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추억은 술을 마시고

지하련 2019. 3. 22. 09:42




입구는 좁았다. 대형병원 한 쪽 귀퉁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전부였다. 몇 명이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하얀 담배 연기는 지하와 지상 사이를 빙글빙글 오가기만 할 뿐, 저 멀리 날아가지 못했다. 그리곤 금세 희미해졌다. 계단을 내려가자 문 앞에 현금인출기 한 대가 외롭게 서있었다. 죽음이 왔다가 가는 공간 앞의 외로운 ATM. 그 앞에서 사람들은, 나는 현금을 뽑기 위해 서있었다. 작년치 성당 교무금이 두 달 밀려 있어서 그 돈까지 같이 뽑았다. 이젠 현금이 드물어진 시대다. 천천히 걸어나와 복도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조의금 봉투들 사이에서 하나를 꺼내 차가운 현금인출기 속에 있던 만원 짜리 다섯 장을 조심스럽게 넣었다.


조의금 봉투를 전달하며, 조의를 표했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 전에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하나 당황스럽고 당혹스럽고 믿기지 않고 어안벙벙하고 정신없고 한없이 슬픔이 밀려들 것이다. 며칠 전 현실이 꿈만 같고 지금은 현실과 꿈 사이 어딘가처럼 느껴진다. 계속 믿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눈에선 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상갓집에 앉아 소주를 마셨다. 옆에 앉은 대표는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나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며칠 전 어머님을 여윈 동료는 어머님의 투병 생활을 이야기했다. 상갓집에 가면 왜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술을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 곳은 누군가의 죽음을 위로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우리들이 가진 상실의 기억을 떠올리며 공유하며 서로를 어루만지는 자리였다. 서로 돌아가신 부모님의 마지막 목소리를 떠올리며, 후회하며, 아파하며, 살아남은, 살아가는, 앞으로 살아가게 될 우리들의 처지를 이야기했다. 


세 네 명이서 소주 다섯 병을 금세 비웠다. 짧게 아버지 기억을 떠올렸다. 아직도 아버지께선 왜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아마 그 정도로 미웠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께서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큰 부를 이루었지만,  그 부는 금세 사라졌다. 실은 그 사실도, 나는 얼마 전에 알았으니까. 왜 아주 먼 친척들이 와서 어린 나에게 큰 용돈을 주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할아버지께서 도와줘 현재의 부를 이룬 이들이었음을 얼마 전에서야 알았다. 


다들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술에 취했다. 밤은 금방 오고 시간은 소리없이 흐른다. 상처는 아물고 현재는 추억이 되어 우리 곁에 떠돌다가 결국은 저 도도한 강물 속에서 흩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차가워지고 뼛가루로 되어 흙 속으로, 물 속으로, 대기 속으로 잠길 것이다.


태어나면서, 커가면서, 늙어가면서, 아직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나는 왜 살고 있는 걸까. 사는 이유는 뭘까. 


사춘기 시절엔 그 이유라도 알아야겠다며 한 두 번씩 생각하는 자살을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 결국 이십대 후반, 우리가 사는 목적 따윈 없음을 직감했을 때,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입술을 꽉 물곤,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며칠 밤을 세웠다. 그리고 죽지 못했다. 진짜 죽으려고 보니, 죽음이 너무 무서웠다. 살아있음의 대척점에 죽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살아있음과 죽음은 하나였다. 마치 햄릿의 대사처럼, 'To die, To sleep'처럼, 나는 죽음을 끼고 살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죽어가는 어떤 이들에 불과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결국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실존주의자들의 깨달음은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마지막 투병생활을 하시던 창원 경상대 병원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었다. 


잊혀진다는 건 좋은 것이다. 사라지는 것도 좋은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사라지며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하루를 견딘다. 그렇게 한 잔의 술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