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평등이 답이다 The Spirit Level, 리처드 윌킨슨, 케이트 피킷

지하련 2021. 3. 1. 23:04

 

평등이 답이다 - 왜 평등한 사회는 늘 바람직한가? 
The Spirit Level: Why Equality Is Better for Everyone.
리처드 윌킨스Richard Wilkinson, 케이트 피킷Kate Pickett (지음), 전재웅(옮김), 이후, 2012년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 편안함과 풍요로움으로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나에게는 부富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말고는 매일의 삶의 기쁨을 위해 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배고픔을 채우고 나면 부자나 가난한 자나 마찬가지다. – 에우리피데스, <엘렉트라Electra>에서 (20쪽에서 재인용)

 

불평등은 모든 이에게 영향을 끼친다. (217쪽) 

 

 

<<오늘부터의 세계>>에서 케이트 피킷의 인터뷰를 읽고 이 책 <<평등이 답이다The Spirit Level>>을 찾아 읽었다. <<오늘부터의 세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인터뷰는 장하준 교수와 나눈 대화들이었는데, 장하준 교수보다 케이트 피킷의 이 책이 더 궁금했다. 장하준의 책을 몇 권 읽었던 탓도 있지만, 최근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십대들의 출산이나 아동 학대, 정신 질환의 증가 등과 불평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자주 가난하기 때문에, 못 배웠기 때문에, 또는 그런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자주, 반복적으로 어떤 문제 - 폭력이나 살인 등 - 를 일으킨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책에 의하면) 이 배경에는 불평등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 이 책의 저자들, 리처드 윌킨스와 케이트 피킷도 상당히 황당했을 것이다. 애초의 계획은 이게 아니었을테니까.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역학자(epidemiologist, 유행병학자)로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여러 질환 - 우울증이나 약물 중독 등 - 에 대한 배경을 따져 묻다가 결국 부딪힌 것이 (소득)불평등이었다니. 결국 우리는 불평등의 결과로 나타난 다양한 사회 문제들,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마약이나 폭력 사건, 십대 출산이나 아동 학대 등을 두고, 이런 문제들로 인해 요즘 세상이, 이 사회가 각박해지고 살기 어려워졌다고, 그리고 왜 저들은 저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건가라고 되묻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나는 심각하게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알고 있었다.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읽었던 책들 중에서 이 책은 가장 큰 울림을 주었다. 우리가 흔히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면 마르크스(주의)를 떠올린다. 계급갈등을 이야기하며 노동자(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서 논한다. 하지만 이 책에선 ‘계급’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오직 통계 자료들로만 인과관계, 즉 역학조사를 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 왜 우리는 부유해졌지만, 더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것일까라고 물으며 그것은 해결할 수 없는가라고 묻는다.

 

더 높은 물질적 삶의 기준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우리는 진정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첫 세대다. 여러 자료는 불평등을 줄여야 사회 환경의 질도 높아지고 우리 모두가 진정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3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는 부유한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49쪽)

 

2009년에 출간된 후 상당한 논란과 논쟁을 불러 왔으며, 2012년에 국내에도 번역되어 소개되었으나, 왜 나는 2021년에서야 이 책을 알게 된 것일까. 더구나 지금은 품절된 상태이니, 한국에서는 폭넓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책을 ‘불평등한 사회일수록(소득 격차가 클수록)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만 읽은 것일까? 

 

최근 ‘불평등’에 대해선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피게티의 <<21세기 자본>>이나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 등 불평등에 대한 책들이 나오기 전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불평등에 대해 선도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 바로 이 책 <<평등이 답이다>>은 아닐까. 그리고 더 나아가 리처드 윌킨스와 케이트 피킷은 ‘The Equality Trust’ 재단을 통해 직접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왜냐면 보다 평등한 사회가 우리 모두에게 더 바람직하니까(Because more equal societies work better for everyone). 

 

* The Equality Trust 재단 www.equalitytrust.org.uk/

 

우리는 성장에 대한 강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경제성장율이 높아야 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지속적으로 올라가야 된다고 생각하며, 그래야만 잘 사는 나라가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물질적 풍요가 우리의 정신적 행복이나 육체적 건강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확실히 우리 개개인의 일상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 그런데 과연 정신적으로 행복하고 육체적으로 건강한가? 저자들은 전 세계의 다양한 통계를 보여주며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소득 격차가 심각할 정도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다. 특히 미국은 참담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적 가치를 부러워한다. 그리고 미국을 따라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된 미국은, 그들이 만들어온(불평등을 조장해온) 시장민주주의적 가치와 제도로 인해 해결하기 조차 힘든 사회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불평등으로 인해 초래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미국은 폭넓은 연구조사와 통계자료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가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스트레스의 근원으로는 첫째 낮은 사회적 지위, 둘째 친구의 부재, 셋째 어린 시절 받은 스트레스다. (61쪽)

