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하이브리드 시대의 문학, 김성곤

지하련 2019. 7. 28. 17:28




하이브리드 시대의 문학 

김성곤(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9년 



예전에 사두었던 책이다. 책 제목에서 풍기듯 새로운 문학 흐름에 대해 알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만드나, 그런 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십 년 가까이 서가에 꽂혀만 있었던 책이다. 그 사이 한 두 번 읽어볼까 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고 최근에서야 다시 꺼내 읽고 간단하게 리뷰를 쓴다. 실은 리뷰를 쓸만한 내용도 많지 않다. 탁월한 통찰이 있다기 보다는 미국 문학을 중심으로 현대 문학의 흐름을 소개하는 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 세계 문학이나 수준높은 문학 이론을 다루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정도 제반 지식을 가진 이들에게 선뜻 이 책을 권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학부생들에게 권하기엔 너무 일반론에 가까워서, 영문학 전공자 외에 추천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한마디로 현대 미국 문학(그것도 오직 소설과 비평에만 국한된)에 대한 안내서라고 보는 편이 좋다. '중간 문학(middlebrow literature)'라든가 '트랜스 휴머니즘'같은 단어가 등장하나, 읽어보면 다 아는 내용이거나 깊이 있는 연구로 나아가지 못한 채 그저 옮겨놓는 수준일 뿐이다. 


그렇다고 김성곤 교수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이 책을 내가 잘못 구입했을 뿐이니까. 김성곤 교수는 프랑스나 독일 중심의 유럽 문학이 소개되고 있을 때, 거의 유일하게 현대 미국 문학을 소개해온 이다. 어쩌면 그가 아니었으면 리처드 브라우티건이나 도널드 바셀미 같은 작가들이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엔 많은 미국 소설가들과 작품들이 등장한다. 특히 김성곤 교수의 장점은 대중문학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등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이어서 다양한 작가들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김성곤 교수가 에드워드 사이드로부터 잠시 배웠다는 사실을 알고 부러웠다. 최근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읽을수록 왜 지금에서야 사이드의 책을 꼼꼼히 읽고 있나 하는 후회를 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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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언급된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주목할 만한 이야기 


아랍어와 영어가 모국어이고,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는 거의 모국어 수준이며,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그리고 라틴어와 희랍어에 능통했던 사이드는 수업 시간에 아도르노의 저서 <<신음악의 철학Philosophy of New Music>>의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비교하면서 오역들을 잡아내기도 했으며, 이탈리아어로 단테(Dante)를 강연하기도 했다. 한 번은 옆자리의 이탈리아 학생에게 사이드의 이탈리아어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이탈리아 사람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유창하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64쪽) 


"나는 영국령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습니다. 열세 살 때인 1948년에 유엔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자, 팔레스타인인이었던 우리 가족은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카이로로 피나을 가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한 채 망명길에 올랐다는 점에서 저는 이스마엘과도 같았지요. 그 때 우리 집을 접수해 살았던 사람은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였습니다. 내 집을 빼앗은 사람이 <<나와 너>>라는 책의 저자라는 사실은 그 후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71쪽)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과 서양 사이의 존재론적 및 인식론적 차이에 근거한 사고방식" (71쪽)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에 대한 서구인들의 인식은 대부분 여행자들이나 선원들이나 선교사들의 인상기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무역이라 불렀던 것은 착취였고, 교화라고 불렀던 것은 억압이었으며, 문명화라고 불렀던 것도 사실은 서구화였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동안 동양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언제나 서구의 편견 속에 투사된 왜곡된 모습으로만 재현되어왔다는 것이다. 사이드는 동양에 대한 서구인들의 그러한 편견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르며, 동서양의 관계가 헤게모니와 권력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근거해 있다고 주장했다.(67쪽) 


그러나 사이드는 문학과 문학 비평은 세속적이고 정치적이며 현실적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즉 예술은 현실을 초월해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오염되어야 하며, 일상과 연관을 맺어야만 하며, 우리의 삶과 일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이드에게 그것은 비단 예술 뿐만 아니라, 비평 행위도 마찬가지가 된다. (77쪽) 






하이브리드시대의 문학 - 6점
김성곤 지음/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