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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책들의 우주 +675



고전학 공부의 기초 : 서구 문명의 뿌리를 이해하는 법 (A Student's Guide to Classics) 

브루스 손턴Bruce Thornton(지음), 이재만(옮김), 유유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선 서양 고전 -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학, 역사, 언어, 철학 등 - 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동양학을 하더라도 이젠 기본적으로 서양 고전에 대한 이해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내 개인적 소망일 지도 모르겠구나. 고대 그리스 로마는 너무 멀리 있는 시대이기도 하거니와, 인문학 전공자들 가운데 서양 고전에 대한 제대로, 아니 기본적인 이해도 가지지 못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은 서양 고전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대학 강의를 하거나 인문학 서적을 출간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호메로스나 소포클레스, 혹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읽지 않아도 된다. 잘 나온 요약본들이 많이 있기도 하고, 이를 제대로 가르쳐줄 인문학 선생도 드물다. 그러니 이제 인문학은 계절마다 돌아오는 유행같은 것이 되어서, 너도나도 인문학을 이야기하지만, 제대로 된 인문학을 하는 이는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브루스 손턴은 고전학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언어, 문학, 역사, 문명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 책에선 서사시Epic, 시Poetry, 희곡Drama, 산문픽션Prose Fiction,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 연설술과 수사학Oratory and Rhetoric, 서간Letters, 전기Biography, 역사History, 고전의 유산The Classical Heritage 등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각 부문마다 기본적인 설명과 주요 작품들을 거론한다. 책의 원제가 A Student's Guide to Classics이므로, 고전학을 공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읽어야하는 문헌과 이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인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들에겐 서양 고전학에 대한 충분한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책에 실린 서적 목록 - 한글로 번역된 고전들 - 은 꽤 유용해 보인다.  


기억남는 몇 개의 문장을 옮긴다. 대부분 예전 - 거의 이십여년이 지난 듯한 - 에 공부한 것들인데, 이젠 쓸 일이 없는 탓에 '아, 이런 것이었지'하고 되새기기도 했다. 


두 사람 -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 이 서로 비슷한 성격과 덕성, 가치관을 바탕으로 결혼했다는 사실은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회의 질서를 안정화하는 데 제도가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입니다. (25쪽) 


<<시학>> -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 의 다른 중요한 개념으로는 '하마르티아'hamartia가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의 운명을 '반전'peripeteia시키는 비극적 결함 또는 과오를 의미합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언명합니다. 역사가 실제로 일어난 것, 개별적인 것을 다루는 데 반해 시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할 수 있는 것, 보편적인 것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85쪽) 


호라티우스의 <<시론 Ars Poetica>> : "시는 하나의 통일된 전체여야 한다.", "시의 언어는 주제에 적절해야 한다.", "시의 소재에 알맞은 문체를 구사해야 한다." 

'자줏빛 옷감'purpureus pannus은 불필요한 미사 어구를 의미하고, '사건의 중심으로'in medias res는 맨 처음이 아니라 '중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기법을, '호메로스조차 가끔 존다'quandoque bonus dormitat Homerus는 대가마저도 때때로 실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87쪽) 


고대인은 역사란 위대한 인물들이 행동한 결과이고, 그 행동에는 개인의 성격이 반영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전기는 중요한 역사 장르였습니다. 묘사의 정확성을 떠나 고대 전기 작가들은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삶을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109쪽) 


기원전 6세기 후반에 등장한 그리스 최초의 역사가들은 '산문사가'logographer라고 알려졌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헤카타이오스(기원전 500년 경)는 계보, 신화, 지리에 관해 썼으나 오늘날에는 소수의 단편만이 전해집니다. (113쪽)


리비우스(기원전 59년 ~ 기원후 17년) : "역사 공부는 병든 마음에 최고의 명약이다."  (118쪽) 


** 

아래 링크를 통해 이 책의 원서 pdf 파일을 확인할 수 있다. 

http://www.sfu.ca/classics/pdf/classics.pdf 


브루스 손턴Bruce Thornton에 대해서는 https://en.wikipedia.org/wiki/Bruce_Thornton




고전학 공부의 기초 - 10점
브루스 손턴 지음, 이재만 옮김/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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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발견 The Hidden Pleasures Of Life 

시어도어 젤딘 Theodore Zeldin (지음), 문희경(옮김), 어크로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이다. 시어도어 젤딘이라는 학자를 알지 못했으며, 이 정도로 수준 높은 인문학 서적일 지 예상하지 못했다. 시어도어 젤딘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위해 다양한 인물들과 저서들, 그리고 관련된 인용과 이야기들로 책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으며, 고대와 현대, 중세를 오갔다. 지역과 세대를 넘나들며 독자들로 하여금 사고의 틀을 깨고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해주었다. 특히 '1866년 벵골에서 태어난 하이마바티 센Haimabati Sen의 기록'은 무척 흥미로웠으며, 뿐만 아니라 에이젠슈타인, 메버릭, 심복, 린네 등 각각의 사례들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래서 시어도어 젤딘을 찾아보았다. 



Theodore Zeldin is an Oxford Scholar and thinker whose books have searched for answers to three questions. Where can a person look to find more inspiring ways for spending each day and each year? What ambitions remain unexplored, beyond happiness, prosperity, faith, love, technology or therapy? What role could there be for individuals with independent minds, or who feel isolated or different, or misfits? Each of Zeldin's books illuminates from a different angle what people can do today that they could not in previous centuries.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Theodore_Zeldin

시어도어 젤딘은 옥스포드 학자이며 사상가로, 그의 책들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매일 그리고 매년, 보다 강한 영감 넘치는 방식으로 보내길 원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그 방식을 찾아야 할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채, 행복, 번역, 신념, 사랑, 기술 혹은 치유 너머 남아있는 야망들은 무얼까? 자립심이 가진 개인에게는 어떤 역할이 가능할까? 또는 고립되었거나 다르다거나, 또는 불적응이라고 느끼게 되는 이들은 누구일까? 젤딘의 책들 각각은 사람들이 이전 시기에는 가능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가능한 어떤 것들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인문학을 하다보면, 단어의 역사를 따져묻곤 한다. 라틴어 어원을 찾기도 하고 시대마다 단어의 형태나 의미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피면서 현재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문에는 우리 나라 말로는 '사업'이라고 번역되는 Business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비즈니스Business'란 원래 불안, 고충, 참견하기 좋아함, 어려움을 뜻하는 말이었다. - 9쪽 


어쩌다가 비즈니스라는 단어가 요즘과 같은 의미가 되었을까에 대해선 젤딘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다만 젤딘은 비즈니스가 다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겠다고 말할 뿐. 어쩌면 이 책 전체가 그 가능성이 아닐까. 온통 돈 버는 이야기들로만 채워진 지금/여기에 대해, 그는 그것을 넘어 인생을 새로 정의하고 발견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 말이다. 원래 불안하고 힘들고 어려운 어떤 것 - 어쩌면 '인생'같은 것 - 에 대해 참견하기 좋아하는 Business 같은 가능성. 


한때는 상업적인 회사가 불신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주기적으로 발생하던 금융위기가 한 차례 지나간 후 한 세기 내내(1720년부터 1825년까지) 영국에서는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형사 범죄였을 만큼 회사에 대한 불신이 컸지만 오히려 이 기간에 크게 번창했다. 농업과 공업과 서비스업의 사회가 자연 질서의 일부이고, 자원을 공유하지 않으려는 목적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학교에서는 오늘날의 대기업들은 역사의 우연한 사건으로 발생했고 미국이 건설하려던 자유의 나리에도 한때는 두 가지 기업이 존재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 248쪽 ~ 249쪽 


실은 우리가 경험하는 바 이런 기업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기업이 지배하는 듯이 여기지는 21세기 초반에 젤딘은 화가 벤저민 헤이든(Benjamin Haydon, 1789 ~ 1846)과 그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벤저민 헤이든의 삶에는 상반된 두 문명이 존재했다. 빚은 우정이나 연민이나 격려의 징표일 수 있다. 혹은 순전히 상업적인 의미일 수도 있다. 헤이든의 집주인은 밀린 집세가 100파운드, 현재 가치로 약 1만 파운드에 달했을 때도 그를 내쫓지 않았다. "선생은 형편이 되면 집세를 냈소. 다음에 돈이 생길 때 집세를 내면 되지 않겠소?" 헤이든이 작업 중이던 대형 그림을 완성하려면 2년 더 걸릴 거라고 말하자 집주인은 2년 더 기다려주겠다고 답했다. 집 근처의 존 오그로츠라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밥값을 이튿날 갚아도 되냐고 묻자 식장 주인은 헤이든을 내실로 데리고 들어가서는 장기간 외상을 주겠다고 말했다. - 107쪽 


헤이든은 두 문명, 곧 이웃의 정이 살아 있는 문명과 돈이 권력을 휘두르는 현실에 만족하는 문명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던 나라에서 살았다. 단순히 도시화와 산업화와 인구 과잉의 압력 속에서 이웃의 정이 무관심으로 변하거나 사회가 상업화되면서 사적인 연민을 바탕으로 한 대출과 상부상조가 줄어든 정도가 아니었다. 헤이든은 결국 정서적 유대가 없는 채권자들에게 빚을 갚지 않아 일곱 번 체포되고 네 번 감방에 갇히고 집달관이 그의 재산을 전부 청산하고 그림붓까지 팔아서 빚을 갚는 지경에 이르자 세상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무언가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113쪽 ~ 114쪽 


그리고 젤딘은 '이런 변화를 추동한 것은 바로 평등이라는 새로운 이상이었다'고 말한다. '빚을 지면 남에게 소유당한다'고 여기며 본격적인 개인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는 동일 선상에 있는 것이며, 같은 방향을 향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자유'를 말하지 않고 '평등'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꽤 흥미로웠다. 보통은 '자유'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건 조금 더 생각해볼 지점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서로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가장 우울한 자살은 고마워하는 마음의 자살이다. 시기와 탐욕과 오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만성질환이지만 그나마 고마워하는마음이 있었기에 억제되었다. 고마워하는 마음은 한때 사회를 융화시키거나 적어도 혐오감을 줄여주는 끈이었다. 이를테면 신, 조상, 부모, 스승, 이웃, 자연에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평등을 염원할수록 권리가 기반을 이루고, 상업화될수록 고마워하는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줄어든다. 고마워하는 마음은 독립에 대한 모독이자 자존심을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기번은 "고마워하는 마음은 비싸다"라고 말했다. 디드로는 "고마워하는 마음은 짐이다." 스탈린은 "고마워하는 마음은 개들이 앓는 병이다"라고 말했다. - 117쪽 


하지만 우리는 고마워하는 마음이 사라진 이 세상을 살아야한다. 고마워하는 마음이 다시 되살아나길 희망하면서,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더 깊은 고민을 하며, 방황해야 할 것이다.  


퇴로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대응할 때 삶의 의미가 생긴다. - 30쪽 


퇴로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떤 것일까. 이 책은 퇴로가 보이지 않을 법만한 질문들과 고민들을 모으고, 그런 질문과 고민을 했을 법한 과거의 인물을 끄집어내어 현재의 우리 옆에 앉혀놓는다. 가령, 아인슈타인처럼. 


"나는 만물의 조화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지, 인류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신은 믿지 않습니다." 

"지식 분야의 모든 영역이 전문화되면서 지식노동자와 비전문가 사이의 간극이 더욱 커질 것"

"수학자들이 상대성 이론에 난입한 바람에 나도 이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수선한 책상이 어수선한 마음의 상징이라면, 빈 책상은 무엇을 상징하겠는가?"

"권위를 경멸하는 내 죄를 단죄하기 위해 운명의 여신은 나를 권위자로 만들었다."

"세상에 알려지고도 지독히 외로운 것은 이상한 일"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다를 나를 좋아하는 건 왜일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분은 그저 오래된 착각일 뿐"

- 아인슈타인의 말, 168쪽 ~ 169쪽, 171쪽


젤딘도 어차피 미래를 알 수 없고 불확실하며(아인슈타인을 위시한 현대물리학자들을 인용하면서), 도리어 불확실성이 축복임을 강조한다. 아예 푸엥카레는 "모든 확실한 것은 거짓"이라고 믿었다고.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은 가장 유명한 덴마크인 중 한 사람으로 그의 작품은 152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 210쪽


덴마크 사람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소 낯설지만, 역사적으로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냈던 여러 인물들 중의 한 명일 뿐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불화를 찾는다. (...) 나 역시 세상의 불화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는 늘 불안에 시달렸다. 역마차에서는 다른 승객이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망상에 사로잡혔고, 화재가 나면 밖으로 뛰어내리기 위해 항상 밧줄을 가지고 다닐 만큼 죽음을 두려워했으며, 산 채로 매장될까 봐 침대 머리맡에 "그냥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라고 적힌 쪽지를 놓아두었다. - 211쪽 


덴마크 안에서 불안을 느꼈으며, 그 곳을 싫어했던 안데르센. 그래서 덴마크의 복지 수준이 높은 것일까라고 젤딘은 다시 물으며, 복지 수준이 높다고 해서 덴마크에 사는 것을 모두 행복해 하는 것은 아니라고 젤딘은 지적한다. 


젤딘은 자주 예상하지 못한, 다소 반어적인 사례를 들며, 독자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다시 묻도록 요청한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를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고 꼼꼼히 읽게 된다. 책을 읽는 시간은 길어지고 노트는 많아진다. 결국엔 한 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하지만 남들처럼 나도 대학 교육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해 전세계로 퍼져나간 거대한 무지의 구름을 예상하지 못했다. 박사학위 논문과 교수 논문의 쓰나미가 지식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 정보가 늘어날수록 무지도 커진다. - 410쪽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명성에 관해 이렇게 섰다. "물리학을 설명하기 위한 수학공식도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의 경험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해시키기 위해 시도하는 언어의 그림일 뿐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여기에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날 우리가 과학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확실성의 정도가 천차만별인 진술의 덩어리이다. (...) 이런 무지와 의심을 인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학의 제 1원칙은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야말로 가장 속이기 쉽기 때문이다. (...) 나는 항상 모르고 산다." - 416쪽 


새로운 무지의 시대에 들어섰다. 거참,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진 시대이지만, 어쩌면 가장 무지한 시대에 들어선 것일지도 모른다. 예전엔 나이가 들면 더 이상 배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된다. 그래서 현대의 노인은 젊은이에게 무시당한다. 그들이 젊었을 때 배웠고 그들을 영광스럽게 해주던 정보나 기술은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시대에 뒤쳐진 사람들이 되었고 변해버린 이 세상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졌던 경험은 지금/여기에선 아무 쓸모도 없다. 심지어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서로 만나고 연애하는 요즘 젊은이들을 위해 사랑에 대한 상담이나 조언도 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과연 이건 옳은 일일까. 그래서 젤딘은 이렇게 묻는다. "알아야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지만 결국 정보가 늘어날수록 우리의 무지는 넓어지고 깊어진다. 


린네는 해방자로 불렸다. 미터법이 사람들을 지역마다 제각각인 중량과 치수의 혼동에서 해방시켜 주었듯이 린네의 분류체계는 생명의 다양한 양식 사이의 관계에 관한 합의를 끌어냈다. 하지만 단순화를 추구한 그의 열정은 독립적인 사고를 권장하는 해방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간단하고 확고한 특징을 기준으로 생명체에 표식을 붙일 수 있을 때만 편안함을 느꼈다. - 255쪽 


여자와 남자 이야기를 하기 위해 린네를 떠올리는 건 참 흥미로운 접근이었다. 젤딘은 사람들은 대체로 새로운 개념을 반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린네처럼. 아마 우리 대부분 그럴 것이다. 모호한 것은 싫고 확실한 것을 선호한다. 푸엥카레가 '확실한 건 거짓'이라고 말했다 하더라도, 소수의 의견일 뿐이다. "교육과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어도 남자와 여자는 엄청난 벽을 사이에 두고 의사소통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마음 속의 린네, 결국 편견이거나 오류로 드러나게 될 어떤 기준이나 확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것이다. 리더십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베니스가 평생 리더십에 집착하고 리더십을 진지하게 관찰한 끝에 도달한 결론은, 리더가 되는 것은 결국 품위 있는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리더에게 '비전'이 없다면 제대로 된 리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비전'이 없다면 제대로 된 리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유일한 비전은 "너 자신이 되어라"였다. - 328쪽 


워렌 베니스는 현대경영학, 특히 조직론/리더십 분야에 있어서 대가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제시한 것은 "너 자신이 되어라". 다시 말해 우리는 끊임없이 리더가 되길 바라는 어떤 사회에 속해 있다. 학교든 기업이든, 우리가 속한 조직에서 리더가 되어야만 된다는 어떤 강박 같은 것이 존재하는. 젤딘은 이렇게 묻는다. "리더가 되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무엇인가" 


1974년부터 1981년까지 세계 챔피언이던 크리스 에버트Chris Evert는 경기에서 어떻게든 이겨서 상대를 물리치는 것이 목표였다. 에버트의 경쟁자였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Martina Navratilova는 조금 달랐다. 이민자이자 획일주의와는 거리가 먼 동성애자 해방운동의 영웅으로서 상대 선수들과 친구가 되고 관중에게 사랑받으려 하고 남다른 관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국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싶어했다. - 331쪽 


세상은 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도리어 우울해하고 절망에 휩싸이며 추상적인 어떤 것을 묻는 질문 앞에서 답답함만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삶을 증오하고 세상을 미워할 각오를 다진다. 이 책은 그런 우리들을 위한 사소한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을 지도. 


