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30

도서관, 서재, ...

직장을 나가 첫 월급을 받으면 내가 사고 싶었던 책과 음반을 사게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공부보다는 원하는 책과 음반에 꽂혀 직장 생활을 하던 형을 알고 지낸 적이 있었다. 방 한 쪽 벽면 전체가 LP와 CD로 채워져 있고, 그 옆으로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이 놓여 있었다. 작가가 되는 것보다 원할 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자유가 더 나아보였던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 때 꿈이 있었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굳게 스스로에게 말하는 그런 꿈. 그리고 나 또한 한 때 꿈이 있었던 사람이 되었고, 어쩌다가 나도 책을 사고 음반을 사고 있지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심지어 그것이 중요한가 하는 생각마저... 그래서 누군가의 서재를 보면 참 부럽다. 정말 부..

조르주 상드의 편지, 조르주 상드

조르주 상드의 편지 Correspondance 조르주 상드George Sand(지음), 이재희(옮김), 지만직고전선집 아름다운 계절이 오면 우리를 만나러 오세요. 우리 모두 기뻐할 거예요. 우리는 당신을 존경하는 만큼 또 사랑하기도 하니까요. - 이반 투르게네프에게, 1876년 2월 19일 (209쪽) 어쩌면 어떤 감미로움을 바랬는지도 모른다. 뜬금없고 철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내 존재를 소진시킨 그 기쁨들과, 숨이 막힐 듯이 가쁘게 뛰던 그 심장 박동소리를 어떤 마음의 동요나 회환이 없이 회상해 봅니다. 그것이 행복이었을까요? 무엇보다 황홀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불현듯 깨어났을 때, 분명 하늘의 소리이기는 했지만 뭔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여 아들의 침대로 부랴부랴 달려갔을 때, 그것이 행복이었을까요? 아..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L’homme joie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지음), 이주현(옮김), 1984북스 (…) 삶은 우리를 죽음으로 이끈다. (168쪽)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어쩌면 이 문장만으로 몇몇은 이 책을 짐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놀랍도록 시적이며 감미롭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이어지는 이 책은 잃어버린 자연과 신비를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노래한다. 당신에게 이 푸르름만이 가득 담긴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편지는 앙베르나 로테르담의 보석 마을에서 다이아몬드를 고이 감쌀 때 쓰는 종이를 떠올리게 할 거예요. 결혼한 신랑의 셔츠처럼 새하얀 그 종이에는 투명한 소금 결정, 동화 속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 하얀 조..

알고 싶지 않은 것들, 데버라 리비Deborah Levy

알고 싶지 않은 것들 Things I Don't Want To Know 데버라 리비Deborah Levy(지음), 이예원(옮김), 플레이타임 내가 Deborah Levy에 대한 글을 올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그녀의 소설들은 번역되지 않고 그녀의 에세이만 나와있는 건 다소 의아스럽다. 그러나 어쩌면 누군가가 소설을 번역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동시대 외국 소설에 대한 독자층은 상당히 얇은 것일지도. 몇 편의 에세이가 담긴, 이 짧은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20세기 이후 본격화된 여성 예술가들의 존재는 현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기존 예술사에선 보기 드문 목소리, 태도, 시각, 표현 방식을 선사하며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끼쳤고, 잘못된 방향으..

슈타이얼, 바르트, 손택

유럽도 전개되는 양상이 비슷했다. 연로한 롤랑 바르트는 전통적인 지식인과 작가는 멸종하고 대부분이 대학교에 자리를 잡은 새로운 종이 그들을 대체하고 있다며 입버릇처럼 불평하곤 했다. 손택도 이런 묘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손택은 1980년 인터뷰에서 시대에 역행해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보편적인 역할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공표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 다니엘 슈라이버, , 글항아리, 288쪽 러셀 저코비(자코비)의 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다. 롤랑 바르트나 손택, 그리고 저코비가 이야기할 때의 그 지식인과 대학 교수는 일치하지 않는다. 신문기자를 지식인이라고 하지 않듯이(한국에서는 경멸적으로 '기레기'라고 쓰고 '쓰레기'로 해석한다) 대학교수도 지식인이 아니다. 저코비의 책을 읽으..

