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2021년 10월, 작은 생각

지하련 2021. 11. 6. 11:16

 


몇 주 전부터 알람 시간을 새벽 3시로 맞추어놓았지만, 한 번도 제 때 일어나지 못했다. 실은 겨우 출근 시간에 맞추어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려고 집에 오자마자 씻고 오후 9시나 10시에 바로 눕는데도, 하루 두 세 차례의 회의와 업무 긴장감, 순간순간 엄습해오는 초조함과 압박으로 인해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고 하루 일곱시간 수면도 부족하다고 할까. 그 마저도 스트레스로 깊은 잠을 자기 어려우니. 선잠을 자고 내일 일과를 생각하면 피곤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잠자리는 끝없이 불편해진다. 그래도 끝나지 않는 일들은 나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알람 시간에 기대게 하고, 내 불안과 근심은 결국 불가능한 기상 시간과 불편한 잠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일까, 일상일까. 내가 원했던 삶은 이런 것이었을까. 아니면 작은 아파트 하나 얻어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서 사는 게 꿈이었을까. 어쩌면 ...

 

올해 시작한 프로젝트들이 모두 수렁으로 빠져버렸다. 예상하지 못했다. 주요 멤버들 대부분은 알던 이들(프리랜서과 정규직 모두)이었고 어느 정도는 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무참히 사라졌다. 실은 비즈니스 환경이 바뀌었고 프로젝트도 그 규모가 예전과 다르게 커졌다. 그러니 그들에게 했던 기대와 실제 업무는 상당히 달랐던 셈이다. 늘 그렇듯 일을 망가뜨리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것을 수습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성공은 운이고 실패는 정해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한다. 우리들은 대부분 실패할 것이다. 내가 그랬고 네가 그랬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실패했다고 좌절해할 필요 없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이들은 저 멀리 성공한 이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실패한 이들이다. 성공은 저 멀리 있고 실패들은 가까이 있으니, 루저들끼리 위로를 받는다. 보진 않았지만 너무 유명해져 그 줄거리는 다 알려진 <<오징어게임>>도 그런 서사인 셈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성공한 이들마저 루저라고 몰아간다. 상대적인 평가나 비교는 자신의 성공을 왜소하게 만든다.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하지만, 이런 이야길 하면 비난부터 먼저 하는 이들이 있다. 모든 이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 역량이나 세상에 대한 고민 같은 걸 강요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런 이들의 선을 넘는 발언들은 막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언론에 대한 법이나 인터넷실명제 같은 걸 옹호한다)

 

금요일 새벽에 일어나 출근을 했다. 프로젝트 주간회의를 오전 8시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상황이 좋지 않아 고객사 내 이해관계부서 리더들과 함께 프로젝트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몇 달 전부터 시작했다. 벌써 오픈을 2번 연기했다. 프로젝트 시작 후 4달 째 PM을 교체하고 내가 들어갔다. 회사 사정도 있고 내 사정도 있었다. 나는 조금더 선명해져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어떤 부분에선 약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장점이면서 내 약점이다.

 

주말에 나가 몇 번 일을 했다가 요즘엔 가지 않는다.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뿐더러,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내가 나서서 하는 바람에 더 꼬였기 때문이다. 나는 실무를 하지 않고 관리만 해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실무까지 맡아서 해버리는 통에 더 엉망이 되었다. 이것이 실무를 잘 한다고 믿는 관리자들의 폐해다. 실무를 잘 하는 것는 실무자의 역할이지 관리자의 역할은 아니다. 

 

얼마 전에 유식물원캠핑장에 갔다왔다. 벌써 2번째다. 내년에는 백패킹도 시도해봐야겠다. 아이가 많이 자랐다. 자라면서 아이가 겪는 어떤 종류의 고민이나 방황은 너무 익숙해서 부끄러워진다. 나도 그랬으니까. 아이와 자주 같이 있으려고 노력 중이다. 나에겐 없는 기억, (지금은 계시지 않는) 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경험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유식물원 캠핑장 맨 위에는 사과농장이 있다. 그곳에서 사과를 따서 내려오는 길이다. 

 

이제 가을도 간다. 겨울이 올 것이다. 겨울이 어느 정도 깊어졌을 때쯤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도 잘 마무리되고 내년에는 올해와 같은 시행착오들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코로나가 가지 못했던 성당 미사도 꼬박꼬박 나갈 수 있길. 

 

옹진군 자월도에 다녀왔다. 물이 많이 빠지지 않아 아쉬웠지만, 서해 가을 바다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