젤딘은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여러 책들과 인용로 우리를 설득시킨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새삼스럽게, 또는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읽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아마 역사 전공자들이 가지는 탁월함이 아닐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마 읽는 시간이 상당히 걸리겠지만, 충분히 보람은 있을 것이다. 



인생의 발견 - 10점
시어도어 젤딘 지음, 문희경 옮김/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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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시집을 꺼내 읽는다. 어느 토요일 오전. 가족 몰래 나온 도서관. 가끔 가서 책을 빌리는 동작도서관 3층. 어색한 시집 읽기다. 한 때 시인을 꿈꾸기도 했지. 그러게. 요즘 시들은 어떤가. 문학상 수상 시집을 꺼내 읽는다. 한 시가 눈에 꽂힌다. 이영주다. 예전에도 이 도서관에서 잡지에 실린 시를 읽고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지. 하지만 그녀의 시집을 사진 않았어. 이번엔 사야 하나. 길게 마음 속으로 고민을 한다. 그리고 시를 노트에 옮겨 적는다. 몇 개의 계절이 지난다. 지났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고, 나는 출근을 했다. 그리고 밤이 왔다. 시를 블로그에 옮겨적는다. 그러게 이번엔 이영주의 시집을 사야 하나. 이번엔 짧게 고민해야지. 


** 


낭만적인 자리 


그는 소파에 앉아 있다. 길고 아름다운 다리를 접고 있다. 나는 가만히 본다. 나는 서있고, 이곳은 지하인가.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그는 지하가 되었다. 어두우면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둠이 동그란 형태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것을 깨려면 서야 한다. 나는 귀퉁이에 서있다. 형태를 만져볼 수 있을까. 나는 공기 중에 서 있다. 동그란 귓속에서 돌이 빠져나온다. 나는 어지럽게 서 있다. 지하를 지탱하는 힘. 그는 아름다운 자신의 다리를 자꾸만 부순다. 앉아서 일어날 수가 없잖아. 다리에서 돌이 빠져나온다. 우리는 십 년만에 만났지. 그는 걷다가 돌아왔다. 걸어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귀퉁이에 내가 앉아 있었다. 이곳은 얼마나 걸어야 만날 수 있는 거지. 그의 다리에서 생생한 안개가 피어오른다. 그가 뿌린 흙 위에 나는 서 있다. 이곳은 익숙하고 정겨운 냄새가 난다. 잠깐 동안 그는 앉아 있었는데, 동그랗게 어두워지는 자리였다. 내가 어지러워 돌처럼 흘러나가는 자리. 소파에 앉아서 그는 흩어진 잔해들을 본다. 아무리 오래 걸어도 집이라는 집은 없다. 고향이 없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바치지. 


- 이영주, <<간발 - 제63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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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의 미래 The Content Trap 

바라트 아난드(지음), 김인수(옮김), 리더스북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인터넷이 새로운 라디오라고 생각하니까요" - 닐 영Neil Young 




읽은 지 벌써 반 년은 흘렀고, 출퇴근하는 지하철이나 일상 속에서 가끔, 띄엄띄엄 생기던 토막 시간에 읽은 탓에 정리해놓은 노트도 없다. 그러니 리뷰 쓰기도 살짝 부담스럽다. 


돌이켜보건대 책을 다 읽었을 때의 느낌은, 짧게 쓸 수 있는 책을 왜 이리 길게 적었을까 였다. 살짝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2016년 10월에 출간된 책이 2017년말경에 번역되었으며(1년이 지난 시점), 내가 사서 읽은 건 2018년 중반이었던 탓에(거의 2년이 지난), 책의 상당 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 꽤 있어, 책 읽는 도중 살짝 산만해지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연결관계Connection'이다. 아예 대놓고 '콘텐츠의 힘을 믿지 말고 연결의 힘을 믿어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너무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생태계Ecosystem이나 네트워크Network, 심지어 플랫폼Platform도 이러한 '연결성'에 주목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이 없다면 연결의 힘이 제대로 작동할까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저자는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만으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음을 강조하며 그 너머 연결의 힘을 깨닫고 이를 기반으로 콘텐츠 비즈니스를 전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네트워크 효과의 핵심은 사용자 연결이다. 기술 기업들이 전통적 기업들과 다른 행태를 보이는 듯한 이유도, '공짜' 모델, 빠른 성장, 신속한 시제품화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모두 네트워크 효과 때문이다. - 68쪽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바라트 아난드는 "우리는 네트워크 외부성으로 기회를 찾는다"라는 빌 게이츠의 말을 인용하며 콘텐츠 비즈니스에 있어서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뛰어난 제품이었던 애플의 맥Mac은 시장에서 뒤쳐졌고 MS의 Dos나 Windows는 시장의 승자가 되고, 위키피디아가 브리태니커를 넘어서듯, 콘텐츠 자체가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르웨이의 '십스테드'(언론사) 사례를 이야기하며 뉴스마저도 사용자 연결을 적극 수용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음을.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디지털 기술이 힘겨운 상대로 느껴지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다. 디지털 제품에 의한 전통 제품의 자기잠식, 신기술 수용을 거부하는 기존 관리자들의 안이함, 디지털 세상에서 콘텐츠 수익 창출의 악화. 그러나 이런 요인들은 힘차게 디지털 여정을 나서려는 기업들에게도, 이전부터 종이책을 출판하던 출판사에게도 그다지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출판사들이 속앓이를 하는 진짜 이유는 고정비 때문이다. - 174쪽 


할인소매업은 기본적으로 고정비 사업이다. 월마트 역시 소요되는 총 비용 중 대략 3분의 2가 매출원가(판매한 상품의 구입원가), 즉 제품 공급업자들에게 나가는 변동비variable costs다. 그리고 나머지가 상점을 짓거나 임대하는 데 필요한 자본적 지출capital expenditure과 창고, 트럭, IT 시스템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 등으로 지출되는 고정비다. 흔히들 월마트가 매출원가를 낮춤으로써, 즉 공급업자들에게 단 돈 몇 푼이라도 덜 지불해서 이익을 남기는 줄 알고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매출원가를 통해 성공을 이어가긴 힘들다. 월마트가 거둔 성공의 비밀은 매우 효율적인 방법으로 고정비를 관리하는 능력에 있다. - 179쪽 


고정비 문제는 콘텐츠 비즈니스라는 이 책의 전체 주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항목이긴 하지만, 디지털의 도전 앞에서 실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디지털 환경 변화가 아니라 '고정비'라는 사실에 대한 강조는, 기업, 또는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비즈니스 전략이나 실행 방향이 달라짐을 알려준다. 월마트는 매출원가 대신 고정비 관리를 비즈니스 성공의 핵심 요소로 파악한 것이다. 어차피 매출원가를 통해 수익을 거두기는 어려운 환경으로 시장이 변했으므로.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싸게 물건을 만들어서 비싸게 팔면 된다고 여긴다. 최근 자영업이 최저임금 때문에 어렵다는 신문기사들도 이러한 잘못된 인식에 호소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문제라면 인력을 줄이면 된다. 하지만 가게를 옮기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인건비를 고정비로 볼 것인가 변동비로 볼 것인가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이런 측면에서 콘텐츠 비즈니스도 디지털 환경에 대한 대응 이전에 사업 자체에 대한 비판적 조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마존 웹서비스는 아마존이 자사의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할 수 밖에 없는 고정비용 기반으로 새로운 비지니스를 만들어낸 성공사례다. 


이런 획기적인 성공은 클라우드컴퓨팅이 아마존의 핵심 사업이어서가 아니다. 서버 구축에 들어간 고정비를 지렛대로 활용해 고객에게 어느 누구보다 더 빠르고 더 나은 온라인 경험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 181쪽 


음악 산업은 디지털 환경에 대한 부침이 유독 심했던 곳이다. 특히 Mp3 공유(넵스터나 소리바다)는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디지털 기업들을 천당과 지옥을 오가다가 끝을 맞이하기도 했다. 


CD판매가 감소한 건 사실이다. 무려 80퍼센트 이상 줄었다. 스튜디오의 수익도 감소했다. 급격하게 감소한 곳도 있었다. 그동안 업계의 다른 부분에서 무언가 색다른 상황이 나타났다. CD 수요가 감소하는 만큼 라이브 콘서트의 입장권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콘서트 수익이 증가한 것이다. (...) 그런데 1990년대 말 파일 공유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콘서트 입장권 가격도 급상승했다. - 228쪽 


하지만 아난드는 지적한다. 디지털 음악 파일 공유가 음악 산업을 위기에 몰아넣지 않았다고. 도리어 음악 산업이 디지털 환경에 맞추어 변화한 것인데, 기존 시장 참여자들이 음악 파일 공유에만 신경 쓰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보완재complements는 (...) 사용자가 두 가지 제품을 함께 사용하는데서 얻는 가치가 두 제품을 따로따로 사용할 때 얻는 각각의 가치를 더한 것보다 크면 두 제품은 보완재다. 달리 말하자면 2개의 보완재를 함께 팔면 고객은 두 제품을 따로따로 구입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도 구입할 것이라는 뜻이다. - 233쪽 


먼저 CD와 콘서트가 보완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둘 중 하나의 가격이 하락할수록(따라서 소비량이 늘어난다) 나머지 제품의 수요는 더욱 증가한다. 오랫동안 콘서트는 값싼 보완재 역할을 하며 CD 판매를 밀어올렸다. 하지만 파일 공유가 늘어나고 CD 가격이 떨어지자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러다가 그들이 라이브 콘서트로 향하게 된 것이다. - 234쪽


음악 산업의 사망 선고는 너무 일렀다. 죽기는커녕 오히려 지난 10년간 음악 산업은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창출해냈다. 단지 가치의 재분배가 일어났을 뿐이다. 음반사에서 음악가로, 소매 판매점에서 기술 제조사로, CD에서 라이브 콘서트로 가치가 옮겨갔다. - 236쪽 



책에 나온 보완재 도표를 옮긴다. 아마 콘텐츠 비즈니스 뿐만 아니라 산업 전 분야에 걸쳐서 다양한 보완재가 있을 것이다. 다만 콘텐츠 비즈니스에 있어서 보완재는 사업 성공의 KSF(Key Success Factor)일 지도. 더 나아가 슈퍼스타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수퍼스타의 경제학. (...) 제품 간 '불완전한 대체imperfect substitution'(다른 가수 3명의 앨범보다는 좋아하는 가수 한 명의 앨범을 갖는 것이 좋다)의 특성과 한 제품의 '결합 소비joint consumption'(한 명의 예술가가 수천 명 또는 수백만 명의 청취자에게 동시에 다가갈 수 있다)의 특성이다. (...) 이 두 가지를 합치면 슈퍼스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 302쪽 



하나 주목할 것은 핵심역량에 기반한 상호 보완성이다. 핵심 역량이라는 단어를 이미 알고 있었고 여러 책들을 통해 접했지만, 나도 오해하고 있었음을 고백해야 겠다. 솔직히 핵심 역량을 제품이나 서비스의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있었다. 즉 핵심역량을 완결된 형태, 즉 Product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다가 1991년 C.K. 프라할라드와 게리 하멜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기업들이 제품의 관점이 아닌 과정 또는 수행 능력의 측면에서 연관성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혼다Honda가 자동차에서 잔디 깎는 기계로 영역을 넓혀간 것은 제품의 연관성 때문이 아닌, 엔진과 동력 전달 장치에 대한 전문성 때문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한 확장이었다. 이렇게 다각화를 향한 '핵심 역량core competence' 논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고 많은 기업들이 이 논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 366쪽 


상호 보완을 통한 지속적인 성공 (...) "개별적인 특성과 그 개별적 특성들이 일본의 경제 성공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알려면, 그 시스템을 품은 환경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환경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거나 시스템의 상호 보완적인 다른 요소들을 분리한 채 개별적인 특성들을 하나하나씩 보아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간단하지만 강력한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조직이 하는 선택들은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 그 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에서든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교차 기능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밀그롬과 로버츠는 이 개념을 그들의 저서 <<경제, 조직 그리고 관리Economics, Organization and Management>>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 402쪽 ~ 403쪽 


이는 조직 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상호보완성의 개념은 이후 마이클 포터의 '전략Strategy' 개념에도 반영되었으며, 포터의 제자 얀 리브킨Jan Rivkein은 "전략을 구현하는 결정들이 많고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 선택의 효율적인 조합을 찾아내는 기업은 세 가지 방향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라고 했다. 


첫째, 연결 관계를 맺은 선택들은 다른 기업들이 성공적인 전략을 찾아내기 더욱 힘들게 만든다. (...) 둘째, 성공을 거둔 회사가 내린 결정들을 하나하나씩 흉내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셋째, 서로 연결된 경쟁사의 결정들을 통째로 모방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복잡함에 혼란스러워져 이도저도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406쪽 


이런 이유로 우리가 흔히 하는 벤치마킹 분석Benchmarking Analysis는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아난드는 사용자(고객)의 맥락Context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시작해 차별화와 경쟁우위를 만들어야 된다고. 


다소 두서 없이 옮기면서 책 소개를 해보았다. 책이 상당히 두껍긴 하지만,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하지만, 등장하는 기업들은 많지 않다. 어쩌면 콘텐츠 비즈니스로 성공하는 기업이 드물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만큼 막대한 투자가 수반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굳이 읽어야 되는 필독서 목록에 이 책이 올라가야 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한다. 막상 따지고 보면, 나쁜 책은 아니지만, 책 두께에 비한다면 실제 기업에 종사하는 우리들에게 실천적인 조언을 준다고 보기엔 살짝 아쉬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높은 평점을 주고 있기에 낮은 평점을 매긴다. <<콘텐츠의 미래>>라는 역서 제목이 나에게 주었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콘텐츠의 미래 - 6점
바라트 아난드 지음, 김인수 옮김/리더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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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폴 칼라니티(지음), 이종인(옮김), 흐름출판 





You that seek what life is in death,

Now find it air that once was breath.

New names unknown, old names gone:

Till time end bodies, but souls none.

Reader! then make time, while you be,

But steps to your eternity

- Baron Brooke Fulke Greville, "Caelica 83"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놓으라. 

- 브루크 풀크 그레빌 남작, <카엘리카 소네트 83번> 




책 읽으며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던 의사에게 닥친 죽음의 선고는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도.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시한부 암 선고를 받았던 때도 떠올랐다. 그것이 어머니와 우리 가족에게 긴 터널같은 것임을 그 땐 미처 몰랐다. 아무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고 암과의 싸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이라 여겼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의료시스템과 의사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 책은 신경외과의사였던 폴 칼라니티가 죽어가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의사와 죽음에 대해 쓴 책이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자서전쯤으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그러기엔  폴 칼라니티는 자신의 인생보다는 그 인생을 가능하게 했던 자신의 생각, 태도, 그리고 가족과 우정, 그가 경험했던 의사들에 대해 진실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을 때쯤 왜 이런 사람은 이렇게 일찍 죽는 것일까 하고 반문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로 감동적이며 울림이 큰 책이다.  



"자, 클레어." 외과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보이는 것처럼 정말 안 좋은가요? 아이의 어머니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암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는 건, 그리고 물론 당신도 잘 알겠지만, 당신의 삶이 이제 막, 아니, 이미 변했다는 겁니다. 앞으로 기나긴 싸움이 될 거예요. 남편 분도 잘 들으세요. 서로를 위해 자기 자리를 잘 지켜줘야겠지만 필요할 대는 꼭 충분히 쉬어야 합니다. 이런 큰 병을 만나면 가족은 하나로 똘똘 뭉치거나 분열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죠.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서로를 위해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해요. 아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침대 곁에서 밤을 세우거나 하루종일 병원에 있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아시겠죠?" 

- 93쪽 ~ 94쪽 



칼라니티가 신경외과를 전공으로 선택하기 직전 본 풍경. 그리고 그는 신경외과를 선택한다.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리처드 로티(우리가 알고 있는 그 로티Rorty!) 교수에게서 영문학 석사를 마친 후, 그는 의과대학원으로 가 의사가 된다. 



진지한 생물학적 철학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학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도덕적인 명상은 도덕적인 행동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다. 

- 66쪽 



의학을 배우고 의사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지만,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제프 말이야. 자살했대."

"뭐?"

제프는 중서부의 한 병원에서 외과 특별 연구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우리 둘 다 정신없이 바빠서 연락을 하지 못했다. 나는 제프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떠올리려고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뭔가 복잡한 문제가 있었나봐. 게다가 담당 환자도 사망했고. 어젯밤에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렸대. 그 이상은 나도 몰라."

- 141쪽 



결국 삶과 죽음의 문제이며, 의사들은 그것에 너무 깊숙하게 개입해 있는 존재였다. 가끔 의사들을 볼 때, 환자를 기계적으로 대하는 건 아닐까 의심을 품기도 하지만, 칼라니티는 그렇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속수무책으로 살아간다. 죽음은 당신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제프와 나는 몇 년 동안 죽음에 능동적으로 관여하고, 마치 천사와 씨름한 야고보처럼 죽음과 씨름하는 훈련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의미와 대면하려 했다. 우리는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을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멍에를 졌다. 우리 환자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 손에 달렸을지 몰라도,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다. 설혹 당신이 완벽하더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에 대처하는 비법은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 142쪽 ~ 143쪽 



그런 칼라니티가 암 선고를 받고 죽어가며, 자신의 담당 의사와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죽음을 준비해 나가는 모습은 놀라움을 전해준다. 결국 이 책은 어느 지점에서 멈추고 그의 아내 루시 칼라니티의 에필로그로 이어진다. 



