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5

어느 주말의 침묵

갑작스런 추위를 지나자, 다시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해졌다. 하지만 이건 이상 기후. 탈정치화, 탈역사화를 떠들던 학자들이 물러나자, 정치적 삶, 정치적 일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유행. 모든 것은 유행이고, 유행을 타는 타이밍은 모든 이들에게 중요해졌다. 진짜 중요한 것은 뒤로 숨어버리고 ... 가산디지털역 인근 커피숍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있다. 몇 개의 전시, 몇 개의 작품을 떠올려 보지만, 역시 예술은 우리 일상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 삶 속에서 예술은 마치 금방이라도 사라질, 공허한 대기의 무지개같다. 아무런 영향도 행사하지 못하는, 때도는 대단한 통찰을 수놓지만, 그건 마치 미네르바의 올빼미와도 같아서 그걸을 깨달은 때는 이미 시간이 한참 흘러 되돌릴 수 없을 때, ..

프랑소와 피노 컬렉션: Agony and Ecstasy, 송은아트스페이스

Selected works from the Francois Pinault Collection 프랑소와 피노 컬렉션: Agony and Ecstasy 2011.9.3 - 11.19 SongEun ArtSpace 스산한 늦가을 바람이 부는, 오후의 청담동 거리. 연이어 있는 명품 가게들 옆 작은 골목길 안에 송은아트스페이스가 있었다. 1층에는 하얗고 투명한 식당이 있고(레스토랑이라고 하면 고급스럽고, 식당이라고 하면 너무 평범해지나...), 위층으로는 송은아트스페이스다. 2층에는 다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의 작품들이, 3층에는 제프 쿤스(Jeff Koons)와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 4층에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있었다. 아, 작품 가격을 묻는 실례..

서울미술산책가이드, 류동원/심정원

 서울 미술산책 가이드 류동현,심정원 공저, 마로니에북스 "발을 내딛는 순간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세상에는 그런 매혹적인 길이 있다. 한 번 내딛으면 나도 모르는 새 푹 빠져 드는 그런 길. '미술'이라는 길이 바로 그렇다. 이 책은 미술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미술 현장으로 이끌기 위해 쓴 가이드북이다." 저자들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말미술여행'을 운영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미술 전시에는 관심있으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 없을까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 한 권을 서점에서 샀습니다. 책은 무척 좋습니다. 문장은 평이하면서도 미술 전문가들이 일반 관람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다 적고 있었습니다. 주요 미술관, 갤러리들 뿐만 아니라 미술 감상법에 대해서도 적고 있는 이 ..

리타 카벨뤼(오페라), 임상빈(선컨템플러리), 스벤 드루엘(마이클슐츠), 홍성철(금호크링)

길을 걸었다. 딱딱한 보도블럭에 부딪히는 느낌이 좋았다. 좋았을 거라고 내 스스로 추측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두 다리와 발은 내 걷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잔뜩 불평을 쌓아두고 있을 지도 모른다. 모든 걷기가 우아하고 즐거우며 보들레르나 벤야민의 '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서울에서의 걷기는 가장 적당치 않다. 먼저 공기가 좋지 않다. 건널목에서는 기대 이상의 기다림을 푸른 불빛에게 할애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최악의 경우에 해당되는데, 아주 짧은 시간 넋을 놓고 걸어가다간 차에 치여 죽거나 불구가 될 수도 있다. 서울의 이런 형편없는 운전문화로 인해 '서울에서의 걷기'는 우리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다. 하지만 (아주) 불행하게도(불쾌하게도) 내 정신은 걷기에 익숙해져 있다. 내 육체는 아닐..

청담동 나비

나비에서 술을 마셨다. 지하 1층이었는데, 더 밑에 조성모 작업실이 있다고 한다. 지하로 내려가는 문 앞에 여학생들이 서있다. 여학생들이라. 회사가 없어지고 난 무직자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프거나 두렵거나 ... 그렇지 않다. 도리어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우며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음에 기뻐하고 있다. 토요일이다. 종일 잠을 잤다.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다들 헤어지고 난 다음, 집 근처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셨다. 취하지는 않았다. 다만 춤을 춰서 피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