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 10

피노누아 향에 취해

나이가 드니 혼술이 늘어난다. 책을 읽다가, 저녁을 먹다가, 음악을 듣다가, 술 한 잔, 두 잔, 세 잔, ...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잠에 빠져 ... 그러나 이젠 꿈을 꾸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외롭지 않고 그저 취할 뿐이다, 피곤할 뿐이다, 늙어갈 뿐이다, 그렇게 남겨진다. * * 롱반 피노누아(Long Barn Pinot Noir). 근처에 홈플러스가 있다면 그 곳에서 만원후반대의 이 와인을 가끔은 만이천원대에서 구할 수 있다. 만이천원대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와인이다(자주 세일가에 나온다). 코르크마개를 따서 두 세 시간 이상 둔 다음 마시길 추천한다. 아니면 디켄터를 사용해도 좋다. 이 피노누아 와인은 가볍고 산뜻하면서도 적절한 바디감을 갖추고 있다. 풍성하고..

09.21

09.19. 기록을 한다. 예전엔 종이 위에 펜으로 그리거나 썼는데, 이젠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리며 글을 쓴다. 격세지감이다. 아마 지금도 고향집 다락방엔 수십년 전, 짝사랑하던 여고생의 흔적이 남은 일기장이 먼지를 먹고 있겠지. 그 땐 참, 가슴이 너무 떨려 제대로 걷지도 못했는데. 지금도 그럴까. 그런 일이 생기면 나쁜 일이 될꺼야. 정말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진지하게 생계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탓에, 어쩌면 무심하게도 무조건 작가가 되겠다고 여겼던 탓에, 직장 생활이 가끔, 자주, 예고 없이 어색하기만 했다. 자주 회사를, 직장을 그만 두었다. 일을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탓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일을 잘하는 것 이상으로 책임감도 중요한..

혼술, 또는 쓸쓸한 두려움의 시각

혼술의 빈도가 늘어나는 나이.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어 가는 계절. 술에 취하는 것이 무서워지는 시간들. 기도를 올리기 위해 두 손을 모으지만 계속 방향이 어긋나는 몸으로 변해가는 시절. 인생의 오르막이 아직도 한참 남아 있음을 아직 어린 아들을 보며 깨닫을 무렵, 역시 위스키는 부드럽게 취하긴 적당하지 않아. 특히 탈리스크는 피트가 좀 거칠고 날카로워. 난 좀 더 묵직하고 부드러운 피트가 필요해. 그래야 취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혼자 주절거리던 시간. 그런 시간들이 흘러 어둠 속으로 묻히는 여름밤. 밖에 닫힌 창 너머로 비 소리가 들리고 ... 내가 취한 걸 아무도 모르는 어떤 깜깜한 밤.

2월 10일, 단상

최근 두 개의 법정 판결은, 브라질의 사례를 떠올리게 만든다. 문자를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을 '축자주의'라 한다. 몇몇 종교에서 보이는 퇴행적 급진주의는 이것으로 인해서다. 법조문도 마찬가지여서 문자 그대로 읽는 잘못을 범하면 안 된다. 결국 해석과 적용의 문제가 뒤따르게 되고, 판사의 자질 문제가 떠오른다. 게으른 신문기자가 결국엔 자극적인 단어로 클릭을 유도하는 위장 마케터가 되거나 검찰이나 정부가 이야기하는 대로 그대로 적는 받아쓰기 만점 전문가가 되듯,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 판사는 영혼 없는 판결로 현실을 위태롭게 한다. 지난 정부 시절 한국은 선진국의 축포를 쏘아올렸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다. 전세계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 지 모르고 ..

