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2

죽음을 향한 침묵

2015년, 기억해둘 만한 해가 되었다. 2016년, 아직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고 주말에 쉰 적이 없다. 스트레스로 인한 폭음 뒤, 몸져 누워 나가지 않은 때를 제외하곤. WLB(Work & Life Balance)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던 때가 부끄러워졌다. 일요일 출근 전, 르 클레지오를 짧게 읽었다.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동떨어진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스물 여덟 무렵, 자신만만하게 젊은 날의 르 클레지오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의 놀라웠던 데뷔작, , 그 이후의 슬프고 감미로웠던 , , ... 십 수년이 지나고 노년의 르 클레지오는 서울에 와서 살기도 하고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이제 르 클레지오는 내 일상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내 탓도, 세상 탓도 아니다. 애초에 이렇게..

홍수, 르 클레지오

『洪水Le De'luge』, 르 클레지오 지음(* 이휘영 옮김), 동문선. 1988. * 그대들은 죽음을 모르고 있다 * 익명성: 이것은 누구나 혼잡한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현대 도시의 비극적 특성들 중의 하나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프랑소와 베송은 이 익명성 속에 자신을 파묻는다. 그래서, 소설은 프랑소와 베송의 뒤를 따라다니며 전개되지만, 프랑소와 베송은 그렇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도리어 그가 보는 사람들, 거리들, 풍경들만 독자의 눈동자 속 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주인공 대신 독자의 눈동자 속에 들어온 사람 들, 거리들, 풍경들에서 독자는 르 클레지오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 를 제외하곤 아무런 것도 얻을 수 없다. 특별한 사건도, 특별한 줄거 리도, 특별한 인물도 없으며, 아무 것도 특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