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다가올 역사 서양 문명의 몰락, 나오미 오레스케스, 에릭 M.콘웨이

지하련 2021. 12. 19. 20:22

 

 

다가올 역사, 서양문명의 몰락

나오미 오레스케스, 에릭 M.콘웨이(지음), 홍한별(옮김), 갈라파고스

 

 

제목만 본다면 영락없는 문명사 책이지만(그래서 나도 샀지만), 문명사 책이 아니다. 서양 문명의 몰락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오긴 했지만. 

 

이 책은 서양문명(1540-2093)이 몰락한 지 300년이 된 시점에, 계몽의 후손이라 불리던 이들이 대체 왜, 어떻게 해서 기후변화에 대한 확실한 정보와 앞으로 펼쳐질 재앙에 대한 지식을 갖고도 대응하지 못했는지를 파고든다. (11쪽)

 

기후위기에 대한 가상의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기후위기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고 중앙집권 국가가 다시 등장해 이 위기를 겨우겨우 수습해나간다는 이야기다. 짧지만 강렬하고 냉소적이다. 그러나 조금 더 과격하게 표현하면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 책이 현재 각국의 기후위기 대응의 모습을 스케치하듯 보여주고 그것의 실질적인 심각성에 대해선 자세히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20세기 후반의 여러 사정에 대해서만 이야기될 뿐, 실제 기후 변화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래서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지만, 디스토피아적 모습을 느끼기엔 부족하고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대해선 표피적인 언급만 이어질 뿐이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과학자들은 인간의 활동이 필연적으로 지구의 물리적, 생물학적 기능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인류로 인해 지구의 변화가 일어나는 지질학적 시대를 인류세 人類世 Anthropocene라고 부른다.(22쪽)



왜 뚜렷한 인식론적 근거도 수학적 근거도 없는 95퍼센트 신뢰수준이라는 기준이 확고하게 자리잡았는지는 역사학계의 오랜 의문이다.(41쪽)

 

어쩌면 저자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반대론자, 혹은 소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실증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야기하지만, 자본주의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실증주의에 대한 언급은 다소 의외다. 

 

이 시대 최대 역설은,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했던 신자유주의가 결국 정부가 대규모로 개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83쪽)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는 모든 기후위기론자들의 공통된 의견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
18세기에 유행했던 신비주의적 사고다. 자본주의체제의 시장은 보이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힘의 작용에 의해 ‘균형’을 이룬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시장은 반드시 효율적으로 작동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믿음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도 불린다. 자본주의에 대한 반半종교적인 신봉의 바탕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손을 두고 신비주의적 사고라고 하는 부분은! 그러나 이런 냉소적인 부분이 많진 않다. 냉소적인 기조가 밑바닥에 깔려 있지만.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이 저자들의 다른 책, <<의혹을 팝니다>>를 읽어본 후에야 알 수 있을 듯 싶다.