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299

가장 인간적인 인간, 브라이언 크리스찬

가장 인간적인 인간 The Most Human Human브라이언 크리스찬Brian Christian(지음), 최호영(옮김), 책읽는수요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 변화에 적응하고 더 나아가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내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책을 읽고 이런저런 일을 해오면서, 진짜 변화가 오고 있다는 생각은 이번이 처음인 것같다.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전망대로 포스트모던이 아니라 새로운 중세가 되고 새로운 헬레니즘 시기를 지나 중세로 급격히 빨려들어갈 것이라 여겼다. 기후 위기나 자원고갈, 민족주의와 우파의 득세, 지정학적 위기의 고조는 이를 뒷받침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AI가 이를 더 가속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이 흐름을 되돌리거나 진정시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

크랙업 캐피털리즘, 퀸 슬로보디언

크랙업 캐피털리즘 - 시장급진주의자가 꿈꾸는 민주주의 없는 세계퀸 슬로보디언(지음), 김승우(옮김), 아르테   2024년 읽은 최고의 책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흥미롭게 탐구하며 앞으로의 다소 어두운 전망을 쏟아낸다.  우리가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이야기할 때, 나는 민주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허약함 같은 것이라 여겼다. 가령 대중의 지혜가 아닌 대중의 무능력함이 표현될 때라든가(대표적으로 지난 대선 때 2번을 찍어 한국을 퇴보시켰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계엄을 선포해 나라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이나 국민의 힘이라는 정당명을 내란의 힘이나 국민의 짐으로 변경해도 모자랄 지경인, 어리석한 행동을 아직도 보여주는 정당을 보면서 민주주의란 유지하기 어려운 정치 시스템이라는 생각..

세상의 모든 시간, 토마스 기르스트

세상의 모든 시간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토마스 기르스트(지음), 이덕임(옮김), 을유문화사   우연히 방문한 서점에서 산 작은 책. 의외로 재미있고 유용했다. 독후감을 쓰려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의 저자이기도 했다. 글 스타일도 비슷하다. 이 책은 작은 칼럼들을 모아놓은 에세이집이다. 아무 페이지나 열어 읽어도 된다. 문화 칼럼 정도라고 할까. 다양한 작품들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데, 읽을 만하다.  그러고 보니, 뭔가 하나로 모아지진 않는다. 현대 문화/예술에 대한 트렌디한 감각을 알 수 있지만, 거기서 멈춘다. 대단한 통찰을 얻기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카페에 혼자 앉아 바깥 풍경을 보면서 읽기 좋은 책이다. 책의 시작은 상당히 좋지만, 뒤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흠이..

기억 서사, 오카 마리

기억 서사오카 마리(지음), 김병구(옮김), 교유서가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비난하지만, 이스라엘 안에서도 전쟁을 하는 자신의 나라를 비난하고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주류 언론에선 그들을 다루지 않는다. 이는 일본도 비슷하다. 중국은 죽거나 추방당했다. 사람들은, 한국이나 일본, 영국이나 프랑스에 살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문화적 배경이나 지역적 차이와 무관하게) 대체로 자주 듣고 읽게 되는 것으로 편향되기 마련이다. 일종의 반복 학습이랄까, 그래서 아무리 사실을 그대로 옮기더라도 한 번 편향된 시선을 가지면  아래선 대부분의 것들은 잘못 이해되고 그것으로 인해 끔찍한 비극이 생기기도 한다(이를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로 정의한 바 있다). 어쩌면 아우슈비츠도 그런 ..