2015년 3월 9일 월요일, 폴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원 침대에서 숨을 거두었다. 8개월 전 우리 딸 케이디가 태어난 분만 병동에서 2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누군가는 케이디가 태어나고 폴이 숨을 거둔 그 사이에 동네 바비큐 식당에서 우리 식구를 보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검은 머리에 긴 속눈썹을 가진 아기가 유모차에 탄 채 졸고 있는 동안, 맥주 한 잔을 나눠 마시고 갈비를 뜯으며 서로에게 미소 짓던 우리 부부를 본 사람은 폴이 앞으로 살 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또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 237쪽 ~ 238쪽 


 



강력하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은 늘 그렇듯 믿을 만하다. 



칼라니티는 이 책의 서시로 영국 시인 그레빌 남작(1554 ~ 1628)의 시 <카엘리카>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레빌 남자이라고 하면 곤고한 인간의 생존 조건을 노래한 시인으로 유명하다. 남작은 인간이 하나의 법률(정신) 아래 태어났으나, 다른 법률(육체)에 매인 존재이며, 허영 속에서 태어났으나 허영을 금지당한 존재이며, 병든 상태로 창조되었으나 건강하게 살아갈 것을 명령받은 모순적 존재라고 설파했다. 이 말처럼 폴 칼라니티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 따로 있을까? 뇌의 기능을 그처럼 진지하게 연구했으나, 결국에는 뇌가 암에 의해 파괴되었고, 인생의 의미를 그토록 알아내려 했으나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뒤에 남겨놓고 혼자 떠나가야 했으며,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죽음에 붙들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 280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그레빌 남작의 영문시집을 사서 읽어볼까 한다. 쉽진 않겠지만. 





숨결이 바람 될 때 - 10점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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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관 Novum Organum 

프랜시스 베이컨(지음), 진석용(옮김), 한길사 



근대(Modern)를 여는 대표적인 고전이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평이했다. 도리어 아리스토텔레스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베이컨의 문장들이 더 흥미로웠다. 지금 해석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당시(1620)에 받아들여졌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르든가, 아니면 스콜라철학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본 아리스토텔레스였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은 전체적으로 연역법적 태도를 공격하고 귀납법적 태도를 옹호한다. 어쩌면 전체주의 시대를 겪었던 칼 포퍼가 시대를 거듭하며 다른 모습을 재현되는 플라톤주의를 공격하듯(<<열린 사회와 그 적들>>), 베이컨은 17세기 초반 서구 문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중세주의(연역법, 스콜라철학,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이 책, <<신기관 - 자연의 해석과 인간의 자연 지배에 관한 잠언>>을 쓴 것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책임을 알 수 있었다. 


17세기부터를 근대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베이컨은 근대의 문을 연 사람이고, 근대 정신의 특징을 과학적 접근 방법이라고 한다면 귀납적 관찰 방법을 주창한 <<신기관>>은 근대 과학 정신의 초석을 담은 저작이다. <<신기관>>이라는 제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인 <<기관 Organum>>에 대한 대항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 13쪽 


'참된 귀납법'을 채택하기만 하면 저절로 자연의 진리가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정신 속에서 깊이 뿌리박혀 있는 편견, 즉 '우상(idola)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인간의 정신을 사로 잡고 있는 우상에는 네 종류가 있다. 종족의 우상(Idola Tribus), 동굴의 우상(Idola Specus), 시장의 우상(Idola Fori), 및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이 바로 그것이다. - 22쪽 


'종족의 우상'은 인간성 그 자체에,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에 뿌리박오 있는 우상이다. (... ...) 베이컨은 종족의 우상에 사로잡힌 인간의 지성을 "표면이 고르지 못한 거울"에 비유했는데, 이런 거울은 "사물을 그 본모습대로 비추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서 나오는 반사광선을 왜곡하고 굴절시켜 보여준다." - 22쪽 


'동굴의 우상'은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우상이다. 즉 개인은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인 오류와는 달리) '자연의 빛'(light of nature)을 차단하거나 약화시키는 '동굴' 같은 것을 제 나름대로 가지고 있다. - 22쪽


'시장의 우상'은 인간 상호 간의 교류와 접촉에서 생기는 우상이다. (... ...) 잘못된 언어는 지성에 폭력을 가하고, 모든 것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인간으로 하여금 공허한 논쟁이나 일삼게 하고, 수없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 23쪽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은 철학의 다양한 학설과 그릇된 증명 방법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 생기게 된 우상이다. (... ...) 이 철학 체계들은 "대체로 적은 것에서 많은 것을 이끌어내거나, 많은 것에서 극히 적은 것만을 이끌어내 그들 철학의 토대를 세우기 때문에 실험과 자연사의 기초가 박약하다." 이러한 엉터리 철학은 세 종류가 있는데, 궤변적인 것(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철학자들)과 경험적인 것(연금술사들과 길버트)과 미신적인 것(피타고라스 학파, 플라톤학파, 파라셀수스 학파) 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우상들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연히 얻은 경험이 아니라) 계획된 실험을 통해 얻은 경험에서 (중간 수준의) 공리를 이끌어내고 이 공리에서 다시 새로운 실험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 23쪽 


실제 책을 인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진석용 교수의 서문만 읽어도 이 책을 알 수 있다. 다소 중언부언하는 투로 전개되어 책 자체의 밀도는 떨어진다. 


베이컨의 <<신기관>>은 크게 1권과 2권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1권에서는 귀납법적 태도와 4가지 우상에 대한 공격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2권에서는 그가 직접 귀납법적 태도로 연구한 사례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솔직히 2권은 읽지 않아도 무방할 정도로 난삽하다. 지금의 눈으로 볼 때, 책에 기술된 그의 실험, 분류, 정의 등은 엉성하기만 하다. 그가 집요하게 공격한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비논리적으로 보일 정도다. 어쩌면 귀납법적 태도도 비논리적으로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귀납법 보다는 연역법적 태도가 호소력이 있고 공격적이다. 이 점에서도 우리가 얼마나 연역법에 젖어있는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다양한 문제들이 대체로 연역법적 태도, 철학, 방법론에서 기인한 것이라면(포퍼리안들의 주장), 이 책은 연역법적 태도를 공격한 최초의 책들 중 한 권이다. 이 점만으로도 이 책은 근대를 여는 고전이 될 수 있다. 


전공자가 아니라면 진석용 교수의 서문만 읽어도 프랜시스 베이컨과 <<신기관>>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는 뜻) 



(* 위 인용 쪽수는 아래 책과 다르다. 2001년도에 출간된 구간을 읽었다.) 


신기관 - 8점
프랜시스 베이컨 지음, 진석용 옮김/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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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견만리 - 인구, 경제, 북한, 의료 편

KBS <명견만리> 제작팀(지음), 인플루엔셜, 2016 




한 경제연구소에 우리나라 2000대 기업의 성장률을 분석했는데, 이들 기업이 올린 총매출액은 2000년 815조원에서 2010년 1711조원으로, 10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날만큼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일자리는 얼마나 늘었을까? 156만명에서 161만명으로, 겨우 5만명 늘었을 뿐이다. 임금 역시 해마다 증가하는 생산성에 비해 얼마 오르지 않아 임금과 생산성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110쪽)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책은 금방 읽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용을 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알면 행해야 하지만, 국가의 정책 수립과 실행은 쉽지 않다. 


심지어 지금 드러나는 문제들 대부분은 십수년 이상 누적된 것들의 결과다. 그리고 그 십수년 동안 누군가는 이득과 혜택을 누려왔으며, 지금도 누리고 있을 것이니, 대부분의 이들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좋은 것들이니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유치원 관련 법이 통과되지 않은 것도 여기에 있고, 최저임금과 관련해 거의 모든 언론에게 공격 해대는 것도 여기에 있다. (도대체 한국 사회는 제일 밑바닥에 있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노동 값어치를 매기는 것에 대해 왜 이렇게 인색한 것일까! 심지어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위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 그동안 벌어들인 수익은 제일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의 임금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하청구조의 맨 밑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는 바, '낙수효과' 따윈 없다. 100명의 한국 사회에서 단 1명만이 30대 대기업 종사자이지만, 한국의 정책은 이 1명이 근무하는 대기업 위주로 설계되고 실행된다(혹은 그렇게 보인다. 심지어 노조도 그렇게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 옵션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중 한 가지가 최저임금을 올려 버리는 것이라면? 


하지만 언론에선 잘못된 산업 구조에 대한 언급 없이 자영업자들만 물고 늘어진다. 실은 한국의 자영업은 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 많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언론인이라면 최저임금을 묻기 전에 산업 구조에 대해 먼저 묻고 자영업을 묻기 전에 우리는 왜 자영업으로 내몰리고 있는가에 대한 진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걸 묻고 답하기에 1)이미 기자들이 기레기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2)설령 묻는다고 하더라도 기사 한 꼭지로 되지도 않을 뿐더러, 3)심도있게 진행하면 반-기업정서로 흘러가 광고가 떨어져나갈지도 모를 일이니,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내가 언론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것일지도.... 하지만 결국 연합뉴스에서 OECD 주요국 자영업자 비율을 인용하는구나. ㅡㅡ.).




건설경기에 쏟아부은 그 1조엔을 청년과 교육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일본의 지방 정부 연권이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건설 경기 부양보다 무려 30퍼센트나 높은 투자 효과를 봤을 것이라고 한다. 돈을 다 쓰고 난 다음에 나온 뒤늦은 후회였다. (73쪽)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도 아니다. 소셜 미디어에선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와 비교하여 문재인 정부 때의 여러 거시 경제 지표를 비교해가며 차라리 지금이 그 때보단 낫다고 이야기하지만, 절대로 신문이나 방송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긴 나온다고 해서 이미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너무 심하게 나서 아무리 대기업이 잘 나가더라도 서민이 느끼는 경기 체감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심지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거시 경제 지표는 이미 우리의 경기 체감과는 무관하다. 


즉 우리의 경제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경제는 계속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경제 시스템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선택으로 인해 다 잃어버린 상태다. 너무 많은 것을 이번 정부에서 기대하지 말자. 최소한의 기반만 마련해도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수십년 이상 자유한국당 류의 수구 보수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최소 십년 이상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일이기에.


경제가 어려우니, 이번 정부에서도 여러 가지 경기 부양책을 고민한다. 그리고 가장 파급 효과가 큰 건설 투자를 고민할 것이다. 솔직히 3기 신도시 계획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즉 부동산 안정화 대책으로 나온 것이 반대로 너무 손쉬운 경기 부양책으로 기능할 것이다. 꽤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경기 부양에도 단기 정책이 있고 장기 정책이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명박 정부 때 4대강이며 자원외교로 다 써버린 공적 자금으로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 그냥 투자했다면 지금 경제 상황은 훨씬 좋아졌을 것이고 부동산 가격도 훨씬 안정화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 이런 걸 몰라서 안 했을까? 그 정도로 한국의 공무원들은 그정도로 바보들이 아니다. 아마 그 돈으로 청년 투자나 신혼부부를 위한 지원 정책을 내어놓았다면 난리났을 것이다. 여기저기 비난하고 반대하고 퍼퓰리즘이라고 공격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할 필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자원외교가 더 그럴싸하다(이 점에선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이 책에서 길게 언급된 부분들 중 하나가 북한과 관련되어 있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 때 확실하게 개선된 것이 있다면 북한과의 관계 회복일 것이다. 그 정도로 중요하지만, 그만큼 해결하기도 어려운 문제였다. 이미 북한은 중국 - 러시아 접경 지대의 다양한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다. 이미 나진항은 중국, 러시아에 빌려준 상태다. 나선-훈춘-블라디보스톡은 앞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소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출처: Zum학습백과 http://study.zum.com/book/12217


출처: http://changzhu.tistory.com/151




핀란드는 '실패의 날(Day for Failure)'이 있을 정도로 실패의 가치를 아는 사회다. 매년 10월 13일, 핀란드에서는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타인의 실패를 축하해준다. 모든 성공 뒤에는 수많은 실패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제정된 날이다. (86쪽) 


핀란드의 '실패의 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에선 크게 언급되지 않았으나,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폐들 중 하나가 실패에 대해서 관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령 비만의 문제는 개인의 탓이 아니라 시스템의 탓이지만,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린다. 한 마디로 말해 모든 성공의 이득과 혜택은 소수가 독점하고 성공의 수배, 수백배 이상 많을 실패의 고통과 책임은 개인에게, 하청 기업과 노동자에게, 비정규직에게, 사회적 약자에게도 돌려버린다. (뭐, 이 책에서 시스템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이 나간 후, 방송 내용을 책으로 정리하였다.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이 책을 읽은 시간보다 이 리뷰를 쓰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이런 이야기를 할 일도 별로 없다. 술자리도 드물어졌고 일에 치여 산 지도 꽤 되었으니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은 꽤 유용할 것이니, 도서관에서라도 빌려 읽으면 좋을 듯 싶다.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책 말고 '새로운 사회', '미래의 기회'라는 부제가 붙은 두 권이 더 있다. 나머지 두 권도 읽고 이런 식으로 리뷰를 올릴 예정이다. 




명견만리 : 인구, 경제, 북한, 의료 편 - 8점
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인플루엔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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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의 삶 Vie des Formes 

앙리 포시용 Henri Focillon (지음), 강영주(옮김), 학고재, 2001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 




책은 책을 따라간다. 프랭크 커모드(Frank Kermode)의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문학과지성사, 1993)을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책이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이었다. 프랭크 커모드는 앙리 포시용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종말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갔다. 그 때,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외국 서적을 구하기 쉽지 않았고, 더구나 앙리 포시용을 읽기는 커녕, 앙리 포시용을 아는 이조차 없었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미술작품은 시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면서도 영원에 속해있다. 미술작품은 특별하고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성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술작품은 이 다양한 의미에서 군림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역사와 인간과 세계 그 자체를 예증하는 데 이바지하지만, 인간의 창조자요 세상의 창조자이며, 역사 속의 다른 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질서를 확립한다. (12쪽) 


앙리 포시용의 명성은 미술사학 뿐만 아니라 그의 유려한 문장에서도 나온다. 종종 그의 문체로 인해 그의 미술사학이 묻힌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이니. 그래서 나는 십수년 전 월간 <<현대문학>>에 실린 김화영 교수의 번역을 꼼꼼히 읽었다. 1999년 경에 이 책의 초반 일부가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실렸으나, 몇 번 연재 이후 나오지 않았다. 아마 그 때쯤 이 번역서가 마무리되고 있었던 시점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미술작품은 유일무이한 것을 지향하는 하나의 시도이며, 하나의 전체, 하나의 절대로 입증되는 동시에 복합적인 관계들로 이루어진 체계에 속한다. 미술작품은 독립적인 활동에서 나오며 탁월하고 자유로운 몽상을 표현하지만, 또한 여러 가지 문명의 에너지가 그 속에 수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컨대 (아주 분명히 대립되는 용어들을 잠정적으로 존중한다면) 미술작품은 물질이자 정신이고, 형식이자 내용이다.(12쪽) 


분명하고 확신에 찬 어조는 책 전반을 가득 메운다. 그러면서 그것에 대한 논의를 놀랍고 우아한 통찰로, 실제 작품과 작가를 예로 들면서 전개시킨다. 


왜냐하면 미술작품은 무엇보다도 시각을 위하여 고안된 것이고 공간은 시각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평범한 활동의 공간, 전략가의 공간, 관광객의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물질이자 어떤 움직임인 기법으로 처리된 공간이다. 미술작품은 공간의 척도이자 형태(forme)이다. (13쪽) 


1장 <형태의 세계>에서는 미술작품의 형태에 대한 개론적 성격의 글이라면, 2장 <공간 속의 형태>부터는 실제 형태가 어떤 삶, 어떤 변천을 겪는가를 상세히 기술한다. 


공간은 미술작품의 거처이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공간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술작품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공간을 다루며 규정하며 자신이 필요한 대로 공간을 창조하기도 한다. 생명이 움직이고 있는 공간은 그것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주어진 여건이지만, 미술의 공간은 가변적인 재료이다. 알베르티 원근법의 지배를 받게 된 이래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가 상당히 힘들게 된 것같다. (42쪽) 


하지만 포시용은 원근법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가면서 원근법 속에서 미술작품이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해나가는가를 이야기한다. 즉 원근법을 지나 다시 공간을 변화시키고 만들고 있음을 예증한다. 그 한 예가 보티첼리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4-86). Tempera on canvas. 172.5 cm × 278.9 cm (67.9 in × 109.6 in). Uffizi, Florence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는 선원근법과 공기원근법을 그럴듯하게 구성할 수 있는 기교란 기교는 전부 알고 있었으며, 때로는 거장답게 그것들을 실제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런 공간에서도 움직이는 존재가 공간으로 인해 완전히 규정되지는 않는다. 이 움직이는 것들은 구불구불한 장식적 선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 선은 물론 어떤 목록 안에서 분류된 기존의 장식적 선이 아니다. 그것은 이러한 형상들을 구성하기 위해 육체의 생리적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무용간의 굽이치는 동작이 그려낼 수 있는 선이다. 이러한 특권은 오랫동안 이탈리아 미술의 속성으로 남아 있는다.(62쪽) 



The Hora of Spring


이후 3장 <물질 속의 형태>, 4장 <정신 속의 형태>, 5장 <시간 속의 형태>를 통해 형태가 어떻게 존재하고 영향을 주며 변화하는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손의 예찬함>>이라는 짧은 글이 부록처럼 실려있다. 


