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나의 사적인 도시, 박상미

지하련 2021. 3. 31. 01:48

 

 

나의 사적인 도시

박상미(지음), 난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상도터널 옆 김영삼도서관. 몇 년 동안 빈 건물로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겨우 개관할 수 있었다. 텅 빈 건물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에 문을 열고 동네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었다. 아직 책이 많지 않고 장서 분류에 따라 몇 층으로 나누어져 있어 계단을 오가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새 책이 많다는 것이 좋다. 인근의 동작도서관가 장서 목록이 묘하게 겹치지 않는 것도 흥미롭다.

 

한 때 모든 걸 그만 두고 사서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 사서가 된다고 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책을 가까이 하고 싶다는 사소한 희망이었지만. 대부분의 취미, 혹은 사랑은 늘 마주하는 직업이 되는 순간 그 빛깔이 변한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책을 가까이하는 직업이 된다고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많이 읽긴 하겠지만, 그 경험이 모두 유쾌한 것은 아닐 것이다. 원하지 않는 책도 읽어야 할 테니.

 

바라는 대로 되는 세상이라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집엔 어디나 모란디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면 좋겠다. 눈과 정신 그리고 영혼이 매일 훈련을 하는 김나지움이 될 것이다. - <<뉴요커>>의 미술비평가 피터 쉴달(Peter Schjeldahl)  
(196쪽)

 

Still Life, Giorgio Morandi, 1946, Tate Modern

 

저마다 자기에 맞는 도시가 있을 것이다. 많은 도시에서 살지 않았으니, 나는 도시에 대해 말할 것이 많지 않다. 방문한 도시는 많을 수 있지만(어디 혼자서라도 몇 달 간 낯선 도시에서 살아봐야 되나, 그러면 말할 것이 늘어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박상미가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번역한 이라는 걸 새삼 알았다. 그리고 최근에 구입한 제임스 셜터의 소설도 번역하였음을.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역자를 기억하지 않았던 것이다. 줌파 라히리가 너무 유명하니까, 역자의 노력을 간과한 것이다. 하지만 내 소홀함이었다. 

 

제임스 셜터는 영화를 한 편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더 이상 낮아질 수는 없다.” (127쪽)

 

이 책은 저자가 블로그에 올린 걸 정리해 낸 것이다. 신변잡기적인 내용도 있지만, 그 내용 대부분은 모두 책, 미술, 도시에 대한 것들이다. 뉴욕을 사랑해 뉴욕에 머물며 번역가로 갤러리스트로 살아가고 있으니, 아, 이 정도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까. 실은 내 경우헤는 그간 몰랐던 미국의 현대 작가들(시인, 소설가, 현대미술가 등) 여럿을 알게 되었으니, 충분히 즐거웠다. 

 

책의 편집도 좋았고 중간중간 미술 작품 사진이나 뉴욕 풍경 사진이 있는 것도 책읽기의 흥미를 돋아주었다. 이런 산문집은 여러 모로 좋다. 지난 10여년 이상 내 예술계 인맥은 거의 사라졌으니. 이 산문집 만으로도 나에겐 즐거운 위로가 되었다. 

 

"내가 이 보잘 것 없는 재료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어쩌면 나 자신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모른다. 내 작업들은 나보다 똑똑하고 나보다 나은better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 리처드 터틀Richard Tuttle (14쪽) 

 

Separation, Richard Tuttle, 2015  출처: https://artviewer.org/richard-tuttle-at-modern-art/

 

* 이 책의 저자인 박상미 씨와의 인터뷰. 

www.lottehotelmagazine.com/ko/travel_detail?no=225 

 

 

나의 사적인 도시 - 10점
박상미 지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