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빈곤의 종말, 제프리 삭스

지하련 2021. 9. 25. 16:34

 

 

빈곤의 종말 The End of Poverty 
제프리 D. 삭스(지음), 김현구(옮김), 21세기북스, 2006

 

 

극단적 빈곤이 의미하는 기아와 질병, 그리고 생명의 낭비는 한마디로 전 인류에 대한 모욕이다.
- U2의 보컬 보노의 ‘추천의 글’에서 (5쪽)

 

Bono & Sachs

 

상당히 무거운 책이다. 진지한 프로퍼간다다. 제프리 삭스는 이 책 내내,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대놓고 기부하라고, 돈을 내놓으라고 주장한다. 올해 초에 읽은 앵거스 디턴은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2015년)을 통해 ‘원조 환상’에 대해서 비판하지만, 그보다 약 10여년 전에 출간된 삭스의 <<빈곤의 종말>>(2005년)에서는 경제적 불평등, 즉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국, 부유층의 원조와 기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원조와 기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지만, 적어도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그 기부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투자 전략(혹은 넓은 관점에서의 설계안)이 담긴 일종의 경제학 책인 <<빈곤의 종말>>을 쓴 것이다. 이 점에서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책은 경제서적으로 위장한 프로퍼간다 서적에 가깝다.

 

제프리 삭스는 서두에서 개발도상국 이하의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여러 국가들의 경제 정책 자문을 수행하면서 겪은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하면서, 빈곤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경제 정책, 혹은 정치적 문제이며, 일종의 책임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기부자들이 수혜국들의 통치구조 개선의 필요성은 크게 강조했지만 정작 자기들 몫의 책임은 적당히 축소하거나 피해갔다. (419쪽)

 

기부라는 행위는 자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삭스는 여기에 책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국가들에 대한 서구 국가, 그리고 그 국가에 속한 부유층들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까(솔직히 책임이라는 단어는 다소 과격한 주장처럼 여겨지는 건 나만의 문제일까).

 

외부 세계는 아프리카의 오랜 위기에 대해 아주 뻔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 즉 끊임없이 모든 원인을 만연한 부패와 잘못된 통치 탓으로 돌린다. 아프리카 나라들에 대한 IMF와 세계은행의 무수한 ‘대표단’을 포함한 서구 관리들은 아프리카가 스스로 더 잘 처신하고 부패한 통치자들의 개입 없이 시장의 힘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96쪽)

 

나쁜 통치구조를 비난하기에 앞서 서구는 좀더 신중해야 한다. 세상에 다른 어느 누구도 서구만큼 오랫동안 아프리카를 약탈하거나 확대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16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300년이 넘게 노예무역이 행해졌으며, 이어 1세기 동안 야만적인 식민지 통치가 이루어졌다. 식민지 시대는 아프리카를 경제적으로 상승시키기보다는 아프리카에 교양 있는 시민과 지도자 그리고 기초 인프라와 공중보건 시설의 결핍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297쪽)

 

인류 역사를 천천히 돌이켜보면, 국가들 간의 경제적 불평등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존재하는 ‘부국과 빈국의 간극’은 새로운 현상이다. 즉 현대적 경제성장의 시기에 크게 벌어진 간극이다. 1820년 당시에 최대 간극 ? 특히 그 당시 세계 경제의 선두에 있던 영국과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인 아프리카 사이의 간극 ? 은 1인당 소득에서 4대 1이었다(구매력 차이를 고려하여 조정한 경우에도). 그러나 1998년에는 가장 부유한 경제를 자랑하는 미국과 가장 빈곤한 지역인 아프리카 사이의 간극은 20대 1로 더 넓어졌다. (56쪽)

 

이러한 간극이 벌어졌던 시기를 사이먼 쿠츠네츠는 “현대적 경제 성장의 시기”라고 명명한다.

