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 449

인상주의와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인상주의 조각에 대해선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네, 피사로, 르느와르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회화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도 있지만, 낭만주의 조각에서 인상주의 조각으로의 이행은 눈에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로델의 조각은 언제나 나를 감동시킨다.  결과적으로 양식이란 동시대 미술의 흐름 안에서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종종 예술사에서는 '시대착오적 양식'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인상주의의 시대에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프랑스 아카데미 미술가들의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예술가적 고집이나 과거에 대한 향수나 고집도 어느 정도가 있지, 이들의 미술은 문화예술의 발전을 저해한 대표적인 사례다. 하긴 현대에도 그런 예술가들은 많으니까. 대신 이들은 근대 프랑스 미술계 헤게모니의 꼭대기에 있었으며,..

The Deer's Cry, Arvo Part.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를 말하라고 하면 단연코 "아르보 페르트"다. 그는 모더니즘 시대에 태어나 탈근대와 억압적 사회주의를 거치면서, 어찌된 일인지 중세적인 신성(神聖, Divine)에 빠져들었다. 그의 미니멀리즘은 감각적이면 본질적, 함축적이면서 우리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 어제 우연히 Arvo Part의 >를 들었다. 아! .... VOCES8 performs 'The Deer's Cry' by Arvo Part at St Vedast Church in London. Text Christ with me, Christ before me, Christ behind me, Christ in me, Christ beneath me, Christ above me, Christ on my right, C..

사랑, 사랑, 나의 계절 Love, love, my season

사랑, 사랑, 나의 계절 Love, love, my season. -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의 마지막 연. 이렇게 노래했던 그녀는 30살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죽는다. 남편인 테드 휴즈Ted Hughes의 바람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류의) 이야기 한 두 개를 알고 있다. 사랑, 사랑, 나의 계절인 셈이다.  그런데 그 계절이 사라지니까, 떠나야지. 그 계절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음을.시인 박인환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했고 기욤 아폴리네르는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고 했는데, 실비아 플라스는 사랑도 가고 나도 간다고 ... 요즘 너무 우울해져서 까닭없이 눈물이 나고 슬퍼지고 가라앉는다. 이유는 대강 알 듯하지만, 극복하는 게 쉽지 않구나.

이사야 벌린의 '자유'

집에 이사야 벌린의 책이 한 두 권 있는데, 완독하진 못했다. 이 학자의 명성은 이미 잘 알고 있다.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유대인인데, 영국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23세에 옥스퍼드 대학 교수가 되었으니.  최근 >을 읽다가 이사야 벌린이 '소극적(부정적) 자유'와 '적극적(긍정적) 자유'라는 개념을 읽었는데, 이를 조금 자세히 찾아보았다. 이 개념은 20세기 정치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며, 자유주의를 다시 부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사야 벌리는 보수에 가까운 학자인데, 그렇다고 꽉 막힌 보수는 아니다.  소극적(negative) 자유는 외부의 간섭이나 제약없이 개인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타인이나 국가 등 외부의 힘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 그래서 이를 '..

아틀라스 Atlas

아틀라스 Atlas감독: 브레드 페이튼 주연: 제니퍼 로페즈, 시무 리우 등 넷플릭스 2024년 방송  AI에 대한 SF영화다.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본 측면도 있고 재미있기도 하다. 요즘은 진지한 영화는 거의 보지 못한다. 극장이라면 모를까, 집에선 중간에 보다 그만 두기 때문에. 이 영화는 시간 죽이기로 최적의 영화다. 제니퍼 로페즈도 참 오랜만에 본다. 스토리가 대단하거나 놀랍지 않다. 뻔한 스토리이긴 하지만, 몇 개의 장치들은 흥미를 이끈다. 인간인 아틀라스 셰퍼드와 AI휴머노이드인 할렌과의 관계는 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중요한 이야기 흐름이 된다. 어쩌면 이걸 알기 위해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는 것일지도.  아래는 내가 하고 있는 일들과 관련된 몇 가지 질문들이다. 그리고..

리처드 세라

도심 광장에 있던 것만 보다가 넓은 풀밭 위에 놓인 세라의 작품을 보니, 색다르다. 예술작품은 주변 풍경을 변화시키고 낯설게 하여 다시 한 번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종종 무언가 뚫어지게 바라보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의 본질을 깨우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을 벗어나, 그것의 밖에서, 혹은 그것을 벗어나 바라볼 수 있었을 때, 그것을 알게 된다. 마치 헤어진 다음에서야 알게 되는 어떤 사랑처럼.    ... 하지만 누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질까. 지금 이 사랑스럽고 정적인 풍경을, 오늘의 저 별빛이 내일도 뜰 것임을, 지금 곁의 사랑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 존재할 것임을, 그래서 최선을 다해 현재에 집중할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무너져내릴 것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만약 우리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건 절망에 빠져 있기 때문이죠. 만약 우리 스스로 중요한 모순을 잊어버린다면, 또 끊임없이 이 모순 속에서 살지 않는다면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어요. 한낱 이야기꾼은 될 수 있을 겁니다. 모순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어요. 안이함에서 오는 역겨움만 있을 뿐이지요." - 마르그리트 뒤라스 (* 알랭 비르통들레의 > 중에서)

얀 가바렉Jan Garbarek, 오피시움Officium

클래식음악인지, 재즈음악인지 알 턱 없다. 하지만 들으면 와! 하고 놀라고 마는 음반이다.  서재 구석에 있던 시디들 속에서 어둠과 먼지를 먹고 있던 얀 가바렉과 힐리어드앙상블의 '오피시움'. 쓸쓸하던 마음을 위로해 주는구나. 9월 어느 일요일 오후의 바람이 창 틈에 머무는 순간, 놀이터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나쁘지 않은 대기 속으로 오래된 음악이 흐른다.  '중세의 가을'일까. 무너져가는 지구의 기후 속에서 몰락의 징후를 알아차린 몇 명만이 경고를 하고 있는 대도시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한가로움이란.. (* 오피시움에 실린 음악들은 모두 중세의 음악들이다. 중세음악을 바탕으로 편곡했다.)

골든베르그 변주곡, 손민수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와, 어떻게 이렇게 연주할 수 있는 거지, 라며 놀라게 된다. 우연히 보게 된 손민수 교수의 연주다. 상당히 좋다. 원래 자장가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진 않고, 그런 소문이 있을 정도로 조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 탓일까.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복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난 다음, 겨우 휴식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오후, 골든베르그 변주곡을 듣고 싶어 이 연주를 보게 되었다. 그 전엔 먼저 글렌 굴드를 듣긴 했지만. 임윤찬이 연주하면 한 번 뒤집어질 것같은데. 내년 카네기홀 연주 때 선보인다고 하니... !!  명동성당에서 이 연주 들었던 사람들은 참 좋았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메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메모.  - 미국은 왜 이스라엘에게 우호적인가. 1. 미국이 친이스라엘적인 이유에 대한 명확한 배경이 없다. 유대인들의 정치 로비가 한 몫할 것이라는 추정(반대로 아랍인들의 정치 로비가 없다는),2. 이스라엘 군대가 아랍 지역에서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미 정부가 친이스라엘 노선을 취한다는 의견. 3. 하지만 사람들은 왜 미국이 친이스라엘이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개인적으로 청교도적인 배경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1세기 전 영국인들과 벨푸어 외상.1.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대인이 국가를 세워한다는 천년왕국설이 있다. 17세기 중반 영국 청교도혁명 이후 유행처럼 번지는데, 이게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영국 지배층들 대부분 이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