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파리좌안 1940-50, 아녜스 푸아리에

지하련 2019. 9. 30. 00:49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파리좌안 1940-50 

아녜스 푸아리에(지음), 노시내(옮김), 마티 



사람은 읽고 싶은 것만 읽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사람들 대부분 이것저것 고려할 정도로 배려심이 많지도 않고 폭넓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굳이 그럴 필요까지 느끼지 못한 채 살기 바쁘다(요즘 내 모습이구나). 그래서 이 책은 어떤 이들에게 20세기를 주름 잡았던 파리의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의 숨겨진 모습을 알게 해주는 값진 책이 될 수 있겠지만, 어떤 이들에겐 지식인들의 불건전한 연애 기록으로 읽힐 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예상 밖의 이야기들로 인해 흔들렸으니...) 


2차 세계 대전 전후, 점령당한 파리 좌안에서의 일상을 담고 있는 이 책에는 다행히 나치의 군인들에게 살해당하고 아우슈비츠로 끌어가는 유대인의 이야기나 나치와 싸우는 레지스탕스들의 전투 같은 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도리어 너무 평화로워서 전쟁 같지 않은 일상이 낯설 정도다. 심지어 독자들에겐 그 당시 파리 좌안에서 살아가는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의 이름만으로, 그리고 그들이 한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울 것이다. 장 폴 사르트와 알베르 까뮈가 이렇게 가까운 관게를 유지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 주위로 20세기를 주름잡았던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있었음을, 피카소, 사무엘 베케트, 메를로 퐁티, ... 그리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등장하는 헤밍웨이까지. 


그러나 토니 주트의 말대로 '지적 무책임성'의 끝을 보여주었던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너무 이상주의적이었다. 대단한 인기를 누렸으나,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현실 참여적인 작가이긴 했으나, 직업적 정치가는 아니었다. 그들의 정치적 발언들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현실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렇게 사라져갔던 건 아닐까. 


하지만 '숙청에 실패하는 나라는 쇄신에 실패할 것'이라는 까뮈의 주장은, 전후 작가들의 현실 참여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많은 사건과 에피소드들이 나오는 이 책은 그 당시 파리 지식인들이 미국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작가의 현실 참여나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지위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 세계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까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 참혹했던 시절을 지나 세계는 좀 더 나아질 것이라 여겨겠지만, ....) 


아래는 인터넷 서점에 올라와 있는 이미지다. 지도를 보니, 십 년 전 내가 머물렀던 곳이 파리 좌안이었음을 새삼 알게 된다(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 10점
아녜스 푸아리에 지음, 노시내 옮김/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