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지하련 2021. 7. 18. 12:15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지음), 문학과 지성사 

 

생각보다 많이 읽혀지는 책이라는 데 놀랐다. 2015년에 나와 벌써 24쇄를 찍었으니, 인문학 서적으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책이다. 어느 수준 이상의 깊이를 가진 국내 학자의 책이라는 점도 좋고 적절한 시각에서 우리가 아닌 낯선 이들에 대한 환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도 좋다. 이제 한국의 민족주의 이야기를 뒤로 미루고 우리 사회 안으로 들어온 이방인들에 대한 논의가 시작해야 시기에 이 책이 가지는 인문학적 성찰은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으로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26쪽) 

 

책은 사람으로서 인정받는 과정, 인정해주기 위해 우리는 그 낯선 이를 위한 자리(장소)를 만들어야 하는 점, 결국 환대란 실제 머무는 장소(물리적인)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서 그/그녀를 인정하는 마음의 장소까지 함께 마련하여 우리 곁에 머물게 함까지 이야기하며 마무리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환대가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저자의 이러한 결론은 너무 낙관적이고 이론적인 결론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희망을 피력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소 맥 빠지는 마무리라고 할 수 있다. 

 

조건부로 주어지는 이 인색한 환대의 맞은 편에, 타자에 대한 사적 공간의 무조건적이고 전면적인 개방이 있다. 예고 없이 방문한 이방인을 위한 환대, 보답을 기대하지 않으며 심지어 상대방이 누구인지조차 확인하지 않는 환대. 데리다는 이러한 환대 - '순수한' 환대 혹은 '절대적' 환대 - 가 불가능한 이상이라고 말한다. (191쪽)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인정한다는 뜻이다. 또는 권리들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207쪽) 

 

타자, 이방인을 사회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환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라기 보다는 인류학의 관점에서 저자 나름의 시각으로 이 질문을 풀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타자 그 자체라든가 타자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기대하고 이 책을 읽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을 목적으로 씌여졌다면 이 책은 이 정도의 통찰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순수와 위험>>에서 더글러스는 더러움을 자리place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밥그릇을 침실에 두거나 음식을 옷에 흘리면 더럽다. 마찬가지로 목욕도구를 옷장에 두거나 옷을 의자에 걸어두는 것, 집 밖에서 쓰는 물건을 실내에 두는 것, 위층의 물건을 아래층에 두는 것, 겉옷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속이 나와 있는 것 등은 더럽다."(73쪽) 

 

저자는 자신의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여러 학자들과 이론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제반 지식들과 그와 관련된 논의를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좋은 책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 상황을 볼 때도 상당히 시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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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와 '만남'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이 책을 읽었는데,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타자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 대해 알고 싶다면, 레비나스의 책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아마 그 전에 '동일성'의 관점에서 철학이 어떻게 '타자'를 배제해왔는가에 대한 철학의 역사를 알면 더 좋겠지만(이 부분에 대해선 딱히 적당한 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읽었던 것같은데. 데콩브의 <<동일자과 타자Le meme et l'autre>>는 다시 번역되면 좋겠지만, 이 책도 '동일성'의 관점에서 현대프랑스철학을 논의한 것이므로 일부만 알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