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187

산책, 이인선 개인전

산책 a walk 이인선 개인전 정동경향갤러리(경향신문사 별관 1층), 2005년 8월 23일 - 29일 #1. 상실의 시대 언제부터 가슴 한 켠에선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스치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도심의 잿빛 거리에서, 익숙한 간판의 낡은 커피향이 풍기는 찻집에서, 자욱한 담배 연기로 가득한 호프집에서, 누군가를 만나 원색 계열의 즐겁고 화려한 수다를 떨고 있는 동안마저도 거친 세파에 네모진 가슴의 어느 모퉁이에선 무관심에 방치되어 사라져가다가 결국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겨우 그 어떤 것이 있던 자국만 남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쓸쓸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왜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 느낌은 ..

율리어스 포프 - 비트.폴(bit.fall), 국립현대미술관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 2015:율리어스 포프 Julius Popp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는 데이터의 최소 단위 정보 조각(bit)의 떨어진(fall), 즉 쏟아지며 짧은 순간만 존재할 수 있는 정보의 일시성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전파되는 정보의 활발한 맥(pulse)을 의미합니다. 작품은 실시간으로 인터넷과 연결되어 작가가 고안한 통계 알고리즘을 통해 인터넷 뉴스피드에 게재된 단어의 노출빈도수를 측정하고 각 단어의 중요도에 따라 '물 글씨' 단어를 선택합니다. 전시장 안에서 연속적으로 빠르게 쏟아져 내리는 이 '정보 데이터의 폭포'는 1초도 안 되는 시간에만 유효한 정보의 일시성과 현대인이 이해하고 소화시킬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지 않는 정보 과잉의 현대 사회를 시각화합니다. 또한 생동감 있게 오늘날의..

구글 어스로부터 온 엽서들(Postcards from Google Earth), 클레멘트 발라

구글 어스로부터 온 엽서들(Postcards from Google Earth) - 클레멘트 발라(Clement Valla) http://www.postcards-from-google-earth.com/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구글 어스에 찍힌 사진들의 모음이다. 그런데 모여진 사진들이 이상하고 낯설다. 그냥 프로그램 결함이나 에러로 여길 법한 이 사진들에 대한 클레멘트 발라의 생각은 다르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구글 어스 이미지들은 색인화된 사진들-어떤 장소를 찾고 그 곳을 미리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자동화된 데이터 모음으로, 끊김없이 아주 매끄러운 환상을 만들고 업데이트하면서 재현(representation)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진들은 프로그램 알고리즘의 에러나..

새틴 이온Satin Ions, 니나 카넬(Nina Canell) 개인전

니나 카렐Nina Canell 개인전 2015년 5월 29일 - 8월 9일 아르코미술관 제2전시실 전시 팸플릿을 읽어야만 이해가 되는 예술 작품은 어떻게 받아야 들여야 할까. 그리고 이해만 될 뿐이라면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난감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작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니나 카렐 개인전인 그런 종류의 전시였다. 마치 '현대 미술의 제 무덤 파기 프로젝트'로 여겨질 정도라고 할까. 요점만 말하자면, 예술 작품은 본질적으로 '어떤 심리적 환기'를 가지고 와야 한다. 칸트는 이를 '쾌', '불쾌'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런데 나는 니나 카렐 작품 앞에서 멈칫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일종의 연구이긴 하지만, 그래서? 연구는 실험실에서 하는 것이다. 마치 외계인의 언어처럼 내 앞에 덩그러니 놓여진..

이불 LEE BUL,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이불 LEE BUL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2014.9.30 – 2015.3.1 (현대자동차 http://brand.hyundai.com/ko/main.do) 그 공간에 서면, 작품 한 가운데 서면, ‘여긴 어디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빨리 나가거나 계속 머무르거나. 에서. 2014년 이불은 현대자동차의 지원을 받아 국립현대미술관에 2개의 작품을 전시한다. 와 . 둘 다 기계적 초현실주의, 혹은 실험주의라고 할까. 미술에서 초현실주의나 실험주의라고 하면, 반-기계적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이탈리아의 F.T.마리네티Marinetti는 미래주의를 주장하면서 기계적 특징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하지만 그 흐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금세 반-기계주의로 기울었지만. 내..