 

1800년경 이후로 지난 2세기는 경제사에서 독특한 시대였다. 이 시대를 위대한 경제사가인 사이먼 쿠츠네츠는 “현대적 경제 성장의 시기”라고 명명했다. (54쪽)

(* 사이먼 쿠츠네츠는 상당한 명성을 지닌 경제학자인데, 그의 책은 어느 것도 번역되지 않았다. 흥미가 생겨 찾아보니)

 

 

이를 연결해 읽자면, 19세기부터 급격하게 심해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책임이 서구 국가들에게 있는 건 아닐까. 제프리 삭스가 이를 대놓고 주장하진 않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는 국가들 대부분은 과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였거나 그 열강들에 의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던 국가들이었다(러시아를 제외하자면. 러시아는 빈곤 국가로 보기도 어렵기도 하거니와, 이 책에서 언급되긴 했으나, 사회주의 경제 체제 붕괴 과정 속에서의 서구 국가들의 잘못된 대응에 대한 사례일 뿐, <<빈곤의 종말>>이라는 이 책의 주제와 부합되는 경우는 아니다).

 

나는 ‘빈곤의 종말’을 향해 노력하는 제프리 삭스의 고분분투에 감동을 받긴 했지만, 그보다 현재 벌어진 경제적 불평등이 실은 지난 이삼백년 간의 서구 열강이 저질러 놓은 잔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38년 간의 일제 식민지 경험을 가진, 그리고 아직도 그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 생각하면서 분노하게 된다. 경제적 관점에서 일제 식민지 시절 만들어진 다양한 경제 인프라가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는 일부 경제학자들의 주장까지 떠올라 더 흥분하게 되었다.

 

첫째, 나는 바깥 세계와의 특수한 관계가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메커니즘을 어느 때보다 더 깊이 인식했다. 볼리비아의 역사, 위기, 경제적 전망 모두 천연자원 수출로 생계를 꾸려 가는 산악 지형의 상황을 철저하게 반영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폴란드의 역사, 위기, 경제적 전망은 모두 서쪽으로는 독일, 동쪽으로는 러시아 사이에 낀 채 주로 낮은 지형의 평원으로 이루어진 상황을 철저하게 반영했다. (194쪽)

 

중국 경제의 화려한 상승은 다른 정책을 선택한 결과라기보다 다른 지리, 지정학, 인구동학을 가진 결과였다. (222쪽)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한 나라의 경제 성장과 빈곤 극복은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이는 제프리 삭스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이 점에서 한국은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실은 전후 빈곤국가에서 지금은 선진국의 대열로 올라온 것이 서구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놀라운 일이겠지만, 대놓고 이야기하자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가령 중국을 하나의 국가로 보지 말고 여러 국가들의 연합체로 보자면, 지정학적 위치에 의해 경제적 불평등이 생긴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지정학적 위치 속에서 수 천년을 살아온 것이니, 도리어 유럽 국가들과 비교한다면 한국의 경쟁력은 역사적으로는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국뽕이 아니라).

 

하지만 조선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이 이상한 나라의 사람 절반이 노비(노예)였다는 사실은 조선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더구나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린 나라는 조선이 거의 유일했다. 심지어 대놓고 사고 팔았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조선 후기의 혼란상은 지금의 한국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조선 후기의 재정 위기로 인해 공명첩 등의 남발은 대부분의 이들로 하여금 성을 가질 수 있게 하였으며, 이로 인한 노비 제도의 유명무실화가 노비 제도의 폐지를 더 용이하게 만들 것일 테니. 그러나 제도가 폐지된다고 해서 경제적 자립 수단을 갖지 못한 노비가 바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일부 부유층의 경우에는 전후까지도 노비와 함께 살기도 했다. 그래서 수십년 전만 하더라도 노비의 아들 딸들이 있었고 노비의 자제와 결혼해 집에서 쫓겨나는 이들도 있었으니 우리와 먼 과거도 아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로 흘러갔다. 제프리 삭스는 전세계적으로 빈곤을 해결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극단적 빈곤 상태는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어조는 상당히 희망적이고 의욕적이어서, 책의 내용보다는 제프리 삭스라는 경제학자를 다시 보게 된다고 할까. 그는 임상경제학을 제안하면서 현대 의학에서의 세밀함, 통찰력, 실용성을 갖추어서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개발경제학은 현대 의학처럼 세밀함과 통찰력 그리고 실용성을 갖추도록 정비될 필요가 있다. 어떤 면에서 오늘날의 개발경제학은 18세기 의학과 닮았다. (116쪽)

 

나는 개발경제학을 위해 내가 새롭게 제안한 방법을 임상경제학(clinical economics)이라고 부른다. 훌륭한 개발경제학과 임상의학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117쪽)

