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음악 19

The Deer's Cry, Arvo Part.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를 말하라고 하면 단연코 "아르보 페르트"다. 그는 모더니즘 시대에 태어나 탈근대와 억압적 사회주의를 거치면서, 어찌된 일인지 중세적인 신성(神聖, Divine)에 빠져들었다. 그의 미니멀리즘은 감각적이면 본질적, 함축적이면서 우리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 어제 우연히 Arvo Part의 >를 들었다. 아! .... VOCES8 performs 'The Deer's Cry' by Arvo Part at St Vedast Church in London. Text Christ with me, Christ before me, Christ behind me, Christ in me, Christ beneath me, Christ above me, Christ on my right, C..

얀 가바렉Jan Garbarek, 오피시움Officium

클래식음악인지, 재즈음악인지 알 턱 없다. 하지만 들으면 와! 하고 놀라고 마는 음반이다.  서재 구석에 있던 시디들 속에서 어둠과 먼지를 먹고 있던 얀 가바렉과 힐리어드앙상블의 '오피시움'. 쓸쓸하던 마음을 위로해 주는구나. 9월 어느 일요일 오후의 바람이 창 틈에 머무는 순간, 놀이터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나쁘지 않은 대기 속으로 오래된 음악이 흐른다.  '중세의 가을'일까. 무너져가는 지구의 기후 속에서 몰락의 징후를 알아차린 몇 명만이 경고를 하고 있는 대도시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한가로움이란.. (* 오피시움에 실린 음악들은 모두 중세의 음악들이다. 중세음악을 바탕으로 편곡했다.)

골든베르그 변주곡, 손민수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와, 어떻게 이렇게 연주할 수 있는 거지, 라며 놀라게 된다. 우연히 보게 된 손민수 교수의 연주다. 상당히 좋다. 원래 자장가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진 않고, 그런 소문이 있을 정도로 조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 탓일까.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복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난 다음, 겨우 휴식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오후, 골든베르그 변주곡을 듣고 싶어 이 연주를 보게 되었다. 그 전엔 먼저 글렌 굴드를 듣긴 했지만. 임윤찬이 연주하면 한 번 뒤집어질 것같은데. 내년 카네기홀 연주 때 선보인다고 하니... !!  명동성당에서 이 연주 들었던 사람들은 참 좋았겠다.

Ukuaru Waltz, Arvo Part

인구 팔천명의 도시 파이데Paide의 음악 정원. 아르보 페르트는 이 곳 에스토니아 파이데에서 태어났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2016년 작은 음악 정원이 열렸다. 정말 작은 정원인데, 이 곳에 아르보 페르트가 와서 Ukurau Valsi를 연주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르보 페르트의 음악은 언제나 나를 위로해준다.    노년의 윤이상도 통영에서 저런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슬프다.

베드룸팝, 혹은 Men I Trust

새로운 음악 듣기에 도전 해보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잔잔한 포크락이다. 클래식 음악도 피아노이거나 첼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음악 취향도 상당히 보수적이다(아니면 나이가 든 걸까). 오래된 레코드 판을 올려 듣는, 칙칙거리는 아날로그 음악처럼, 뭔가 나른하면서도 푸석푸석한 느낌의 포크락을 듣는다. Men I Trust. 내가 믿는 사람들(남자들, 인간들)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그래서 이들의 음악 장르를 베드룸팝이라고 하는 걸까. 침대에 누워 멍하니 들을 수 있는 음악,들. 요즘 자주 Men I Trust의 음악을 듣는다.

Arvo Part, The Collection

Arvo Part, The Collection, Brilliant Classics “나의 칼레비포에그(Kalevipoeg)*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아르보 페르트 습관적으로 음반을 올리고 플레이 버튼를 누른다. 사각의 방은 어느 새 단조로운 음들로 가득차고, 마음은 가라앉고 대기는 숨을 죽이며 공기들의 작은 움직임까지 건조한 피부로 느껴진다. 이 때 아르보 페르트가 바라던 어떤 영성이 내려앉는다. 적대적인 느낌을 풍기며 나를 옥죄던 저 세상이 어느 새 감사한 곳으로 변하며 한 때 나를 힘들게 했던 아픔들마저도 나를 끝끝내 성장시킨 어떤 고비였음을 떠올리게 한다.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는, 20세기 후반 이후 최고의 작곡가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21세기 초반, 정확히 2..

아르보 페르트 CD 박스 세트

책도, 음반도, 인터넷이 등장하고 오프라인 상점들에서 사라져가니, 그 신비감도 사라졌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부재란 언제나 신비한 법이다. 예전엔 신문, 잡지 등을 통해서 제한적으로 새 책이나 새 음반을 확인했고, 일부는 그런 경로로도 확인할 수 없어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가 지인에게 소개받거나 우연히 들른 상점에서 발견하는 보물들이 있었다. 그런 보물들은 대체로 소리 소문 없이 서점이나 음반 가게에 깔리곤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떠돌 때쯤, 더 이상 살 수 없거나, 지방 도시 변두리나 시골 읍내 작은 가게를 뒤져야 겨우 나오는 진기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레코드판이 사라지고 시디가 주류가 되어갈 때쯤 상당히 좋은 음반들은 문 닫기 직전의 가게들에서 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검색하면 ..

은빛 숲 Silver Forest, 짐 모리슨 Jim Morrison

어지러진 자취방 구석에 놓인 낡은 턴테이블 위로 레코드판을 올릴 때, 그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뱉었다. 맥주를 한 잔 마셨고 짐 모리슨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 대신 문학을 했지만, 문학 대신 음악을 이야기했다. 다 지나간 일이다. 누군가는 왜 자신이 사랑하던 이들은 다 죽은 이들인가 반문하기도 했다.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었지만, 다 쓸쓸하고 외로웠다. 결국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그냥 애초부터 우리는 쓸쓸하거나 외롭다는 것을 인정하기엔 너무 젊었다. 청춘의 저주였던 셈이다. 점심 시간, 사무실에 혼자 앉아 짐 모리슨을 듣는다. 정규 앨범에 수록된 음악이 아니다. 짐 모리슨은 자주 시를 읽었다. 그리고 테잎에 녹음을 했다. 유튜브에 짐 모리슨이 읖조린 음..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모차르트: 차이데; 아리아, Ruhe Sanft - 펠리시티 롯/ 모차르트: 레퀴엠, K626 - 아카데미 합창단/ 라즐로 헬타이 집에 있는 아마데우스 OST LP를 듣지 않은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예전, 2장의 레코드판으로 된 이 앨범을 꺼내 D면 첫 번째로 나오는 이 아리아를 즐겨 들었다. 모차르트는 그냥 천재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르의 질투이 주 테마다. 그 위로 수놓아지는 음악들. 이 영화의 힘은 대단해서, 많은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살리에르가 독살했다거나, 혹은 살리에르의 모차르트에 대한 질투와 증오가 하늘을 찌를듯했다고 믿을 지도 모르겠다. 이 스토리는 애초에 소문으로만 떠돌던(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으나) 독살설을 푸쉬킨의 라는 짧은 극시로 시작해 피터 쉐퍼(영화 아마데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