앙리 포시용의 문장들 대부분이 밀도가 높고 함축적이기 때문에 읽는데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미술사가 어떤 무늬를 가지는지 이 책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다만 이런 류의 책이 그리 흔치 않는 걸 제외한다면.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 - 10점
앙리 포시용 지음, 강영주 옮김/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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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이해 Pour Comprendre La Peinture (Painting and Painters) 

리오넬로 벤투리 Lionello Venturi (지음), 정진국(옮김), 눈빛, 1999 




인문학 책읽기란 쉽지 않다. 어떤 땐 쉽게 읽히더라도 어떤 때는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인문학 책읽기는 한결 편해지고 더 깊은 이해와 감동을 가질 수 있다. 회사 생활로 바쁘지만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이런 이해와 감동 때문이리라. 


이 책은 불어판을 영어판과 비교해가며 번역되었다. 영어판의 경우, 벤투리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불어판은 그렇지 못하다. 중역인 셈인데, 그렇다고 읽기 불편하진 않다. 


리오넬로 벤투리 (1885 ~ 1961) 


리오넬로 벤투리의 책은 한 두 권 번역되었으나, 서양 미술사 책이니, 대중적인 영역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미술에 관계된 이들마저 읽지 않거나 대학 시절 잠시 수업 교재 목록에 올라왔을 때 들춰보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어쩌면 실제 읽혀져야 할 뛰어난 책은 제대로 읽히는 경우가 드물고, 도리어 미술 작품에 대한 깊은 공감과 감동이라곤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못했을 저자의 얄팍한 (이론) 책들만 읽히고 팔리는 건 아닐까. 


이 책은 르네상스 미술부터 현대 미술(20세기 초반)에 이르는 과정을 신과 인간, 자연, 정신과 육체, 추상과 환상 등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기술하였다. 대체로 이런 유형의 저서들은 개별 작가나 작품에 집중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시대 분위기나 양식의 변천 등에 집중하면서 서술되어 전반적인 흐름을 쉽게 알 수 있으나(편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구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런 미술사 책을 읽으면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 미술의 차이를 설명할 순 있으나, 티치아노와 카라바지오가 어떤 면에서 비슷하고 어떤 면에서 다른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동시대 미술가였던 지오토 디 본도네와 시모네 마르티니가 왜 다른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왜 윌리앙 부그로나 장 프랑소와 밀레가 형편없는 예술가인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미술사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도상학적인 해석이나 미술 양식의 변천 뿐만 아니라, 왜 이 작가와 작품이 중요한지, 이 작품의 어떤 면이 혁신적이며 이 혁신이 후대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이러한 도전이 그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래서 결국 이 작품이 얼마나 새롭고 감동적인가를 머리가 아닌 눈으로 깨닫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확실하다. 벤투리는 개별 작가와 작품에 집중하면서 현대미술에 이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아래 인용들은 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오토, <요하임과 목동들>, 1305년경 



지오토는 평면상의 전개와 공간의 감각 사이에 지극히 희귀한 종합, 내적 데생과 구조 속에서 이미지의 극단적인 단순화를 통해 드러나는 종합을 찾아낸다. 신성의 이미지는 제시되고, 인간의 삶은 재현된다. 즉 이들의 종합은 잠재적 에너지로 충만한 평형에 의해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지오토의 이미지들은 추상적인 동시에 구체적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보편적인 것에 포착된 인간들의 이미지로, 어떤 계급이나 어떤 시대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다. 또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미지로, 모든 물질을 능가하는 생명의 이미지이다. 인간이 된 신성은 동정심과 사랑에 대해 말한다. 또 신성화된 인간은 위엄과 정신적 위대성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43쪽) 




시모네 마르티니, <수태고지>, 1333년경 



시모네 마르티니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재단한 전통적 수법들을 고집했다. 그는 지오토가 배척했던 모든 속성들에 열광했다. 즉 운동, 장식, 기교, 세부에. 그리고 특히 지오토가 무시했던 관념적인 것, 즉 미를 실현하려는 야망을 불태웠다.

지오토는 물질적 미에 마음을 두기에는 너무나 영적인 것으로 가득한 천성을 지녔다. 또 천상의 미를 걱정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반대로 시모네 마르티니는 천상의 미를 필요로 했고, 그렇게 발견했던 것은 섬세하고 미묘한 은총의 꽃이었다. 이는 하나의 온실의 꽃이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시모네 마르티는 궁정의 귀족적 생활을 신성한 생활과 혼동했고, 세속적 미를 천상적 미와 혼동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름다움을 두드러지고, 세련되고, 귀족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희귀한 분위기 속에는 신성한 것도 인간적인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인격은 분명 지오토의 인격보다 한결 폭이 좁다. 아무튼 그 한계 내에서, 그 또한 예민하고 온화한 완전성을 찾아냈다. 프랑스는 사라으이 궁전에 대한 시를 지어냈었다. 시모네 마르티니는 사랑의 궁전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였다. (44쪽) 


벤투리는 지오토와 마르티니의 비교를 통해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어떻게 나아가는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각 시대별로 중요한 화가들과 작품들을 서로 나란히 배치하고 비교하고 분석함으로서 개별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감상 뿐만 아니라 그 너머 미술의 변화를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다. 


티치아노,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1570 - 71 


그의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는 빛의 개념에 있어서 하나의 시금석이다. 여기에서 '보편적 빛'과 '특수한 빛'을 구별하는 것이 적절해보인다. 야외에서 한낮동안의 빛은 보편적이가. 그것은 인체와 모델을 감싼다. (... ...) 달리 말해서 이미지의 빛으로 밝혀진 부분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상상되는 어둠에 잠긴 부분의 존재를 암시한다. 바로 이것이 특수한 빛의 효과이다. 또 이런 특수한 빛을 표현하는 화가는, 형상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빛의 효과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더구나 조형적 형상은 은연 중에 어떤 무게를 감지하게 하며, 형상의 운동은 언제나 이 무게에 의해 제한될는지 모른다. 반면에 형체가 없는 빛은 하나의 지속적 파장으로서, 결국 환상적인 운동이다. 특수한 빛은 번개의 속도를 갖는다. 즉 빛은 건드리고, 드러내고, 이내 사라진다. 다시 말해서, 빛은 심지어 주저앉은 형상에도 운동을 부여하며 또 운동 못지 않게 동태를 강조한다. (108쪽 - 110쪽) 

 

빛에 대한 설명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벤투리는 두 가지 빛을 구분하고 이것이 엘 그레코, 카라바지오, 렘브란트 등으로 연결지어 설명해나간다. 이러한 설명들은 책 전체에 걸쳐 있으므로, 이 책은 르네상스 미술부터 현대 추상 미술까지 한 눈에 파악하면서 주요 예술가들까지 보다 깊은 수준에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따라서 생각보다 읽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카라바지오,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성 마태>, 1592년경 


르네상스초기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인상주의를 지나 추상미술을 향해가는 후반부는 더 흥미진진하다. 쿠르베, 르느와르, 세잔, 피카소로 오면서 미술사가 어떻게 작가와 작품, 그리고 시대의 흐름과 연결하고 해석하는가를 알 수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시중에서 이 책을 구할 수 없다는 것. 다시 출간되기를 기대해보자. 


좋은 책은 그냥 책 내용을 옮기게 된다. 이 책도 그렇다. 서평은 어렵고 요약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의 주요 작가들과 작품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보기 드문 책이기에 읽어보길 권한다. 또한 미술작품에 대한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도 알게 해줄 것이다. 





회화의 이해 - 10점
리오넬로 벤투리 지음, 정진국 옮김/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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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 Richard Brautigan 



I changed her bedroom:

raised the ceiling four feet,

removed all of her things

(and the clutter of her life)

painted the walls white, 

placed a fantastic calm

      in the room, 

a silence that almost had a scent,

put her in a low brass bed

with white satin covers 

and I stood there in the doorway

watching her sleep, curled up,

with her face turned away 

      from me. 



1969년에 나온 시집 <The Pill versus the Springhill Mine Disaster>에 실린 시다. 


 

초판본 표지(1969년도). 지금은 아래와 같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번역해본다. 



연인들 



- 리처드 브라우티건 



나는 그녀의 침실을 바꾸었지:

천정을 4 피트 들어올렸고

그녀의 모든 물건들을 치웠어

(그리고 그녀 삶의 잡동사니들도)

벽을 하얗게 칠했네,

환상적인 고요를 놓아두었지

     그 방에, 

향기를 거의 지니고 있었던 어떤 침묵,

그녀를 새하얀 새틴으로 덮여있던, 

낮은 황동 침대에 눕히고 

나는 출입구 쪽 그 곳에 서 있었지 

그녀의 잠을 보면서, 몸을 웅크리며, 

그녀의 얼굴이 멀어져가는 동안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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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리처드 브라우티건 Richard Brautigan(지음), 김성곤(옮김), 비채 




원제는 <Revenge of the Lawn>이지만, <잔디밭의 복수>보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가 더 나아보인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하지만 이 책의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편은 <잔디밭의 복수>.


잭은 할머니와 30년이나 같이 살았다. 내 친할아버지는 아니었고 플로리다에서 물건을 팔던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잭은 사람들이 사과를 먹고 비가 많이 오는 곳에서 영원한 오렌지와 햇볕에 대한 비전을 파는 사람이었다. 

잭은 마이애미 다운타운 근처에 있던 할머니집에 물건을 팔러 왔다. 그는 일주일 후 위스키를 배달하러 왔다가 30년을 눌러 살았으며, 그 후 플로리다는 그 없이 지내야 했다. 

- <잔디밭의 복수> 중에서 

(* 위 인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브라우티건은 사물의 관점에서 종종 서술하는데, 꽤 흥미롭다. '플로리다'(지명)를 의인화하여 '그'(잭) 없이 지내야했다'고 표현한다.)


아주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브라우티건의 소설집,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연작처럼 읽히기도 하고 산문으로 된 시같기도 하며, 그냥 수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소설이다. 


브라우티건은 이제 잊혀져가는 이름이다. 육칠십 년대(히피들의 시대) 활동했던 미국 소설가. 


반-문명, 반-도시적 감수성을 가졌다고 해서 김성곤 교수는 '생태문학'으로 몰고 가지만(히피 시대가 생태주의 시대였는지도), 실은 문명 안에서, 도시 안에서, 쓸쓸함, 외로움, 고독을 어쩌지 못해, 버림받았다는 당혹스러움이나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절망감이 몰려들어 그 공간 - 문명 속의 도시 - 를 비틀고 조롱하며, 급기야는 고개를 돌리고 피하고 도망쳐서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하필 그 곳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숲이거나 강가라고 해서 '생태문학'으로 일반화시키면,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죽기 직전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이 매우 섭섭해 할 것이다. (*나도 한 번 브라우티건을 따라서...)


여자들이 검은 고무 잠수복과 광대 같은 모자를 착용하니까, 참 예뻤다. 수박을 먹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캘리포니아의 왕관에 박힌 보석처럼 빛났다. 

-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건 짧은 글 속에 숨겨진 문명/도시에 대한 조롱, 무책임함, 그리고 그것에 대한 폭로를 넘어서 서정적이면서도 단조롭고 견고한 산문 때문이다. 하지만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알고 읽는 독자는 드물기만 하고.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어디론가, 저 멀리 휩쓸려 떠내려가는, 질서와 합리성으로 포장된, 위선적인 도시의 비정한 일상 속에서 브라우티건을 읽는 건, 브라우티건을 손에 들고 다니는 건 상당히 우습고 위험한 일이다. 다행히 수십 년 도시 생활 중에 브라우티건의 소설을 들고 있는 이는 본 적 없으니, 아직 이 도시에는 도시를 극도로 싫어하는 반-도시적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니, 도시는 아직 안전하다(하지만 나는 도시가 싫다).


핏빛 다툼 


"바이올린을 배우는 남자와 새너제의 원룸에서 같이 사는 건 정말이지 힘들답니다." 그녀가 탄창이 빈 연발권총을 경찰에게 건네면서 한 말이었다. 


(번역: 김성곤)


그리고 어쩌면, 우리들은 도시에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 문명의 불빛에. 


나무들은 한 때 공동묘지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들은 낮의 울음과 술픔의 일부였으며 바람이 불 때를 제외하고 밤의 정적의 일부였다. 

- <소녀의 추억> 중에서 



- 1970년.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아파트 욕조에 앉아 있는 브라우티건


- 1971년에 나온 <잔디밭의 복수> 초판본 표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타이피스트 




그건 마치 종교음악처럼 들렸다. 내 친구 하나가 막 뉴욕에서 돌아왔는데, 거기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타이피스트가 그의 작품을 타이핑해주었다고 했다. 

그는 성공적인 작가였고, 그래서 뉴욕에 가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타이피스트를 만나 타이핑 서비스를 받는 최상의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놀랄 만한 일이었고, 허파에 침묵을 대리석처럼 수놓을 만한 일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타이피스트라니!

그녀는 모든 젊은 작가들의 꿈이었다. 마치 하프를 타듯 우아하게 움직이는 그녀의 손, 원고를 바라보는 완벽하고 강렬한 시선, 그리고 심오한 타이핑 소리.

그는 시간당 15달러를 지불했다. 그건 배관공이나 전기공의 보수보다도 더 많은 액수였다.

타이피스트에게 하루에 120달러라니!

그는 그녀가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고 말했다. 그저 원고를 넘기기만 하면 그녀가 철자 점검이며 구두점을 너무나 아름답게 처리해서 그걸 보면 눈물이 나게 되고, 그녀가 만든 문단은 우아한 그리스 신전처럼 보이며, 그녀의 문장은 완벽했다고. 

그녀의 헤밍웨이의 소유였다.

그녀는 헤밍웨이의 타이피스트였다. 


(번역: 김성곤) 



아, 그런데 헤밍웨이의 타이피스트라니! 나는 너무 부럽기만 했다. 그렇게 브라우티건의 소설을 읽었다. 



* 위에서 인용된 두 편의 단편, <핏빛 다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타이피스트>는 단편 전체다. 그래서 밑에 역자를 표기하였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 10점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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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만든 카를로스 곤의 파워리더십

이타가키 예켄(지음), 강선중(옮김), 더난출판, 2002년 



그는 냉철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지독한 재건 방법을 통해 '구조조정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코스트 커터Cost Cutter'와 '코스트 킬러Cost Killer'라는 별명까지 얻는다. - 38쪽 


오랜만에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경영 서적이라 여겨, 도서관에서 빌려왔지만, 지금 경영 트렌드와는 상당히 달랐다. 강력한 리더십과 수익성 향상을 위한 과감한 구조조정, 리스트럭처링, 핵심 인력 관리나 능력주의 등은 이젠 너무 익숙한 주제이며, 종종 그것으로 인한 부작용이 더 많다고 여겨지는 요즘, 이 책은 20여 년 전의 비즈니스 혁신을 되돌아보는 책에 지나지 않았다. 


워라벨이나 협업, 창의성 고취, 혁신, 플랫폼 등이 더 큰 관심사로 여겨지는 요즘,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도리어 철지난 것이거나 너무 잘 아는 내용이었다.   


잭 웰치의 경영 방식으로 높은 성장을 구가하던 GE는, 그 성장으로 인해 현재 발목이 잡힌 상태다. 여러 차례의 금융위기로 GE의 금융 부문은 그 위상을 잃어버렸고 다른 부문에서도 상당히 고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젠 모든 기업들이 경영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프렉티스를 계속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경영 전략이나 방식을 적용하는 것만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과거의 경영 방식이나 위기 관리 등에 대해서 알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책일 수 있으나, 지금에서는 다소 식상한 책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카를로스 곤의 리더십이 보여주는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현재 전개되고 있는 카를로스 곤 르노 부회장의 구속 소식은 카를로스 곤을 다시 한 번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책은 성공적이었던 카를로스 곤의 경영 방식을 하나하나 항목으로 분리하여 제시하고 있다. 쉽게 읽히고 잘 정리되어 있다. 다만 지금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기적을 만든 카를로스 곤의 파워리더십 - 6점
아타가키 에켄 지음, 강선중 옮김/더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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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라로슈푸코(지음), 강주헌(옮김), 나무생각



원제는 『잠언과 성찰』(Reflexions ou sentences et maximes morales, 1665)이다. 니체가 매우 존경하였으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 라로슈푸코(Francois de La Rochefoucauld, 1613 ~ 1680)의 잠언집을 읽었다. 17세기 작가의 문장들은 쉽게 읽힌다. 몇 개의 문장들은 흥미로웠다. 적당히 염세적이고 시니컬했다. 생각하는 것보다 팬이 많아서 어느 일본인 작가는 평전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기도 했다. 


몇 개의 문장들을 옮긴다. 


- 우리의 미덕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


- 철학은 과거의 불행과 미래의 불행을 그럴듯한 이유로 극복하라고 설명하지만, 현재의 불행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한다.

 

- 질투는 의혹은 먹고 산다. 의혹이 확신으로 변하면 질투는 깨끗하게 소멸되거나 광기로 변한다. 


- 운명의 변덕도 종잡을 수 없지만, 우리의 변덕은 그 이상이다. 


- 사랑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기껏해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의 사랑은 지배의 열정이고 정신의 사랑은 동정이며, 육체의 사랑은 많은 비밀이 있은 후에 사랑의 대상을 소유하려는 은밀하고도 미묘한 욕망일 뿐이다. 