 

임상경제학 측면의 개발경제학 
첫째, 경제는 인간의 몸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시스템이다. 인간의 순환계와 호흡계를 비롯한 기타 시스템들처럼 사회는 수송, 동력, 통신, 법집행, 국방, 과세 등 다양한 시스템들을 가지고 있다. 이 시스템들은 경제 전체가 기능할 수 있도록 적절히 작동해야 한다. (…)
둘째, 임상의들과 마찬가지로 경제학자들은 감별 진단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 이와는 대조적으로 IMF는 부패, 사기업에 대한 장벽, 예산 적자, 생산의 국가 소유 같은 매우 협소한 이슈들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 IMF는 아프가니스탄에서나 볼리비아에서라면 거의 반사적으로 수송 비용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세네갈에서라면 말라리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셋째, 임상경제학은 임상의학과 마찬가지로 치료를 개인의 측면이 아니라 ‘가족’의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
넷째, 개발을 훌륭하게 실행하려면 관찰과 평가가 필요하다. 특히 이때 목표와 결과의 엄격한 비교가 필요하다. 목표가 달성되지 않을 경우에는 과거의 자문에 대한 핑계거리를 찾을 게 아니라 실패의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
다섯째, 개발경제학 공동체는 반드시 필요한 윤리적, 직업적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개발경제학 관계자들이 부패하거나 비윤리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다만 개발경제학 공동체가 과업에 걸맞는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일에 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123쪽 ~ 126쪽)

 

임상의학처럼 한 국가의 경제 상황을 진단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그리고 그에게 ‘경제발전이란 어느 일부의 승리가 다른 일부의 패배를 대가로 하여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참된 경제발전이란 모든 사람이 이길 수 있는 게임이다.’(59쪽)

 

이 책의 끝부분에 제프리 삭스는 계몽주의를 언급한다. 다소 의외였으나, 그 스스로 계몽주의자들을 언급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칸트는 국제무역이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았다. “전쟁과 양립할 수 없는 상업 정신이 조만간 모든 국가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입니다. 국가 권력 안에 들어있는 모든 힘 또는 수단 중에서 돈의 힘이 가장 믿음직할 것이므로 국가들은 어떤 도덕적 명령이 없더라도 고결한 평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전쟁이 일어날 낌새가 보일 때마다 중재를 펼쳐 전쟁을 방지하게 될 것이다.” 개방적인 경제들이 폐쇄적인 경제들보다 국가 실패에 빠질 가능성이 훨씬 적다는, 국가 실패에 대한 CIA 태스크포스의 발견도 칸트가 한 말들과 아주 비슷하게 들린다. (520쪽)

 

콩도르세는 또다시 이렇게 선언했다. “의료의 진보, 영양과 주거의 개선, 체육을 통해 힘을 기르는 생활양식이 …. 불가피하게 평균 수명을 연장시키고 인간들에게 더욱 변함없는 건강을 보장할 것이다…. 이성과 사회질서의 진보에 의해 예방 의료의 효능이 더욱 커질 테고, 이와 같은 예방 의료의 진보는 장기적으로 기후, 먹거리, 노동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통상적 질병 뿐만 전염성 질병도들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521쪽 ~ 522쪽)

 

계몽주의의 가장 뿌리 깊고 영속적인 약속의 하나는 사회진보가 서유럽이라는, 세계의 좁은 구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계몽주의의 모든 주도적 인물들은 인류의 본질적 평등을 믿었고 세계 모든 곳의 사회가 경제적 진보를 나눌 역량이 있다고 내다보았다. (522쪽)

 

그러나 계몽주의자들의 등장 이후로 이어진 것이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였으니, 제프리 삭스의 저 의견은 그의 희망에 가까울 것이다. 칸트나 콩도르세에게 아프리카나 동아시아, 혹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대상이 아니었을 테니. 이들은 자신들과 언어를 공유하지 않는 바바리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유럽인들을 선망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인을 박람회에 원숭이처럼 전시하기도 했다. 1903년 열린 <오카사박람회> - 유럽의 박람회를 본 따 만든 ? 에서 조선인, 류구인(오키나와사람), 아이누인(훗카이도사람), 대만의 고산족(지금도 가면 만날 수 있음)을 전시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제프리 삭스의 저 의견은 그의 희망 사항에 가까워 보인다. 이 책 전체가 그의 희망적인 계획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처럼.

