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오늘부터의 세계, 안희경

지하련 2021. 2. 7. 07:50

오늘부터의 세계

제러미 리프킨 외 인터뷰, 안희경(지음), 매디치미디어 

 

 

위기는 약한 고리를 강타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먼저 쓰러트린다. (4쪽) 

 

 

이 책은 제러미 리프킨, 원톄쥔, 장하준, 마사 누스바움, 케이트 피킷, 닉 보스트롬, 반다나 시바와의 인터뷰집이다. 아마 조금의 관심이 있다면, 저자인 안희경의 인터뷰를 한두번은 읽어보았을 것이며 어쩌면 이미 출간된 여러 인터뷰집을 읽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인터뷰집이며, 우연히 코로나 사태가 터져 그것까지 같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순전히 '코로나', 즉 팬더믹 이후의 시대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이 책을 읽었으나, 실은 전염병의 발병과 같은 일은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미래 예측 시나리오들 중 하나였으며, 어쩌면 'Covid-19'는 당연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기후변화로 생긴 모든 결과가 팬더믹을 만든 겁니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물순환 교환으로 인한 생태계 붕괴입니다. 우리는 물로 가득찬 행성에 살고 있어요. 생태계는 구름으로 순환하는 물과 눈, 비에 의존합니다. 지구온난화로 지구의 물순환이 바뀌고 있습니다. 지구가 1도씩 뜨러워질 때마다 대기는 7퍼센트씩 더 많은 강수량을 빨아들입니다. (...) 둘째는 인간이 지구에 남은 마지막 야생의 터를 침범하고 있어서예요. 1900년만 해도 인간이 사는 땅은 전체의 14퍼센트 정도였어요. 지금은 77퍼센트에 육박합니다. (...) 셋째, 야생 생명들의 이주가 시작됐습니다. 인간들이 재난을 피해 이주하듯 동물 뿐 아니라 식물, 바이러스까지 기후 재난을 피해 탈출하고 있어요. (19쪽 ~ 20쪽) 

 

제러미 리프킨의 저 지적은 너무 당연하지만, 우리의 일상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체감하기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저 이유로 인해 환경 보호를 위한 일상의 다양한 규제를 만든다면 어떨까? 

 

화석연료 문명은 채굴하고 추출하고 정제해서 제품을 생산하는 역사상 가장 비싼 에너지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체를 관리할 투자 자본을 가진 수직적으로 통합된 글로벌 거대 기업이 필요했습니다. (24쪽)

 

결국 에너지 생산의 문제가 핵심인데, 여기에 대해 중국의 원톄쥔은 이렇게 말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무엇이 인류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인지 생각하고 새로운 생태 시스템을 마련하는 거죠. 저와 우리 동료들의 새 이데올로기예요. 이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서 일어난 사상입니다. 생태 문명 속에서 순리대로 속도를 늦추어 사는 생태마을, 슬로푸드, 슬로라이프를 추구하고 그럼으로써 자연 자원의 소비를 줄이고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세계 방식이죠. 이 방향이 새로운 철학을 위한 목표입니다. (57쪽)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야기되어져 온 원톄쥔은 다시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식량 위기는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미 식량도 투기 자본의 손아귀 위에 올라가 있으니.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터뷰는 장하준 교수와의 인터뷰였다. 그의 견해는 내가, 혹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지적하고 있는 듯 읽혔다. 그래서 조금 길긴 하지만, 그대로 옮겨볼까 한다. 

 

'세계화는 끝났다'라는 말을 저는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신자유주의는 효율성을 높이려고 모든 위험부담을 약자에게 지웁니다. 긱이코노미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노동자인 사람들을 법적으로 자영공급자로 만들어서 권리를 빼앗아요. (89쪽) 

 

저는 한국에서 자살이 급증한 이유를 IMF 체제 하에서 고용안정성이 줄고 고용불안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봐요. (94쪽) 

 

198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 엘리트들 가운데 미국 모델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어요. 경제기획원 관료들이 '경제계획을 없애야 한다, 이는 시장주의에 어긋난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자기 부처의 의무가 경제계획인데 경제계획은 나쁘다는 발언을 하고 다닌 거죠. 묘하게도 소위 운동권 출신들도 동조했어요. '산업 정책은 군부독재가 하던 파쇼 정책이다'라는 식으로요. 그렇게 경제기획원이 해산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없어지고 산업 정책도 거의 폐기되죠. (...)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서 재정국 차권으로 나오는 사람이 한 말이 당시의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해고 쉽게 하고, 구조 조정 쉽게 하는 시장주의를 퍼뜨려야 하는데 노동계, 시민단체에서 반대해서 못하고 있다. 지금이 기회다"라고요. 뒷이야기지만 IMF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저항할 줄 알았는데 .... (95쪽 ~ 96쪽)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완전히 극단적으로 나갔고, 노무현 정부는 FTA와 동북아 금융 허브를 내세우면서 김대중 정부보다 더 우파적으로 나갔습니다. (96쪽) 

 

