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75

미켈란젤리와 잭 케루악

1.한동안 미친듯이 들었던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한참만에 꺼내 듣는다. 한껏 마음이 부풀어오른다. 너무 혼란스러운 세상. 이틀 만에 레오 14세 교황님이 선출되었다. 다행이다. 지금 전 세계를 보라. 제대로 된 정치가가 어디 있는지. 종교 지도자라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할 판이다. 여기 이 땅도 새로운 지도자가 나올 것이니. 그나마 오늘 우리를 위로해주는 건 한 잔의 술과 임윤찬, 살아있는 몇 명의 작가들과... 대부분 이미 죽은 예술가들 뿐이다. 그리고 지금 미켈란젤리의 오래된 피아노 소리... 2.술 이야기로 시작하는 보기 드문 소설. 심지어 잭 케루악은 과음으로 죽었다. 진정 비트문학! 이 책을 읽고 "On The Road"를 읽어야지. 하지만 술은 멀리. ... 그러나 술들의 유..

주말 오전의 첼로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음반을 꺼내 듣는다. 대체로 음반들은 몇 달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꺼내 듣는 게 전부다. 먼지 쌓인 음반을 닦으며 슬픈 표정으로 웃게 된다. 한 두 번 듣겠다고 지금도 음반을 사고 한 번 읽겠다고 책을 산다.결국 헤어질 운명인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시인 남편은 바람이 나 집을 떠나고, 사랑 속에서 사랑을 잃고 시를 쓴 실비아 플라스도 죽고, 몇 년 후 그녀의 남편과 사랑에 빠져 살림을 차렸던 시인 아시아 베빌도, 테드 휴즈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딸과 함께 죽는다. 사랑이 뭔지. 이젠 테드 휴즈보다 실비아 플라스가 더 유명해졌지만, 사후의 명성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첼로 소리는 주말 아침과 참 잘 어울린다. 고통받고 있는 마음을 가..

The Deer's Cry, Arvo Part.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를 말하라고 하면 단연코 "아르보 페르트"다. 그는 모더니즘 시대에 태어나 탈근대와 억압적 사회주의를 거치면서, 어찌된 일인지 중세적인 신성(神聖, Divine)에 빠져들었다. 그의 미니멀리즘은 감각적이면 본질적, 함축적이면서 우리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 어제 우연히 Arvo Part의 >를 들었다. 아! .... VOCES8 performs 'The Deer's Cry' by Arvo Part at St Vedast Church in London. Text Christ with me, Christ before me, Christ behind me, Christ in me, Christ beneath me, Christ above me, Christ on my right, C..

침대에서 누워 듣는 음악, Men i trust

바닥에 누워 음악을 들을 때의 그 우울함이란! 일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끝없이 억누르고 방바닥과 하나가 되어 방바닥의 외로움을, 그 침묵의 고독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할 때 사각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어떤 규칙적인 소리들. 그러고 보니, 최근 몇년 동안 누워서 음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 누워있을 필요는 없지만, 누워서 듣는 음악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건 사실이니까.  최근 자주 드는 밴드다. 그냥 노곤해진다. 온 몸에서 기운이 빠지는 듯한 봄날 오후 햇살 같다. 그것도 밝은 세상이 아니라 살짝 어둡고 흐릿한 햇살. 술 생각은 나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까지도 귀찮게 하는. 살짝 무책임해지는 음악이랄까.    이런 음악을 'Bedroom Pop'이라고 한다...

얀 가바렉Jan Garbarek, 오피시움Officium

클래식음악인지, 재즈음악인지 알 턱 없다. 하지만 들으면 와! 하고 놀라고 마는 음반이다.  서재 구석에 있던 시디들 속에서 어둠과 먼지를 먹고 있던 얀 가바렉과 힐리어드앙상블의 '오피시움'. 쓸쓸하던 마음을 위로해 주는구나. 9월 어느 일요일 오후의 바람이 창 틈에 머무는 순간, 놀이터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나쁘지 않은 대기 속으로 오래된 음악이 흐른다.  '중세의 가을'일까. 무너져가는 지구의 기후 속에서 몰락의 징후를 알아차린 몇 명만이 경고를 하고 있는 대도시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한가로움이란.. (* 오피시움에 실린 음악들은 모두 중세의 음악들이다. 중세음악을 바탕으로 편곡했다.)

