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도덕의 기원, 마이클 토마셀로

지하련 2019. 11. 25. 23:34



도덕의 기원 A Natural History of Human Morality 

마이클 토마셀로 Michael Tomasello(지음), 유강은(옮김), 이데아 



무척 평가가 좋은 책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내가 이 책을 왜 읽었지 하는 후회를 하고 있다(읽을 책을 쌓아두고 있는 상황에)


협력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이론에 다양한 난제를 제시한다. - 31쪽 


대형 유인원과 인간 아동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 인류가 어떻게 도덕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다양한 연구들과 가설들로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 그 대부분들은 가설에 머물 뿐이다. 결국 진화론을 바탕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도덕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은 아닐까. 그래서 도덕의 기원이 확실하게 어떤 것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건 아닐까. 


이 책은 대형 유인원의 연구결과과 어린 아이들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대형 유인원에게 있어 협력이나 협동, 또는 공동의 목표 같은 것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혹은 왜 없는가)를 논하는 초반은 꽤 흥미롭지만,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2인칭 도덕', ' 객관적 도덕', '협력 그 이상인 인간 도덕' 같은 챕터는 상당히 지루하고 난삽하며 모호하다. 


어쩔 수 없이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충고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옳을 듯 싶기도 하다. 도덕에 대해서 진화론의 시각으로 이야기하려고 한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라는 것. 그래서 세계적인 영장류학자인 마이클 토마셀로는 영장류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진화까지 설명하려고 노력하지만, 영장류와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만 이야기할 뿐이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의 관찰 연구 결과도 대형 유인원의 그것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을 지금, 나에게 그 간격, 격차를 절대로 좁혀질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토마셀로의 입장에선 상당히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는 이 책의 후반부는, 반대로 너무 이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이어서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인간은 대형 유인원 가운데 유일하게 협동적 육아를 실천한다. 부모가 아니고, 때로는 가까운 친족도 아닌 개인들이 아이들을 먹이고 돌보는 일을 돕는다. - 92쪽


토마셀로는 진지하게 인간의 도덕이 어떻게 진화하였는가를 찾고 있지만, 그것은 인류 사회의 발달이나 변화, 문화나 생활 환경 등에 의지하게 된다. 즉 진화생물학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문화인류학의 영역으로 옮겨오게 된다. 


인류는 언제나 사회집단 안에서 살았지만, 현대 인류의 집단 중심성(여기서 문화집단은 무임승차자와 경쟁자를 배제하는 협동 기획으로 이해된다)이 협동하는 2인 쌍이나 그와 비슷한 것의 초기 단계 이전에 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관여는 각각 대체로 비슷한 진화의 연속에서 등장했다. (1) 생태 환경의 변화(처음에는 개별적으로 얻을 수 있는 먹을거리가 사라지고 뒤이어 인구 규모와 집단 경쟁이 커졌다)에 이어 (2) 상호 의존과 협력이 증대하고(처음에는 필수적인 협동적 먹이 찾기가 있었고 뒤이어 집단 생존을 위한 문화적 조직화가 이루어졌다), 그 다음에 (3) 이런 협력의 새로운 형태들의 조정을 위해서는 지향점 공유의 새로운 인지 기술(처음에는 공동 지향성, 다음에는 집단 지향성), 새로운 협력 능력의 사회적 상호작용 기술(처음에는 2인칭 능력, 다음에는 문화적 능력), 새로운 사회적 자기규제 과정(처음에는 공동 헌신, 다음에는 도덕적 자기 관리) 등이 필요했다. 각각의 사회적 관여 양식은 따라서 서로 다른 사회생활 형태에 대처하기 위한 일단의 상이한 생물학적 적응을 드러낸다. - 257쪽 ~ 258쪽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형편없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이 분야(?)에 있어서는 가장 최신의 정보를 담고 있을 것이다. 다만 나에게 이 책은 그다지 유용하지도 못했고 흥미롭지도 못했을 뿐. 차라리 읽다만 레비나스의 책이나 현대 도덕철학의 쟁점을 다른 책을 읽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도덕의 기원 - 6점
마이클 토마셀로 지음, 유강은 옮김/이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