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발터 벤야민 - 그의 생애와 시대, 베르너 풀트

지하련 2019. 12. 15. 14:53




발터 벤야민 - 그의 생애와 시대 Walter Benjamin Zwischen den Stuhlen: Eine Biographie

베르너 풀트Werner Fuld(지음), 이기식, 김영옥(옮김), 문학과지성사, 1985년 





1.

새 책도 사서 읽지만, 읽지 않은 채 서가에 잠자던 책도 꺼내 읽는다. 다 읽고 난 다음, 왜 이제서야 이 책을 읽었을까 하는 책도 있고, 이제 읽으니 제대로 이해가 되는구나 하는 책도 있다. 어떤 책들은 읽으려고 노력해도 읽히지 않는다. 대체로 인문학이 그렇다. 때론 소설도 있다. 

이 책, ‘발터 벤야민 - 그의 생애와 시대’는 둘 다 해당된다.  



2.

여기에서 벤야민의 사유에 있어서의 급진적인 전환점을 보는 매우 많은 해석자들이 있다.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론의 자산이 그러한 모델 - 즉, 영락한 떠돌이 지식인 der Privategelehrte인 벤야민이 한 아름다운 공산주의자를 만났다. 그는 그녀의 사랑하게 되고 그녀는 그에게 공산주의 이념을 납득시킨다, 라는 - 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러한 전환점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허구는, 그 결과 생긴 벤야민 작품의 구분 - 신학적인 초기 작품과 마르크스적인 후기 작품으로서의 - 과 함께 다 잘못된 것이며 그 해석자들의 정치적 입장을 말해줄 뿐 벤야민의 정치적 입장을 말해주진 않는다. (212쪽)


아샤 라시스와 벤야민의 관계를 많은 이들은 매우 중요한 계기로 파악한다. 하지만 베르너 풀트는 위에서처럼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시기적으로 이 만남이 있기 전 에른스트 블로흐를 통해, 그리고 블로흐의 소개로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으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접근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다만 아샤 라시스를 통해 더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전환의 계기로 보기 어렵다고. 



3.

벤야민은 40살 때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나는 커피 한 잔 끓일 줄도 모른다’ (30쪽)


벤야민의 유복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경제적 무능력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경제적 무능력을 논하기엔 그 당시의 사회상이나 경제상이 좋지 않았지만, 그는 끊임없이 부모의 지원을 원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여성에 대해서도 매우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벤야민은 여성에 대해서 아주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고 특히 여성의 지적인 능력에 대해서 아주 보수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1918년 7월 31일에 쓴 다음의 편지는 아주 특징적이다. <오늘 저는 우연히 학위 논문을 준비하다가 루이제 주르린텐이라는 부인이 저술한 <<독일 낭만주의에 있어서의 플라톤의 사상Gedanken Platons in der deutschen Romantik>>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이 이러한 일에 본격적으로 참견하려 할 때에 저는 지독한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정말 불쾌한 일입니다> 그리고 벤야민이 초기에 쓴 <<청춘의 형이상학Metaphysik der Jugen>>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매우 이상야릇하게 적고 있다. <<여자들은 왜 이야기를 할까? 여자들이 이야기를 하면 영혼이 달아나는데 말이다. 여자들은 언어로부터 어떠한 소리도, 그리고 어떠한 구원도 얻지 못한다. 말이 나란히 앉아 있는 여자들 위를 스쳐지나가기만 하면 말은 조야하고 천박하게 되고 또 수다로 바뀌게 된다. 말이 여자들과 희롱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재빨리 말한다. 이야기하고 있는 여자들은 무의미한 언어의 포로가 되어 있다고> (110쪽) 



4.

책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서문

첫 경험

청년 운동

새로운 삶

바이마르 공화국 I

바이바르 공화국 II

망명

종말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그의 주요 작품들이 쓰여지지만, 주목받지 못한다. 이 책은 벤야민의 학문에 대해서보다는 그가 처했던 환경이나 변화,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많은 것을 할애한다. 온전한 의미의 전기인 셈이다. 대학교수 자격 획득에 실패하고 아버지와의 불화, 심약하고 우울했던 벤야민,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처지까지 알레고리적으로 반영된 작품들. 베르너 풀트는 이를 ‘알레고리의 구제라는 벤야민 자신의 반관적(半官的)인 요청을 매우 힘들여 실천하려고 한 대단히 사적인 책’(218쪽)이라고 표현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에 들어선 공화국이다. 그리고 이 공화국 다음이 바로 히틀러 시대다. 벤야민이 겪었던 시절은 20세기 초반이었으며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모두 아우른다. 따라서 이 책만으로도 왜 1차세계대전이 그렇게 되었는가, 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파시즘으로 넘어가는가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청년 운동>에서 우리는 벤야민을 포함한 독일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던 교육 개혁 사상에 기반한운동을 확인할 수 있다. 벤야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에 거리를 두게 되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패전으로 인한 궁핍한 경제와 함께, 그 당시 여러 정치적 상황이 히틀러를 불러오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히틀러 또한 20세기 초반의 ‘청년 운동’의 후예였는지 모를 일이다. 


