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9

그러나 절망으로부터,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그러나 절망으로부터,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던 위안의 기록들 On Consolation: Finding Solace In Dark Times 마이클 이그나티에프Michael Grant Ignatieff(지음), 김한영(옮김), 까치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그리고 며칠 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어, 집중해 읽었다. 특히 세네카, 사도 바울로, 마르쿠스 아우렐레우스 챕터는 인상적이었다. 특히 아우렐레우스의 삶은 황제의 삶이라고 하기엔 무색할 정도였다. 그는 황제를 원했던 것인가, 아니면 학자를 원했던 것일가. 그리고 전쟁터에서 남긴 그의 단상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까지 남아 위로가 되고 있다는 건 또 무슨 아이러니인가. 전쟁터에서 그는 삶의 무상함, 허망함을 이야기하지만, 먼 훗날의 우리들..

불의(Injustice)와 경제적 불평등

모든 아동의 7분의 1은 오늘날 비행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취급받고, 모든 가계의 6분의 1은 사회 기준에서 배제된다. 그리고 사람들의 5분의 1은 그럭저럭 살아가기도 버겁다. 약 25퍼센트 사람들이 생필품을 감추지 못하거나 어렵게 구한다. 이렇게 풍족한 시대에! 이제 3분의 1은 식구 중 누군가가 정신질환을 앓는 가정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대안적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능력과 그 선택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알려준다. - 다니엘 돌링, , 21세기북스, 2012년, 405쪽 2011년 영국에서 나온 책을 2022년 한국 서울에서 읽는다. 불평등에 대한 책이다. 좀 뒤늦게 읽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도리어 그 불평등함은 더 심해졌다. 어쩌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신자유주의에..

새벽 빗줄기

새벽 빗소리가 열린 창으로 들어와 방 안 가득한 열기를 밀어낸다.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그 기세를 누그러뜨면서 차가운 습기로 채워진다. 이 습기만 견딜 수 있다면, 제법 청량한 잠을 잘 수 있을 게다, 가족들은. 가끔 이 세계가 존재하고 내가 생각할 수 있고 사랑을 느끼거나 행복을 느낄 때, 신비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그건 호르몬의 영향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만 그 호르몬 모두를 지금 알지 못할 뿐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이 신비 앞에서 파스칼은 끝없는 두려움을 느꼈고 20세기 초반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우리 존재의 목적이나 이 세상의 기원에 대해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다며 절망했다. 그리고 21세기 초반, 백 년 전 그 절망을 현대의 이론 물리학자들이 이어받는다. 책을 읽을수록, 내 지..

카프카의 드로잉. 그리고

카프카의 드로잉을 한참 찾았다. 뒤늦게 발견한 카프카의 그림. 하지만 제대로 나온 곳은 없었다. 잊고 지내던 이름, 카프카. 마음이 어수선한 봄날, 술 마실 시간도, 체력도, 여유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에 살짝 절망하고 있다. 한 때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나를 사랑하던 존재들이, 내가 그토록 원하는 어떤 물음표들이 나를 스치듯, 혹은 멀리 비켜 제 갈 길을 가는, 스산한 풍경이 슬라이드처럼 탁, 탁, 지나쳤다, 지나친다, 지나칠 것이다. 내가 보내는 오늘을, 십년 전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똑같이 내 십 년 후의 오늘을 지금 나는 상상할 수 있을까. 뜬금없는, 나를 향한 물음표가 뭉게뭉게, 저 뿌연 대기 속으로 퍼져나가는 새벽, 여전히 사는 게 힘들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 그건 변하지 않았구..

