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지하련 2021. 2. 14. 12:37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지음), 휴머니스트 

 

 

 

에드벌룬이 착륙한 뒤의 긴자(銀座) 하늘에는 신의 사려에 의하여 별도 반짝이련만,
이미 이 '카인의 말예(末裔)'는 별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 이상, <도쿄(동경)>, 1936년 

 

 

 

 

1. 

결국 예상했던 바대로 흘러가 끝나는 이 책은 전체적으로 볼 땐 자료집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개개인의 인물들이 가진 스토리는 비장하며 고통스럽거나 치욕스러운 것들이다. 어떤 이는 지주집 자제로, 일본 식민지의 귀족의 자제로 일본에 있는 제국대학을 가기도 하였으나, 어떤 이는 가난한 배경을 극복하고 가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제국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반일 운동으로 옥사하기도 하였으나, 이떤 이는 총독부 관료로, 해방 후 정부 관료나 판검사로 그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아예 정치적인 것에는 관여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매진한 과학도도 있었다. 각각의 사례가 다르고 그들 각자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일본인도 가기 힘든 제국대학을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을 것이며, 제국대학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조센징이라는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센징으로 살아야 했다.

 

 

조선인이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수석 입학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당시 입학 시험을 들여다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여러 과목 중에서 '외국어'와 '국어'는 조선 학생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조선어를 모어로 한 조선학생은 외국어 영역의 '해석'과 '국문영(독)역'에서 이중 번역에 직면했다. 즉, 조선어를 작동시켜 외국어를 해석한 후 그것을 다시 일본어로 변환하고, 다시 일본어 텍스트를 조선어로 변환한 후 왹숙어로 재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더구나 국어 영역의 '국문 해석'은 일본 학생조차 어려워한 <겐지 모노가타리>, <마쿠라노소시>, <호조키> 등 고대 일본어로 쓰인 것을 현대 일본어로 번역하는 문제였다. (159쪽)

 

 

일본인과 일본어로 이야기하며 일본어로 된 시험을 통과했다. 식민지 초반에는 유년기에 유학을 공부했던 이들도 있었겠지만, 식민지 후반에는 조선어 대신 일본어가 더 편했던 이들도 상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일제 식민지의 잔재에 민감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직도 조선어를 쓰는 숨겨진 일본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센징이라는 차별은 사라지지 않아서. 

 

보성전문학교 교수, 초대 법제처장, 고려대 총장, 신민당 당수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유진오는 그 적실한 사례다. 이미 학생 시절부터 그는 식민지를 떠들썩하게 한 '민족의 수재'였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해당 이후 경기고)를 졸업한 그는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수석 입학하여 법문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일본인 학생들을 포함한 성적이었기에 더욱 큰 성과로 받아들여졌다. 

(...)

그렇지만 식민지 출신들에게 문과 계열 제국대학 교수직은 막혀 있었다.(158쪽 ~ 159쪽)

 

유진오의 경우처럼 문과는 그 한계가 분명했다. 대신 과학 분야는 상대적으로 덜했다. 

 

 

2. 

메이지 일본의  화두는 서구 따라잡기였다. 이를 위해 그들은 서양의 개념과 제도를 번역했다. 개인, 사회, 존재, 권리, 자유, 미(美), 연애, 문학, 자연, 근대 등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개념어는 십중팔구 이 시기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어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메이지 정부는 서구의 'university'를 번역하여 근대 대학을 설립했다. (24쪽)

 

 

어느 순간부터 조선은 일본에게 역전당했던 것일까. 우리가 우습게 알던 일본의 발전 앞에서 조선인들이 느꼈을 좌절감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일부 명민한 이들은 전통이나 신념 대신 미래를 향한 현실을 선택하게 된다. 현재 상태로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을 하는 것이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현재는 나약하기만 하여 미래가 없다고 여겨질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러한 흔적을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국 대학은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 장치였다. 국가 통치를 위한 엘리트 육성을 목적으로 1886년 포고된 제국대학령에 근거하여 도쿄(1886)를 시작으로, 교토(1897), 도호쿠(東北, 1907), 규슈(九州, 1910), 홋카이도(北海道, 1918), 게이조(京城, 1924), 다이호쿠(臺北, 1928), 오사카(大阪, 1931), 나고야(名古屋, 1939)의 순으로 총 아홉개의 제국대학이 설립되었다. 

아홉 개의 제국대학 중에서도 식민지 조선에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은 해방 이후 그 부지 시설과 인적 집단이 대부분 국립 서울대학교로 승계되면서, 한국 사회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유무형의 유산을 남기게 된다. (21쪽)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 각각의 운명은 다르지만, 살아남은 대다수는 현대 한국을 만드는데 기여한 이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구한말 조선에서, 일제 식민지에서도 그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 권력과 부는 사라지지 않았다. 