'싹' 그리고 '정물화: 살아있는 것의 소고' - 김주연 사진전

'싹' 그리고 '정물화: 살아있는 것의 소고' - 김주연 사진전2016.4.7 - 5.3, 트렁크갤러리, 서울 트렁크갤러리도 참 오랜만이었다. 설치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사진 작품으로 만났다. 2008년의 쿤스트독이었나, 아니면 다른 전시에서였나, 김주연의 작품을 만난 적이 있다. 선명한 작품 스타일로 한 번 보면 기억하게 된다. 그 동안 다양한 공간/물건에 식물을 키웠는데, 이번엔 옷이다. 김주연, 존재의 가벼움I -2, 사진, 피그먼트 프린트, 144×108cm, 2014 시간은 현대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다. 김주연은 그 위로 생명의 시작과 끝은 넣으며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공간을 탈세속화시킨다. 세속에서 일정 기능을 수행하는 어떤 것에 씨앗을 심음으로서, 그것이 가지고 있던 세속의 기능을 잃게..

양혜규 Haegue Yang

양혜규. 2010년 아트선재센터의 전시는 꽤 충격적이었다. 즉물적이면서 날카로운 느낌을 자아내면서 동시에 토테미즘적인 분위기는 나에겐 매우 낯선 작품들이었다. 그 세계는 근대적 현실에 기초하고 있으나 근대적 삶을 도려내고 근대의 맨 얼굴을 드러내며 파괴한다. 그리고 그 세계의 복원을 주술적 방식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할까. 이번 전시도 이러한 경향을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 맡은 프로젝트로 인해 나는 거의 전시를 보지 못했고, 얼마 전 리움에 열린 양혜규의 개인전도 가지 못했다. 뒤늦은 후회를 만회하고자, 양혜규의 몇몇 문장과 이미지를 저장한다. * * "몇 년 동안 블라인드에 빠져있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조명이 진하게 지나가는 날카로운 선은 성적인 쾌감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멋있게..

선무 - 두 개의 코리아 사이에서 하나로 열리는.

도서관에서 미술잡지를 보다, 오랜만에 선무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주말 사무실 출근 전 건성건성 읽곤 집에 와서 그의 전시 기사들을 챙기며 메모해둔다. 의외로 선무에 대한 글이 검색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보다 국외에서 더 주목받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삶이 가지는 드라마틱한 요소, 30년 북에서 살다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탈북하여 한국에서 들어온 사내, 새터민 화가, 홍대 미대 졸업, 그리고 이젠 두 아이의 아빠. 그런 그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 세계는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고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선무, 들어라!, 캔버스에 유채, 116×91cm, 2009 특히 그가 배웠던 방식의 작품 스타일(일명 주체미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명확한 메시지를 무겁지 않은 화법으로 드러낸다는 점은 보는 이들을 자연..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대척점의 항구(Port of Reflections)

Leandro Erlich 레안드로 에를리치Port of Reflections 대척점의 항구2014. 11. 4 - 2015. 9. 1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박스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2014 2012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의 전시 이후 다시 만나는 레안드로 에를리치다. 197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인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2001년에 이미 베니스 비엔날레에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가로 참여했다. 이십대 후반에 이미 그는 아르헨티나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른 셈이다. 2005년에 다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고, 2000년에는 휘트니 비엔날레, 2001년에는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이른 나이에 세계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이번 국립 현대 미술관에 전시된 는 그간 그가 보여주었던 공간의 착..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지음), 최재혁(옮김), 반비 현대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그녀와 이야기하는 게 어려울까? 그렇지 않을 게다. 그렇다면 그/그녀가 만들고 보여주는 미술 작품은? 정녕 모른다면 친구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동시대 미술(우리에겐 현대미술)을 보고 감상하지 못한다면, 그건 미술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우리 시대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즉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주위를 돌아볼 겨를 조차 없이 무언가에 쫓겨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옳은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자주 전시장을 찾고 자기 자신에 대해 보다 솔직해지고(심지어 자신의 아픔, 상처와 대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