- 위선이란 악이 미덕에 바치는 찬사다. 


- 젊음은 언제나 취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즉 이성의 열병이다. 


- 어리석음은 전염병과도 같은 것이다. 


- 운명과 성격이 세상을 지배한다. 


- 노인은 목숨을 걸고 젊은이들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폭군이다. 


-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해 본능적으로 갖는 취향과 일정한 기준에 따라 사물의 질을 감식해서 판단하는 취향은 다른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내용을 판단할 만한 섬세하고 날카로운 감각이 없으면서도 코미디를 좋아할 수 있다. 거꾸로 코미디의 내용을 완벽하게 판단하기에 충분한 감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코미디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잠언집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충분히 권할 만하지만, 깊이 있는 통찰이 있거나 체계적인 사유를 엿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정말 17세기식의 약간 삐딱한 프랑스 경구들이라고 할까. 나는 그냥 쉽게 읽었다. 몇 개의 문장은 좋았으나, 그 뿐이었다. 다행히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머리를 식히기 좋은 책이라고 하면 이상하려나.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 6점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지음, 강주헌 옮김/나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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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밤 



옛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 백석, 1935년 11월, <<조광朝光>> 



혼자 술에 취해 거실 탁자에 앉아 시집을 꺼내읽다 왈칵 눈물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눈물에, 내가 왜 이럴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감수성이라는 게 살아있었나 하는 안도감을 아주 흐르게 느꼈다.


글쓰기는 형편 없어지고 책읽기도 그냥 습관처럼 변해, 종종 내가 왜,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요즘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지혜가 생긴 것도 아니고 논리 정연해진 것도, 그렇다고 사람들을 감화시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리더십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다. 

도리어 거짓말장이가 되고 불성실해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나쁜 점들만을 (처참하게) 깨닫고 있다.


그런 시절, 백석의 시를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거참. 


***


백석(1912 ~ 1996) 

지금에서야 시집 구하기가 쉽지만 예전엔 월북작가라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번 가을 백석 시집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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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신을 찾아서

강유원(지음), 라티오 



짧고 간결하다. 신에 대한 책이면서 신앙에 대한 책이며 동시에 근대 철학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의 신과 고대 그리스의 신을 이야기하고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를 이야기한다. 근대철학의 관점이 아니라 신앙의 관점에서 파스칼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실은 나도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세례를 받았으며 신앙을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도리어 편안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나에게 놀라웠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가 이미 종교를 부정하였고 이젠 신앙은 중세의 유적처럼 변해버린 이 시대, 현대의 회의론자들은 끊임없이 신과 신앙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할 때, 이 책은 놀라운 성찰을 보여준다. 


데카르트가 신의 관념을 두고 신의 현존을 증명해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겸손함, 경건함이다. 그런 까닭에 이 현존 증명은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인간의 하찮음에 대한, 인간의 허약함에 대한 강력한 확신에 의존한다. 인간의 유한함과 하찮음과 나약함을 강조하면 할수록 이 증명의 위력은 커진다. - 136쪽 


신앙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기를 비춘다. 자기 속의 신을 찾아낸다. 세상은 신비롭고 우리는 그 신비 속에 있다. 


작년에 한 번 읽고 올해 한 번 더 읽었다. 뒤늦은 리뷰이지만, 이 책은 참 좋다. 



숨은 신을 찾아서 - 10점
강유원 지음/라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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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습관이 된 탓에 시간의 여유만 생기면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글들을 수시로 프린트해서 읽는다. 며칠 전에 읽은 인터뷰에 몇 권의, 인상적인 책 소개가 있어 옮긴다. 다소 생소한 작가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고, 내가 미처 몰랐다는 사실이 다소 미안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당신의 침묵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라는 메시지로 사회 참여를 강하게 외쳤던 오드리 로드, 영국 출신이면서 20세기 초반 초현실주의 세례를 받은 화가이자 소설가 레오노라 캐링턴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였다. 셜리 잭슨은 이미 많은 작품이 영화화되기도 한, 고딕 호러 분야에 있어선 최고의 소설가였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데보라 레비는 흥미로운 작가들과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녀도 이미 영국의 부커상 최종 후보로 여러 번 올리기도 한 극작가이면서 소설가였지만, 국내에 알려지지 못한 건 마찬가지. 


이 짧은 포스팅으로 몇 명의 작가와 작품을 소개해 본다. 데보라 레비의 소개를 바탕으로 


Deborah Levy: Five Books that Unsettle Boundaries. (데보라 레비: 경계들을 흔드는 다섯 권의 책들) 

데보라 레비는 영국의 극작가이면서 소설가이다. 몇 번 맨부커상 최종 후보로 오르기도 한 그녀는 자기에게 영향을 준 다섯권의 책을 이야기한다. 



Audre Lorde, <Your Silence Will Not Protect You>  

오드리 로드는 알지 못했다. 미국 흑인 운동과 페미니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가들 중 한 명인 그녀는 흑인이면서 여성 동성애자로의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기도 했다. 위 책은 오드리 로드의 시와 에세이를 모아 만든 책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오드리 로드의 책 한 권이 번역되어 나왔다. 



Leonora Carrington, <The Hearing Trumpet>

레오노라 캐링턴(1917~2011)도 처음 알았다. 영국 출신의 멕시코 화가이자 소설가다.  막스 에른스트의 연인이기도 했던 그녀는 2차 세계대전 중 멕시코로 이주하였으며 그 곳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 책은 92살의 Marian Leatherby의 이야기로 기묘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의 소설이다. 



Gertrude Stein, <Picasso> 

워낙 유명한 책이라 번역되었을 것이라 여겼지만, 번역되지 않았다. 소설가이자 비평가였던 거트루드 스타인이 쓴 <피카소>는 피카소가 그려젼 스타인의 초상화를 책 표지로 사용했다. 미국 문학사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한 명이지만, 정작 소설가로서 유명하기 보다는 위 작품으로 더 유명해진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의외로 국내에 번역되지 못한 작가들 중 한 명이다. 



Shirley Jackson, <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4년 한글 번역 출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들 중 하나로 인정받는 <힐 하우스의 유령>. 데보라 레비는 소설가 셜리 잭슨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I admire the skill of Jackson's plotting, the sly ways in which she creates suspense, and her deceptively plain but always compelling writing.'  



John Berger, <And Our faces, My Heart, Brief as Photos> (2004년 한글 번역 출판)

존 버거의 책이다. 존 버거의 다른 책들에 비해 특별하게 감동적이라고 여겨지진 않았으나, 데보라 레비에게 있어서 이 책은 인생의 책에 가까워 보인다. 존 버거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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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이론의 지형

김승곤 외 지음, 홍디자인출판부, 2000년 



몇 개의 논문은 읽을 만하다. 가령 최인진의 <사진 수용 단계에 있어서 다게레오타입의 전래 유무에 관한 연구>같은 논문은 이런 논문집이 아니곤 읽을 일이 거의 없다. 특히 3부에 실린 세 편의 논문, 이경률의 <현대미술과 사진적 레디메이드>, 박주석의 <초현실주의 사진과 비평>, 최봉림의 <사진 초상에 있어서 은유와 환유>는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대체로 재미없었다. 논문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김승곤 선생 회갑 기념 논문집'이라는 부제에 어울리지 않게 신변잡기적인 에세이가 실려 있기도 했다. 책의 출간년도가 2000년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한국의 사진 비평이나 이론의 수준이 딱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걸까. 한국 사진 이론의 변천을 전문적으로 다루지도 못하고 그 때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이들에게서 글을 받아 모은, 그냥 진짜 '기념 논문집'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구입한 이유가 있었는데, 어느 전시 평문에서 어떤 글을 읽고, 그 문장이 있던 이 책을 구입한 것이다. 하지만 그 문장이 무엇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고, 이 책도 구입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읽으니 ... ... 


사진 이론에 관심 있다면 이 책보다는 다른 책들이 더 나아보이는데, ... ... 아, 사진 이론 관련 책들이 뭐가 있나. 직업적 사진가나 사진 작가, 혹은 사진 애호가는 많지만, 사진에 대한 글/비평에 대해 관심 있는 이는 적거나 거의 없다(이는 문학을 제외한 모든 예술 분야가 똑같다). 그러니 이 책을 추천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다른 책에는 무엇이 있나 하는 생각에 예술 이론 분야에 한글로 된 책들의 부족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 - 6점
김승곤 외 지음/홍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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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표상 Representations of the Intellectual 

에드워드 사이드(지음), 최유준(옮김), 마티 



사진 출처 - http://www.h-alter.org/vijesti/remembering-edward-said 



나이가 들어 새삼스럽게 애정을 표하게 되는 작가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다. 대학 시절, <<오리엔탈리즘>>을 읽었으나, 그 땐 그 책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인문학은 나이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건 이 세상과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새삼스럽게 에드워드 사이드를 읽으며 감탄하게 되고 당연한 일


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사이드는, 어쩌면 그의 인생 전체가 20세기의 거대한 갈등 한 가운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지적 역량과 방대함일 것이다. 아마 서구 지식인들 대부분이 에드워드 사이드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 책의 계기는 1993년 영국 BBC 방송의 리스 강좌 Leith Lectures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인이었던 그에게(영국 BBC 리스 강좌에 나왔던 미국인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팔레스타인의 권리 투쟁에 적극적이었던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강좌의, 그리고 이 책의 존재 의의를 부각시켰다. 


"모든 사람이 지식인이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사회에서 지식인의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 그람시, <<옥중수고>> 중에서 (19쪽 인용) 


이 책은 지식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식인에 대해 정의내리고 지식인이라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지식인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또한 그 스스로 현실 정치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했던 지식인으로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분명하고 확고한 어조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 후반부에 리처드 크로스만의 <<실패한 신The God that Failed>>를 인용하며 지식인들의 변절을 언급할 때는, 그러한 변절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가를 기술할 때는 고통스러움까지 느껴졌다. 


결국 중요한 것은 표상하는 인물로서의 지식인입니다. 즉 어떤 종류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사람, 그리고 온갖 종류의 장벽을 극복하고 청중들에게 명확하게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지식인이란 대화를 하건, 글을 쓰건, 가르치건 텔레비전에 출연하건, 표상의 기술을 소명으로 삼는 개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명을 공적으로 인지 가능하며 책임과 위험, 대담함과 소심함의 양면을 모두 아우르는 만큼 중요합니다. (27쪽) 


다소 무책임하고 경솔해보일지 모르지만, 주변성이라는 조건은 남의 일을 망치고 동료들을 불안하게 만들 것을 염려와 언제나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식인이 실제의 망명 상태와 같이 주변화된 자, 길들여지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은 권력자보다는 여행자에 가깝고, 관습적인 것보다는 임시적이고 위험한 것에 가까우며, 현 상황에 주어진 권위보다는 혁신과 실험에 가깝게 반응한다는 의미입니다. 망명자적인 지식인의 역할은 관습의 논리에 따르지 않고 대담무쌍한 행위에, 변화를 표상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전진해가는 일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77쪽)


오늘날의 지식인은 아마추어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아마추어란, 한 사회의 분별력 있고 사려 깊은 구성원이 되고자 한다면 가장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행위에 있어서조차 그 행위가 자신의 국가와 관련되고 그 국가의 권력과 관련되며 다른 사회와의 상호작용 방식은 물론 자국 시민들과의 상호 작용 방식과 관련될 때, 그 핵심에서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마추어로서 지식인의 정신은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단순히 직업적인 일상에 들어가 이를 훨씬 더 생기 있고 급진적인 무언가로 변모시킬 수 있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로 여겨지는 것을 묵묵히 수행하는 대신, 그것을 왜 해야 하며 그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며 그것을 어떻게 하면 개인적 기획과 독창적인 사고에 다시 접목할 수 있을 지 물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98쪽) 


자기 자신에게 가해지는 위협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한때 제쳐두었던 것을 재발견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지식인이 되는 일의 가장 어려운 국면은, 제도에 맞게 경직화되거나 정해진 체제나 방법에 따라 기계적인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직업과 개입을 통해 주장하는 것을 스스로 표상하는 일입니다. (138쪽) 


책 내내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어쩌면 그의 삶 전체가 그런 궤적을 그렸던 건 아닐까. 미국인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온전한 팔레스타인인도 아니었으며 더구나 아랍인은 더욱 아니었다. 그의 부모님 모두 기독교도였으며(하지만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오자 유대인이 아니었던 그들 가족은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아랍어와 영어를 섞어 사용하였다. 그의 혼란스러운 정체성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주변인으로서, 망명 지식인으로서, 그 어떤 독단적 체계로부터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었을 수 있게 만든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그를 <<오리엔탈리즘>>으로 유명한, 그저 탈식민주의 이론을 이야기한 학자로 국한시키기에는 그의 지적 역량은 놀랍기만 하다. 그는 탁월한 피아니스트들 중 한 명이었으며, 아마 아도르노 이후 클래식 음악에 조예 깊은 학자이면서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과 함께 클래식에 대한 책까지 낸 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나이가 들수록 감탄하게 되고 공감하게 되는 학자이기도 하다. 


책을 사놓고 초반만 조금 읽어둔 채 몇 해를 보냈다. 아마 아래 문단에서 가슴이 먹먹해져 읽기를 멈추었던 듯 싶다. 보편성이란 무엇일까. 제주도에 피신해온 예멘 난민들의 기사를 읽으며 우리 마음 안에 굳건하게 자리 잡은 벽을 느낀다. 그런데 한국에도 지식인들의 사회라는 게 존재하는 것일까. 살짝 고민해보게 된다. 내가 보기엔 예멘 난민 문제에 있어서 가장 호소력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그 잘난 한국의 지식인들이 아니라 배우 정우성이었으니까. 


보편성이란 우리의 출신 배경, 언어, 국적이 타자의 존재로부터 자주 우리에게 보호막이 되어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확실성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편성은 또한 대외 정책이나 사회 정책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인간적 행위에 대한 단일한 규준을 찾아내고 이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야기된 적의 침략에 대해 비난한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 정부가 더 약한 집단을 침략할 때 똑같이 비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식인은 자신의 언행을 규정하는 어떠한 법칙도 알지 못한다. 세속적 지식인들에게 확고한 인도자로서 경배하고 숭배해야 할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11쪽)






2008/12/08 - [책들의 우주/예술] - 음악은 사회적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2008/06/21 - [책들의 우주/이론] -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 10점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최유준 옮김/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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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퀴드 러브 Liquid Love 

지그문트 바우만(지음), 권태우, 조형준(옮김), 새물결 




예전같지 않다(그런데 이 문장은 식상하면서도 낯설다. 여기서 '예전'이란 언제를 뜻하는 것인가, 정작 나 자신도 그 때를 지정할 수 없는). 나도, 이 세계도. 


세상이 바우만이 바라보는 바대로 변한 것일까, 아니면 변한 세상을 정확하게 바우만은 읽어내는 것일까. 이 책을 읽기 전에 이토록 절망적인 해석을 담고 있으리라곤 생각치 않았다. 적당하게 우울할 것이라곤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곤. 


우리 시대에 아이는 무엇보다 정서적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

부모가 되는 기쁨은 자기 희생의 슬픔 그리고 예견할 수 없는 위험들에 대한 두려움과의 일괄 거래 속에서 온다.  - 113쪽 



그는 모든 것을 소비 사회라는 필터를 통해 해석하고 재배열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로 그렇게 해석하고 이제 관계가 아닌, 언제나 연결/단절을 선택할 수 있는 '네트워크' 속에 사람들이 놓인다고 진단한다. 더 큰 문제는 현대인들이 그것이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소비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프랑스Louise France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외로운 사람들에게 디스코텍이나 싱글 바는 아득한 추억"이라고 그녀는 결론 짓는다. 그들은 그러한 곳에서 친구를 사귀는 데 필요한 친교술을 충분히 배우지 않았다(그렇다고 해도 걱정하지는 않는다).  - 161쪽 


사람들, 아니 우리들 서로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유대를 맺었던 예전 관계가 무너지고 파편화되었는가를 담담하게 말한다. 마치 마트에서 소비 생활을 하듯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맺고 성도 사랑도 그렇게 소비된다. 이제 사람들은 직접적 친밀성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며, 가상적 인접성의 테두리 안에서 휴대폰을 들고 자신의 집으로, 방으로 들어가 혼자 지낸다. 그리고 그것이 왜 문제인지 깨닫지 못한다. 


소비 생활은 가벼움과 속도를 좋아한다. 또한 그것들이 조장하고 촉진키켜 줄 새로움과 다양성을, 소비하는 인간의 삶에서 성공의 척도는 구매량이 아니라 구매 빈도이다. - 131쪽 


소비사회와 도시는 함께 성장하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버려진다. 버려진다는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 즐거운 소비 생활로 위로할 것이다. 더 나아가 현대 사회는 다양한 정치적 갈등 속에서 공동체(커뮤니티)는 가상의 의미로, 상상된 채로 머물고, 어쩌면 현대인들 대부분은 불법체류자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현대국가는 '무국적자들 stateless persons', 불법체류자들 sans papiers 그리고 살 가치가 없는 삶unwert Laben이라는 이념과 동시에 등장했다. 이것은 '호모 사케르homo sacre' 즉, 인간의 법과 신의 법의 한계 밖으로 내던져진 인간은 누구든 면제시키고 배제할 수 있으며, 어떤 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윤리적 가치나 종교적 의미도 없기 때문에 목숨을 빼앗아온 어떤 벌도 받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주권자의 권리를 궁극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자들이다. 바로 이들이 후대에 환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78쪽 


현대 소비 사회의 사랑, 성, 가족, 사회와 도시를 절망적으로 진단하고 있지만, 그 지점에서 딱 멈춘다. 대안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뿐, 그저 절망할 뿐이다. 책 후반 칸트를 언급하지만, 칸트에 관심을 기울일 정도가 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그문트 바우만의 인터뷰 기사를 여러 번 읽었으나, 그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초반 잘 읽히지 않았으나, 중반이 지나자 술술 읽혔다. 대체로 어딘가가 읽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마 현대 사회를 진단하는 어조가 대부분 비슷하기 때문은 아닐까. 리처드 세넷의 초기 저작에서 풍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후반부에서 칸트를 인용하는 건, 다소 의외였다. 하버마스에 대해선 이상주의적이라 여기는 듯하다.


