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66

에릭 사티 Erik Satie

에릭 사티(Erik Satie)의 '짐노페디Gymnopédies'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정작 에릭 사티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가드 멜리낭(Agathe Melinand, 툴루즈국립극장 공동극장장)은 2016년 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에릭 사티(1866~1925)에 대해 묘사하려니 복잡한 심정이 된다. 그의 성품에 대해 말하려니 조심스럽다. 그는 반항적이었고 농담을 즐겼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등을 돌렸고, 거처인 아르쾨유의 오두막에 처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를 되살리는 것은 아슬아슬한 곡예와 같다. 벨벳 정장차림의 젊은 혁명가와, 공증인 차림을 한 사티 중 누구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니면 언제나 걸어서 교외 생제르맹의 노아유 마을을 가끔 방문하던 사티? 아니면 아르..

근황 - 2020년 12월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하나가 튀어나온다. 최근 읽은 아티클의 문장은 기억해둘 만하다. - Your primary role as an agile leader is to create an environment that empowers everyone to be an innovative problem-solver. - Leadership begins with you: Your values, beliefs, strengths, and weakness drive your decisions and actions and demonstrate your true character. All of these factors affect your capacity to connect with and influence othe..

스트레스의 극복

각자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극복 방법이 있다. 나도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 간단하게 적어본다. 1. 스트레스를 받는 일/공간/시간을 벗어나자. 하지만 이제, 이것은 불가능하다. 대체로 밥벌이와 관련되거나 어쩌지 못하는 인간 관계, 또는 불가항력적 상황일 경우가 더 많아졌다. 예전엔 아예 그냥 잠수를 타기도 했지만, 이젠 그럴 시기도 아니다. 2. 술을 마신다. 그냥 소주를 마셔선 안 된다. 조용하고 아늑한 바에서의 몰트 위스키 한 잔이거나 좋아하는 와인을 좋은 음식과 먹는 것. 살짝 사치스러워야 한다.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수준의. 예전에 자주 가는 단골 술집에서 음악 틀어놓고 마시길 좋아했으나, 이젠 그 단골 술집도 문을 닫았고, 음악을 들으며 마시다 보면 내일이 사라지다..

Jazz, Jazzy, and Gonzalo Rubalcaba

토요일이 끝나고 일요일이 시작된다. 어수선한 주말이 흐르고 가족이 잠든 새벽, 음악을 듣는다. 그러나 예전처럼 쉬이 음악 속에 빨려들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나이가 들면 세상 사는 게 조금은 수월할 것이라 여겼는데, 예상과 달리 그렇지 않더라. 예전엔 화를 내고 분노하게 되는 상황임에도, 지금은 그냥 무덤덤하게 넘기고 있는 나를 보면서 쓸쓸해지곤 한다. 나이가 드는 건 좋지 않다. 이젠 마음이 뛰지도 않는다. Jazz를 들으면 Jazzy해질 것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곤잘로 루발카바는 한국에 여러 번 내한한 쿠바 하바나 출신의 피아니스트다. 그가 찰리 헤이든과 음반을 냈는데, 한국에선 이제 구하지 못하고 해외 주문을 해야 한다. 예전에는 음반을 구하기 위해 해외 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했는데,..

LP바의 방랑

(신림동 우드스탁. 어두워서 사진이 엉망이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라디오에 연결해서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 장정일, 턴테이블에 레코드판. 이것도 꿈이라면 꿈이었다. 하지만 서재에 있는 턴테이블과 레코드에 먼지가 쌓이기 일쑤다. 들을 시간도 없고 같이 들어줄 사람도 없다. 무관심해졌다. 음악을 듣는다고 삶이 윤택해지면 좋겠지만, 딱히 그렇게 되진 않더라. 하지만 그래도 마음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셨다. 아는 음악이 나왔고 모르는 음악이 흘러갔다. 그 선율을 따라 알코올도 내 혀와 식도,..

misc.

수십년은 되었을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는다. 한밤 중, 퇴근 후 마신 술이 부족해, 집에 들어와 마트에서 사다놓은 위스키를 꺼내 한 두 잔 들이키다가 그냥 취해버렸다. 아마 취한 내 마음과 달리 내 귀는 이브 몽땅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뻐했을 것이다. 수백장의 음반을 놔두고도 듣지 못하는 요즘 내 신세를 보면, 뭐랄까, 음악을 듣는 것도 젊은 날의 사치같다. 지금은 그저 추억. 최근엔 몰트 위스키에 빠졌다. 와인에 빠졌다가 이젠 위스키로 넘어가는 중이다. 나이 탓도 있겠다. 아니면 더위 때문인가.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를 보면서, 역시 호크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는 평면과 입체를 교묘하게 섞어놓으면서 그 사이를 응시하는 관객에게 도리어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

음반들, 그리고 우리들의 기다림

몇 번의 이사,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생의 변화 앞에서 음반들은 그 특유의 친화력과 생기를 잃어버렸다. 한 때 자신들의 소리를 보여줄 도구들마저 없었을 때, 아마 그들은 나를 원망했을 것이다. 주중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토요일 오전, 음반들 한 무더기를 꺼내 한 번 정렬해 보았다. 다들 오래된 음반들이다. 심지어 존 케이지(John Cage)를 연주한 음반도 눈에 보이지만, 몇 번 들었던가, 언제 마지막 들었던가, 그런 기억마저도 없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알아줄 이를 만났을 때에만 그 빛을 발한다. 그건 그녀도, 그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대상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알리고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아프고 구차하고 쓸쓸한 일인가를, 한 번이라도 ..

콘텐츠의 미래, 바라트 아난드

콘텐츠의 미래 The Content Trap 바라트 아난드(지음), 김인수(옮김), 리더스북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인터넷이 새로운 라디오라고 생각하니까요" - 닐 영Neil Young 읽은 지 벌써 반 년은 흘렀고, 출퇴근하는 지하철이나 일상 속에서 가끔, 띄엄띄엄 생기던 토막 시간에 읽은 탓에 정리해놓은 노트도 없다. 그러니 리뷰 쓰기도 살짝 부담스럽다. 돌이켜보건대 책을 다 읽었을 때의 느낌은, 짧게 쓸 수 있는 책을 왜 이리 길게 적었을까 였다. 살짝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2016년 10월에 출간된 책이 2017년말경에 번역되었으며(1년이 지난 시점), 내가 사서 읽은 건 2018년 중반이었던 탓에(거의 2년이 지난), 책의 상당 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

은빛 숲 Silver Forest, 짐 모리슨 Jim Morrison

어지러진 자취방 구석에 놓인 낡은 턴테이블 위로 레코드판을 올릴 때, 그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뱉었다. 맥주를 한 잔 마셨고 짐 모리슨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 대신 문학을 했지만, 문학 대신 음악을 이야기했다. 다 지나간 일이다. 누군가는 왜 자신이 사랑하던 이들은 다 죽은 이들인가 반문하기도 했다.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었지만, 다 쓸쓸하고 외로웠다. 결국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그냥 애초부터 우리는 쓸쓸하거나 외롭다는 것을 인정하기엔 너무 젊었다. 청춘의 저주였던 셈이다. 점심 시간, 사무실에 혼자 앉아 짐 모리슨을 듣는다. 정규 앨범에 수록된 음악이 아니다. 짐 모리슨은 자주 시를 읽었다. 그리고 테잎에 녹음을 했다. 유튜브에 짐 모리슨이 읖조린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