 

불평등이 심할수록 사회적 지위도 중요해지고 사회적 평가에 대한 우려도 증가한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서로를 공통된 인간성에 근거해 평등한 타자로 받아들이지만 지위의 차이가 커질수록 상대방을 이리저리 재면서 평가한다(66쪽)

 

우리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깊은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위로해줄 친구도 어느 순간이 되면 없어진다. 이미 가족은 붕괴된 이후다. 사람들은 이혼율이 증가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서구화의 과정이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을이나 먼 일가 친척까지 챙기던 대가족이 있었던 때나, 잘 살던 못 살던 한 마을에서 살았던 시절이나 말 못할 고민을 토로할 친구가 있었던 때와 지금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는 소득 불평등으로 인한 결과가 지배하는 어떤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삶이 잔인하면 인생이 짧다.
진화심리학자인 마고 윌슨Margo Wilson과 마틴 데일리Martin Daly는 사람들이 수명이 줄어들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더 충동적이고 위험한 전략을 택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고 생각했다. 위협적인 환경이라면 난폭한 전략을 택하는 것이 지위를 향상시키고, 성 접촉 기회를 최대화하며, 최소한 단기적 만족감을 얻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더 긴 수명을 보장해주는 평온한 조건에서나 장기적인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105쪽)

 

1996년 런던 대학의 심리학자 제이 벨스키Jay Belsky와 동료들은 진화 심리학에 근거해 사람들이 어린 시절 받은 스트레스의 정도에 따라 재생산 전략을 짤 때 ‘수량’이나 ‘품질’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벨스키와 동료들은 어려서부터 “타인을 신뢰할 수 없고 관계란 기회주의적이거나 이기적이며, 자원은 희소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배운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 더 일찍 성숙하고 성적으로도 활발할 뿐 아니라 단기 관계를 선호하고, 양육에 투자하는 비용도 적다고 한다. 반면 “타인을 신뢰하고, 지속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으며, 자원을 다소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배운 사람들은 성장이나 성적 관계를 뒤로 미루고 장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선호하며 자녀 계발에도 더 많이 투자한다고 한다. (160쪽)

 

심지어 이제는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서울은 이미 경계가 만들어졌고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연구자들은 소득 불평등이 증가하면서 빈민과 부자 사이의 지리적 격리도 증가했다는 것을 확신한다. (…)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이동성은 낮고 지역적 격리는 크다. 더 큰 불평등이 사회구조를 경직시키고 사회적 사다리의 상, 하향 이동을 더 어렵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202쪽 ~ 203쪽)

 

소득불평등이 사회 이동성을 제한한다는 마지막 증거는 낙인 찍힌 집단이 자신들을 얕잡아 보는 집단에서 멀어질수록 더 편안해하는 이유를 설명한 연구에서 나온다. (210쪽)

 

우리는 소득 불평등으로 인해 받은 상처와 보이지 않는 차별 - 어쩌면 스스로 그렇게 차별당하고 있다고 여기는 - 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추켜세우며 심리적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가령 엘리베이터에 택배원의 출입을 막는다고 해서 자신들의 위신이 올라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는 이유는 스스로 그렇다고 느끼기 위해서이다. 임대아파트와 경계를 나누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결국은 소득 불평등이 만들어내는 어떤 풍경이다. 우리 스스로 물리적 경계나 원칙을 만들면서 심리적 안정을 구하고 자기 만족을 얻으려 한다. 

 

이 책의 대부분은 불평등과 그것으로 인해 야기되는 많은 문제들을 언급하는데 채워져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저자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모색해보기도 하지만, 그저 모색 수준에 머물 뿐이다. 도리어 이 책이 출간되고 난 후 쏟아진 비판, 비난, 반론들을 언급한 증보판 후기는, 이 책의 상당히 설득력 있는 논리 전개에도 불구하고 불평등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기 보다는 도리어 통계자료의 잘못된 인용과 분석으로 그릇된 결론을 도출했다는 비난들에 대해 저자들은 하나하나 반론을 전개해야만 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하긴 이 책을 읽고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는 이도 보았으니. 이 책의 저자들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혁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책이니, 이 책이 다시 번역되어 재출간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도서관에서라도 빌려서 읽기를 권한다. 아마 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상당히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아니면 이 책이 엄청 불편해지던가. (정말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래는 책을 읽으며 노트한 메모들의 일부다. 책의 내용을 아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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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1990년대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의 인기가 급상승한 것은 사회관계가 무너지고 있으며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부족하다는 또 다른 증거다. (…) SUV는 터프함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불신이 깊어지면서 타인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은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82쪽 ~ 83쪽)

