사랑의 주위를 구성하는 콘텍스트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차라리 모른 채 시작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온라인서점에서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그 중에 ‘소리,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