 

https://www.amazon.com/Human-Zoos-Invention-Gilles-Bo%C3%ABtsch/dp/2330002610 

'Human Zoo'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다양한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1년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the Quai Branly anthropological museum에서는 ‘Exhibitions: the Creation of the Savage’라는 전시가 열렸는데, 이 때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수집한 인종들을 어떻게 알리고 취급했는가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진, 엽서 등을 전시했다. 위 책은 그 전시의 도록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실린 삭스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희망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그렇게 생각하고 실제로 움직이는 그가 대단해 보인다. 그룹 U2의 보노가 말하는 대로 제프리 삭스는 대단한 경제학자임에 분명하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시사적이며 그가 제시한 방안은 충분히 구체적이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도 알고 우리도 아는 사실이다. 이 책이 2005년에 나왔으니, 벌써 20년을 향해간다. 그 사이 빈부격차는 더 심해졌고 지역 분쟁은 늘어났으며 극단적 빈곤 상태는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몇 개의 문제들은 해결되었는지 모르지만.

 

번역 출간된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은 주제다. 다만 2006년의 한국와 2021년의 한국이 너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뺀다면 말이다. 

*          *   



아래는 책을 읽으면서 기억해 두어야 할 만한 부분을 메모한 것이다.

 

생활조건과 경제활동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가족 구조에서도 새로운 현실을 낳는다. 결혼 연령이 일반적으로 늦추어지고, 성 관계가 변화하며, 자녀 양육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성적 자유가 확대된다. 한지붕 아래 사는 세대 수가 줄어든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가족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함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서 원하는 자녀 수도 극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농촌사회에서 언제나 대가족이 표준이었다. 도시 사회에서는 좀더 적은 수의 자녀를 선택한다. (67쪽)

 

특허 취득 최상위 20개국-모두 고소득국-이 모든 특허의 98%를 차지한다. (101쪽)

(* 경제적 불평등에서의 특허 문제에 대해선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어보면 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여느 때처럼 채무이행에 대해 많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케인스는 심각한 경제적 곤궁에 빠진 사회들의 정치, 경제를 탁월하게 이해하고 글로 묘사했다. 케인스는 독일에 전쟁 배상금을 요구하고 연합 전승국들에 대한 전시 부채 상환을 요구함으로써 채무국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별로 이롭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케인스는 정치 시스템이 갑자기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케인스는 그의 저서 <<평화의 경제적 귀결>>에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청구권들을 취소하라고 과감하게 주장했다. (155쪽)

(* 히틀러의 등장은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채무 이행 때문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저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세계 제 2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련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본 패망은 없었을 것이니, 우리는 아직도 식민지 시대일지도 모르겠구나. 식민지 시대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씌여진 소설이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이다. 이 소설이 나왔을 때의 센세이션은 놀라웠지만, 복거일이 스스로 자유보수주의자임을 들어냈을 때 더 놀라웠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영국의 제국주의적 무책임성을 가장 놀랍게 드러내는 것 가운데 하나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기에 반복된 기근과 유행병에 대한 영국의 대응이었다. 마이크 데이비스가 <<빅토리아 말기의 홀로코스트>>라는 놀라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했듯이 인도는 몬순이상(monsoon failure)을 반복해서 겪었다. (…) 영국의 가장 큰 잘못은 기근에 대한 무방비한 대응책이었다. 영국은 인도인들이 직면한 거대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식량구제를 비롯한 기타 사회적 서비스를 조직하는 데 계속 실패했다. (…)
몬순이상이 1960년대에 다시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인도 주권 국가가 대규모 긴급 식량 배급을 통해 굶주린 대중을 구조했다. 이런 재난 구제를 보면서 아마티아 센은 기근이 기후변동이나 작물 수확량보다는 권위주의적 장치와 더 큰 관련이 있다고 밝혀냈다. 이것은 위대한 통찰이었다.(276쪽 ~ 277쪽)

