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20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엔트로피Entropy 제레미 리프킨(지음), 이창희(옮김), 세종연구원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제 1법칙), 엔트로피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제 2법칙) - 50쪽 그리고 고전 경제학 이론대로 하다가는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165쪽 대학 때부터 이 책을 알고 있었으나, 이제서야 완독했다. 너무 뒤늦은 독서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그 시절엔 어떤 이유에선지 이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과학책도 아니고 철학책도 아니며 그렇다고 경제서적도 아니다. 그러나 물리학 법칙에서 시작해 고전물리학을 비난하고 근대 기계론자들-베이컨, 데카르트, 로크, 애덤 스미스 등-을 엄청 공격한다. 뉴턴 물리학을 부정하며(‘뉴턴 물리학은 운동하는 죽은 물질을 순수한 양으로 다..

도망가듯, 연천 호로고루

호로고루(瓠蘆古壘)은 한자 의미 풀이에서도 알 수 있듯 '표주박처럼 생긴 오래된 작은 성'이라는 뜻이다. 지난 토요일, 요즘 일상이 너무 힘들어 바람을 쐴 겸, 언제나 궁금했던 연천 호로고루에 다녀왔다. 그러나 진입로를 찾기 어려웠고 좀 어수선한 분위기랄까. 옆에 임진강이 있다는 것 이외에는 볼 만한 것이 없었다. 9월달에는 해바라기를 볼 수 있지만, 지금은 없고 10월에 피웠던 것으로 보이는 코스모스도 거의 없었다. 기원 후 5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이 남아있지만, 그 외의 것은 흔적만 남았고 이도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다. 일종의 작은 군사 기지 같은 개념으로 강을 끼고 고구려 최남단 경계선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입구에 광개토대왕비가 있다는 것이다. 북에서 가져온 것인데, 실..

테넷Tenet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가끔 다운로드 받아 보는 것이 전부다. 극장에 마지막으로 간 건 3년 전이다. 한때 영화에 빠져있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에 태만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딱히 챙겨서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으니, ... 크리스토퍼 놀란의 을 봤다. 아무 내용도 모른 채 매우 어렵다는 풍문만 듣고 봤는데, 어렵다는 점에서는 가 확실히 낫다. '인버전inversion'이라는 기술이 나오지만, 이건 가정이다. 엔트로피의 방향을 반대로 할 수 있다는 가정, 그런 기술을 미래의 누군가가 개발했다는 가정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가정이 들어오면서 영화를 수수께기가 되고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다. 가 물리학에 바탕을 두고 중력과 우주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

창을 열면, ...

팔을 들어 길게 뻗어 책상 너머 있는 창을 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가운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한 쪽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공기를 보며 바람이라고 썼지만, 그냥 온도 차이로 생긴 공기의 사소한 흐름일 게다. 밤새 닫아 두었던 서재의 창을 여는 순간이었다. 그 동안 내가 지내온 서재, 혹은 책들이 모여 있던 곳의 창 밖 풍경은, 대체로 건조한 무채색이다. 하늘을 볼 수 있었던 서재는 딱 한 번 뿐이었고, 나머지들은 모두 벽들 뿐이었다. 지금 서재 창 밖은 바로 옆 빌라의 측면 외벽이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창들이 있는. 서재에서 이십미터 정도 걸어 나가면 마을 버스가 다니는 도로가 있고, 그 곳으로부터 다시 이십미터 정도 나가면 시내버스가 다니는 도로, 다시 그 곳으로부터 이십미터 정도 가면 지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The Order of Time 카를로 로벨리(지음), 이중원(옮김), 쌤앤파커스 물리학은 사물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이 각자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는지, '시간들'이 서로 어떻게 다르게 진화하는지를 설명한다. (26쪽) 결국 우리가 이해하는 바 '시간'이란 없고 그냥 나의 시간, 너의 시간, 지구의 시간, 화성의 시간 등등 질량에 종속된 시간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는 그저 착시 현상일 뿐이며, 끔찍한 사실 하나는 이미 미래는 거기 있어야만 한다. 정해진 바대로 시공간들이 나열해있을 뿐인데, 우리는 시간을 오직 현재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시공간 전체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카를로 로벨리는 마치 철학서..

