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디어 클래식, 김순배

지하련 2016. 9. 6. 11:31


디어 클래식 Dear Classic 

김순배(지음), 책읽는수요일




저자는 피아니스트다. 그런데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그녀처럼 쉽고 재미있게 글 쓰는 재주는 없는 것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금세 빨려들어가, 책 중반을 읽고 있는 나를 보며, 클래식 음악을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내는 저자가 부러웠다(그녀의 아버지는 김현승 시인이다. 시인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닌지..)


내가 모르는 작곡가들과 그들의 음악, 그리고 내가 알고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이들의 음악에 대해 저자는 부드러운 어조로, 깊이 있는 내용까지 언급하며 독자를 안내한다. (내가 얼마 전에 올린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도 이 책에서 읽은 바를 옮긴 것이다)



1966년 초연된 이 작품은 펜데레츠키 특유의 극단적인 실험기법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청중은 강렬한 묘사와 극적인 표현이 주는 크나큰 충격을 체험합니다. 이 수난곡에는 무조성, 톤 클러스터, 음렬주의는 물론 소리 내지르기, 대사처럼 말하기, 중엉대기, 킥킥대기, 쉬쉬하기 등 다소 불온하고 이례적인 지시로 가득합니다. 

- 121쪽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인 펜데레츠키의 <성 누가 수난곡>에 대한 설명은, 마치 직접 듣는 것처럼 생생한다. 예전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는 들었으나, 그 땐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 책에서 다시 펜데레츠키에 듣게 된다. 


아마 이 책의 좋은 점은 현대 작곡가들에게 인색하지 않다는 점이며, 저자의 편애가 들어가 있긴 하나, 몇몇 작품들에 대한 찬사일 것이다. 이런 찬사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긴 하나, 비전문가인 나에겐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준다. 


참고: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과거와 미래는 공존한다', 객석 2014년 1월 


베토벤 소나타는 일종의 통합 음악입니다. 그 안에는 목소리, 드라마, 심포니, 앙상블 등 모든 조합 가능한 음악적 요소가 진을 치고 있습니다. 

- 173쪽


저자는 베토벤 소나타에 높이 평가하며, 백건우의 연주를 최고로 쳤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베토벤 소나타를 들어야 하는 의무감같은 걸 느꼈다. 아, 그러나 백건우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집은 이미 품절이고, 중고가격이 어마어마하구나. 



'음악가 자신을 구원하고 마침내 음악 듣는 이들도 구원하는 클래식의 역사는 위로의 역사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라는 책 표지에 실린 메시지는 저자의 의견이겠지만, 나 또한 저 의견에 강력하게 동감한다. 자주 주위 사람들에게 책 읽기가 아닌 음악 듣기를 취미로 추천하는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음악만 집중해서 들었을 때의 위안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예전엔 듣고 싶은 클래식 음악이 있어도 바로 듣지 못했다. 클래식 라디오 방송에 신청하거나, 음반 자료실이 있는 도서관에 가 헤드폰을 끼고 듣거나, 아니면 대형 레코드점에서 구입하는 것 밖에.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유튜브만 뒤지면, 웬만한 클래식 음악들은 다 있다. 얼마나 좋은가. 손쉽게 궁금한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으니. 그리고 마음만 먹는다면 작은 오디오 하나 사서 PC나 스마트폰에 연결해 보다 좋은 음질로 편하게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도 있으니. 만만치 않은 돈을 지불하며 미니 오디오를 구입해 듣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경제적인 가격의 오디오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읽기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듣기 위한 책이다. 그리고 독자가 적극적으로 찾아 들으려고 할 때, 이 책은 더욱 가치를 발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책에서 언급된 이삭 알베니즈의 <이베리아>를 듣고 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알베니즈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음을 고백하면서. 그리고 메시앙도 이어 들을 것이다. 메시앙에 대해 나는 너무 소홀했다.  


"내 음악은 알 수 없는 향기, 쉴 새 없이 노래하는 새들, 교회 창문 스테인드 글라스의 음악, 다시 말하면 다채롭게 조용하고 보완하는 여러 빛깔, 즉 종교적 무지개"

- 올리비에 메시앙 (57쪽에서 재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