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지음), 강우성(옮김), 북하우스
매번 읽는 책들이 출판된 지 한참 지난 책들이라, 이번에는 상당히 시사적인 책을 읽고 싶었다. 뭔가 시대에 뒤쳐지는 느낌이 있었다고 할까. 세상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닌데, 관심 없는 구닥다리가 되는 듯 싶었다. 그래서 구입한 책이다.
책은 얇고 쉽게 읽힌다. 다만 현 시절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이 있는가에 대해선 고민해볼 여지가 있다. 대단한 찬사를 거듭할 책은 아니다. 도리어 지젝이 인용한 브뤼노 라투르의 견해에 더 이끌렸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식습관 같은 인간의 문화적 선택, 경제와 세계무역, 복잡한 국제관계 네트워크, 공포와 공황 상태의 이데올로기적 메커니즘 같은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 연관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 길은 브뤼노 라투르가 제시한 바 있다. 그가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를 두고 앞으로 다가올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총연습"이라고 강조한 것은 옳았다. 이 기후 변화는 "다음번 닥쳐올 위기로서, 우리 모두는 생존조건들의 재설정이라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일상적 생존을 위한 모든 세부사항 역시 세심하게 정리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은 전 지구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생태적 위기의 한 장면으로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일들을 무자비하게 강요한다. (135쪽)
이 책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던진 질문에 대한 지젝의 여러 단상들을 모아놓고 있다. 그래서 글들은 짧고 적절하게 시사적이다. 아감벤의 터무니없는 견해도 있으며, 지젝의 과격한 생각 -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공산주의의 형태를 초래할 것 - 에 대한 비난도 실려있다. 여러 나라들의 대응, 정치권의 반응, 사람들의 두려움, 현대 자본주의와 세계화 등등 짧지만, 상당히 시사적인 논의까지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만하다.
따라서 정치학은 물질적이어야, 즉 가치나 신념이 아니라 연관된 사물과 관심사를 둘러싼 사물정치Dingpolitik여야 한다. 줄기세포, 휴대전화, 유전자변형 유기체, 병원체, 새로운 하부구조와 새로운 재생산 기술들은 그러한 사안들 및 다양한 행동 방식들에 관한 다양한 형태의 지식을 산출하는 관심 어린 대중을 만들어낸다. 전통적 정치학의 영역을 한계 짓는 제도, 정치적 이해관계 혹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말이다.
- 브뤼노 라투르 (141쪽에서 인용)
"싱가포르는 주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건너 온 140만 명에 달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보금자리다. 가사도우미, 집사, 건설노동자와 육체노동자로 일하는 이 이주민들은 싱가포르가 계속 돌아가게 하는 데 필요불가결하다. 그렇지만 또한 그 도시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가장 취약한 계급이다." 이 새로운 노동계급은 예전부터 여기 쭉 존재했고, 감염병이 이들을 들쑤셔 드러나게 만든 것일 뿐이다.
이 계급을 지칭하기 위해 브뤼노 라투르와 니콜라이 슐츠는 "지구사회 계급geo-social class"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생산수단의 소유자들을 위해 일한다는 뜻을 담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노동자처럼 착취당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수도와 깨끗한 공기의 보급, 건강, 안전같이 자신들이 스스로의 삶의 물질적 조건들과 맺는 관계의 측면에서 "착취당한다." (... ...) 소말리아 해적의 예를 들어보자. 그들이 해적이 된 까닭은 자기들이 사는 해안이 외국계 회사들의 산업화된 어업으로 인해 물고기들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그들 지역의 일부가 '선진국'들에게 점유되었고 유럽인들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이용되었던 것이다. 슐츠는 여기서 "잉여가치surplus-value"의 착취를 "잉여존재surplus-existence"의 착취로 바꾸자고 제안하는데, 이때 "존재"는 삶의 물질적 조건들을 가리킨다. (184쪽 ~ 185쪽)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현대 인류가 추구해온 방향이 강력한 도전에 직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재앙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기후변화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을 때쯤 되면 너무 늦지 않을까.
유보epoche', 중단, 사회성을 괄호에 넣는 것이 때로는 타자성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 지구상에 고립되어 있는 모든 사람과 가깝게 느끼는 방법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외로워하며 가능한 한 고독한 상태로 있기 위해 노력한다.
- 캐서린 말라부(Catherine Malabou) (122쪽에서 인용)
<격리에서 격리로: 루소,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나 To Quarantine from Quarantine: Rousseau, Robinson Crusoe, and I>
팬데믹 패닉 -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북하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