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위대한 탈출, 앵거스 디턴

지하련 2021. 4. 4. 22:23

 

 

위대한 탈출 The Great Escape 
앵거스 디턴Angus Stewart Deaton(지음), 최윤희, 이현정(옮김), 김민주(감수), 한국경제신문 

 


읽은 지 한두 달 지났다. 메모를 하며 빠르게 읽었지만, 대단한 흥분을 느끼진 못했다. <<평등이 답이다>>를 읽을 때만큼 기대를 하였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이제 '불평등'의 문제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제기는 마르크스(주의)와는 전적으로 다른 흐름이다.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시간 동안, 최소한 함께 살면서 서로에 대해 잘 아는 무리 내에서는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불평등은 문명이 준 "선물" 중 하나였다. 코헨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문명의 잠재력을 창출하는 과정 자체가 동시에 그 잠재력이 문명에 속한 사람 모두의 동등한 웰빙을 목표로 삼을 가능성이 없음을 보장한다." 선사 시대에 일어난 발전은 최근에 일어난 발전과 마찬가지로 거의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농경사회가 실로 더 나은 사회였다면, 더 나은 사회란 불평등한 사회다. (113쪽)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더 나은 사회란 무엇일까? 기술적으로 발달한 사회? 아니면 자유로운 사회? 또는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 그런데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이야기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라든가 사회주의자나 공산당 소리를 듣게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경제적 불평등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가에 대해선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할 시기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발전’에 대한 정의, 그리고 그것의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이미 1년 넘게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코로나19도 우리가 말하는 바 발전의 결과로 이어진 환경 파괴와 오염으로 인한 기후 위기 때문임을. 


경제학자들은 혁신의 시대를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물결을 일으키는 시대로 생각한다. 새로운 방식이 낡은 방식을 밀어내면서 구질서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생계수단을 파괴한다. 오늘날 세계화로 인해 기존 질서에 의존하던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27쪽) 


이 책은 경제 발전을 위한 근현대의 시도들이 차별과 불평등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더 나은 세상은 차별화된 세상을 만들었고 탈출은 불평등을 낳았다. (126쪽) 


그리고 기술과 교육도 이 차별과 불평등에 기여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최초로 수상한 경제학자 두 명 중 한 사람인 얀 틴베르헌Jan Tinbergen은 소득 분포의 진화를 과거 일각에서 유행했던 것처럼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갈등으로 보지 않고 기술발전과 교육 확대 사이의 경주(경쟁)으로 보았다. (255쪽)


생산기술의 변화는 지속적으로 숙련도가 높은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고 이런 경향을 숙련 편향적 기술 진보 skill-based technical progress라고 한다. (256쪽) 


경제학자들은 지난 30년 동안의 숙련 편향적 기술 진보의 촉진이 소득 불평등 증가의 주된 동력이라고 믿는다. (257쪽) 


우리는 평가의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사람들이 일을 덜 하고 일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무엇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로 하면 국민 소득과 소비지출은 하락할 것이다. 프랑스의 1인당 GDP가 미국의 1인당 GDP보다 낮은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인들의 휴가가 더 길기 때문이지만 그 때문에 프랑스인들의 형편이 더 나빠졌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237쪽) 


아직도 우리는 1인당 GDP를 가지고 국가를 평가한다. 손쉬운 접근이다. 하지만 가장 문제가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놀랍게도 미국의 1인당 GDP는 6만 5천달러 수준이다. 이 책에서도 미국의 통계 자료가 쉴 새 없이 나온다. 그 이유는 미국 정부의 자료가 놀라울 정도로 많고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 통계들은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는 듯하다(이미 오래 전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에서도 GDP 문제가 언급되었지만). 


버몬트 주와 메인 주에서만 중범죄자가 교도소에서 투표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으며 10개의 주에서는 중범죄자가 복역과 가석방 형기를 마쳐도 투표권을 평생 박탈한다. (..) 투표 연령대 인구 중 2퍼센트의 투표권이 현재 또는 영구적으로 박탈되었다고 추정한다. 이 중 3분의 1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이며 따라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인구의 13퍼센트가 투표를 할 수 없다. (264쪽)



민주정치에 필수인 정치적 평등은 늘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위협받았고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해지면 민주 정치에 대한 위협도 커졌다. (282쪽) 


결국 정치의 문제인 것이다. 정치인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정치인들이 나서게 만들 수 있도록 유권자들이 조직화되어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 책은 경제적 불평등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의 해결책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특히 국가와 국가 사이의 불평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으며, 원조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내가 시작한 계산을 포함해서 이런 계산 사례들은 원조환상aid illusion이라고 부른다. 이는 부유한 사람 또는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사람 또는 가난한 나라에 돈을 더 주기만 하면 세계의 빈곤이 사라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다. 나는 이 원조 환상이 빈곤을 퇴치할 처방이 아니라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344쪽) 


<<평등이 답이다>>만큼 충격적이진 않지만,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논의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학적인 주제로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 위해 검색하다고 보니, 이 책의 번역본이 나왔을 때, 번역과 둘러싼 잡음이 있었더라. 그리고 잘못된 번역이 담긴 책은 전량 회수되고 개정판이 나왔다. 예전과 달라서 영어 원서를 원하면 바로 구할 수 있고 원문과 대조하여 읽을 수 있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 의도적인 왜곡과 오역, 또는 축소 번역을 하다니, 상당히 황당하다고 할까. 해당 내용은 아래 주소로 가면 확인할 수 있다. 댓글도 상당히 재미있다.  그리고 이 책 <<위대한 탈출>>과 노벨경제학상과는 별 관련이 없다. 호들갑스러운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위대한 탈출>>이 상당히 좋은 책이긴 하지만. 

www.socialandmaterial.net/?p=33921#comment-12316

 

‘위대한 왜곡’ ?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 번역에 관하여

프린스턴 대학교의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이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국내엔 거의 소개되지 않은 경제학자인데, 그나마 하나 들어와 있는 것이 그의 최근작(2013년) <위대한 탈출>이고,

socialandmaterial.net

 

알리딘에서도 흔적이 남아있다.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5598172 

 


<<평등이 답이다>> 이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마 개인적으로 올 한 해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책들을 찾아서 읽을 듯싶다.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우리 지구인들(?)의 미래를 위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시대라는 생각이 들기에. 어쩌면 지구가 우리를 버릴 지도 모른다. 기후 위기와 관련된 책들도 함께 읽을 생각이다. 

 

2018년 앵거스 디턴 교수 인터뷰. 

www.mk.co.kr/news/economy/view/2017/12/864049/ 

 

[2018 신년기획 인터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

"불평등, 재분배만으론 해결 안돼…경쟁통한 성장이 열쇠" 근로자 실질임금 높이는 것이 美경제의 과제

www.mk.co.kr

 

 

위대한 탈출 - 8점
앵거스 디턴 지음, 이현정.최윤희 옮김, 김민주 감수/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