(* 마이크 데이비스의 저 책은 <<엘리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2008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구입 목록에 등록했다. 인터넷서점에 등록된 책들만 읽어도 죽을 때까지 읽어야 할 지도 모른다. 때로 내가 왜 읽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반대로 말라리아가 빈곤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말리라가 직장과 학교의 장기 결근과 결석의 명확한 이유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이상 더 뿌리 깊은 이유도 존재한다. 말라리아와 황열병 때문에 파나마 운하의 건설이 30년 이상 지연되었던 기억을 되살려보는 것도 그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309쪽)

(* 코로나 사태에 대한 각 국가들의 대응은 그 전염병이 창궐하여 끼치는 경제적 해악보다 그걸 막아서 생기는 경제적 해악이 더 적다고 여기기 때문이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기업에서 구성원들에게 담배 끊고 운동을 권유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경제적 빈곤에 건강과 질병이 끼치는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하다.)

 

즉 영양소가 고갈된 토양, 변덕스러운 강우, 광범위한 말라리아 전염병, AIDS, 적절한 교육기회의 부재, 안전한 식수와 화장실의 부재, 기본적인 수송, 전기, 취사용 연료, 통신 등의 결핍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들은 널리 알려지고 검증되었으며, 상황에 알맞고 신뢰할 수 있는 기술과 개입조치로 극복할 수 있다. (358쪽)

(* 제프리 삭스는 돈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데, 왜 하지 않느냐고 끊임없이 반문한다.)

 

실제로 기부자들이 케냐에 지원한 금액은 약 1억 달러로 필요한 금액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케냐가 부채 이자 상환을 위해 부유한 세계에 지급하는 돈은 연간 약 6억 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국제 사회가 케냐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기 보다는 오히려 갉아먹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364쪽)

(* 결국 IMF나 세계은행 같은 녀석들이 나쁜 놈들이다. 가난한 나라에 돈 빌려주고 이자 쳐서 받아내는. 그리고 이들의 투자자들은 글로벌 투자 회사나 금융 그룹들이다.)

 

나치오스(2001년 당시 USAID의 청장)는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인들은 “서구적 시간이 무엇인지모릅니다. 당신은 이 AIDS 치료약들을 날마다 특정한 시각에 그들에게 가져가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약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은 일생 동안 시계라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오후 한 시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당신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침과 정오, 그리고 저녁과 한밤중의 차이는 압니다.” 나치오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유감스럽지만 제프리 삭스를 비롯해 이런 것(AIDS 약물 치료)을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농촌이든 도시이든 보건 분야에서 일해 본 적이 없습니다. (467쪽)

(* 이 책 초반에 등장하는 볼리비아 사례를 통해 제프리 삭스는 지정학적 조건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지리적 환경, 정치적 환경이나 역학 관계, 문화나 교육 여견 등도 상당히 중요하다. 또한 문화도 알아야 된다. 이 책을 통해 이런 것을 자세히 알게 된다.)

 

 

23년 5월에 덧붙이는 글) 새삼 다시 보니, 제프리 삭스의 책 리뷰를 참 길게 했구나. 최근에는 제프리 삭스에 대한 생각이 다소 바뀌었다. 뭐랄까, 상당히 정치적인 중도 경제학자랄까. 나서기 좋아하고 뭔가 폼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그런 느낌이 든다. 얼마 전에 읽은 불평등에 대한 책에서는 아예 원조나 기부를 하지 말자는 과격한 의견도 제시되고 있지만, 제프리 삭스는 그런 것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결국 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데, 삭스는 돈만 언급하고 있으니. 아래는 최근에 읽은 <<빈곤과정>>(조문영 지음, 글항아리)에 언급된 제프리 삭스다. <<빈곤의 종말>>에서 본 제프리 삭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늦긴 했으나, 인용해둔다. 이 글을 보는 이들에게 참고가 될 것이다.

 

젊은 시절 제프리 삭스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글로벌 남반구와 포스트 사회주의 국가에 이식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가 제안한 ‘충격 요법 sharp therapy’은 자유 시장과 사유재산에 기초한 대대적인 사영화 조치를 의미했다. 이 가공할 ‘요법’의 결과, 1980년대 중반 볼리비아는 광산 대부분이 사유화되면서 실업자가 넘쳐났고, 1990년대 러시아는 민생경제 파탄과 조직 범죄로 장기 후유증을 앓았다. - <<빈곤과정>>, 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