마지막 지식인 - 아카데미 시대의 미국 문화, 러셀 저코비

마지막 지식인 - 아카데미 시대의 미국 문화 The Last Intellectuals - American Culture in the Age of Arademe 러셀 저코비Russell Jacoby(지음), 유나영(옮김), 고유서가 지식인의 위기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느 순간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던 지식인들이 사라졌다. 어떤 이유로 사라진 것일까. 이 책은 미국 지식인 사회의 변화를 서술하고 있으나, 한국 뿐만 아니라 서유럽 국가나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도 해당될 것이다. 각국마다 사정을 다를 테지만, 예전과 달리 다양한 시사 문제에 대해 글을 써서 공적인 담론을 형성하며 비판적 여론을 불러일으키던 지식인들이 천천히 사라졌다. 저자는 이러한 '공적 문화의 빈곤화'를 이야기하며 아..

나의 사적인 도시, 박상미

나의 사적인 도시 박상미(지음), 난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상도터널 옆 김영삼도서관. 몇 년 동안 빈 건물로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겨우 개관할 수 있었다. 텅 빈 건물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에 문을 열고 동네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었다. 아직 책이 많지 않고 장서 분류에 따라 몇 층으로 나누어져 있어 계단을 오가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새 책이 많다는 것이 좋다. 인근의 동작도서관가 장서 목록이 묘하게 겹치지 않는 것도 흥미롭다. 한 때 모든 걸 그만 두고 사서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 사서가 된다고 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책을 가까이 하고 싶다는 사소한 희망이었지만. 대부분의 취미, 혹은 사랑은 늘 마주하는 직업이 되는 순간 그 ..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한은형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한은형(지음), 난다 한은형의 산문집을 읽었다. 실은 그녀의 소설을 읽는 것이 나았을 뻔했다. 그녀도 후기에서 밝히듯 상당히 어렵게 쓴 글들이다. 어쩌면 베를린과 그녀는 어울리지 않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뤼벡과 드레스덴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다. 뜬금없이 이 산문집을 읽게 된 건, 십수년 전 그녀의 짧은 글들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최근 그런 글을 읽은 적이 거의 없고 글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는 터라, 우연히 그녀의 산문집을 산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읽었던 그 때의 글과 비교하면, 긴장감은 거의 없고 그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랄까. 살짝 우울해졌다. 그녀가 찍은 듯 보이는 사진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베를린과 소설가 한은형은 어울리지 ..

아메리카의 망명자, 아리엘 도르프만

아메리카의 망명자 아리엘 도르프만(지음), 황정아(옮김), 창작과비평사 1973년, 자신을 고국인 칠레으로부터 떠나 아무런 연고도 없던 파리로 도망치게 만들었던, 칠레를 깊고 긴 독재 국가로 변하게 한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의심되던 망명지 국가에 정착하게 된 아리엘 도르프만은 어떤 기분일까. 민주화된 칠레 대신 미국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정착하게 되는 칠레. 그러나 민중을 위한 희망을 안고 하나둘 칠레를 일으켜세우던 아옌데 대통령은, 이를 방해하는 미국과 글로벌 대기업의 모략 앞에서 힘겨워 하다(아옌데 대통령 집권 이후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칠레 경제는 악화된다) 결국 그들의 지원에 힘입은 삐노체트와 그의 군대가 일으킨 쿠데타에 저항하다가 끝내 자살을 선택하게 되고,..

파리는 날마다 축제,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A Moveable Feast어니스트 헤밍웨이(지음), 주순애(옮김), 이숲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너무 유명한 나머지, 시간이 지날수록 소홀히 대하게 되는 소설가가 아닐까. 너무 이른 나이 -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 - 에 , , 를 읽게 되고, 성숙하지 못한 정신으로 조각난 이해만을 가진 채, 헤밍웨이와 그의 작품들은 나이가 듬에 따라 잊혀져 간다. 대체로 고전이라고 알려진 것들 대부분은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잠시 우리 곁을 머물다가 사라진다. 소설이든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현대 영미 문학사에서도 헤밍웨이의 소설들은 길게 언급되지 않는다. 그만큼 뛰어난 작가들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어쩌면 전후 문학의 특징이 아닐까. 전쟁(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