성당 풍경

마음이 스산하고 몸은 피곤하다. 꿈은 외롭고 발걸음은 정해진 궤도만 오간다. 나무와 본당 건물 사이의 전선만 없으면 어느 유럽 도시 풍경처럼 보일텐데. 저 풍경 사이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싶다. 그리곤 나오지 말아야지. 그렇게 사라진 몇몇 사람들은 나는 알고, 그들은 나를 모른다. 그렇게 사라진 그녀를 나는 알고, 그녀는 나를 잊었다. 가을 오는 소리에 살짝 놀라 궤도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모든 것들은 정해진 대로 갈 뿐이다. 벗어난 그 곳마저도 예정된 궤도 위라는 걸. 그걸 알았다면, ... ...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이진경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 이진경 지음/푸른숲 아직도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높나? 새로운 개정판을 읽지 않았으니, 아래 글은 정확한 서평이 아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서양 예술 형식에 대한 탐구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 책은 '근대적 시, 공간의 탄생'이라는 매우 거창한 제목과 비교해 아주 허술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더구나 아래 서평에서도 지적했듯이 잘못된 내용들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하나하나 지적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시간도 가치도 못 느끼겠다. 혹시라도 살 생각이 있다면 사지 말기를 바란다. 흥미로운 소재를 취했으나, 소화하기 힘든 소재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개정판이 나와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면 내 지적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 기회가 닿는다면, 근대적..

데페이즈망 - 벌어지는 도시 Depaysement - blooming the City

데페이즈망 - 벌어지는 도시 Depaysement - blooming the City 2011.6.15 - 7. 17. 아르코미술관(대학로) (2011년 아르코미술관 기획공모전, 기획: 최재원, 김미경) 우리들 대부분은 도시에 살아갑니다. 서울이거나 부산, 혹은 광주이거나. 아니면 뉴욕이거나 런던이거나 LA이거나. 그리고 지금 여기를 살아갑니다. 거기 어제가 아니라. 그런데 지금 여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쫓기는 듯한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는 이 도시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현재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 열리고 있는 ‘데페이즈망 ? 벌어지는 도시’는 지금 여기 이 도시에 대한 반성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전몽각, 경부고속도로29, 99.7x150..

시간은 흐르고 봄은 올 것인가

자기 전 PD수첩을 통해 아랍 민주화 혁명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트위터를 통해 국내의 모 방송사에서는 리비아 시위대를 폭도로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어떤 이들은 1987년의 서울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 지금 이 세상이 어수선하지만, 그리고 그 어수선함 속에 깊은 슬픔도 숨어있지만, 분명 어떤 미래를 이렇게 시작되기도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한참 뒤 나는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을 생각해본다. 놀람과 경악, 당황스러움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론은 너무 조용하다. 연예 기사 읽을 시간도 없는데, 누가 정치, 사회 기사를 클릭해서 읽을까.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에 무관심해지고 있다. 실은 주변을 돌아볼 겨..

내 일상을 움직이는 마음의 시간.

1996년, 1999년, 2002년, 2008년, 2010년, 1996년부터 2010년 사이에는 16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 사이 나는 대학생에서 서른 후반, 아니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16년이라는 시간을 자주 잊어버린다. 나에게 1996년과 2008년은 동일한 시간이다. ‘5.18 광주’가 벌써 30년이 지났음을 신문을 보고 알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마치 거짓말처럼 여겨진다. 어느 역사학자의 ‘장기 지속’이라는 표현처럼, 우리의 마음과 일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은 긴 시간대 위에서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급변’이란 잠시의 착각이거나 변하고 싶은 우리의 헛된 희망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의 경험 상 세상은 정지해 있는 것이며 끝내 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