말하는 보르헤스, 루이스 호르헤 보르헤스

말하는 보르헤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지음), 송병선(옮김), 민음사  Scipta manet, verba volant 입에서 나온 말에는 날개가 있지만, 글로 쓰인 말은 그대로 있다. - 12쪽  꾸준히 보르헤스를 읽는다. 보르헤스를 만나는 동안, 무척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는 자연스럽게 이 주제에서 저 단어로 옮겨다니다. 영국 문학을 이야기하다가 독일 철학자를 꺼내고 다시 고전 그리스와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문학을 이야기하다가 동시대 아르헨티나 작가를 꺼내기도 한다. 이런 여행은 보르헤스만이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다.    영국의 전형적인 스타일은 '적은 말수', 즉 사물에 대해 조금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반면에 세익스피어는 과장이라는 은유법을 즐겨 사용하던 작가입니다. (20쪽) 전혀 영국스..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 헬레나 로젠블랫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헬레나 로젠블랫(지음), 김승진(옮김), 니케북스   1.독서모임 '빡센'에서 선정해 읽은 책이다.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들과 관련없는 책이 선정되고 강제적으로 읽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독서모임에서 읽은 하이에크의 >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유감스럽게도 '자유주의'였다. 자유주의를 영어로 옮기면 리버럴리즘(liberalism)이며, 미국에서 리버럴은 진보 성향을 의미하는데, 하이에크가 '리버럴'인가 하는 의문을 이어졌다. 그런데 한국에선 '자유주의'라고 하면 보수 우파를 연상시킨다. 가령 '자유총연맹'같은 조직을 떠올리게 한다고 할까. 도대체 '자유주의'란 무엇일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이 책이 선정되었고 이번에 읽었다. (메이너드 케인스에겐..

위대한 사상들, 윌 듀란트

위대한 사상들윌 듀란트(지음), 김승욱(옮김), 민음사   바로 뻔뻔한 영웅 숭배. 모든 것을 평준화하고 아무것도 우러러보지 않는 시대에 나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인 토머스 칼라일과 같은 자리에 서서, 플라톤의 그림 앞에 선 조반니 미란돌라(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철학자)처럼 위인들의 신전에서 촛불을 켠다. (17쪽)  이 문장을 읽으며 웃었다. 뻔뻔하긴 하다. 보통선거의 시대. 모든 이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시대. 아무리 불평등이 심하다고 하더라도, 과거 어느 시대와 비교하더라도 평준화되고 아무것도 우러러보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그래서 영웅이 사라지는 시대인가. 아니면 그 영웅의 자리에 팝 가수나 배우들이 자리잡은 시대인가.  이런 역사관에 누구보다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바로 카를 마르크스다. ..

노예의 길,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The Road to Serfdom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지음), 김이석(옮김), 자유기업원   작년 말부터 재개한 독서모임에서 20세기 초반을 중심으로 책을 읽어나가고 있다. 에릭 홉스봄의 >를 읽은 후 케인즈 평전을 읽었고 케인즈와 대척점이라고 알려진 하이에크의 >까지 온 것이다. 대척점은 무슨 대척점. 솔직히 형편없는 책이다. 경제학자가 쓴 정치학 책이라면 차라리 앨버트 O. 허시먼의 책들이 훨씬 뛰어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이 책을 선정해서 읽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좌우대립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이에크는 파시즘과 사회주의를 동일선상에서 파악하고 있으며, 사회주의가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

세계사 속의 팔레스타인 문제, 우스키 아키라

세계사 속 팔레스타인 문제 우스키 아키라(지음), 김윤정(옮김), 글항아리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은 하마스의 선제 공격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나, 그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어렸을 때, 탈무드라든가 랍비라든가 하는 책들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곧잘 듣고 읽지만, 나이가 들어보면 이런 XXX같은 민족도 없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이유로 저들은 저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도대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우리가 이해하는 바 유대인은 어떤 이들인가. 몇 권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 >다. 읽으면서 노트를 하다보니, 상당히 많은 부분을 옮겨 적었다. 현재는 절판된 상태라, 공공도서관에서 빌려읽을 수 밖에 없지만, 정말 좋은 책이다. 한..

제국의 몰락, 엠마뉘엘 토드

제국의 몰락 - 미국 체제의 해체와 세계의 재편엠마뉘엘 토드(지음), 주경철(옮김), 까치   2002년도에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다. 저자의 견해대로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패권 국가로서의 역량을 상실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렇게 변해 왔으니까.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다중 패권 시대로 본격 진입하기 시작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듯하다. 엠마뉘엘 토드는 미국 중심의 세계가 해체되면서 새로운 시대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한다. 살짝 거친 도식화와 강한 의견 제시는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동시에 미국을 극도로 싫어하는 프랑스 지식인 특유의 시각도 느껴진다. 이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었을 때, 나는 왜 이 책을 몰랐을까. 그것도 흥미롭다. 신자유주의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