책을 읽고 난 다음 바우만의 주저인 <<액체근대>>를 구하긴 했으나, 글쎄다. 도리어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와 세넷의 <<공적 인간의 몰락>>을 다시 읽을까 생각했다. '러브'라는 단어로 인해 사랑에 대한 철학적 이론적 분석이라고 오해하지 말자. 책은 읽을 만 한데, 이 책보다는 바우만의 다른 책을 먼저 읽는 것이 바우만을 아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다음 드는 기분은 꽤 절망적이라는 사실은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리퀴드 러브 - 10점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권태우 & 조형준 옮김/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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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t>>를 가끔 사서 읽는다. 얼마 전에 한 권 샀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겨울에 산 것이었다. 그 사이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버렸다. 아. 


데이비드 밴David Vann이라는 미국 소설가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의 번역 소설을 보긴 했지만, 읽진 않았다. <<Axt>>라는 잡지가 출간되었을 무렵 자주 사서 읽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지 않는다. 사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놓고 읽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읽을 것들이 너무 밀려있기 때문에. 좋은 잡지이긴 하지만. 


데이비드 밴이라는 소설가와의 인터뷰 중 흥미로운 몇몇 구절을 옮기고 메모해둔다. 흥미로운 관점이다. 풍경 묘사와 가족 이야기. 소설을 쓰는 이들에겐 꽤 유용한 조언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소설을 쓸 때 항상 인물과 장소에 집중한다. 인물의 정신은 대체로 풍경 묘사를 통해 그려지는데, 이는 내면의 삶을 발견하는 간접적인 방법이다. 책의 후반에서는 아버지가 주변의 숲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통해 아버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했다. 또한 소설에서 인물은 드라마를 통해, 즉 엄청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를 통해 드러난다. 우리가 어비지에 대해 아는 것은 대부분 아들과 주고받은 말과 행동을 통해서다." 


"나는 학생들에게 "가족을 제단에 올려놓고 도끼를 휘두르라"라고 말한다. 나는 그리스 비극을 쓰는데 그리스인들은 가족이 우리를 만들고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250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현대의 치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해서 망가졌는지 이해하지 않고서는 다시 온전해질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해보라. 책은 의식이 없지만 살아있으며 이 책이 무언가를 하려 한다고 말이다. 작가의 첫째 임무는 책이 하려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


"영국과 미국의 문학 시장은 정말이지 전혀 다르다. 영국에서는 주목받는 책의 범위가 넓으며 다양한 주요매체(BBC 프로그램, 여러 신문과 집지, 문학 축제 등)에 서평이 실린다. 미국은 인구가 더 많지만 문학 시장은 더 협소하다. 문학 작품을 다루는 매체는 놀랄 만큼, 부끄러울 만큼 적다. 서평으로 책 판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문은 오직 하나, <<뉴욕 타임즈>> 뿐이다. <<워싱턴 포스트>>같은 신문에서 내 책을 극찬했는데도 미국 내 판매량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애석한 일이다."


"내가 물려받은 유산은 두 가지다. 나는 그리스 비극을 쓰는 신고전주의 작가다. 내가 그리는 인물은 무의식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또한 나는 미국의 풍경 묘사 전통에 속해 있다. 외부의 자연 풍경을 묘사하면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기본적으로 풍경을 통해 그리스 희곡을 쓰는 작가다. 풍경 묘사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으로는 코맥 매카시의 <<핏빛 자오선>>, 애니 프루의 소설, 매릴린 로빈슨, 토니 모리슨, 플래너리 오코너, 캐러신 앤 포터 등이 있다. 하지만 매카시와 프루는 드라마와 비극에서는 죽을 썼다. 오코너는 인물 간의 극적 갈등을 그리는 솜씨가 최고다." 

- <<Axt>>(2017. 11/1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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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자의 춤 Dance of the happy shades

앨리스 먼로 Alice Munro (지음), 곽명단 (옮김), 문학에디션 뿔, 2010


앨리스 먼로. 작가로 데뷔한 직후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로 읽은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집. 

1968년에 출간된 그녀의 첫 단편집. 

'옮긴이의 말'에서 옮기자면, '여러 해 동안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다'는 소설집.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문학적 명성을 안겨준 책이다.

젊었던 그녀가 쓴 단편들이 모인 책이다.


로이스는 치맛자락을 떨어뜨리고 손바닥으로 내 따귀를 후려쳤다. 나를, 아니 우리 둘을 건져준 따귀였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한바탕하고야 말겠다고 내내 벼르고 별렀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 156쪽 


이 짧은 문장만으로 이 소설집, 혹은 이 단편, <태워줘서 고마워 Thanks for the Ride>를 전달하긴 어렵겠지만, 보이지 않는 내일보다 지금, 당장, 오늘 밤을 쓸쓸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젊음들이 서로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갈등을 해소하는 장면으로는 최고가 아닐까. 


1950~60년대 캐나다의 작은 도시들, 어쩌면 그보다 더 작은 마을들을 배경으로 앨리스 먼로는 누구나 겪게 되는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전에 읽었던 그녀의 단편집에선 우리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소설집에선 성장하면서 결국 홀로 부딪히며 극복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어쩌면 먼로의 경험담이 묻어나온 건 아닐까.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소설집에 비해 더 쓸쓸하고 외롭고 거칠고 황량하다. 누군가의 죽음을,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나가거나, 그래서 결국 실수하게 되고 후회하고 아파한다. 적당한 착각과 위로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거짓임을 아는 까닭에 독자들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거나, 알게 될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는 자신의 옛 기억을 떠올릴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가끔 대도시에서 태어나 대도시에서 살다가 대도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이들의 감수성이 궁금하기도 하다. 앨리스 먼로의 감수성은 지방 중소 도시의 그것이다. 한 두 명만 건너면 다들 아는 어떤 공간.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 결국엔 포기하거나 잊거나 모른 척하거나, 그러면서 인생이 내미는 손을 잡고 살짝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석양을 행복하게 바라본다고나 할까. 결국 아프지만, 아팠지만, 지금 옆에 누군가 있긴 하니까. 앨리스 먼로의 소설이 가진 장점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난 다음 쓸데없이 우울해지거나 시니컬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어느 소설보다 더 산뜻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지도 모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하면서. 








행복한 그림자의 춤 - 10점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뿔(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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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Antonis Samarakis (지음), 최자영(옮김), 신서원, 1997 




전후 그리스 소설이 번역된 것이 드물었던 탓에 1997년에는 꽤 주목받았던 듯싶은데, 지금은 거의 읽히지 않는 듯 싶다. 번역자 또한 소설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이라가 아닌 탓에, 번역된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라키스를 한국에 소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찬사를 받아야 할 것이고 사라마키스의 소설은 다소 거친 번역 속에서도 유쾌하고 감동적이며 왜 뒤늦게 이 소설을 읽었을까 하는 후화까지 하게 만든다. 


전후 그리스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그러나 그리스는 고대의 그리스가 아니다. 마치 이집트처럼. 서구 문명의 시작이었으나, 20세기 그리스는 격랑의 현대사 중심에서 벗어나오지 못한 채 침몰과 구조를 번갈아 가며 겨우겨우 버티고 서 있다. 그 현대사를 고스란히 겪고 이를 소설로 쓴 안토니스 사라마키스. 그는 20세기 초반 유럽을 비극적으로 물들인 전체주의를 극도로 혐호하며 문학의 가치와 자유의 중요함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 <<면도>>의 초반 몇 편의 단편들보다 후반 단편들 - 정치적 메시지가 분명하고 노골적인 - 이 훨씬 감동적이다. 아마 그의 생애 전반이 전체주의와 독재 정권과의 갈등과 싸움의 연속이어서 그럴 지도 모르리라. 


디미트리스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묻힌다. 모두들 달려들어 그를 에워쌌다. 그를 가슴으로 껴안는다. 먼저 그의 어머니 엘레니. 너무 꼭 껴앉은 탓에 저고리 단추 하나가 수갑에 끼어 떨어져 나갔다. 그 다음 모두들, 모두 같이, 어떤 이는 안고, 어떤 이는 입맞춤하고, 어떤 이는 말을 건넨다. 

"우리 디미트리스!"

기쁨이 가득한 이런 장면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환희에 찬 인생.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춤을 춘다. 모두들 무엇 때문에 오늘 저녁 여기 모였는지를 잊어버렸다.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잊어버렸다. 내 마지막 장례를 위해 이리로 왔다는 것을. 내 아들 디미트리스가 내 것을 훔쳐가 버렸다. 그런데 나도 나 자신을 잊어버린다. 내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모두가 나누는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본다. 육칠 미터 저만치 떨어진 곳. 저 쪽에 서서 그를 쓰다듬고, 웃고, 눈짓으로 가슴으로 말을 건넨다. ... 잘하는 일이다! 나는 괜찮다. 나 에브리피디스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의 보잘 것 없는 주검일 뿐. 그러나 저기 저 디미트리스. 내 아들 디미트리스는 삶. 바로 그것이다. 삶의 아름다움이요, 희망이다. 언젠가 우리의 삶이 더 나은 것으로 탈바꿈하고 조금이라도 덜 비인간적이 될 것이라는 희망. 

- 137쪽 ~ 138쪽 


반정부 투쟁을 하다가 잡혀들어간 아들. 그 아들이 수갑을 찬 채 뒤늦게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다. 아버지의 관 뚜껑은 닫히지 않았고 사람들은 기다리던 그 젊은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슬픔은 사라지고 미래의 희망이 싹튼다. 다시 구치소로 가게 될 터이지만, 디미트리스는 괜찮다. 이미 죽은 아버지는 그 아들을 보며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기뻐한다. 그가 삶이며 희망이라며. 짧은 단편의 한 부분이나, 사마라키스의 소설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쩌면 안토니스 사라마키스의 삶도, 문학도 그랬는지도 모른다. 전후 그리스 소설가들 중에서 가장 널리 해외에 알려진 작가이기도 한 그는 현대 유럽의 참여 문학이 어떤 것이 알려준다. 실존주의 소설가들이 개인의 고독과 사색에 파묻혀 결국엔 누보로망으로 이어졌으나, 안토니스 사라마키스는 우리가 왜 사는지,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이름없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드러낸다. 


그래서 그는 삶의 가치와 죽음에의 거부를 주장한다. 


"아무 가진 것이 없다 해도, 세상 어딘가에는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게 해주고,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당신은 존재할 가치가 있으며, 아무도 아무것도 누구도 당신을 부정하지 못한다!"

"당신은 스스로 죽을 권리가 없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게 해주고,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단 한 사람이라 해도 그는 당신을 삶으로 끌어낸다. 삶과 동시에 타인과 관계를 맺게 한다. 단 한 사람이라 해도 그는 당신이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의지할 곳이다. 이 단 한 사람이야 말로 당신에게 살 가치를 부여하는 탯줄이다. 고통과 진부함, 걱정과 슬픔과 기쁨이 엇갈리는 지금 이 곳의 일상 속에서 말이다. 그렇다. 당신은 죽음을 택할 수가 없다! 죽음을 택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한 사람과 또 한 사람, 두 사람만 있으면 삶은 의미를 갖는다. 두 사람만 있으면 [죽음을] '거부'할 가치가 있다."

-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거부>> 중에서 


그리고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 전진해야 하고 문학은 가치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문학의 내부로 침잠해 들어간 현대 문학의 주된 경향에 반발하고 전통적인 견지에서의 문학의 가치를 말한 보기 드문 소설가였던 셈이다. 그는 정치적 투쟁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삶을, 고통을, 미래를,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집의 어느 단편에서는 자살을 결심한 어떤 이가 끝내 자살하지 못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건물 바로 밑 거리를 가득 메운 반 정부 시위대 때문이기도 하고 그 아파트의 이웃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은 한 개인의 운명이 그 한 사람의 몫이 아닌 여러 사람들과 연결된 어떤 것임을 사라마키스는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문학은 지고의 위안이다. 인간의 광기와 생존 경쟁의 거칠고 암담한 지평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진부한 일상과 사회생활의 혼선과 갈등 속에서 문학은 오로지 위안을 가져오고 신비로운 환희로 우리에게 용기를 심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사이에 깊디깊은 이해의 다리를 잇는 것이다. 독자듥돠 말이다. 문학은 대화의 시작이다.

가치있는 문학은 독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독자와의 연결고리다. 문학은 친구가 내미는 손이다. 따라서 응답 없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문학과 예술의 마력은 타신의 손, 독자의 손이 당신 손에 뜨거운 우애로 와닿을 때 나타난다. 문학은 밤의 메이라이며 암속 속에 외침이다. 메이라가 없으면 모든 것은 무의미하며 미완성일 뿐이다. 

- 234쪽 


책 말미에 실린 사라마키스의 자서전은 현대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문학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며, 우리 삶은 어떻게 흘러왔는가를 한 번 돌이켜보게 만드는 글이 될 것이다. 헌책으로는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구해서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새로 출간된 신간으로도 구할 수 있다. 나 또한 사라마키스의 다른 소설들도 읽을 생각이니까. 




안토니스 사라마키스 기념 우표. (현대 그리스 문학에서의 사라마키스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아래 책은 역사 관련 학술서적을 전문적으로 내는 신서원에서 1997년에 전집 형태로 번역 출판된 이후 절판되었다. 그리고 2006년에 다시 <<손톱자국>>이라는 제목으로 그림글자라는 출판사를 통해 두 권으로 다시 출간되었고 지금도 새 책으로 구할 수 있다.  

면도 - 8점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지음, 최자영 옮김/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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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공부 How I Learn Languages 

롬브 커토(지음), 신견식(옮김), 바다출판사, 2017 



아무도 내 말을 못 알아들으니 내가 여기서 야만인이다(Barbaus hic ego sum, quia non intellegor ulli). 

- 오비디우스 




설마 이 책을 통해 외국어를 잘하게 되는 숨겨진 비결, 혹은 공부하는 방식이나 자료를 얻으려고 한다면 오산이다. 도리어 저자는 정공법을 이야기한다. 가령 '반복은 공부의 어머니다Repetitio est mater studiorum'같은 라틴 격언을 인용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언어 공부에 유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도리어 어떤 이들에겐 이 책은 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열정적 권유가 될 수도 있다. 왜냐면 언어에는 천재가 없다고 말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언어 공부를 권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스스로 '언어 천재'라고 믿어라고 말한다. 


책은 의외로 짧고 쉽게 읽힌다. 헝가리인인 롬브 커토는 언어를 공부해온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언어 공부에 대한 간단하지만, 중요한 방향을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하며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말기를 원한다. 이런 측면에서 언어를 사랑하고 언어를 배우길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귀중한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 나 또한 몇 년째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왜 늘지도 않는 영어를 하고 있을까 스스로 묻곤 하지만, 영어책 읽는 게 때론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나, 독해가 일상 영어 회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저것 다 하라고 말한다. 도리어 독해를 언어를 배우는 첫 번째 과정에 넣기까지 한다. 시작은 제대로 된 셈이지만, 내가 거쳐온 학교 교육은 외국어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기에 부족했던 것이다. 하긴 중고등학교 과정의 어느 교과목인들 안 그럴까. 모든 교과과정이 학생들에게 열정을 불어넣기 보다는 진정한 공부와 연구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롬브 커토는 책 말미에 언어공부를 위한 열가지 규칙을 언급한다. 이 열가치 규칙(십계명)만 잘 지켜도 언어 공부의 성과는 한결 좋아질 듯 싶다. 나부터 실천해보기로 할까. 


하나. 

언어를 매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라. 시간이 짧다면 최소한 10분짜리 독백을 만들어보라. 이 점에서는 아침 시간이 특히 소중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말을 잡는다!

둘. 

학습을 향한 열정이 너무 빨리 식어버린다면 공부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되, 한 번에 그만두지도 마라. 다른 방식의 공부로 옮겨가라. 예컨대 독해를 하는 대신에 라디오를 듣거나 작문을 하는 대신에 사전을 뒤적이거나 해도 좋다. 

셋. 

말을 고립된 단위로 익히지 마라. 그보다는 문맥 속에서 익혀라 

넷. 

교재 구석에 쓸만한 표현을 적어놓고 대화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요소'로 사용하라 

다섯. 

뇌가 피로에 지쳐있다면 번쩍하고 지나가는 광고 표지판, 현관의 번지수, 엿들은 대화의 단편적인 내용 등을 재미로 번역해보라. 휴식이 되고 긴장이 풀린다 

여섯. 