저 너머 어떤 새로움

아무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공평한 걸까. 내일의, 어떤, 발생하지 않은 일이 현재, 혹은 과거에 미쳤던 영향은 대단하기만 하니, 내일을 아는 이 없다고 해서 세상이 공평한 것은 아니다.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은 인과율(law of causality)을 바탕으로 움직이며, 우리 모두는 인과율적 문명의 노예다. 우리 문명은 인과율 위에 축조되었고 우리 사고도 인과율을 벗어나 한 발짝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각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인 이 노예 근성은 현 문명에 반하는 모든 혁신을 거부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었던) 운명에 순응하는 개인이라는 표상이 생기고, 모든 이들 -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나이 든 이나 아..

귀향, 자끄 프레베르

귀향자끄 프레베르 Jacques Prevert 안민재 역편, 태학당 헌책방에서 구한 시집. 예전엔 외국 번역 시집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긴 시집 읽는 이도 드문 마당에... 번역이 다소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오늘 다시 보니 어느 것은 좋고 어느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형편없는 것이 아니라... 1994년에 출판되었고 인터넷서점에선 검색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 소개한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닫혀있는 마음은 밖으로 무너지고 저녁 바람을 새삼 느끼고 저 하늘 달빛이 이 버릇없는 작은 도시의 사람들 위를 비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될 것이다. 대학시절 불어로 시 읽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불어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흔적으로 남았다. 시를 읽으며 술을 마시던 그 시절..

'여름-절망'에서 '가을-희망'으로

피로가 머리 끝까지 올라갔다. 집에 오니, 밤 12시가 가까이 되었고 나는 아직 일을 끝내지 못한 상태다. 하긴 내가 무리하게 욕심을 부려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딱딱한 걸 먹으면 안 되는데, 맥주 몇 잔에 딱딱하다 못해 씹혀지지도 않는 오징어 뒷다리를 안주 삼았다. 나이가 들수록 여유가 사라지는 것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상 속에 내 온 몸이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은 한 발 뒤로 물러나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데, ... 올해 그런 여유가 생길 지 모르겠다. 여름, 뜨거운 절망을 뒤로 하고, 가을, 내년을 위한 희망을 꿈꾸어도 좋을 시기다. 몇 번의 주말 오후, 핸드폰으로 늦은 오후 석양 아래의 서울을 찍었다. 내가 가진 니콘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있지만, 지금 PC에 옮기기가 귀찮다...

고야, 방랑 배우들(Strolling Players)

Strolling Players 1793 Oil on tinplate, 43 x 32 cm Museo del Prado, Madrid 고야의 작품은 언제나 흥미롭고 격조있지만, 비극적이고 끔찍한 우울과 절망을 가리고 있다. 몇 년 전(2004년 6월), 어딘가에 올렸던 글을 다시 여기에 옮긴다. 낭만주의 시대(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최고의 예술가는 "프란시스코 고야"다. 그는 계몽주의가 남긴 혁명의 그림자 속에서 삶의 허무와 거짓된 역사를 뚜렷하게 목격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보통의 낭만주의자들이 이야기하곤 하는 사랑이라든가 환상, 또는 매혹의 도피 따윈 다 허위이거나 기만이고, 도리어 그 세계 속에서조차 우리는 삶의 허무나 죽음,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래서 자..

절망의 서울을 넘어, 술의 나라로

절망의 서울을 넘어, 술의 나라로 가서 "불끈" 희망의 불씨를 찾아 나오자.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인생이란 가끔 말도 되지 않는 불가능에 도전할 때도 있다. 날이 추울 땐, 추운 것에만 신경을 썼는데, 요 며칠 따뜻해지니 여간 허한 것이 견디기 힘들 정도다.허할 땐 술이 최고이지만, 몸의 상태가 예전만큼 되지 못해요샌 포도주 일색이다. 하지만 포도주 경험이 늘어날수록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ㅡ_ㅡ;;;돈을 거의 벌지 못하는 주제에 이래저래 고급 취향만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나의 미래를 참담하게 만든다. 작년말부터 마신 술들이다. 이제 술을 마실 때마다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해둘 생각이다.술도 까다롭게 골라, 좋게 마시면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터인데그간 아무렇게나 마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