우리는 복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잘못돼 있어요. 돈 있는 사람들한테 거둬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주는 걸로 생각해요. 그런데 북유럽식 복지는 사회 보험을 공동 구매하는 겁니다. 의료보험, 교육보험, 연금보험 등을 국민이 공동 구매하는 거예요. 미국이 복지 지출을 적게 한다고 말하지만 복지 지출이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 말하자면 복지는 월마트 논리예요. (105쪽) 

 

수치로 얘기하면 미국 같은 경우 소득에 따른 부모와 자식의 상관관계가 80퍼센트 정도예요. 부모를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자녀의 미래가 결정되는 사회죠. 덴마크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은 30퍼센트 밖에 안 돼요. 대부분이 능력으로 결정된다는 얘기입니다. (108쪽)

 

저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성장이 중요하지만 선진국은 다르다고 봅니다. 한국도 이제 선진국에 포함시켜야죠. 선진국들은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에라도 성장을 안 하는 게 좋고요. 문제는 성장의 질입니다. 성장을 얼마나 공평하게 나누느냐에 있죠. 온 국민이 편안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경제의 목표라면 성장은 그 목표를 이룰 여러 수단 중 하나입니다. (110쪽) 

 

환경주의자들 가운데는 역성장degrowth이라고 해서 선진국들은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어요. (111쪽) 

 

특히 복지에 대한 견해나 역성장 이야기는 나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라, 상당히 신선했다. 그리고 복지에 대한 생각은 널리 전파시켜야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 이유는 케이트 피킷Kate Pickett의 인터뷰에서 더 확신하게 된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사회적 평가 위협social evaluation threat'이라고 합니다. 남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느끼는 감정은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는 위험요소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가 낮고, 외적으로 보이는 부분에 치중해 소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157쪽) 

 

불평등한 사회에 사는 경험은 인간의 사고와 감정은 물론이고 관계 맺는 방식마저 바꾸고 있습니다. 미국은 다른 부유한 국가들과 비교할 때 부자와 빈자 사이에 소득 격차가 가장 크고, 살인율과 정신 질환자 비율, 십대 출산율이 가장 높아요. 반면 기대수명은 가장 낮고 아동의 행복 수준과 수학 성취도, 문해력도 낮습니다. (159쪽)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이나 사회 취약 계층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은 그 문제들을 일으키기 때문에 저소득층이나 취약 계층이 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불평등이라는 문제의 심화로 발생한 문제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선진국들 가운데 불평등한 사회, 도리어 자유로운 사회라고 알려진 미국은 이런 문제들을 다 껴안고 있는 셈이라는 지적인데, 왜 한국 사람들의 상당수는 미국 지향적 사고와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마사 누스바움, 닉 보스트롬, 반다나 시바의 인터뷰도 재미있게 읽었으나, 제러미 리프킨, 장하준, 케이트 피킷은 상당히 흥미롭고 설득력이 있었으며 나에게도 많은 자극이 되었다. 원톄쥔과 반다나 시바는 중국과 인도라는 배경 안에서 사고하고 있었으며, 반다나 시바는 상당히 급진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마사 누스바움과 닉 보스트롬 인터뷰는 다른 이들의 것과 비교해 다소 재미없었다고 할까. 

 

좋은 인터뷰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을 알게 하고 깨닫게 해준다. 이 점에서 안희경의 인터뷰 작업은 상당히 의미 있다. 이미 여러 저널에서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책으로 나와있으리라고 생각치 못했다. 가끔 형편없는 인터뷰 책들이 있는데, 안희경의 인터뷰는 상당히 전문적인 영역까지 파고들어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터뷰 전에 꽤 준비를 많이 했음을 느끼게 한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등장하진 않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우리가, 이 작은 별 지구에 사는 인간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위기와 재앙은 반복될 것이고 머지 않아 인간들도 지구 역사에서 숱하게 반복되어져 온 멸종의 한 예로 남게 될 것이라는 ... 

 

* * 

 

미국은 빈곤층 가운데 5만 명이 매년 오피오이드Opioid(마약성 진통제) 중독으로 죽습니다. 지금처럼 실업자가 늘고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좌절해서 약 먹고 술 마시고 아프거나 죽는 분들이 더 생길 겁니다. 한국도 세계에서 자살률 1위잖아요. 1990년대 중반까지는 OECD 평균 이하였어요. (94쪽) 

 

장하준 교수의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오늘 페친이 공유한 아래 기사를 읽게 되었다. 

 

Consultancy McKinsey agrees to pay nearly $600M for role in opioid crisis.

 

간단히 말해 제약회사의 Opioid 판매를 위해 오래 기간 같이 협력했다는 것. 가난한 자들을 향해 중독성 약물을 어떻게 하면 많이 팔 수 있을까 위해 제약회사와 전략 컨설팅 회사가 협력하였으며, 그 기간 동안 두 회사 모두 상당히 성장했다는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끔찍한 실상을 드러내는 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도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볼 수 있듯 그 끔찍함이 덜하다가 할 수 없을 것이다. 

 

장하준 교수를 인터뷰하고 있는 저자 안희경 작가

 

안희경 작가

 

 

오늘부터의 세계 - 10점
안희경 지음, 제러미 리프킨 외/메디치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