한 잔의 깔바도스

술 기운이 확 올라왔다. 피곤했다. 지쳐있었다. 어쩌다 보니, 다시 프로젝트의 한복판에 있었다. 자주 술을 마신다. 팀원을 다독이기 위해서 마시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마시고 이런저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마신다. 블로그도 뜸하다 보니, 오는 사람도 뜸해진다. 레마르크의 을 읽다보면, 사과로 만든 술 '깔바도스'가 궁금해진다. 사과향이 확 올라오지만, 끝은 무겁고 까칠하다. 거친 사내의 느낌이다. 둔탁하지 않고 날카롭다. 적당한 바디감이지만, 부드럽지 못해 살짝 불쾌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연거푸 마셔 한 잔을 빠르게 비운다. 비운 만큼, 내 마음의 때도 알코올 향 따라 사라질려나.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올해의 반성이니 결산이니 하는 건 사치다. 그저 술을 마실 뿐이다. 이렇게 술을 마시기도 한다...

혼술과 커피에 대한 실존적 고찰

매일 아침 저녁, 또는 시간 날 때마다 일기를 쓴다. 특별한 내용은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라는 말과 종교적 기원을 적는다. 오늘 하루가 어떤 일들로 구성되었는지 적지 않는다. 그걸 적으려고 보니, 너무 길어질 것같기도 하고 그럴 정신적 에너지도 남지 않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작은 나이다. 앞으로 그 비율은 더 심해질 것이다. 딱히 지혜나 통찰을 가지지도 못했고, 그나마 있던 지식이나 상식도 얇게 스쳐가는 바람에 휘익 쓸려 날아가고 있는 늦겨울, 혹은 초봄이다. 낯선 이들과 교류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젊은 이들과 술을 마시거나 대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감수성이 무뎌지거나 슬픔이 덜 하거나 쓸쓸함이나 고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외면할 뿐. 다시..

렘브란트와 짐멜

짐멜의 를 열심히 읽고 있다. 2018년 독서 결산 포스팅도 못하고, 작년 연말에 읽었던 몇 권의 책 서평도 못 쓰고 있다. 대신 짐멜을 열심히 읽고 있다. 책은 딱딱하고 난삽하지만, 마치 뵐플린이 양식의 측면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조망하듯, 짐멜은 렘브란트의 작품 세계를 르네상스, 혹은 그 이전의 예술가들과 보편성/개별성의 관점에서 비교하며 근대로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은 개별성에 집중하면서 각 인물마다 개성적인 포즈와 역동성을 부여하여 르네상스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걸작을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내 독서는 늘 파편화되어 있는 탓에, 절반 정도 읽었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구절도 없이 어렴풋하게 펼쳐질 뿐이다. 여유라도 되면 '짐멜 읽기' 모임같은 거라도 하면 좋을련만..

흰밤, 백석

흰밤 옛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묵은 초가지붕에 박이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 백석, 1935년 11월, 혼자 술에 취해 거실 탁자에 앉아 시집을 꺼내읽다 왈칵 눈물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눈물에, 내가 왜 이럴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감수성이라는 게 살아있었나 하는 안도감을 아주 흐르게 느꼈다. 글쓰기는 형편 없어지고 책읽기도 그냥 습관처럼 변해, 종종 내가 왜,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요즘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지혜가 생긴 것도 아니고 논리 정연해진 것도, 그렇다고 사람들을 감화시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리더십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다. 도리어 거짓말장이가 되고 불성실해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선사..

혼술의 My Way

4월 5일 혼란스러운 사각형의 냉동, 냉장 공간 탐험 끝에 만난 또띠아, 치즈, 오래된 소시지. 늦은 퇴근. 혼자 식탁에 앉아 먹는 맥주. 어쩔 수 없이 아저씨가 되어가는 밤의 쓸쓸한 어둠. 4월 7일 #혼술 생활의 연속. 아슬, 아슬, 하늘, 하늘, 흔들, 흔들, 빙글, 빙글, 그렇게 #혼술 #중년 4월 24일 혼자 술만 마시다 나이가 들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때, 찾는 건 그 때 그녀,들,목소리,들,그,손길,들,그,술자리,로 이루어진 대명사들. 책상에 앉아 이리저리 흩어진 내 현재를 추스리다가 '내 길이 뭘까', 하고 생각했을 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