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5

어떤 아침 풍경

봄 바람이 차가웠다. 대기는 맑았다. 하늘은 높았다. 하얀 구름을 시샘하듯 파란 배경 위로 햇살이 떨어져 내렸다. 마치 내 마음은 알몸인 듯 추웠고 쓸쓸했으며, 비에 젖은 스폰지마냥 몸은 무겁고 피곤하고 지쳐있었다. 출근길은 길고 지루했으며 해야할 일들의 목록을 사랑의 주문을 외듯 되새기며 걸었다. 걷다가 살짝 삐져나온 보도블럭 모서리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그렇게 넘어져 다쳐 응급실에 실려가는 걸 잠시 상상하다가, 말았다. 불길한 상상은 현실이 되고 행복한 상상은 언제나 상상으로만 머물었다. 그랬다. 마치 우리 젊은 날들을 슬프게 수놓았던 사랑의 흔적들처럼. 마치 공부하는 학생처럼 두꺼운 책 한 두권을 들고 다닌다. 오늘 들고 나온 책에 인용되었던 문장은 아래와 같았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철학함'에 대한 생각 하나

몇 개의 글을 쓰다 ... 프린트한 종이 더미 사이에 넣어버렸다. 혼자 쓰는 글이라는 게 마감 같은 게 있으리 없고, 돈벌이도 아닌 탓에, 쓰다만 몇 개의 글, 쓰다만 몇 개의 소설은 계속 짊어진 채 하루하루 살고 있는 셈이다. 오늘은 사무실에 칼 마르크스의 (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을 가지고 왔다. 어제 잠 들기 전에 서두와 역자 후기를 읽었고, 한동안 가방 속에 머물게 될 것이다.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을 읽다가 '철학자가 처한 현실'과 그것에 대한 사유와 실천의 관계 등에 대해 생각했고, 칼 마르크스의 까지 이어진 것이다. 작년 말 헤겔의 서문을 다시 읽었고, 뭐랄까, 뭔가 답답함을 느꼈다고 할까, ... 그런 기분을 느꼈다. 마르크스는 헤겔이 개념적 파악을 위해 정치적 현실을 논리화해 버렸다고 비..

예술의 죽음에 대한 소고 - 칼스턴 해리스

아래 글은 예일대 칼스턴 해리스 교수가 2000년 월간미술에 기고한 글이다. 독자들에게 현대 미술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도울 수 있는 좋은 글이 될 것이다. 칼스턴 해리스 교수는 국내에서는 '현대 미술, 그 철학적 의미'(서광사)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책의 가치에 비해 널리 알려진 책은 아니지만, 현대 미술에 대해 인문학적 견지에서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겐 내가 강권하는 책이다. 나 또한 이 책 이후로 현대 미술에 대한 뚜렷한 시각이 생겼을 정도이니까. 현대미술 K. 해리스 저/오병남,최연희 공역 월간미술 2000.2 특별기고 세 번째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본지에서는 지난 호에 미술계의 주요 담론인 ‘예술의 죽음’에 대한 세계 석학들의 의견을 소개한 바 있다. 이번 호에는 예일대에서 예술철학을 강의..

미술 비평의 역사, A. 리샤르

미술 비평의 역사 A. 리샤르(지음), 백기수, 최민(옮김), 열화당 ‘미술 비평의 역사’같은 책을 읽는 이가 몇 명쯤 될까(안타깝게도, 나이가 들수록 이런 시니컬한 반응부터 먼저 보이게 되는 것은 정직한 미술사 연구자의 수만큼이나 미술사, 또는 미술 비평의 학술적 영역과 대중적 영역과의 괴리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매우 좋은 책이다. 짧고 간결하게, 그러나 풍부한 인용들을 통해 미술사에 있었던 여러 비평적 태도에 대해 그 장점과 한계를 명확히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상학적 미술사 연구가 주된 경향으로 자리 잡은 이 때, 리샤르는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비평을 위한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은 미학, 또는 미술 비평에 있어서 거의 권력..

1월 3일 스터디

간단하게 공부한 바를 정리하였습니다. 틀린 부분을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정신현상학 부분은 설명할 자신이 없어 헤겔과 장 이뽈리트를 인용하였습니다.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Vorlesungen u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35쪽 강독 부분 한글로 옮김 : 우리는 저 결과를 웅변조의 과장 없이 민족 형태와 국가 형태 및 개인적 덕에 있어서 가장 화려한 것이 감당했던 불행의 적절한 총합을 가장 끔찍하고 가장 무서운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고 그 그림으로 인해 그 어떤 위로의 결과로부터 보상받을 수 없는 가장 심각하고 억누를 길 없는 극한 비탄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될 때에야 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