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절판과 우연성

지하련 2021. 3. 29. 13:38

 

 

눈 여겨 보던 책이 절판될 예정이라고 알려준다. 인터넷서점 안, 그 책이 있던 페이지였는지, 아니면 장바구니였는지, 혹은 이메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사려고 마음 먹은 그 책을 뒤로 미루는 사이, 그 책이 이제 더 이상 구할 수 없다는 안내를, 절판된 후 이 책을 구할 수 없음을 나는 직감한다. 결국 나는 이 책을 샀다. 

 

인터넷으로 책이나 음반을 구입할 수 있게 된 순간, 나는 열광적으로 기뻐했다. 책이나 음반을 찾으러 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원하는 책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특히 음반은!  하지만 이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한 두 번 이상 신문 기사나 인터넷 서평으로 놀라운 찬사가 이어진, 정말 형편없는 쓰레기 책을 구입한 후, 믿을 수 있는 저자가 아니라면, 오프라인 서점에 나가 실물을 확인하고 한 두 문장이라도 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반은, 특히 수입 음반은 국내에 들어왔을 때 구하지 않으면 금방 품절이 된다, 좋은 음반일 수록. 그리고 품절된 후에는 구할 수 없었다. 

 

우연히 방문하게 되는 지방 소도시의 서점이나 음반 가게를 들려 구경하며, 이 책 저 책 이 음반 저 음반 찾아보는 재미를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서점도 없고 음반가게도 더 이상 없다). 처음 들른 음반 가게에서 진귀한 음반을 구하게 되는 경험은 이제 더 이상 하지 못함은 참 슬픈 일이다. 삼사십 년 전만 해도 해외에 나가서 음반을 사 오는 음반 가게 사장님들도 꽤 있었는데. 

 

디지털은 오프라인의 우연성을 배제한다. 대신 필연적인 알고리즘으로 오프라인의 우연성을 흉내낸다. 우연이 좋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하지만 빈틈없는 공식 속으로 우리의 삶이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지옥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후기모더니즘 예술은 그것과 싸운다. 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부수며 우리 삶의 불확실성, 우연성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것의 슬픔과 아련함을 추억하며 노래한다. 반대로 우리 삶의 필연성을 불러들이는 순간, 비극을 지나 지옥으로 변해갈 것이다. 거대한 어둠 앞에서 삶을, 이 세계를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한 쪽에서는 환경파괴로 인한 기상 이변(코로나도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다른 한 쪽에서는 과도한 디지털로 인한 어떤 일상의 파괴가 이어지고 있다. 정상적인 방향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이상한 변화와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제목 없음

- Umberto Eco in front of the bookshelf in his library which contains books he has written, + translation. Shot taken in Umberto Eco's apartment in Milano, May 9th.

 

 

어쩌면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 자신의 서가 앞에 서 있는 움베르토 에코를 그리워하게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