비네켄은, 비록 지도자로서의 역할은 중도에 끝났지만 동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일인자로 남아 있었다. 또한 <지도자>라는 말은 그 때까지는 아직 쓰이지 않던 말이었으나 이제는 바로 청년 운동을 나타내는 상징어가 되었다. 굼페르트는 지도자와 복종에 대해 비네켄이 초기에 쓴 논문과 연설에 깔려져 있는 정신적 분위기가 <나찌와 희미한 연관성 mystische Mitschuld am Nationalsozialismus>이 있다고 자신의 글에서 밝히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 내가 <<의무를 위한 진력Einsatz fur die Sache>>, <<개인적인 것의 중단 Aufhoren des Einzelnen>> <<새로운 믿음 neuen Glauben>>에 대해서 쓴 오래된 논문들을 읽어 보고 이런 말들이 대체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하고 놀라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구호를 외치며 자진해서 전쟁터로 달려간 내 친구들은 이런 구호를 외치며 죽어가지 않았던가. 이런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허공을 떠도는데 거짓 메시아에 의해 탈취되어 왜곡된 채 또다시 젊은이들의 귓가에 맴돌고, 젊은이들은 또 다시 새로운 불행을 향하여 다가가고 있지 않은가> (55쪽)



5.

이 조약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경우 스탈린은 여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인 것 이 불가침 조약으로 인해 정치적 망명객들은 이제 프랑스 정부의 눈에는 잠정적인 히틀러 동맹자들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전반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에서, 16세에서 50세에 이르는 모든 남자들을 즉각적으로 수용소에 집합시키는 것 외에는 별다는 도리가 없었다. (377쪽)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벤야민의 처지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수용소로 들어간 벤야민은 건강이 악화되었다. 겨우 수용소를 나올 수 있었으나, 그는 유대인이었기에 피난을 가야만 했다. 그러나, 


벤야민의 병은 심각했다. 한 의사가 심근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보행을 할 때엔 매 3분마다 한 번씩 쉬어야 했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집을 나설 수 없었다. 충분히 난방이 되지 않는 방에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그는 대부분 침대에서 지냈다.(390쪽) 


미국으로서의 이주는 어려운 일이었다. 스페인 국경에서의 자살은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 행진에 끼어들기 전날, 마르세이유에서 벤야민은 우연히도 아르투르 쾨스틀러(A. Koestler)를 만났다. 그로부터 벤야민은 그의 예비물품인 50개의 모르핀 알약을 나누어 받았다. 말 한 마리를 둑이기에 충분한 분량이라고, 그가 말했다. (392쪽) 



6.

최근에 읽은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파리좌안 1940 - 50>>에서 벤야민이 등장하지 않는 건 그 시기는 이미 없었기 때문이었다. 벤야민에게 모르핀을 주었던 퀴스틀러는, 후일 영국 소설가로 알려지는 아서 케스틀러였다. 독일어로 읽거나 영어로 읽거나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케스틀러는 이후 까뮈, 사르트르와 교류를 하였지만, 그 자리에 벤야민은 없었다. 


벤야민은 엄격한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 아도르노의 지속된 참견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벤야민에게 영향 받은 아도르노의 예술에 대한 생각이나 미학론, 심지어 글쓰기까지, 벤야민의 애호가들의 불평을 듣기에 충분할 것이다. 책 후반부 간간히 등장하는 연구소와의 서신 연락은, 경제적 여건을 해결하기 위한 벤야민의 처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미국으로의 이주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벤야민의 스타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책들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으나, 벤야민이 제대로 읽히고 있는가에 대해선 언제나 의문이었다. 베르너 풀트의 의견대로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을 나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벤야민의 세계로 빨려들게 하는 건 벤야민의 특유의 우울함, 멜랑콜리, 문장들 사이에서 나오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집착,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통찰, 결국엔 자신의 삶을 드러내고 옹호하며 버티게 하는 의지 같은 게 아닐까. 


프레드릭 제임슨은 <<맑스주의와 형식>>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처럼 벤야민(Walter Benjamin)의 평론들의 한 장마다에서 풍겨나오는 우울 - 사사로운 의기소침, 직업상의 낙담, 국외자의 실의, 정치적 역사적 악몽 앞에서 느끼는 비감 등 - 은 적합한 대상, 즉 종교적 명상에서처럼 거기에서 정신이 자신을 끝까지 응시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심미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 순간적인 구원을 발견할 수 있는 어떤 표상이나 이미지를 찾아 과거를 더듬는다. 그리고 발견해낸다 - 30년 전쟁의 독일에서, '19세기의 수도' 빠리에서. 왜냐면 바로끄와 근대의 이 둘 모두가 그 본질상 우의적(allegorical)이어서 우의이론가의 사고과정에 걸맞기 때문인데, 자신을 형상화해 줄 외부의 대상을 찾는 비구상화된 의도인 이 사고과정을 그 자체가 이미 '언어 이전'의 우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7.

베르너 풀트의 이 책은 현재 팔지 않는다. 다시 나오지 않을 듯 싶으니, 벤야민에게 관심이 있다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될 것이다. 벤야민의 주요 저작들은 다 번역된 지금, 이 책은 조금의 도움이 될 듯 싶다. 확실히 벤야민의 이론들에 대한 할애보다 그의 생애와 시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8.

늘 그렇지만 책을 사는 속도가 책을 읽는 속도가 더 빠르다. 책을 사는 속도보다 좋은 책이 출판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최근에 산 책도 거의 읽지 못했으니 ... 서가에 새 책만 쌓이고 있구나. 



훨씬 후에 벤야민은 <수집에 대하여Rede uber das Sammeln>에서 아나톨 프랑스가 한 경솔한 사람에게 적절하게 대답했던 그 일화를 인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서고를 보고 그 사람은 감탄을 하더니 마지막에는 통상적인 질문을 했다. <프랑스씨, 당신은 이 책을 모두 다 읽었습니까?> 이에 프랑스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10분의 1도 채 못 읽었읍니다. 그런데 당신은 언제든지 차려놓은 음식을 모두 드십니까?> (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