 

십대 임신과 출산 모두 사회의 계급차를 반영한다. (…) 이혼율과 실업률, 가난과 범죄율이 높으면 신뢰수준과 사회 통합 정도가 낮은 사회일수록 십대의 출산율이 더 높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십대모들은 안정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임금을 받는 일을 하지 못하며 성인이라는 사회적 자격을 획득할 다른 방법도 보이지 않을 때 출산을 선택한다고 한다. (154쪽)

 

특히 아버지의 부재는 십대 출산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161쪽)

 

사회학자 데이비드 포피노David Popenoe는 자신의 책 <<아버지 없는 생활Life Without Father>>에서 미국 강간범의 60퍼센트, 청소년 살해범의 72퍼센트, 장기복역수의 70퍼센트가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자랐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부재가 청소년 비행과 폭력에 미치는 효과는 비행 청소년이나 범죄자 대부분이 가난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문제가 되는가? (173쪽)

 

불평등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가족 붕괴와 가중되는 가족 스트레스는 십대모가 되물림되듯, 폭력을 되물림하고 있다. (175쪽)

 

이는 우리 연구의 중요한 단서 중 하나며 우리를 놀라게 했다. 가장 불평등한 사회에서 전체 인구 중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비율은 가장 평등한 사회보다 다섯 배나 더 높았다. 이와 비슷하게,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수감될 확률은 다섯 배, 비만일 가능성은 여섯 배, 그리고 살인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차이가 이렇게 큰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불평등이 가장 가난한 층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18쪽)

 

소득 차이가 작을수록 모든 이의 건강은 증진된다. 하지만 부자보다는 빈민의 건강에 더 큰 변화를 가져온다. 만약 소득 차가 줄어들수록 전체 사회의 사망률이 (모든 계층에서) 거의 같은 비율로 감소한다면 상대적으로 부자와 빈민의 사망률 차이는 변하지 않게 된다. (224쪽)

 

근대 들어 불평등이 영원하고 보편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지만, 선사시대와 인간의 역사를 훑어보면 오히려 현재의 불평등한 사회가 예외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존재의 90퍼센트 이상은 매우 평등주의적인 사회에서 살았다. (257쪽)

 

인간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 따라서 주어진 사회제도에 적응하는 과정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시작된다. 타인을 의심하고, 자기 등 뒤를 살피며, 무언가 얻으려면 싸워야 하는 사회에서 자라는 사람들은 공간과 호혜성, 협동에 의존하는 사회에서 자라는 사람과는 매우 다른 기술을 익혀야 한다. 심리학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아이가 어린 시절 경험한 삶의 특징들이 아이들의 인성 개발과 훗날 어떤 성인이 되는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해 왔다. (261쪽)

 

정상상태경제 – 경제학자 허먼 데일리Herman Daly가 제안
정상상태경제란 인구나 자본재의 총량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제 상태를 가리킨다. 성장 일변도의 논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경제구조다. 
미국의 사회생태학자이자 자유주의 철학자인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은 “숨쉬지 말라고 인간을 ‘설득할’ 수 없는 것처럼 성장을 멈춰 달라고 자본주의를 ‘설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276쪽)

 

불평등을 줄이지 못하면 정책은 실패한다. (294쪽)

 

한계비용이 영(0)에 가까운 재화는 처음부터 공공재라 할 수 있으니 공중에 개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디지털 시대 이전에는 다리나 도로가 종종 그 예로 언급되었다. 사회가 다리나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들어간 투자비용을 회수하고 나면 효용은 그 사용이 부과되는 요금에 의해 제한되지 않았을 때 극대화된다. 즉, 사람들이 무료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도로와 다리가 공공재여야 하는 이유를 경제적으로 설명해준다. 정부가 통행료를 부과해 도로건설비용을 보상받으려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332쪽) 

Richard Wilkinson and Kate Pickett (출처 -https://www.theguardian.com/inequality/2018/sep/18/kate-pickett-richard-wilkinson-mental-wellbeing-inequality-the-spirit-level)

 

 

평등이 답이다 - 10점
리처드 윌킨슨 & 케이트 피킷 지음, 전재웅 옮김/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