교사가 고쳐준 것만 암기하라. 교정 및 수정을 받지 않았다면 자기가 쓴 문장을 계속 공부해선 안 된다. 실수가 머리 속에 뿌리 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혼자 공부를 한다면 암기하는 각각의 문장은 오류의 가능성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 

일곱. 

관용적 표현은 늘 일인칭 단수로 암기하라.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I am only pulling your leg."(나는 너에게 장난을 치는 것 뿐이야)

여덟. 

외국어는 성곽이다. 전방위에서 포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문, 라디오, 더빙되지 않은 영화, 기술 문서 혹은 과학 논문, 교재, 이웃의 방문객 등 모든 것을 활용하라. 

아홉. 

실수가 두렵다고 말하는 것을 꺼리지 말되, 틀린 것은 대화상대자에게 고쳐달라고 요청하라. 상대가 정말로 고쳐줄 가능성은 희박하겠으나 도와줄 때 혹시라도 짜증을 내면 곤란하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열. 

스스로 언어천재라고 굳게 믿어라. 실은 그 반대라는 게 드러난다면 통달하려던 그 성가신 언어나 여러분의 사전들 혹은 이 책에 불만을 쌓아두라. 스스로를 탓하지 마라. 

(198쪽 - 200쪽) 



언어 공부 - 10점
롬브 커토 지음, 신견식 옮김/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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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History - a very short introduction

Dana Arnold, Oxford, 2004 




그러고 보니, 원서를 통독한 것은 참 오랜만이다. 그만큼 읽기 쉬운 평이한 문장으로 되어있기도 하고 책 제목 그대로 introduction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거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 책의 장점은 다양한 관점에서 미술사(art history)를 조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사와 예술 비평에 대한 비교나 예술작품감정(Connoisseurship)에 대한 언급도 있으며, 신미술사(New art history)나 철학사의 영역에서 바라보는 예술작품, 또는 예술사도 포함시키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설명들이 명확하고 단순하게 언급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데리다의 <<The Truth of Painting>>를 설명하기도 하고 도상해석학이 등장하기도 한다. 약 100페이지 남짓한 짧은 책에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언급하고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Dana Arnold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What is art history? 

Writing art history 

Presenting about art history

Reading art

Looking art 


이 책의 목적은 명확하다. 


This book is intended as an introduction to the issues and debates that make up the discipline of art history and that arise from art history's central concerns - identifying, categorizing, interpreting, describing, and thinking about works of art. (이 책은 미술사라는 학문을 구성하는 동시에, 미술사의 중점 관심사들 - 예술작품들에 대해 정의하고, 분류하며, 해석하고 묘사하고 사유하는 것 - 로부터 생겨난  쟁점들과 논쟁들을 소개하기 위해 씌여졌다)


하지만 예술작품만 보자면, 어쩌면 이 책은 필요없을 지도 모르겠다. 


This kind of visual material can have an autonomous existence - we can enjoy looking at it for its own sake, independent of any knowledge of its context, although of course viewers from different time periods or cultures may see the same object in contrasting ways. (이러한 종류의 시각적 소재들은 자율적인 존재를 가질 수 있다 - 우리는 그것들의 콘텍스트(배경)에 대한 어떤 지식들에 의지하지 않고, 심지어 다른 시대나 다른 문화권에서 온 관람자가 똑같은 대상을 전혀 다른 반대의 방향의 보게 될 지라도, 작품 그 자체로 보는 것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난 다음 뒤따르게 되는 질문들, 누가 만들었지? 이 작품의 주제는? 언제 만들어진 걸까? 등에 대한 일련의 활동이 모여 예술사라는 학문이 된 것일지도.  


미술사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추천할 만하다. 다수의 도판이 나오며 미술사의, 최신 논쟁이나 주제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 번역된 여타 책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신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아래 글은 꽤 의미심장해 옮겨본다. 


The Dinner Party

Judy Chicago

1979, 브룩클린 미술관 소장 

https://www.brooklynmuseum.org/eascfa/dinner_party/home (The Dinner Party에 대한 다양하고 자세한 자료를 읽을 수 있다) 


My idea for The Dinner Party grew out of research into women's history that I had begun at the end of the 1960s ... the prevailing attitude towards women's history can be best summed up by the following story. While an undergraduate at UCLA, I took a course titled the Intellectual History of Europe. The professor, a respected historian, promised that a the last class he would discuss women's contributions to Western thought. I waited eagerly all semester, and at the final meeting, the instructor strode in and announced: 'Women's contributions to European intellectual history: They made none.'

I was devastated by his judgement, and when later my studies demonstrated that my professor's assessment did not stand up to intellectual scrutiny, I became convinced that the idea that women had no history - and the companion belief that there had never been any great women artists - was simply a prejudice elevated to intellectual dogma. I suspected that many people accepted these notions primarily because they had never been exposed to a different perspective.

As I began to uncover what turned out to be a treasure trove of information about women's history. I became both empowered and inspired. My intense interest in sharing these discoveries through my art led me to wonder whether visual images might play a role in changing the prevailing views regarding women and women's history. 

- Judy Chicago, The Dinner Party (1996) pp.3-4 (25쪽 - 26쪽) 




* Art History를 미술사로 옮기고 art work를 예술작품으로 옮겼는데, 이는 미술작품이라고 하면 painting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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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CEO (CEO: The Low Down on the Top Job)

케빈 켈리(지음), 이건(옮김), 세종서적, 2010년 




일반적인 궤도를 그린 직장 생활이라기 보다는 중구난방으로 부딪히며 이 일 저 일 해온 탓에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가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접었다. 나만의 사업을 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종류의 일임을 새삼 깨닫은 탓이기도 하고 살짝 포기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류의 책이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탑 레벨에서의 의사결정 구조나 리더십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만 조직 생활이 가능하고 중간 관리자로서의 모범을 보일 수 있다. 


글로벌 헤드헌팅 회사의 CEO인 케빈 켈리는 자신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CEO들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쓴다. CEO란 누구이고 CEO는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막상 읽어보면 여느 경영 서적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CEO를 꿈꾸는 이들에게 약간의 도움은 될 듯 싶다. 


물론 CEO의 역할에 대한 편견이 반영되어있을 수도 있다. 이 중 첫 번째는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은 오해가 발생하기 쉽지만, 그래도 제대로 관리해야 하는 요소이다. 두 번째는 보상이다. 금전적인 보상에 그치지 않고 모든 직원에게 긍지를 심어주어 매일 아침 업무 의욕을 느끼게 해야 한다. (... ...) 변화 역시 중요한 주제이다. 찰스 다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힘센 종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고, 가장 똑똑한 종이 생존하는 것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용하는 종이 생존한다."

결국 변화를 관리하고 맞서며 소통하는 방법이 관건이다. (10쪽 ~ 11쪽) 


새로 CEO가 되고 CEO로서 어떤 역할을 중요하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취임 초기 단계에 CEO가 집중해야 할 것은 다음 여섯 가지이다. 

1. 사기 진작 Mastering morale: 사람들의 감정을 파악한다. 

2. 대화 Talking the talk: 끊임없이 세심하게 의사소통한다.

3. 최고 경영팀 구성 Assembling the team: 리더십은 팀워크이다. 

4. 실행 Action: 직중에서는 실행이 중요하다. 그러나 집중하라. 단지 실행을 위한 실행보다는 신중한 실행이 낫다. 

5. 일화 만들기 Writing your own legend: 상징적 행동을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6. 기업문화 바꾸기 Culture check and change: 먼저 기업 문화를 이해한 다음에 바꾸어야 한다.

(79쪽)


그러고 보면 조직의 리더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모든 의사결정에 다 관여하거나 책임을 지면서 이사회나 대주주와의 정치적 우호 관계로 제대로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CEO가 되면 맞부딪히게 되는 여러 문제들과 해결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평면적이거나 예상되었던 문제이거나 해결책이기 때문에 다소 독서의 긴장이 떨어지기도 한다. 더구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디디'와 '고고'를 매춘부로 옮긴 건 치명적이다. 누구의 잘못이든 간에. 편집 과정 상의 실수는 책 전체적인 질이나 분위기까지 망친다. 그럼에 불구하고 리더십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워렌 베니스의 '핵심성과지표'는 리더가 조직을 운영할 때 관심을 기울여야 할 요소를 한 눈에 정리하고 있어, 옮겨본다. 



워렌 베니스의 핵심성과지표 Key performance indicators 

1. 조직이 잘 정렬되어 있는가? 이는 직원 전체가 성공의 기준을 동일하게 생각하느냐는 뜻이다. 

2. 적응력이 있는가? 다시 말해서 복원력이 있는가? 미래를 내다보면서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해야 하며, 거듭된 성공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3. 재무실적이 있는가? 시가총액이든 투자수익률이든, 기업 인수나 매각의 성패는 상관없다. 재무 실적의 척도로 무엇을 사용하는,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4. 미래의 리더 집단을 양성하고 있는가? 멘토제도mentoring system를 유지하고 있는가? 

5. 직원들이 의욕적이고 활기차며 업무에 몰입하고 권한은 있는가? 

6. 조직이 투명하고 개방적인가

7.연구개발에 자원을 얼마나 투입하는가? 

(87쪽 ~ 88쪽) 



전체적으로 서술은 평이하고 쉽다. 짧고 간결하기 때문에 읽기 부담 없다. CEO에 관심 있는 이들은 한 번 읽어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벌거벗은 CEO - 8점
케빈 켈리 지음, 이건 옮김/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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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김석철(지음), 창작과비평사, 1997년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책이라니, 새삼스러웠다. 그러나 이 책에 소개된 건축물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이야기들도 변하지 않았으니, 좀 오래된 책이라고 그 재미와 감동은 그대로일 것이다. 또한 건축가인 저자의 글솜씨도 나쁘지 않고 내용은 어렵지 않으며 짧은 분량으로 상당히 많은 건축물들과 건축 공간을 이야기하고 있어 여행을 좋아하거나 건축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상당히 실용적이기도 하다. 


나름 건축물들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는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간과했던 몇 개의 건축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세신궁이나 자금성 같은. 


이세 지역의 신궁은 일본의 신성함과 국가의 단일성을 과시하기 위해 기원전 1세기경에 계획되었다. (... ...) 그 옛날의 목조건물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는 것은 식년천궁(式年遷宮)의 전통 덕분인데, 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건물을 다시 짓고 신을 옮기는 의식을 말한다. 이세 신궁의 경우 20년마다 천궁을 했는데 천궁을 할 때는 이전 건물을 해체하고 그 터를 남겨둔다. (98쪽) 


2000여년전 지어진 목조건물이 아직도 그대로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더구나 이 건물을 짓기 위해 해마다 나무를 심고 있으며, 그렇게 심어진 나무는 200년, 300년 후 새로 지어질 이세신궁을 위해 씌여질 것이라고 한다(아마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두 번쯤은 이세 신궁을 애니메이션 안에서 보았을 것이다). 가끔 일본이 놀라운 것은 이런 면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새로 지은 건물(아래쪽)과 곧 헐릴 낡은 건물(위쪽) -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D%B4%EC%84%B8%EC%8B%A0%EA%B6%81)


베이징의 자금성은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가 머물던 곳이다. 현재의 자금성은 그 규모나 크기 면에서 여느 나라와 궁궐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경복궁을 떠올리면 다소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자금성은 그대로 보존된 반면 경복궁은 그 원형이 많이 훼손되고 다른 궁궐과도 떨어져 조선 시대의 모습 그대로라 보기 어려운 면도 있어 문화재나 역사적 건축물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자금성은 명대의 성조가 20~30만 명의 민간인과 군대를 동원해 140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4년에 걸쳐 건설한 황궁이다. 청조에는 부분적인 중건과 재건이 있었을 뿐 전체적인 배치는 변동이 없었다. '천하의 모든 노력을 다하여 황제 한 사람을 받든다'라고 할 만큼 500여 년간 부단히 고쳐 지어졌고 인력과 물력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요되었다. (232쪽) 



자금성  (출처: https://en.wikivoyage.org/wiki/Beijing/Forbidden_City


자금성과 경복궁은 비슷해 보이나, 그것이 놓인 위치나 그것의 구조나 철학은 서로 다르다.  어쩌면 서로 붙어있었으나,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국과 한국 상당히 다른 나라였음을 이 두 궁궐을 비교해봄으로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조의 정도(定都) 당시의 기록을 보면 도시 설계과정의 기록이 모호해서 답답할 때가 많다. 한양의 도시 모델은 뻬이징이 아니라 <<주례>>의 <고공기>였다. 서울과 경복궁이 많은 부분에서 베이징과 자금성을 원형으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정도전 등은 단순한 모방이 아닌 <고공기>의 논리와 도가의 원리에 의해 한양을 설계하였으므로 실제의 도시와 건축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베이징과 서울은 다른 도시이고 자금성과 경복궁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건축형식에서도 공법은 같으나 건축미학에서는 독자의 모습을 갖고 있다. 자금성에는 인간이 만든 기하학과 빈 하늘만이 있는 반면 경복궁에는 북한산과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형국이 궁성과 하나가 되어있다. 자금성은 자연을 가지려 하고 경복궁은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한다. 자금은 스스로가 원점의 공간으로 주변의 자연에 상관하지 않는 독존의 질서를 가진 데 비해 경복궁은 주변의 토지형국과 자연의 흐름이 하나가 된 건축군을 이루고 있다. 자금성은 <<주례>>의 <고공기> 원리가 대공간군을 이룬 기하학적 질서의 공간이며 경복궁은 유교의 공간형식과 도가의 철학이 함께 한 유기적 질서의 공간이다. (238쪽 - 240쪽)

경복궁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A%B2%BD%EB%B3%B5%EA%B6%81_%EC%A0%84%EA%B2%BD.jpg)


그 다음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도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의 주거를 지배하는 아파트의 초기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은 다 사라지고 공장스러움만 남아 흉물스럽기까지 한 한국의 아파트 건물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 - 1965)의 중후반기 대표 작품인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s d'habitation)은 165m의 블록에 높이 56m의 단일 건물로 337개의 주거단위를 갖고 있다. 각각의 주거단위는 복층형태이며, 총 1800여 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고층 집합주거이다. 특히 이 건물은 다음과 같은 그의 다섯 가지 건축원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첫째 개방된 지층 공간(필로티), 둘째 옥상정원, 셋째 자유로운 평면, 넷째 가로의 긴 창, 다섯째 자유로운 건물 정면 

이를 통해 벽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존의 조직적 구조물에서 탈피하여, 철근 콘크리트 기둥을 이용해 건물의 고층화와 구조적인 독립을 가능하게 했다. (280쪽) 


1997년과 달리 지금은 워낙 좋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기도 하거니와, 해외 여행이 일반화되어 이 책에서 언급되는 많은 건축물들을 실제로 본 이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다만 여행을 가기 전에 이런 책을 한 두 권 읽는 것이 좋을 듯하며, 이 책은 여러모로 상당히 유용한 책이다. 


오랜만에 르 꼬르뷔지에의 건물 사진을 보면서, 필로티 - 경주/포항 지진으로 널리 알려진 - 형식이 르 꼬르뷔지에의 창안임을 잊고 있었음을 알았다. 하긴 르 꼬르뷔지에의 필로티는 지층 공간의 자유를 위해 기획되었는데, 한국에서의 적용은 주차장이거나 통유리창으로 이루어진 커피숍이나 상점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르 꼬르뷔지가 지금 한국에 와서 저 무수한 빌라와 아파트 건물들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 8점
김석철 지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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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한계 On Being Certain 

로버트 버튼(지음), 김미선(옮김), 더좋은책 




사고는 항상 더 어둡고, 더 공허하고, 더 단순한 우리 감각의 그림자이다. 

- 니체 



책을 읽으면서 노트를 하고 노트된 것을 한 번 되집은 후 책 리뷰를 쓰면 좋은데, 이 책 <<생각의 한계>>는 완독한 지 몇 달이 지났고 노트를 거의 하지 못했으며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탓에 정리하기 쉽지 않았다. 특히 종교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땐 꽤 흥분하면서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로버트 버튼도 우리의 기억이 변화하고 조작된다는 사실을 이 책 초반에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명확하다. 우리가 안다라고 할 때, 그것은 감각적인, 일종의 느낌일 뿐이지, 흔히 말하는 바 논리적인 것이거나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느낌feel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편의상 나는 거의 동류에 속하는 확신certainty, 옳음rightness, 신념conviction, 맞음correctness의 느낌들을 한 덩어리로 모아 '안다는 느낌feeling of knowing'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로 했다. (19쪽) 


도대체 우리가 안다고 할 때 아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알아서 어떤 행동을 할까? 논리적 추론이라든가, 분석, 혹은 이성적 행동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일컬어 지는 사고나 행동도 실은 시시각각 변하는 감각적 경험에 의한, 일종의 경향일 뿐임을 알게 된다. 


프로야구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속도는 시속 130에서 160킬로미터에 달한다. 공이 떠나는 순간부터 본루를 지나는 순간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0.380에서 0.460밀리초이다. 공이 떠나는 상이 망막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스윙이 시작하는 순간까지 최소 반응 시간은 대략 200밀리초이다. 스윙에는 160에서 190밀리초가 더 걸린다. 반응시간과 스윙시간을 합친 시간은 대략 속구가 마운드를 떠나 본루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과 맞먹는다.(107쪽)


생각할 틈이 없다. 그냥 무턱대로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거다. 일종의 본능적이거나 감각적인 것이다. 


