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일요일 오후 노들섬

지하련 2021. 9. 27. 09:22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소리 없이 다가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내 정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종일 책상에 앉아있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그저 불안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번 생은 어딘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불안에 대해서 최악의 처방전만 있다. 그것은 고개 돌리기, 외면하기, 회피하기, 도망가기, 망각하기. 

 

 

서울시 따릉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 근처로 나왔다. 가을 저녁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들은 연신 브레이크를 잡으며 자신의 자전거 타기 실력을 뽐내고 한강대교까지 가는 동안 동네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날 수 있었다. 이 근처에서 산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구나.  

 

보통은 여의도 한강 시민 공원까지 가든지, 동작대교를 지나 반포대교 남단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을 선택하는데, 이번 에는 노들섬엘 가보기로 한다. 노들섬, 재작년 겨울 아들이 스케이트를 배우기 위해 갔던 적 이후 방문하지 않았다. 그 이후론 계속 코로나 시절이었으니. 

 

 

 

어둠에 물드는 한강을 보며 노들섬으로 향한다. 말 많던 노들섬. 동작구가 아닌 용산구 이촌동에 속한 노들섬. 자전거를 타고 노들섬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의외로 많은 곳들이 개방되어 있었다. 잔디밭에 사람들이, 코로나가 무색할 정도로 많이 있었다. 가을이다. 바닥에 깔 수 있는 작은 매트만으로도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으니, 간식거리는 바로 사서 오면 되는 구조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 뿐이었다. 나이 든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노들섬을 한 바퀴 돌았다. 가을 저녁은 어느새 가을 밤으로 변한다. 강물 위로 바람이 지나며 자신들이 거기 있음을 알린다. 인공의 불빛들이 강물과 바람 사이에서 흔들거렸다. 잔디밭 위에 앉은 연인들이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다. 꼬마 아이들은 달렸고 카메라를 들고 나온 이들은 석양의 한강을 찍고 있었다. 

 

 

 

불안은 저 가을 풍경 안으로 침범하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가 목이 마르다고 해서 노들섬 안에 있는 편의점에 갔더니 진열대 상품이 남아있지 않았다. 생수 대신 음료수 하나와 스트링치즈를 샀고 나를 위해 바로 옆 카페에서 맥주 한 잔을 샀다. 스트링 치즈 하나와 맥주 한 잔을 마셨다. 

 

하나 하나 생각하면 세상은 불안덩어리다. 끔찍할 정도다. 이건 이미 카프카가 예견했고 그는 그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나이가 들어도 그런 건 사라지지 않는다. 다위니즘의 세계다. 약육강식의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에 최적화된 녀석들만 살아남는다. 현대인이 살이 쉽게 찌는 건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공포와 불안의 연속이다. 마지막 남은 네안데르탈 인의 공포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런 공포와 불안과 싸우기 위해 우리는 예측가능한 질서를 문명 안으로 가지고 온 것이다. 하지만 그 질서마저도 현대인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다. 이제 그 질서도 너무 복잡해서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것이 현대의 불안이다. 

 

다행이다. 사는 곳 근처에 공원이 있다는 건. 그것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