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10

일요일, 낮잠 자는 고양이

오랜만에 여름 태양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지만, 낯설기만 하다. 몇 달만에, 코로나 등으로 인해 가지 못했던 도서관에 가 책을 반납했다. 빌린 책을 거의 읽지 못했고 최근 산 책들은 서가에 그대로 가 잠들었다. 실은 무슨 책을 구입했는지도 잊어 버렸다. 올해 초 수주했다고 신나했던 프로젝트들은 한결같이 어려움에 처했고, 누군가가 해야 할 일들은 모두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심지어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너무 심한 나머지, 나로 하여금 악몽을 꾸게 했고, 술만 마시면 취하게 하였다. 그리고 오늘, 모처럼, 일요일, 시립도서관에서 구립어린이도서관으로 가는 길, 나는 결국 아들과 티격태격했다. 나이가 무슨 소용일까. 결국 다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다만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상대방을 능수..

동네 카페

계절과 계절 사이. 도로와 도로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사이에 앉아 책을 읽으며 창 밖과 창 안쪽을 번갈아 바라다보았다. 풍경 안에 있지만, 풍경 밖으로 계속 밀려나갔다. 단어들이 쉴 새 없이 떠올랐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문장이 되지 못했다. 복 없는 단어들이여. 결국 사라질 것들이다. 고비 사막에서 발견되었다는 미이라의 뉴스가 떠올랐다.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은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모두 사막 속으로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다. 토요일 오전, 동네 카페에 앉아 이 사람, 저 사람 보면서 잠시 나를 잊었다. 내가 있는 곳, 내가 처한 곳, 내 앞 절벽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근황

말많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잠시 쉬고 있다. 마흔이 지난 후, 일만 한 듯 싶다. 한 때 미술계에 발 담근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전시를 보러 가는 횟수도 줄었고 미술계 사람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돌이켜보니, 내 잘못도 많은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지난 1년 간 대형 SI프로젝트 내 단위시스템 PM 역할을 수행하면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전체 프로젝트 관점에서의 단위 시스템에의 접근, 협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PM으로서 인력 채용과 관리 등 많은 부분에서 그동안 내 장점으로 부각되었던 것들이 단점으로 드러나 더욱 힘들었다. 잠시 쉬면서 지난 1년을 되새기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배워야한다는 건 늘 힘들다. 스스로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지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시미즈 레이나(지음), 박수지(옮김), 학산문화사 La', tout n'est qu'ordre et beaute',Luxe, calme et volupte' 그 곳에선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호화로움, 조용함, 쾌락 뿐.- 보들레르, 중에서 나에게 행복이 있다면, 그건 길을 가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이미 절판되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책을 우연히 구하는 것. 1990년대 중반,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나는 그 지역의 서점과 레코드샵을 찾아 다녔다. 작은 서점 구석에 낡은 문고판 책이나 문학 전집의 낱권을 샀다. 작은 도시의 서점에 있을 법 하지 않은 인문학 책을 구할 때면, 신기함마저 느끼곤 했다. 대학 시절, 얼마 안 되는 용돈이었으나, 그 돈으로 틈만 나면 책과 ..

휴식에의 염원

작은 회사의 임원이 되고 난 다음, 편안하게 잠든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술에 취해 잠이 들던,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일을 하던, 메일을 보내던, 고민을 하던, ... 심지어 잠이 들지 못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어제도. 최근에는 점심 거르기도 자주. 내 사업이었다면 어땠을까? 글쎄다. 올해의 실패는 인사(HR)다. 1명의 팀장을 제외하곤 모든 팀장들이 올해 채용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 10년 차가 넘거나 10년 가까이 되는 인력들이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한 번 이상의 고객 불평을 만들었고, 심지어 여러 번이거나, 기본적인 태도가 안 되어 있었고, 서비스 마인드 부재에 고객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가 아예 없었다. 내가 맡은 부서가 아니라 그들을 인터뷰하거나 채용 과정에 의견을..

97년, 날 사랑한 두 명의 여자

나도 말랑말랑하던 감수성을 가졌던 때도 있었다. 얼마 전에 만났던 선배는 나에게 '10년 전 나는 참 4차원이면서 똘똘했다'고 평했는데, ... 내 스스로 그랬나 싶어할 정도로, 나는 나 자신을 알지 못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우물 안에 있으면 내가 있는 곳이 우물인지 모르고, 우물 밖에 나와야만 내가 우물 안에 있었다는 걸 안다. 즉 자신 스스로 돌이켜보지 못한다면, 타인에게 물어서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 2004년 6월에 쓴 메모를 다시 읽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게 휴식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 2004년 6월 6일 05:04 전화를 하지만, 전화는 되지 않고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빙빙 돌다가어디 ..

휴식, 또는 디폴트 네트워크

특히 '디폴트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는 무척 흥미롭습니다. 미국의 두뇌 연구가 마커스 라이클은 실험 참가자 문제 풀이에 집중하자 뇌의 특정 영역의 활동이 오히려 줄어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문제 풀기를 멈추자 이 영역의 활동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멍'한 상태에 있거나 잡념에 빠졌을 때 극도로 활발해지는 뇌의 영역은 디폴트 네트워크로 명명됐습니다. 이란 책의 저자는 울리히 슈나벨은 신경세포인 뉴런들을 새롭게 정비하고 기억을 분류하며 배운 것을 처리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디폴트 네트워크가 활성화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특정 과업에서 벗어나 별 생각 없이 있는 게 우리의 정신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외부의 자극이 없어도 내면의 지식, 오래 전에 갖고 있던 지식, 잠시 스쳐 ..

연휴 나들이 - 과천 서울대공원

요즘 주말이면 나들이다. 오늘은 과천 서울대공원을 다녀왔다. 그리고 몇 장의 꽃 사진을 찍어왔다. 오후에 출발했지만, 짧지 않은 시간 그 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호수가 보이는 잔디 위에서 잠시 누워 잠시 낮잠을 잤다. 걸어다닌 것밖에 없는데, 몸은 쉽게 피로해졌다. 운동 부족인 듯하다. 생각해보니, 이번 연휴에는 토요일 오전을 제외하곤 책을 거의 들여다 보지 못했다. 조금의 후회가 날 스친다. 과천 서울대공원에 가서, 미술관이나 동물원 올라가는 길목, 호수 주변에 잔디밭에 앉아 가져온 음식들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새삼 알게 되었다. 다음에는 좀더 계획성 있게 갈 생각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어. 심지어 사랑마저도.

하루하루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지난 주 운동하다가 무리한 것인지, 아니면 몇 가지 일들로 긴장한 건지, 허리 쪽에 근육통이 생겼는데, 이게 목까지 올라와 며칠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그랬으니, 이번 주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육체를 거느리고 잘 산 셈인가. 오늘이 되어서야 몸이 제대로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출근길, 텅 빈 집에 남겨질 만 여 권의 책들과 천 여장의 음반들, 동양난, 서양난 화분들과 아직 이름이 없는 금붕어 한 마리에 대해 생각했다. 참 부질없는 것에 나는 이토록 목을 매는 것일까. 가령, ‘사랑’같은 것 아직 어깨를 움직일 때마다 불편하다. 주변 몇 명이 같이 책 읽자고 하는 바람에 시작하는 독서 모임이지만, 역시 뭔가를 제대로 하기란 어렵다. 기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