저자 로버트 버튼은 다양한 관점에서, 많은 이들의 견해들을 인용하면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우리가 안다고 할 때의 그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출간된 후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이 책은 우리의 믿음이나 확신, 소위 '이성'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말한다. 


이성은 전통적으로 대개 생각하듯이 몸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 몸, 그리고 신체적 경험의 본질에서 일어난다. ... ... 우리로 하여금 지각하고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과 똑같은 신경 기제와 인지 기제들이 우리의 개념 체계와 이성의 양식들도 만들어낸다. 이성을 이해하려면, 우리의 시각계, 운동계, 그리고 신경결합에 바탕이 되는 일반적 기제들의 세부사항을 이해해야 한다. 이성은 우주의, 또는 신체에서 분리된 마음의 초월적 특성이 아니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우리 인체의 특색에 의해 우리 뇌가 가진 신경 구조의 놀라운 세부 사항들에 의해, 우리가 세계 속에서 날마다 하는 특정한 움직임에 의해 형성된다. 

몸에서 분리된 사고는 생리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 정신적 감각과 지각에서 자유로운, 순수하게 이성적인 마음도 마찬가지다. 

- 조지 라코프George Lakoff, 마크 존슨Mark Johnson, <<실물로 본 철학: 체화된 마음과 서구 사상에의 도전 Philosophy in the Flesh: The Embodied Mind and its Challenge to Western Thought>> 중에서 


결국 우리는 매사에 조심해야 된다. 신중해야 하며 끝없는 회의주의적 태도를 견지해야 된다. 그러나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그것을 고려한 채 조심스러운 회의주의적 삶을 살아야 된다. 


"나쁜 소식은 우리 자신을 알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제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단숨에 결론까지 도달하는 뇌의 영역인 적응 무의식adaptive unconscious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있는 길은 전혀 없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 대부분 의식 밖에서 작동하도록 진화해왔고 ... ... 그러므로 무의식의 정신작용에 직접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대개 우리의 자발적인 행동들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일으키는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 티모시 윌슨Timothy Wilson, <<나는 내가 낯설다 Strangers to Ourselves>> 중에서 


아마 종교나 신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아무리 신앙이나 믿음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지에서 공격하더라도 ... 


"공간과 시간이 경계가 없는 닫힌 곡면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또 우주의 문제에서 차지하는 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깊은 관련을 가지게 된다. ... ... 우주에 시작이 있는 한, 우리는 우주의 창조가가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우주가 실제로 안전히 자급자족하고 경계나 끝이 없는 것이라면, 우주에는 시초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주는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창조자가 존재할 자리는 어디일까?" - 스티븐 호킹 (282쪽) 



저자 로버트 버튼의 홈페이지: http://www.rburton.com/






생각의 한계 - 10점
로버트 버튼 지음, 김미선 옮김/더좋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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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모험

헤르만 헤세(지음), 이인웅(옮김), 올재클래식스, 2018년 




"나는 작가의 역할이란 무엇보다도 회상시켜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를 통해 무상하게 사라져 갈 일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며, 말을 걸어 불러내고 사랑에 찬 서술을 함으로써 지난 과거의 일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옛날의 관념론적 전통에 따라 작가의 임무에는 어느 정도 선생님이나 경고해주는 사람이나 설교자로서의 기능이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교훈을 준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언제나 우리 인생에 혼을 불어넣기 위한 독려의 의미로 생각하고 있다." 



"사물을 관조하는 일이란 연구하거나 비평하는 것이 아니다. 관조란 바로 사랑이다. 관조한다는 것은 우리 영혼의 가장 고귀하고 가장 소망할 만한 상태로서, 아무런 욕구가 없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권두에 실린 역자의 헤르만 헤세 소개글에 인용된 위 두 문장은, 어쩌면 헤르만 헤세의 문학세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듯 싶다. 10대 중반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 - 1962)를, 40대 중반이 되어 읽었다. 다시 읽었다. 아, 이 얼마나 아찔한 일인가. 





매일 아침 9호선을 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저녁이나 한밤 중에는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정해진 동선을 따라 왼손에 최초의 모험을 들고 이동했다. 내가 맞이하는 매 순간은, 나에게 있어 익숙한 일상이지만, 최초의 순간이며, 어쩌면 모험과 같은 것이다, 수백년 전의 일상과 비교한다면. 


그러나 모든 것들은 식상해졌으니, ... ... 



루드비히는 연주를 계속했고, 그녀는 넓고도 검은 수면이 커다란 박자로 물결치는 것을 보았다. 거대하고 강력한 새 떼가 태고 시대처럼 침울하게 쏴쏴 날개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폭풍이 둔탁하게 울리며, 때로는 거품이 이는 물보라를 공중으로 뿜어올렸는데, 물보라는 수많은 작은 진주가 되어 흐트러졌다. 파도와 바람과 거대한 새 날개의 쏴쏴 하는 소리 속에 무엇인가 비밀스러운 소리가 함께 울렸다. 때로는 소리 높은 격정으로, 때로는 갸날픈 어린 아이 목소리로, 하나의 노래가, 은밀하고 사랑스러운 멜로디가 울려나왔다. - 어느 소나타Eine Sonata 중에서



헤르만 헤세는 그대로였고, 전엔 읽히지 않던 부분까지 읽혔다. 실은 이렇게 로맨틱했나 하고 생각했다. 다소 낯선 문장 스타일로, 그가 겪었던 시대와 달리 애정어린 시선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양이 마치 19세기 초 유럽을 떠올리게 하였다. 굳이 따지지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벨 에포크와 연관지을 수 있겠지만, 카프카(1883 - 1924)의 세계와 헤세의 세계를 같은 동시대를 이야기했다고 보기 어려우니, 비평적으로 헤세는 소외당하고 무시당한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마치 스트라빈스키 같다고 할까. 복고풍의 세계로, 우리를 아련한 과거로, 혼란스럽지만 언젠간 정리되고 해결되고, 다시 그와, 그녀와 사랑을 하고 행복하게 될 어떤 일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점에서 헤세의 이 산문집은 약간의 위로가 되었고 약간의 휴식이 되었으며 살짝 쓸쓸하기도 했다. 


수십 년 전엔 심야 라디오를 듣다 보면, 헤세의 여러 소설들에 대한 광고가 나오기도 했다. 자주. 다들 헤세를 읽는 거의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졌고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헤세의 책 옆으로 짝사랑하던 여고생을 향해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쓸쓸하긴 매 한 가지지만, 강도로 따지지만 지금이 더한 것같으니,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한 자리에 서서 언제나 '날 좀 바라봐줘'라고만 하는 듯 싶구나. 


활자가 작진 않지만, 빽빽했다. 독서의 속도는 느렸고 세상은 빠르게 흘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달이 지나버렸다. 아마 그렇게 이 세상과 작별했던 헤세의 나이가 되겠지. 그 전까지 나는 얼마나 더 쓸쓸해야만 하는 걸까. 그러게 말이다. 



* * 



내가 알기로 올재클래식스는 예전에 번역되어져 나온 고전들 중, 시중에서 해당 번역서를 구할 수 없고 원 저작권도 사라진 책들을 역자들과 협의하여 기본 비용만으로 정가를 책정하고 유통하는 전집이다. 주로 사회 복지시설이나 도서관 등 우선 공급하고 일부만을 교보문고에서 판매한다. 어떤 책들은 시장성이 낮아 구할 수 없는 책들도 나오기도 하는데, 워낙 가격이 저렴하여 출판되고 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품절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아, 검색되지도 않는다(얌체같은 이들은 버젓이 올재 클래식스 책을 고가로 중고로 판매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점 한 가운데 쌓여있던 이 책을 바로 구입했다. 일종의 횡재였던 셈. (가격은 2,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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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Close Range: Wyoming Stories 

애니 프루Edna Annie Proulx(지음), 조동섭(옮김), media 2.0,2006년 





잭이 말했다. "이 생각을 해봐. 나도 이번 한 번만 말하겠어. 있지. 우리는 같이 잘 살 수도 있었어, 진짜 좆나게 잘. 에니스, 네가 안 하려고 했어.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브로크백 마운틴 산 뿐이야. 거기 몽땅 다 있어. 우리가 가진 건 그것 뿐이야. 씹할 그것 뿐이라고.(...)" - 345쪽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앞서 읽었던 거칠고 고통스러우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끝까지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 사람들의 군상들과 겹쳐져, 위 문장 쯤에선 눈물이 나올 정도다. 브로크백 마운틴 뿐이라니! 


아마 한국에서 특정 지역을 소재로 애니 프루처럼 소설을 썼다면, 소설이 나오자마자(아니면 대다수가 책 따윈 읽지 않으니 그냥 묻힐려나) 작가에 대한 무수한 인신 공격과 소설에 대한 판매 금지 신청, 소설의 문학성이나 완성도 따윈 이야기할 틈 없이 무참히 공격당하다가 소설가는 끝내 절필 선언까지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법정까지 끌려가 탈탈 털릴 게 분명하다. 해당 지역 사람들이 소송을 걸거나 고발이 들어오거나 자신의 옳고 강직한 소신과 신념을 드러내기 위해 검사가 수사를 진행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이 소설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이 난무하고 (대체로) 여성과 장애인은 인간 대접 받지 못하며 끔찍한 방식으로 대상화된다. 심지어 동성애 장면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그런 묘사가 있다는 걸 정부 관계자들이 안다면 19금 소설로 포장해 판매하라고 할 것이다. 소설들 속에선 다치는 건 늘 있는 일이고 가난은 벗어날 수 없으며 망해가는 목장이거나 트레일러가 그들의 거주지다. 


소설을 읽으면서 묘하게 한국과 겹쳐지는 이유는 문학과 현실의 경계는 어디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정 실존 인물이나 특정 지역 사람들에 대한 문학적 해석과 재창조는 어떤 것일까. 하긴 이 소설을 읽은 미국 사람들이 와이오밍 관광청에 전화를 해서 브로크백 마운틴이 어디에 있는 거냐며 묻는다고 한다(하긴 나도 브로크백 산이라, 어디 있는 거지 하면서 구글 맵에서 찾았으니). 그런데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산이다. 


결국 우리는 꿈을 꿀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잭은 죽고 그의 유언은 브로크백 마운틴에 유골이 뿌려지는 것이었는데. 그 산은 실제론 없다. 


11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거칠고 황량한, 거대한 자연 앞에서 순응하며 인생과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진창The Nud Below>에서 다이어몬드는 어머니에거 '아버지가 누구냐'며 따지지만 끝내 알지 못한다. <목마른 사람들People in Hell Just Want a Drink of Water>에서는 끝없는 호기심과 모험, 도전으로 와이오밍 밖으로 나간 라스가 교통사고로 인해 고향으로 돌어와 죽는 이야기다. 실은 너무 끔찍한 이야기라서 적지 않는 편이 좋겠다. 하긴 이 소설집에서 어느 것 하나 끔찍하지 않은 이야기가 어디 있으랴.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보지 않았으며 그저 애니 프루의 소설이 궁금했을 뿐이다. 읽는 내내 불편했고 끔찍했으며 이 소설집을 읽는 한국 독자들이 궁금했다. 이렇게 폭력적인 세계를 너무나도 태연하게 묘사하는 애니 프루에 대해서 어떻게 여길까. 이 소설이 한국어 쓰여져 출판되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더구나 특정 지역, 특정 사람들을 등장시키며 일반화시킨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이런 식의 단상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내 이야기가 아니라 네 이야기라 찬사를 거듭하는 건 아닐까. 트레일러나 목장에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까닭에, 노골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건 아닐까. 트레일러나 목장 옆에서 지내는 여자아이이거나 성인 여성이거나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 번역되어 나온 건 아닐까. 


가끔 한국이 싫어지곤 하는데, 그건 너무 이중적인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렇지 않아 보이는 이들까지 한 패가 되어. 


결국 우리가 기댈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브로크백 마운틴 뿐이다. 이 세상에선 금지된 꿈이, 용납되지 못할 사랑이 시작되고 화려하게 꽃 피우고 소리없이 묻힐, 저 산 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 - 10점
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Media2.0(미디어 2.0)

내가 읽은 책이다.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 그래서 읽는다면 아래 책으로.  



브로크백 마운틴 - 10점
애니 프루 지음, 전하림 옮김/f(에프)





애니 프루(1935 ~ )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참고로 읽으면 좋을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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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 소설을 읽는 내내, 루시디가 추천하는 몇 권의 책 안에 들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하지만, 다 읽고 난 다음 그가 왜 이 소설을 왜 추천했는지 알게 된다. 


몇몇 이들은 이 소설을 영국의 아동법 등의 여러 법률에 근거한 법과 종교의 문제로 해석하지만, 그건 잘못된 해석이다. 판사가 나오고 소설의 많은 장면들이 법정이거나 법과 관계된 사람들로, 혹은 종교와 관계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이를 법과 종교의 문제, 그 갈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모든 이들이 탁월한 소설 비평가가 될 것이다. 


결국 읽는 이에 따라 소설에 대한 해석은 달리 되어, 터무니없이 낮게 평가되거나 비상식적으로 높게 평가되기도 한다. 나에게 이 소설은 그간 읽어왔던 소설들 중 최고는 아니었지만, 살만 루시디에게 이 책은 최고의 소설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살만 루시디에게는.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피오나와 잭과의 관계. 피오나와 애덤의 관계. 이 두 관계는 서로 만나지 않지만, 이 소설의 큰 두 축이다. 하나는 성관계가 없는 중년의 판사와 교수 부부 이야기이며, 하나는 신앙으로 인해 수혈을 거부하는 한 소년과 수혈 집행 명령을 내리는 판사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관계 없는 듯 하지만,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이 두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그 환경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영향을 받고 어떤 사고를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궁극적으로 어떤 자유를 가지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우아한 몸짓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 속에는 의외로 심각한 주제를 담고 있는 셈이다. 살만 루시디는 이걸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나이를 먹으며 어떻게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는가에 대해 이미 경험했다. 집을 나간 잭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피오나가 다시 잭을 받아들이게 되듯, 애덤은 수혈을 받게 한 피오나의 결정에 대해 찬사를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로 수혈을 거부한다. 이는 수혈 거부에 대한 법적인 기준에 질문이 아니다. 결국 '이것 아니면 저것'(키아케고르)이며, 우리가 종국에는 어떤 행동과 결정을 내리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내외적으로 무수한 갈등과 고민, 방황을 하지만, 이렇게 아니면 저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아마 살먼 루시디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수한 이슬람 사람들을 떠올렸을 것이며, 자신의 무모한 신앙으로 지하드를 감행하는 이슬람의 젊은이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서방에서 태어났건 동방에서 태어났건 상관없이, 결국에는 그들의 조상이 믿었고 그들 가족이 지키고 있는 그 신앙을 따라, 그 자신 스스로의 종교적 신념과 자유의지로 다시 이슬람 근본주의를 향하는, 일부는 지하드를 벌이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었던 셈이다. 아마 루시디는 이 소설 속에서 피오나가 애덤에게 수혈을 명령하는 판결문을 읽으면서 울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판결문은 동시에 애덤이 결국 수혈을 거부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법은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고 결국 우리가 기대게 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일 뿐이다. 그것이 이해가능한 것이든 이해불가능한 것이든. 소설은 결국 우리의 무수한 시도들은 애초에 예정되었던 어떤 행동에 대한 변명만 만들어줄 뿐임을 말한다는 점에서 꽤 비극적이며 소설의 시작으로 다시 돌아온다. 피오나와 잭은 같은 집에 사는 부부이고, 애덤은 예정된 대로 수혈을 거부한 채 죽는 것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독자들은 소설을 덮고 무수한 상념에 빠질 것이지만, 그 뿐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듣는다고 해서 우리가 탁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우리 자신의 문제이며, 우리의 자유 의지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 고민하기 전에, 조언을 듣기 전에 우리는 이미 이것, 아니면 저것을 할 것임을 알고 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이번 처음이었다. 매큐언의 <속죄>를 영어로 읽다가 잠시 쉬고 있는 터라(아직도 영어 소설을 읽어내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칠드런 액트>가 처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번역이라서 그런가. 번역된 영어권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 다들 비슷해보이니 말이다(그러니 영어로 읽어야 된다). 


끝으로 조금 길긴 하지만, 피오나가 애덤의 강제 수혈 집행을 명하는 판결문 일부를 옮긴다.


A는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나이에 근접해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다는 사실은 그 믿음이 얼마나 심오한지 증명합니다. 또한 그의 부모가 끔찍이 사랑하는 자식을 신앙을 위해 희생시킬 각오를 한다는 사실은 여호와의 증인이 고수하는 교리의 힘을 보여줍니다. (...) 

바로 이 힘때문에 저는 멈춰 서게 됩니다. 왜냐하면 A는 17세가 되도록 종교적, 철학적 사고라는 격변하는 영역에서 다른 표본을 접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독교 종파는 신자들 간의 열린 논쟁이나 반대의견을 장려하는 문화가 아닙니다. 회중의 신자들은 자신들을 '다른 양'이라 부른다는데요. 적절한 명칭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저는 A의 정신, 견해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는 아동기 내내 강력한 하나의 세계관에 단색으로, 중단없이 노출된 채 살아왔고, 그런 배경이 삶의 조건을 좌우하지 않았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불필요한 죽음을 감수하는 것. 그리하여 신앙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것이 A의 복지를 도모하는 길은 아닐 것입니다. (... ...) A는 그의 종교로부터, 그리고 자기자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 167쪽에 169쪽 



Iwan McEwan(1948 ~ )



칠드런 액트 - 8점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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