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명견만리 - 인구, 경제, 북한, 의료 편

지하련 2018. 12. 31. 10:15



명견만리 - 인구, 경제, 북한, 의료 편

KBS <명견만리> 제작팀(지음), 인플루엔셜, 2016 




한 경제연구소에 우리나라 2000대 기업의 성장률을 분석했는데, 이들 기업이 올린 총매출액은 2000년 815조원에서 2010년 1711조원으로, 10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날만큼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일자리는 얼마나 늘었을까? 156만명에서 161만명으로, 겨우 5만명 늘었을 뿐이다. 임금 역시 해마다 증가하는 생산성에 비해 얼마 오르지 않아 임금과 생산성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110쪽)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책은 금방 읽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용을 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알면 행해야 하지만, 국가의 정책 수립과 실행은 쉽지 않다. 


심지어 지금 드러나는 문제들 대부분은 십수년 이상 누적된 것들의 결과다. 그리고 그 십수년 동안 누군가는 이득과 혜택을 누려왔으며, 지금도 누리고 있을 것이니, 대부분의 이들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좋은 것들이니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유치원 관련 법이 통과되지 않은 것도 여기에 있고, 최저임금과 관련해 거의 모든 언론에게 공격 해대는 것도 여기에 있다. (도대체 한국 사회는 제일 밑바닥에 있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노동 값어치를 매기는 것에 대해 왜 이렇게 인색한 것일까! 심지어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위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 그동안 벌어들인 수익은 제일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의 임금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하청구조의 맨 밑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는 바, '낙수효과' 따윈 없다. 100명의 한국 사회에서 단 1명만이 30대 대기업 종사자이지만, 한국의 정책은 이 1명이 근무하는 대기업 위주로 설계되고 실행된다(혹은 그렇게 보인다. 심지어 노조도 그렇게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 옵션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중 한 가지가 최저임금을 올려 버리는 것이라면? 


하지만 언론에선 잘못된 산업 구조에 대한 언급 없이 자영업자들만 물고 늘어진다. 실은 한국의 자영업은 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 많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언론인이라면 최저임금을 묻기 전에 산업 구조에 대해 먼저 묻고 자영업을 묻기 전에 우리는 왜 자영업으로 내몰리고 있는가에 대한 진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걸 묻고 답하기에 1)이미 기자들이 기레기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2)설령 묻는다고 하더라도 기사 한 꼭지로 되지도 않을 뿐더러, 3)심도있게 진행하면 반-기업정서로 흘러가 광고가 떨어져나갈지도 모를 일이니,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내가 언론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것일지도.... 하지만 결국 연합뉴스에서 OECD 주요국 자영업자 비율을 인용하는구나. ㅡㅡ.).




건설경기에 쏟아부은 그 1조엔을 청년과 교육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일본의 지방 정부 연권이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건설 경기 부양보다 무려 30퍼센트나 높은 투자 효과를 봤을 것이라고 한다. 돈을 다 쓰고 난 다음에 나온 뒤늦은 후회였다. (73쪽)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도 아니다. 소셜 미디어에선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와 비교하여 문재인 정부 때의 여러 거시 경제 지표를 비교해가며 차라리 지금이 그 때보단 낫다고 이야기하지만, 절대로 신문이나 방송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긴 나온다고 해서 이미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너무 심하게 나서 아무리 대기업이 잘 나가더라도 서민이 느끼는 경기 체감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심지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거시 경제 지표는 이미 우리의 경기 체감과는 무관하다. 


즉 우리의 경제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경제는 계속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경제 시스템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선택으로 인해 다 잃어버린 상태다. 너무 많은 것을 이번 정부에서 기대하지 말자. 최소한의 기반만 마련해도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수십년 이상 자유한국당 류의 수구 보수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최소 십년 이상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일이기에.


경제가 어려우니, 이번 정부에서도 여러 가지 경기 부양책을 고민한다. 그리고 가장 파급 효과가 큰 건설 투자를 고민할 것이다. 솔직히 3기 신도시 계획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즉 부동산 안정화 대책으로 나온 것이 반대로 너무 손쉬운 경기 부양책으로 기능할 것이다. 꽤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경기 부양에도 단기 정책이 있고 장기 정책이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명박 정부 때 4대강이며 자원외교로 다 써버린 공적 자금으로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 그냥 투자했다면 지금 경제 상황은 훨씬 좋아졌을 것이고 부동산 가격도 훨씬 안정화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 이런 걸 몰라서 안 했을까? 그 정도로 한국의 공무원들은 그정도로 바보들이 아니다. 아마 그 돈으로 청년 투자나 신혼부부를 위한 지원 정책을 내어놓았다면 난리났을 것이다. 여기저기 비난하고 반대하고 퍼퓰리즘이라고 공격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할 필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자원외교가 더 그럴싸하다(이 점에선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이 책에서 길게 언급된 부분들 중 하나가 북한과 관련되어 있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 때 확실하게 개선된 것이 있다면 북한과의 관계 회복일 것이다. 그 정도로 중요하지만, 그만큼 해결하기도 어려운 문제였다. 이미 북한은 중국 - 러시아 접경 지대의 다양한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다. 이미 나진항은 중국, 러시아에 빌려준 상태다. 나선-훈춘-블라디보스톡은 앞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소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출처: Zum학습백과 http://study.zum.com/book/12217


출처: http://changzhu.tistory.com/151




핀란드는 '실패의 날(Day for Failure)'이 있을 정도로 실패의 가치를 아는 사회다. 매년 10월 13일, 핀란드에서는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타인의 실패를 축하해준다. 모든 성공 뒤에는 수많은 실패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제정된 날이다. (86쪽) 


핀란드의 '실패의 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에선 크게 언급되지 않았으나,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폐들 중 하나가 실패에 대해서 관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령 비만의 문제는 개인의 탓이 아니라 시스템의 탓이지만,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린다. 한 마디로 말해 모든 성공의 이득과 혜택은 소수가 독점하고 성공의 수배, 수백배 이상 많을 실패의 고통과 책임은 개인에게, 하청 기업과 노동자에게, 비정규직에게, 사회적 약자에게도 돌려버린다. (뭐, 이 책에서 시스템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이 나간 후, 방송 내용을 책으로 정리하였다.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이 책을 읽은 시간보다 이 리뷰를 쓰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이런 이야기를 할 일도 별로 없다. 술자리도 드물어졌고 일에 치여 산 지도 꽤 되었으니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은 꽤 유용할 것이니, 도서관에서라도 빌려 읽으면 좋을 듯 싶다.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책 말고 '새로운 사회', '미래의 기회'라는 부제가 붙은 두 권이 더 있다. 나머지 두 권도 읽고 이런 식으로 리뷰를 올릴 예정이다. 




명견만리 : 인구, 경제, 북한, 의료 편 - 8점
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인플루엔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