 

 

구한말의 지주는 식민지 산업자본가를 낳았고, 그 산업자본가는 군사정권의 국무총리를 낳았다. 김연수-김상협 부자에게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제국대학은 한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를 재생산하는 제도로도 가능했던 것이다. (54쪽)

 

 

제국대학과 식민지 관료라는 사회자본이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가 지난 1997년과 2002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이다. 그는 본가, 외가, 처가가 획득한 제국대학, 고등문관시험, 식민지 관료라는 사회자본의 종합적 구현체다. 이회창의 할아버지는 충청남도 예산의 지주다. 이회창의 백주는 교토제국대학 교수(교육관료) 이태규이며, 아버지는 경성법학전문학교 출신으로 총독부 검사서기를 거쳐 해방 이후 검사를 역임한 이홍규이다. 

이회창의 외가는 담양의 만석꾼 지주 집안이다. 외삼촌인 김성용은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한 후 일본 군수성 관료를 역임했다. 검성용 등 이회창의 외삼촌 3형제는 모두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모인 김삼순은 홋카이도제국대학 식물학과 출신의 농학박사다. 

이회창의 장인은 1942년 고등문관시험 사법가에 합격하고 해방 이후 대법원장 직무대행 및 대법관을 지낸 한성수다. 한수성의 장남인 한대현도 헌법재판관을 지냈다. 알다시피 이회창도 대법관을 역임했다. 이처럼 이회창의 본가, 외가, 처가는 구한말 이래 지주 집안이면서 제국대학과 고등문관시험, 관료라는 제국의 사회적 신분 상승의 주요 장치를 공유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그 장인의 빨치산 경력을 이유로 노무현을 '빨갱이'라고 공격했던 것이 잘못이듯이, 이회창의 친인척들의 식민지 관료 이력을 가지고 '연좌제'적 비난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지만 본가, 외가, 처가의 네트워크 속에서 그의 성장과 사회적 성공을 도왔을 사회자본의 성격과 의미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그것과는 성격이 다른 이야기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계층의 사람들은 현대 사회 각 분야에서 두드러질 가능성이 더욱 크다. 이러한 좋은 배경을 타고난 것이 그 개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것의 역사성은 문제 삼아야 한다. 내게는 1997년과 2002년의 두 번에 걸친 대선 결과가 그 한 세기 동안 공고하게 계속된 귀족적 기득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의식적 거부로 여겨진다. (152쪽 ~153쪽)

 

 

3.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아 미래를 망쳐버리면 안 되지만,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지 않아 제대로 된 미래를 가지지 못했을 때는? 저자의 의견대로 '공고하게 계속된 귀족적 기득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의식적 거부'로 여겨진다고 했지만, 그러한 '귀족적 기득권'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실향민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 기득권 세력들이 그를 진정 대통령으로 여기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전후 한국 사회가 가졌던 사회적 역동성도 점차 사라져가 계층의 이동마저 어렵게 여겨지는 요즘, 한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마 이 책의 아쉬움을 지적하자면 이런 것들이 될 것이다. 뻔해보이는 가치판단만 있을 뿐이다. 상세한 자료조사 다음에 오는 평면적인 해석. 하지만 깊이 있는 해석이 없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자료를 조사하여 정리하였으며 이 정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근대 한국사 연구는 이제 시작인 듯 싶다. 지금의 젊은 연구자들은 과거의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듯하니 말이다. 

 

참고로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제국대학, 근대 일본의 엘리트육성장치

2. 조선인 교토제국대학생, 제국의 사업가가 되다.

3. 누가 제국대학으로 유학을 갔는가

4. 관비유학, 가난한 조센징에게 건넨 제국의 장학금

5. 기숙사에서 제국 엘리트의 정체성을 익히다

6. 제국대학의 교수들은 누구인가

7. 총독부 '나리'가 되어 돌아온 조센징들 

 

 

* 메모.

"조선 문단의 허다한 장편 가운데 <<사랑의 수족관>>의 김광호처럼 젊은 사람으로 치기 없는 인물을 그려낸 작품은 아마도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정>>의 형식이나 <<고향>>의 김희준은 김광호에 비하면 단연히 어린애들이다." - 채만식

채만식은 김남천이 민족주의(이광수)와 사회주의(이기영)를 대체한 새로운 과학기술적 남성주체를 창출했음을 간파한 것이다. (166쪽)

 

책에서 옮긴다. 그리고 김남천의 <<사랑의 수족관>>을 찾아보니 책으로 나온 게 없구나. 중고서적은 있는 듯하나, 너무 오래된 것들 뿐이다. 그것도 문학전집에 수록된 것이 전부다. 이 소설이 언급된 것은 '과학기술'이 식민지 시대에 지식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소개하기 위해서이며, 제국대학 출신들 중 문과가 아닌 이과 출신들의 행적을 더듬기 위해 인용되었다. 소설은 연애 이야기지만, 식민지 시대 상황을 연애 구도를 통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소설이다. 

 

 

 

제국대학의 조센징 - 10점
정종현 지음/휴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