후쿠시마의 풀 하우스

퇴근하여 집에 오니, 서재에 로봇청소기가 전사해 있었다. 출근하면서 방문을 살짝 닫아두고 블라인드를 내려 햇살이 들어오지 않게 한다. 방문을 열어두었다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집을 한 바퀴 돌아다니는 로봇청소기가 들어와 바닥에 스파이크로 세워둔 스피커를 쓰러뜨리고 결국엔 바닥에 이리저리 있는 전선들을 돌돌 말아 먹고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분명 방문을 닫아두고 출근했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로봇청소기가 들어갈 수 있겠다 여겼던지, 이젠 집 구조에 익숙해져 용감해진 것인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와 퇴근길 더위로 땀 덤벅범이 된 나는 폭발하고 만다. 혼자 화를 내면서 로봇청소기가 먹은 전선들을 하나하나 돌려가며 꺼내고 쓰러진 스피커를 바로 세우고 바닥에 널브러진 레코드판과 스탠드등..

골든베르그 변주곡, 손민수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와, 어떻게 이렇게 연주할 수 있는 거지, 라며 놀라게 된다. 우연히 보게 된 손민수 교수의 연주다. 상당히 좋다. 원래 자장가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진 않고, 그런 소문이 있을 정도로 조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 탓일까.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복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난 다음, 겨우 휴식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오후, 골든베르그 변주곡을 듣고 싶어 이 연주를 보게 되었다. 그 전엔 먼저 글렌 굴드를 듣긴 했지만. 임윤찬이 연주하면 한 번 뒤집어질 것같은데. 내년 카네기홀 연주 때 선보인다고 하니... !!  명동성당에서 이 연주 들었던 사람들은 참 좋았겠다.

I fall in love too easily, Andrew Bird

나이가 드니, 이젠 쉽게 사랑에 빠지지도 않는다. 이제 사랑도 남의 일이다. 체력도 부족하고 건강도 엉망이라, 술 마시는 것도 겁나고 할 일은 많고 배울 것도 쌓여있고 새 책도 쌓여간다. 얼마 전에 사다놓은 물리학 책은 꺼내보지도 않았구나. 우주에 대한 책인데. 난 너무 쉽게 사랑에 빠져 고민인 남자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여자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에 드는 목소리를 찾지 못했다. 앤드류 버드는 이런저런 음악을 연주하고 부르는 바이올리니스트다. 찾아보니 경력이 상당히 다채롭니다. 아, 나이도!  Chet Baker의 목소리말고 Andrew Bird의 바이올린과 목소리로 '나는 너무 쉽게 사랑에 빠져'를 들어보자. 이 곳에 오는 모든 이들에게 근사한 사랑이 깃들길~

Ukuaru Waltz, Arvo Part

인구 팔천명의 도시 파이데Paide의 음악 정원. 아르보 페르트는 이 곳 에스토니아 파이데에서 태어났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2016년 작은 음악 정원이 열렸다. 정말 작은 정원인데, 이 곳에 아르보 페르트가 와서 Ukurau Valsi를 연주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르보 페르트의 음악은 언제나 나를 위로해준다.    노년의 윤이상도 통영에서 저런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슬프다.

베드룸팝, 혹은 Men I Trust

새로운 음악 듣기에 도전 해보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잔잔한 포크락이다. 클래식 음악도 피아노이거나 첼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음악 취향도 상당히 보수적이다(아니면 나이가 든 걸까). 오래된 레코드 판을 올려 듣는, 칙칙거리는 아날로그 음악처럼, 뭔가 나른하면서도 푸석푸석한 느낌의 포크락을 듣는다. Men I Trust. 내가 믿는 사람들(남자들, 인간들)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그래서 이들의 음악 장르를 베드룸팝이라고 하는 걸까. 침대에 누워 멍하니 들을 수 있는 음악,들. 요즘 자주 Men I Trust의 음악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